-------------- §가그린§ (godqhrgkehfhr@hanmail.net) 플티〃가그린〃소설 (http://cafe.daum.net/Gagrin) -------------- ※헬리오토로프는 5월 24일의 탄생화로 사랑이여 영원하라 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1> 저는 어제 7년만에 한국에 왔습니다. 공항에서 언니와 엄마의 마중을 받고서요. 그래서 한국은 제게 무지 낯설고 신기한것 투성이였어요. 아 심지어 제가 지금 입고 있는 이 교복두요. 무지 낯설어요. "그러니까. 아까 언니가 몇반이라고 했지?" 학교에 오면서 넋을 놓고 구경하는 바람에 언니의 반을 까먹었어요. 저는 언니의 학교 앞에서 골똘히 생각에 잠겼습니다. 언니가 3반이랬나요. 5반이랬나요?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다시 생각이 나질 않아요. 으억 어쩌죠. 저는 지금 학교에 들어가서 시험을 봐야 하는데 말이에요. -여보세요 "언니!" 결국 학교에 들어가는걸 포기해버리고는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언니는 아직 잠에 잔뜩 취한 목소리였습니다. 으헤헤. 많이 피곤했나봐요. -으응 누구야 아 그리고, 여기서 하나 말해둘게 있어요. 저랑 언니는 쌍둥이에요. 그래서 어제 7년만에 만난 우리는 서로의 모습에 둘다 깜짝 놀랐어요. 우린 놀랄만큼 비슷하게 컸기 때문이에요. 엄마하고 아빠가 이혼하는 바람에 저는 아빠와 함께 미국에서 살았고, 언니는 한국에서 살아서 무려 7년동안이나 보지 못햇는데. 7년뒤. 지금 언니와 저는 왠만해서 구분하기 힘들정도로 닮아 있었어요. 신기하죠? "언니 나 예봄이" -응 예봄아. 학교 들어갔어? "아니. 아직! 그런데 언니 몇반이라구 했지?" 저는 놀랄만큼 저와 비슷한 언니의 목소리를 가만히 듣다가 전화를 건 목적을 말했어요. 그러자 언니가 아하하하 하고 호탕하게 웃었습니다. 이렇듯 언니랑 저는 많이 달라요. 언니는 무지 터프하고 밝지만 저는 쑥스러움도 많고 조용한편이지요. -5반이라니깐. 아 김예봄 아까 내가 한말 잊지마. 알았지! "언니한테 아는척 하는 사람들한테는 '아. 용건은 시험이 끝나고-. 그럼 그때봐요 안녕!’ 이라구 하라는거요?" -그래 아하하하. 그럼 시험 끝나고 전화해. "응!" -아참참 예봄아 "응??" -엄마도 내가 넌줄 알아. 하하하 나 진짜 웃겨 죽어. 그럼 이따보자 동생! 달칵- 전화가 끊기자 저는 주머니에다가 언니의 핸드폰을 집어넣었어요. 다들 눈치채셨죠? 모두가 생각하듯이 언니와 저는 오늘 하루 서로 바꿨어요. 언니는 김예봄이. 저는 김예나가 되기로 한것이죠. 한국에 온지 하루밖에 안됐는데 왜냐구요?. 오늘은 언니의 기말고사날이래요. 시험을 봐야하는데 언니 말로는 공부를 무지 못한대요. 그래서 언니가 이번에 돌아오는 토요일날 63빌딩을 데려가기로 한 조건으로 제가 그 시험을 대신 봐주기로 했어요. 6.3빌딩은 꼭 가보고 싶은 곳중 하나에요. 왜냐하면 7년전에 엄마손을 꼭 잡고 가봤던 기억이 나서요. 한국에 다시 온다면 꼭 가봐야지 했거든요. "언니가 5반이라고 했지?" 아무튼간에 저는 다시는 까먹지 않게 손가락 다섯 개를 피고는 발걸음을 옮겼어요. 음. 지금 솔직히 말하면 너무 신기하고 낯설어요 제가 입고 있는 예나언니 교복도 무지 낯설구요. 이렇게 거대하게 큰 학교도 무지 낯설어요. 아. 하나 더 추가해서 한손에 책을 들고 저마다 교문을 통과해 들어가는 학생들도요. 한국에 학교는. 뭐랄까 미국의 학교와는 아주 다른 느낌이였습니다. .. .... "여보! 지금 등교해?" 와악- 그순간이였어요. 누군가가 교문으로 향하는 제게 익숙히 어깨동무를 하고는 장난스러운 말을 건낸건요. 저는 잔뜩 굳어져 있다가 남자를 세게 밀쳤습니다. 이건 무척이나 무례하다구요. "뭐.뭐하는거에요!!!!!" 그러자 눈을 동그랗게 떠보이는 남자. 지금 이런말 이상황에 안어울리는거 잘 알지만. 이남자 무척이나 잘생겼어요. 뭐랄까 되게 흔히들 말하는 꽃미남이랄까? 남자답게 생긴 얼굴은 아니였지만, 무척 예쁘게 생겼어요. 게다가 웃는 모양새를 보니 장난을 못해서 안달이 난 개구쟁이 같았습니다. "응? 뭐라구?" 제가 밀치는 바람에 조금 주춤 뒷걸음질 치게 된 남자는 이내 다시 벙져 있던 정신을 차리고는 믿을수 없다는듯이 제게 물었어요. 그순간 느낀건 까만 교복이 잘어울리는거 같다는 거에요. 무척이나 절 쳐다보는 눈동자가 까맸거든요. 아니죠. 제가 이런걸 감상할때가 아니라구요. "처음보는 사람한.한테 그런짓을 하면 아.안돼죠!" 저는 바로 경계태세를 갖추고는 말했어요. 이래뵈도 주먹이 꽤 쎄다구요. "우리가 왜 처음보는 사람이야." "네?" "혹시 김예나 너 하루사이에…" .. 말대신 눈썹을 찌푸리고는 한쪽 손가락을 빙빙 돌려보여요. 전 그제서야 이 남자의 정체를 알수 있었죠. 이남자는 예나언니 친구인 모양입니다. 순간 깜빡했네요. 전 김예봄이 아니라 김예나라는 사실을요. 그런데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아요. 예나언니는 어째서 이런 오빠랑 친구를 한걸까요. "아. 용건은 시험이 끝나고-. 그럼 그때봐요 안녕!" 어쨋든 저는 얼른 생각에 나래를 접고는 언니가 가르쳐준대로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뒤돌아서 앞만보고 걸었죠. 하지만 모든게 해결댈꺼라는 언니의 말과는 달리 상황은 점점 심각하게 변했습니다. 왜냐면. "김예나 너 죽을래." 그 남자가 화난거 같았기 때문이에요. 그것도 아주 많이요. 뒤돌아서는 제 손목을 붙잡고는 교문을 통과하지 못하게 해요. 어쩔수없이 저는 다시 그남자 한테 돌아설수밖에 없었어요. 세상에 이렇게 무서운 눈은 처음봐요. 미국에선 제임스가 제일 무서웠는데. 어째 제임스보다 더 무서운거 같아요. 슬쩍 두려움에 고개를 숙이자 보인건 남자의 명찰이였어요. [구해찬] 그건 왠지 어감이 좋은 이름이였습니다. "이.이거 놔주세요" "놔주세요? 허- 왠 존댓말?" 그러자 어이없다는듯 웃음을 보이는 구해찬이라는 남자였어요. 그리고는 제 손목에 힘을 더 주기 시작해요. "놔주시라구요!!" "솔직히 말해. 김예나. 너 어제 그일때문에 나한테 화나서 이러지?" 전 당연히 알수없죠. 왜냐면 제가 김예나가 아니라 김예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건 비밀이기 때문에 남자에게 말할수는 없어요. "야 그건 내가 잘못했다니깐, 그거 가지고 이러냐." 구해찬이라는 남자는 정말 막무가내였어요. 이건 제 예상인데 아마 자신을 무시한것에 대해 화가 난거 같아요. 도저히 손을 놔줄 생각을 하지 않으니 방법은 딱 하나밖에 없어요. "어어-? 유에포다!!!!!!!!!!!" 저는 티비에서 본대로 하늘을 가리키며 크게 소리쳤어요. 이제 구해찬이라는 이 남자는 자연스럽게 시선을 그쪽으로 돌릴테고 저는 손목을 빼고는 도망치기만 하면 돼요!! "..........." 라는게 제 시나리오였는데 말이죠. "가지가지 한다. 진짜" 이남자 끄떡없네요. 슬슬 붙잡힌 손목이 아파와요. 저는 붙잡힌 손목을 뚫어져라 쳐다봤죠. 어서 풀어달라는식으로요. 구해찬이란 남자의 손목에는 예쁜 시계가 차있었어요. 그리고 은은히 풍겨오는 스킨냄새와 함께 알싸한 담배향이 섞여 났습니다. 담배를 피나봐요. 미국에서 자주 보았기 때문에 그리 놀라운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은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이! 구해찬. 김예나 손잡고 뭐하셔??" 그때였어요. 교문앞에서 어정쩡하게 서있는 저희를 보면서 남자 두명이 손을 흔들었어요. 또다시 그순간 느낀거요? 일이 점점 커진다는거였죠. "그러게 말입니다요. 어제는 완전 눈에 불을키고 싸우더니" "그러게 말입니다요. 어찌 하루아침에 저런 찐한 모습을!" "그러게 말입니다요. 뭐 예상하기론 막무가내 구해찬이 먼저 들이댔으리라 싶은데요?" "아하하하하." 두 남자중 한남자가 배를 잡고 웃더니만 제게로 가까이 와서 어깨에 익숙히 손을 올렸어요. 정말 이런 스킨쉽은 익숙치 않다구요. "어? 예나! 내가 어제 뽕했다고 놀려서 이래?!" 제가 살짝 그 스퀸쉽을 피하자 울상을 지으며 말하는 남자에요. 아아. 정말 최악입니다. 이건 정말 예상도 못했던일이에요. 오늘 집에가면 언니에게 꼭 말해줘야 겠어요. 이런 이상한 남자들과 친구하지 말라구요!! "황여민. 얘 오늘 진짜 이상해." "응 뭔가 상태가 이상하긴 하다." "심각하다니깐. 아까 이세끼가 나 탁 밀치면서" 그때, 저를 두고 구해찬이라는 남자와 황여민이라는 남자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저는 느꼈죠. 바로 이게 기회라는걸요.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저는 힘있게 구해찬이라는 사람의 손을 뺏어요. 그리고는 달렸죠. 음 얼만큼 세게 달렸나면요. 아! 그래요. 목에 숨이 차오를만큼 이라고 표현하면 되겠네요. 정말 그만큼 빨리 달렸어요. "야. 김예나 너 진짜 잡히면 뒤진다!!!!!!!!!!!!!!!!!!" 언니가 분명 자기 대신 시험만 보고 오면 된다고 했으니깐. 저 지금 잘못하는거 아니에요. 그렇죠?. "또 구해찬 너야? 아주 하루도 조용할날이 없어 너는!" 그런데 정말 구해찬이라는 남자는 무섭네요. 제가 도망치자 잡으려 달려왔거든요. 하지만 더 이상 저를 따라오진 못했어요. 왜냐면 교문에서 한 선생님한테 잡혔거든요. 그것도 귀를 잡히고선요. 저는 왠지 꼬셈이라는 생각에 아무도 모르게 혀를 메에- 내밀고는 학교로 향했습니다. \2-5 우여곡절 끝에 언니의 반에 도착하긴 했는데요. 다시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게 뭐냐면요. 이번엔 또 자리를 몰라요. 한참을 우왕거리던 저는 결국 오랜 망설임 끝에 조심스럽게 한 아이를 붙잡고 물었어요. "저. 미안한데 김예나 자리가 어딘지 알아요?" "어? 예나야 너 오늘 왜그래" "네?" "뭐야. 왠 존댓말!?" 아차차. 또 잊었네요. 자꾸만 까먹어요. 제가 지금은 김예봄이 아니라 김예나라는 사실을요. 무척이나 어색하고 불편하겠지만 당분간은 이 모르는 사람들한테 반말을 해야겠어요. "아. 으응 미안." "니자리 1분단 맨 끝이잖아. 얘가 뭐 잘못먹었나" "아. 응 고마워!" 꾸벅 인사를 하자 또 다시 이상하다는듯 고개를 갸웃 거리는 그아이에요. 저는 대답대신 씽긋 웃어주고는 언니의 자리로 향했죠. 일찍 등교해서 아직 시험을 볼 시간까지는 30분이나 남았기 때문에. 교과서를 좀 봐야겠어요. 익숙하지 않은 언니의 자리에 가방을 걸어 놓고는 앉으려는데 .. .... "어이. 어딜앉아." 이제는 조금은 익숙한 그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맞아요. 그 남자였어요. 그. 구. 구. 뭐였죠? 아! 그래요 구해찬이요!. 어쨌든 그남자가 벌컥 뒷문을 열고는 말했어요. 그순간 든 생각이요? "네.?" 도대체 이남자랑 언니랑 무슨사이일까. 하는 궁금증 정도요.? -------------- §가그린§ (godqhrgkehfhr@hanmail.net) 플티〃가그린〃소설 (http://cafe.daum.net/Gagrin) -------------- ※헬리오토로프는 5월 24일의 탄생화로 사랑이여 영원하라 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2> "너 자꾸 꼬박꼬박 존댓말 할래!!!!!!!!!!!!!" 으악! 깜짝이야. 구해찬은 귀가 멍멍해지도록 소리를 질러대요.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씩씩 거리며 성큼성큼 걸어 제 옆자리에 앉았어요. 그순간 제가 움찔한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면 그만큼 이남자는 무서웠거든요. 얼른 집에가고 싶은 마음 뿐이에요! "아니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 뭐." 삐딱히 저를 노려봐요. 저는 순간 허업 숨을 들이켰습니다. 도대체 시험은 언제 시작하는걸까요?. 30분이나 남아서 꽤나 여유롭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어서 시간이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 막상 둘러댈라고 말은 꺼내봤지만. 역부족이에요. 도무지 둘러댈 말이 떠오르지 않는걸요. 게다가 저는 이남자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를뿐만 아니라 언니와 어떤 사이인지도 모릅니다. 섣불리 입을 열었다간 들킬지도 모른다구요. "김예나, 진짜 미안하다니깐. 화풀어. 응?" 아무말도 하지 않는 저를 보자 구해찬이라는 남자는 또 다시 미안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두손을 싹싹 비는 시늉을 해보이죠. 제 예상대로 이 구해찬은 무지 개구진가봐요. "으응. 알겠어." 할수없이 저는 어떤일이 일어났는지도 알지 못한채 무작정 구해찬의 사과를 받아버렸습니다. 언니가 화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보다 일단 이 구해찬이라는 남자를 보내고 싶은 마음뿐이였거든요. 제가 고개를 끄떡끄떡- 정확히 두 번을 하자 구해찬은 씩 하고 웃습니다. 그러고는 "아그 이쁜것" 악-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일이였습니다. 구해찬이 저를 와락 안아버리고는 제 머리를 이리저리 헝클어 놓은건요. 순간 쿵쾅쿵쾅 뛰는 심장이 느껴져왔습니다. 왜냐면. 음. 왜냐면. 그래요! 아무래도 구해찬한테서 나는 시원한 스킨냄새 때문일지도 몰라요. "이.이러지 마세요!!" 이번에는 아까와는 달리 순순히 빠져나올수 있었어요. 저는 무작정 일어서서는 또 다시 뛰었습니다. 그러자 구해찬은 저를 잡으러 오는것 대신 멍 하니 앉아서 어이없다는듯 피식- 하고 웃어보여요. -화장실 저는 지금 정확히 화장실 4번째 칸에 들어와 있어요. 그리곤 벌써 7번째. 핸드폰 1번 버튼을 꾸욱 누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역시나 받질 않아요. "제발 받아라. 제발 받아 언니." 초조한 마음에 안하던 손톱을 물어 뜯는 행동까지 하면서 통화음이 바뀌길 얼마나 기다렸을까요. -으아악 누가 자꾸 전화질이야!!!!!!!!자는데 죽을래? 언니가 전화를 받았어요. 물론 저는 한마디도 할수 없었습니다. 왜인지는 다들 아실꺼라 믿어요. 너무 놀랐기 때문이죠. 언니도 이렇게 큰 목소리를 낼수 있구나. 이렇게 거칠게 말할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언니" -어? 예봄이야?? "응" -아하하. 언니 자는데 왜 자꾸 전화해. 어색히 웃어보이는 언니. 저는 잠시 멍해있다가 도리도리 얼굴을 젓고는 다시 전화에 집중을 했습니다. "언니 그게 아니라. 그 뭐지? 아 그 구해찬이라는 사람이랑 무슨사이야?" -누구? "구해찬!!" -뭐?? 구해찬?? 그세끼가 너한테 아는척해? 그 빌어먹을 쳐죽일#*#$(*$(@@# 틀림없이 구해찬말대로 어제 언니와 구해찬은 무슨일이 있었던게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언니가 저렇게 흥분을 하면서 욕을 할 리가 없지요. 무시무시한 욕이 얼마나 이어졌을까요. 이내 흥분을 가라앉히려고 애쓰며 언니가 제게 말했습니다. -절대 구해찬이랑 말하지마. 이건 내 자존심이 걸린 문제니까. 무조건 쌩까. 게다가 아주 차가운 표정으로 알았지? 라구요. 그때 문득 저는 궁금해져왔습니다. "언니. 구해찬 그사람이랑 무슨사이야?" 애인일까요? -친구야. 나랑 젤 친한 친구. 한 3년지났나? 근데 어제 그세끼랑 엄청 싸웠어. "왜요?" -휴 말하면 열받지. 어제 같이 애들이랑 클럽에 갔는데 글쎄 그세끼가!!! ♪♭♩♬＃♪♭♩♬＃ 흥분한 언니의 말이 막 이어지려고 할때였습니다. 그 중요한 순간에 굿 타이밍으로 시험을 알리는 종이 우렁차게 화장실을 울렸어요. 조금은 아쉽지만 다음 이야기는 있다가 집에서 듣기로 하죠 뭐. "언니. 나 종쳤다. 시험보러 갈게. 응응 이따봐" 달칵- 이제는 조금 익숙해졌어요. 언니의 핸드폰을 다루는 일이요. 저는 핸드폰을 닫고는 화장실을 나왔습니다. 그리곤 시험이 시작됐어요. \방과후 시험은 무척이나 쉬웠어요. 아 이건 제 자랑이 아니라요. 오늘 보는 과목이 운좋게 [영어]였거든요. 미국에서 살았던 저로서는 이건 식은죽 먹기였어요. 으헤헤. 어서 언니에게 가서 맛있는거 사달라고 하고 싶어요. 백점을 맞았거든요. 스르륵- 선생님의 종례가 끝나고, 저는 서둘러 허겁지겁 가방을 챙겼어요. 얼른 집에 가려구요. 엄마한테 들킬까봐도 무서웠고. 그리고 하나 더 추가하자면 "........." 저 사분단 끝에서 절 노려보고 있는 구해찬도 무섭거든요. 아뿔사스럽게 언니와 구해찬은 같은반이였습니다. 그래서 시험을 보는 내내 뚱-하게 삐져잇는 구해찬에게 시달림을 받았죠. 어쨌든 저는 가방을 메고 일어섰어요. 그러자 구해찬도 슬그머니 기다렸다는듯 일어서는게 아닙니까? 여기서 전 언니에게 마저 듣지 못한 말이 궁금할수밖에 없었어요. 도대체 뭐 때문에 이렇게 싸웠는가 하구요. "하루종일 삐져서 말도 안하는 찌질이- 벌써가게?" 어김없이 구해찬은 제가 앞문으로 나갈려고 하자 저렇게 시비를 걸어댔어요. 저는 언니의 부탁대로 아무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순간 꼭 하고싶은말이 있었답니다. 그게 뭐냐면요. '그쪽도 하루종일 삐져있었잖아요!!' 라는 말이에요. 왜냐면 사실이였거든요. 이남자 하루종일 삐져있었던건요. 타악- "너 화풀때까지 못가. 집에" 제가 너무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남자도 보통은 아니였습니다. 떡 하니 길다랗게 자란 손으로 문을 막아버리더니 위와 같이 말하고는 저를 내려봅니다. 그순간 직감적으로 느낀건요. "좋아하는거죠." "어? 말하네!!!!!" "솔직히 말해봐요. 예나 좋아하죠?" 어- 방금 이말투 꼭 다른 사람이 말하는거 같았어요. 분명 저는 지금 김예나 인데 말이죠. 으헤헤. "뭐? 너 정신나갔냐?????????" 그런데요. 갑작스러운 제말에 구해찬이 얼굴이 벌개진채 소리를 질러요. "그럼 다음에 봐요." 저는 그런 구해찬을 두고 걸음을 옮겼습니다. 왠지 뿌듯해요. 미국에 있는 동안 저는 정말 많이 외로웠거든요. 그래서 늘 혼자 집에서 엄마와 언니를 그렸지요. 하지만 언니와 엄마의 기억이라곤 아무리 머리를 싸메고 기억을 해봐도 잘 기억나지 않은 흐릿한 것들이여서, 이번 한국에 와서 많이 알아가야겠다 했거든요. 그런데 오늘 언니에 대해 한가지 더 알아내버렸어요. 그게 뭐냐구요? .. ..... "김예나 웃기지마. 너 착.착각같은거 하면 죽여버린다!!!" 바로, 언니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다는거에요. 진심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요. 그사람이 제 뒤에서 저렇게 소리를 버럭 지르는 구해찬이라는것도요. 하지만 언니에게는 비밀로 해야겠습니다. \집 집에 도착하자마자, 저는 제방으로 쪼르르르 달려갔어요. 엄마는 아직 오지 않으신 모양인지 집안은 고요했습니다. 뭐 언니의 코고는 소리가 리듬을 타고 들리긴 했지만요. 타악- 제 방에는 오늘 하루 제가 되기로 한 언니가 잠을 자고 있었어요. 설마 아무것도 먹지 않고 지금까지 잔건 아니겠죠?. 저는 가방을 내려놓고 놀랄만큼 똑같이 생긴 언니를 가만히 내려다보아요. 어쩜 이렇게 똑같이 자랐을까요. 분명 다른곳에서 7년동안 다르게 살아왔는데 말이에요. 엄마랑 살았던 7년동안 언니는 행복했을까요. 저는 글쎄요. 조금 많이 외로웠던거 빼고는 행복했던거 같아요. 물론 한가지 일 빼고는요. "으음-" 으악, 언니가 깨려고 해요. 언니가 깨기 전에 거실로 가야겠다는 생각에 일어섰는데 언니는 몸을 뒤척이다가 슬며시 눈을 떴습니다. 괜스레 저 때문에 깬것만 같아서 미안한마음이 들었어요. "언니. 깼어? 미안!" "지금 몇시야.?"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는 언니가 말해요. 저렇게 피곤했던걸까요. "지금? 아 2시. 낮 2시!" "아씨. 어쩐지 배고프더라." "배고파? 그럼 내가 스파게티 해줄까?" 저 이래뵈도 스파게티 정말 잘끓였어요. 무서운 제임스도 제 스파게티 하나면 꿈뻑 넘어간 정도였다구요. 으하하 "스파게티? 우엑- 그런거 느끼해서 싫어해." "아.정말?" "그나저나 너 시험은?!" "아!! 시험 백점 맞았어!!" "꺄! 정말?" 자기 생애 백점은 처음이라는등. 선생님이 의심하지 않겠지 라는등 들뜬 목소리로 소리치며 언니가 저를 꽉 안았어요. 언니품은 뭐랄까 매우 따뜻했습니다. 계속 있고 싶을 만큼요. 자꾸 이러면 한국을 떠나기 싫어지는데 어쩌죠. "응응!!" "잘했다. 이자식!! 진짜 나하고는 다르게 더럽게 똑똑하네!" "응?" "아하하 아냐아냐. 아 배고파. 오늘 엄마도 늦게 오는데 뭐 먹지 우리?" 제 얼굴을 꼬옥 감싸고는 말하는 언니. 어쩜 좋아요. 이렇게 웃을때 보조개가 살짝 들어가는것도 똑같아요. 사실 어제 공항에 있을땐 정말 거울을 보는것 같은 착각이 들었을 정도였다니깐요. 왜냐면 둘다 비슷한 하늘색 옷을 입고 왔거든요. 그래서 더더욱 똑같아보였는지도 모르겠지만요. "언니 뭐 먹고싶은거 있어?" 저는 그런 언니에게 말했어요. 한국에 있는 동안은 정말 잘하고 싶었습니다. 엄마에겐 착한 딸로. 언니에겐 예쁜 동생으로요. <3> "우웅. 나 지금 빨간 고추장 넣고 떡볶이 먹고 싶다!" "떡볶이요?" "응!" 아아. 이거 난감해요. 난감하다구요. 들어본적은 있는데 어떻게 만드는지도 모를뿐더러 어떤 맛인지도 까맣게 까먹어버려서, 언니의 입에 나온 떡볶이란 단어가 낯설수밖에 없었어요. "언니 근데 나 떡볶이 할줄 모르는데.." "뭐 괜찮아 짜식. 소심하긴. 언니가 할테니깐 그럼 재료나 사와. 요앞 슈퍼에서 떡하고 오뎅!" "떡하고 오뎅? 응! 얼른 갔다 올께!!!" 싱긋 웃고는 얼른 일어서서 현관으로 달려갔어요. 그리고는 익숙하게 신발을 신었지요. 그러자 언니가 대뜸 소리쳐요. "근데 오늘 뭔일 없었지??" "어?" 그순간 약간 고민이 됐어요. 구해찬의 빨개진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거든요. 그러나 이내 도리도리 고개를 젓고는 언니에게 말했습니다. "아냐 없었어! 얼른 갖다올께!" 뭐. 어찌 보면 언니에게 첫 번째 거짓말을 한걸수도 있지만요. 이건 그냥 저만의 비밀로 간직하려구요. 그나저나 떡볶이는 어떤맛일까요. 아빠가 김치찌개를 정말 자주해주세요. 그래서 그건 잘먹는데. 예전에 한번 먹었던 비빔밥은 정말 최악이였죠. 너무 매웠거든요. 왠지 떡볶이도 무지 매울거 같아요. 띵동- 엘리베이터가 드디어 1층에 도착하자 저는 재빨리 내렸어요. 저희집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주택이였기 때문에 신기한건 어쩔수 없나봐요. 슈퍼에 가서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달랑 떡하고 오뎅을 사들고 나왔을때였습니다. 끼이이익- 갑작스럽게. 정말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일어난일이였어요. "............" 지나가던 강아지를 하얀색 차가 밖아버린건요. 투둑- 손에선 까만색 봉지가 떨어졌고 저는 눈을 꼭 감은채 두손으로 입을 막아버렸습니다. 눈을 감자 흐릿한 영상들이 지나가는 느낌이 났어요. 소름 끼치는 어린아이의 눈물소리, 귀가 찢기듯한 자동차 마찰음. 그리고. 그리고.... "세상에. 강아지가 딱하게도 죽었네." "그러게 말이에요. 저 차는 도대체 운전을 어찌 하는건지." 두려움에 벌벌 떨면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귀를 막아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뒷걸음질 쳤어요. '세상에. 끔찍하게도 죽었어' '경찰. 어서 경찰을 부르라구요!! 여기 사람이 죽었다고. 얼른요!' '그런데 저기 서있는 여자아이는 뭐야.?' 하지만 저는 눈을감아도. 귀를 막아도 너무나도 또렷하게 기억해내고 있었습니다.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어요. 할수만 있다면 그냥 이대로 죽어버렸으면 싶을 정도로요. 타악- 그때였습니다. 뒷걸음질 치던 제가 결국은 풀려버린 다리를 버티지 못하고는 주저앉으려고 할때 누군가가 아주 따스하게 저를 뒤에서 감싸 안아주었습니다. .... .... "야. 너 왜그래. 무슨일있어?" 그리고 그사람은, 구해찬이였습니다. 아까와는 다르게 교복 대신 사복을 입고 있었어요. "제발...제발요" "뭐? 야 너 또 오해하지말아라. 나 지금 애들만나러-" .. ..... "제발요!!!!!!!!!!!!!!! 제발 여기 말고. 다른곳으로요. 제발..." 왜였을까요. 온몸에 힘이 풀리면서 저는 그남자에게 안긴 꼴이 되었지만 하나도 챙피하지 않았어요. 챙피함을 느낄 여유가 없었거든요. 그저 이 끔찍한곳에서 나가고만 싶은 심정이였으니깐요. 그만큼 저에겐 절실했습니다. 그 기억에서 벗어나려는 발버둥이요. \까페. 구해찬이 데려온곳은 아주 예쁜 한 까페였어요. 구해찬은 저를 이곳으로 데려오더니 녹차라떼 하나를 시켜줬어요. 처음 먹어보는 거였는데요. 무지 맛있었어요. 뭐랄까 알싸한 녹차향과 하얀 거품이 잘 어울린다고 할까요? 그래요. 그렇게 표현하면 되겠어요! "너 아까는 왜울었어?" 맞은편. 아까부터 자꾸만 제 눈치를 살피던 구해찬이 마침내 말을 걸기로 결심했는지 조심스럽게 물어봐요. 아무래도 제 눈물에 많이 놀란듯 싶었어요. 아마 언니는 이남자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았을테니깐요. 그걸 어찌 아냐구요? 아까요. 아까 말이에요. "그냥요." 구해찬의 눈을 보았는데요. 정말 놀란듯 보였어요. 그 눈이 말해주고 있었죠. 어쨌든 구해찬은 저의 대답에 피식 하고 웃어보였습니다. 아까도 느낀건데요. 이 웃음은 정말 묘하게 매력적이라구요. 구해찬만의 웃음이랄까요? "이제 화 다 풀린거야?" "네." "근데 왜 존댓말써?" "그냥 이게 편해서요." "요번건 진짜 오래가네. 돌겠다 너땜에." 아무래도 존댓말 하는 저를 보고는 화가 안풀렸다고 생각하나봐요. 머리를 긁적이며 흐트러 놓는 꼴이 조금은 우스웠어요. 언니도 이남자를 좋아하고 있는걸까요? "가자." "네?" "가자구 세꺄." 아직 이 맛있는 녹차라떼가 반이나 남았는데도 구해찬은 제 손을 잡고 일어섰어요. 솔직히 말하면 그때 제가 언니의 쌍둥이 동생이라고 말할수도 있었지만. 말하지 않은 이유는 저도 모르겠어요. 그냥 구해찬에게 위로를 받고 싶었거든요. 왠지 구해찬이라면 그래줄수 있을거 같았어요. \술집 "네?? 술이요!?" 한 허름한 술집. 구해찬이 무지막지하게 이끌어서 어정쩡 들어오긴 했는데요. 이럴려고 들어온건 아니라구요. 경악을 하는 제가 보이지 않는건지, 구해찬은 제말을 단박에 무시하고는 주문을 시켰습니다. "아줌마 소주 4병하고, 곱창볶음 주세요." 저는 잠자코 구해찬을 쳐다봤어요. 낯설었기 때문이에요. 소주라는 말도 곱창볶음이라는 말도요. 그래서 슬슬 호기심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여기- 맛있게들 먹어. 둘이 오랜만에 오네." 잠시후. 주인 아주머니 께서 가져온 것은 조금은 지독한 냄새가 났어요. 처음 맡는 냄새였는데 가만히 냄새를 맡기에는 곤혹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코를 막아버리고는. "냄새가 이상해요." 라면서 그랬어요. 그러자 구해찬은 심각히 저를 쳐다보는게 아니겠어요? "너 진짜 오늘 좀 이상하다?" 그러면서 탐정마냥 저를 쳐다보는데 그순간 침을 꼴깍 삼켜버렸어요. 아마 언니는 이 곱창볶음이라는걸 되게 좋아했나봐요. "그.그냥 오늘은 안땡겨서요!" "황여민하고 이현태가 알면 놀라서 자빠질일이네." "황여민하고. 이현태요?" "자. 마셔" 대답대신 구해찬은 제 조그만한 술잔에 술을 따라줬습니다. .....소주라..... 물론 들어는 본거 같아요.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하지만 한번도 마셔본적은 없답니다. 제가 마실줄 아는 술이라곤 와인이 전부에요. 저는 슬그머니 구해찬의 눈치를 살폈어요. 구해찬은 말없이 그 술을 단번에 들이켰습니다. 그리곤 아무렇지 않은듯 저를 쳐다봤죠. 아무맛도 나질 않는건가요 이거. 그 모습에 용기를 얻은 저는 벌컥벌컥-하고 술을 입에 털어 넣었습니다. "아앗. 퉤-퉤-!!!" 결과는? 당연히 모두 뱉어버렸어요. 그리고는 쓴맛 때문에 자꾸만 혓바닥이 따가워 어쩔줄을 몰라했죠. 그러자 구해찬이 말해요. "야." 라구요. 저는 '네?'라면서 대답을 했고, 구해찬은 한쪽 눈썹을 찌푸린채 그렇게 얘길 해요. "너 누구야." "네..?" "너 김예나 아니지." 결국은 들켜버린 모양입니다. 역시 전 거짓말 같은거 소질이 없는 모양이에요. 저는 보일듯 말듯 고개를 끄떡였고, 구해찬은 제머릴 살짝. 정말 아주 살짝 툭 치면서 "그럼 니가 김예나 아니면 귀신이냐? 하하하하. 병신." 이런 실없는 소리를 해요. 사실 언니인척 하는 저의 연기는 무지 어색했습니다. 하지만 이 둔한 남자는 속일수 있을 정도 였나봐요. 왠지 모르게 긴장했던 몸이 포르르 풀려버리자 맥이 빠져버렸습니다. 그 뒤로도 구해찬은 혼자 이러쿵 저러쿵 떠들어 대면서 이야기를 했고, 취할정도로 술을 마셨죠. 저는 하나도 취하지 않았어요. 구해찬이 주는 술은 다 몰래 버렸거든요. "그래서. 어제 화낸거다. 얘들끼리 좋게 클럽 갔는데 너가 그세끼랑 히히덕대는 꼴이 딱 보이는데." "네." "당연히 돌아버리지. 너같으면 안그러겠냐." 오늘 느낀건요. 구해찬은 무지 말이 많다는거에요. 그리고 무지 어린애 같다는거에요. 지금 보이는것처럼 구해찬은 술이 많이 취했어요. 그랬기에 저는 들을수 있었어요. 언니랑 구해찬이 어제 무슨일이 있었는지요. "네. 그러겠네요." 친구들과 함께 나이트에 갔는데, 언니는 자꾸만 따른애랑 놀더래요. 근데 그게 남자였나봐요. 그래서 구해찬은 너 다리도 굵은데 치마를 왜입냐는등 시비를 걸어댔고 언니는 그게 너무 망신스러워서 마구 화를냈대요. 정말 바보들이죠? "김예나" "네??" "솔직히 나 힘들어." 곱창볶음은 꽤 맛있었어요. 풍겨오는 냄새랑은 다르게요. 그래서 제가 거의 다 먹었는데요. 그러니까 정확히 마지막 세 개중 하나를 집었을때였어요. 술에 잠겨있는 목소리로 구해찬이 중얼거리듯 말한건요. "네.??" 무슨말이냐는듯한 저의 대답에 구해찬은 다음말을 잇고는 술기운을 이기지 못해서 쿵 하고 머리를 테이블에 밖고 잠이 들었어요. 구해찬의 그말을 들은 저는 언니인척 해서 구해찬을 만난걸 후회할수밖에 없었어요. 왜냐면..구해찬은 "지금까지 했던것처럼 우정이라는 거짓말로." "........" ... ................ ............................. ..... ............ .... "너 사랑하는거.." ... ...... 너무나도 간절했거든요. 듣는 사람이 코가 찡 해질 정도로요. -------------- §가그린§ (godqhrgkehfhr@hanmail.net) 플티〃가그린〃소설 (http://cafe.daum.net/Gagrin) -------------- ※헬리오토로프는 5월 24일의 탄생화로 사랑이여 영원하라 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4> 구해찬이 쓰러져버린 지금. 제가 할수 있는일은 아무것도 없었어요. 저는 이사람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거든요. 뭐 굳이 아는걸 말하라고 하면 언니를 좋아하고. 나와 동갑이고, 키가 크고, 무지 잘생겼다는 정도요? 우와. 이렇게 늘어 놓으니 그래도 꽤 많은걸 알고 있네요. 하루동안 만난거 치고는요. "저기요. 일어나봐요." 저는 조금 힘을 세게 해서 구해찬을 흔들었습니다. 하지만 술에 잔뜩 취한 구해찬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어쩌죠. 갑자기 머리가 무지 혼란스러워요. "저기요." 다시 한번 흔들어봤지만. 이남자 아무 미동도 하지 않아요. 그저 쌔근쌔근 예쁘게 잠들었을 뿐이였죠. 그제서야 느낀건데요. 구해찬의 속눈썹은 무지 길고 예뻤어요. 뭐랄까 얼굴이 되게 뽀얀대 속눈썹까지 예쁘니깐 이사람 정말 오목조목 잘생겼구나 하고 생각했죠. Rrrrrr- Rrrrrr- 결국 저는 어쩔수 없이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통화음이 두 번정도 가고, 언니가 다급하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김예봄!!!! 너 지금 어디야. 정신이 있는거야 없는거야!! 언니는 전화를 받자마자 버럭 소리를 질렀어요. 그순간 느낀건요. 그냥 가슴이 따듯해지는 느낌이였어요. 누군가가 나를 걱정해 준다는건 생각보다 가슴 뭉클한 일이 잖아요. "언니. 미안! 근데 정말 더 미안한데 부탁 하나만 할게" -뭐? 예봄아. 그래 일단 너 어디야, 그거부터 말해 "여기?" 앗- 그러고보니 저는 지금까지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왠지 바보같다는 생각에 피실피실 웃음이 막 세어나오는거 있죠? 김예봄! 정신을 어디다가 놓고 다니는거야. 으하하 -그래. 아. 어딘지 모르겠으면 주변 사람한테 어딘지 물어봐. 언니가 그리로 금방 갈게 결국 주인아주머니에게 여기가 [술이네 술집] 이라는걸 듣고는 언니에게 말해줬어요. 그러자 언니는 거긴 어떻게 갔냐며 일단 기다리라고 하면서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런데 술집 이름이 너무 웃겨요. 술이네 술집이라니. "학생. 근데 왜자꾸 웃어??" "네? 아. 아니에요!!" 하지만 주인아줌마가 기분이 나쁘실수도 있으니 웃음은 참아야겠어요. *정확히 15분뒤. 헉헉 하고는 숨을 내뱉으며 언니가 이곳에 도착한건 전화가 끊긴지 정확히 15분 뒤였어요. 사람들은 언니가 이곳에 도착하자 저마다 저와 언니를 번갈아 보면서 놀랐습니다.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어요. "구경났어? 쌍둥이 첨보냐 세끼들아!!!" 언니도 마찬가지였는지 버럭 성질을 내면서 성큼성큼. 아주 씩씩하게 저희쪽으로 걸어왔어요. "언니. 일찍왔네." "김예봄. 너 도대.....구해..찬?" 언니의 말이 멈춘건 당연한일이였어요. 제 맞은편 털푸덕 누워있는 구해찬을 보았기 때문이죠. 언니는 조금 화가난 표정이였습니다. "김예봄. 이거 어떻게 된 일이야." 언니가 옆자리에 앉으며 물었습니다. 저는 고개를 푹 숙인채 그런 언니에게 모든걸 솔직히 말할수밖에 없었어요. 정말 하늘에 맹세코 처음부터 끝까지 있었던 일을 거짓없이 언니에게 빠짐없이 말하자 묘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언니. "솔직히 다 말한거지." "응." 솔직히 이부분에선 많이 찔렸어요. 하늘에 맹세코 거짓없이 말했지만 딱 2가지는 말하지 않았거든요. 그건 구해찬이 언니를 좋아한다는것과, 차사고일이였습니다. 저도 해야할말과 하지 말아야할 말정도는 구분할줄 안다구요. "구해찬 이세끼를 그냥-" 악- 하고 소리를 지를 틈도 없이 언니가 구해찬의 머리를 탁- 하고 쳤어요. 그순간에도 사실 많이 놀랐지만요. 더 놀란 이유는. "그렇게 세게 때렸는데도 안일어나. 와 너무 신기해 언니" 꿈쩍도 하지 않는 구해찬 때문이였어요. 너무나도 신기해서 두눈을 꿈뻑이면서 감탄사를 연발하니 언니가 씩 하고 예쁘게 웃으며 말해요. "이세끼 잠잘때는 업어가도 몰라. 너도 오늘 나인척 하느라 힘들었을텐데. 화나면 대가리 한 대 갈겨- 하하하" 저는 언니의 말에 대답대신 슬며시 웃음으로 대신했습니다. 생각보다 많이 친한가봐요. 왜냐면 둘이 웃는 모습이 꽤나 닮아 있었거든요. .. "언니. 근데 나 하나 물어볼게 있는데 " "응? 뭔데??" 제말에 언니가 곱창 하나를 집어 먹으며 대답했어요. 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입을 열였습니다. "언니는..이사람 정말 친구로만 생각해?" "응? 그게 무슨소리야. 근데 예봄아 여기 곱창맛 죽이지!!" "그러니까 좋아하진 않냐구.." "누구 구해찬?" "응." "당연히 좋아하지. 내 제일 찐한 베스트프렌드인데." 제가 듣고 싶은 대답은 이게 아니라구요. 그러니까. 좀더 정확히 말하면. "아니 그런거 말고. 이성으로써 좋아하는거 있잖아. 음..그러니까 보기만해도 가슴이 뛰고.." 그런거요. 아까 구해찬처럼 왠지 모르게 간절한거. "아하하하하. 하하하하" 그러자 언니가 배를 잡고 웃어대기 시작했어요. 그러고선 제가 귀여워 죽겠다는듯 두손으로 제 볼을 따듯하게 감쌌지요. 아무래도 언니는 아닌가봐요. 구해찬하고 같은 마음이요. "예봄아. 오해하지마. 언니랑 구해찬은 그냥 엄청 편한 친구사이야. 끄하하. 너무 웃었더니 얼굴이 아프다. 어쨌든 집으로 가자" 문득 느낀건요. 구해찬이 조금은 불쌍하다는 생각과 함께, 아무래도 조금은 많이 힘든 사랑을 하고 있다는 거였어요. \집. 지금은 집이에요. 구해찬은 어딨냐구요? 물론 구해찬 또한 저희집에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언니의 침대에서 벌러덩 누워있죠. 그럼 저는 뭐하고 있느냐구요? "그럼 뭐야. 정리를 해보자" "정리 할거고 마시고가 어딨냐? 그냥 김예나 쌍둥이래는데" "그러니깐 정리를 해야지. 그럼 오늘 아침에 본게 김예나가 아니라 이 쌍둥이였다는 소리야?" 아침에 봤던 그 정체 불명의 두 남자 앞에서 관심어린 시선을 받고 있는 중이에요. 이사람들이 왜 집에 있냐면요. 이 두남자가 구해찬을 저희 집으로 옮겨줬거든요. 어쨌든 정체 불명의 두남자라고 하는건 조금 그러니깐 이름을 부를께요. 그러니까 분명 언니가 아까 소개해줬을때 저기 갈색머리의 남자는 이현태라고 했고, 저기 조금 촐랑받게 생긴 저 남자는 음..뭐라 그랬죠? "그렇다니깐. 황여민. 이 미친세끼야 그렇게 머리가 안돌아가??" 아. 그래요 황여민! 황여민이라고 했어요. 어쨌든 황여민과 이현태의 말에 언니가 버럭 성질을 내더니 제게 어깨동무를 해요. "뭐 하여튼- 내 동생이니까 다들 잘해주라고. 알아 들었냐?! 앞으로 3일동안 나 대신 시험을 봐줄거거든~" "어차피 그래봤자 동갑인데 뭐." 저는요 솔직히 황여민이라는 사람은 무지 맘에 안들거든요? 그런데 이 이현태라는 사람은 꽤나 괜찮은거 같아요. 저한테 불쑥 악수를 내미는게 당황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나쁜사람 같지는 않았어요. "반가워. 이름이 뭐라구 했지?" "김..예봄이요" "아 맞다. 김예봄. 말 놔. 뭐 우리가 언니 친구라지만 동갑이니까" 이거봐요. 어렇게 매너도 좋고 착하잖아요. 제가 에헤헤 하고 조금은 바보같은 웃음을 지으며 그 손을 꽉 잡았을때였어요. "야. 내가 왜 김예나 침대...." 더도말고 덜도말고 정확히 그때요. 구해찬이 부스스한 모습으로 거실로 나오다가 걸음을 멈추었어요. 왜인지는 말 안해도 다들 아시죠? ... "야 황여민 나 술이 덜깼어. 김예나가 둘로보여." 구해찬은 정말로 큰일이라는듯 머리를 한쪽 손으로 꾸욱 눌러요. 그리고는 다시 눈을 떴습니다. "............." 뭐. 그런다고 상황이 변할 리가 있나요? 구해찬이 아무리 저래봤자 여전히 둘로 보일테지요. 잠시 침묵이 흘렀어요. 웃겨 죽겠다는듯 황여민은 이미 넘어져서 꺼억꺼억 웃고 있고. 언니도 그런 구해찬이 우습다는듯 피실피실 웃었습니다. "으아아악!!!!!!!!!귀신이다!!!!!!!!!!!!!!!!!" 왠지 지금 이순간 구해찬만 바보가 된거 같아요. "으아악 귀신이래. 아하하하 귀신이래 귀신" 경악을 금치 못하는 구해찬을 보며 삿대질까지 서슴치 않는 황여민이였어요. 보는 사람이 배가 아플정도로 웃어대는데, 솔직히 저는 안쓰럽기까지 했던걸요. 저렇게 웃을만큼 웃기는 상황은 아니거든요. "뭐.뭐야" "뭐긴. 구해찬 내가 예전에 한번 말한적 있잖니. 그걸 금새 까먹고 하루종일 속아?" "뭐?" "미국에서 온 내 쌍둥이동생 예봄이다. 인사해라!" 언니의 말에 구해찬에 표정은 그러니까. 그래요. 딱 무언가에 얻어 맞은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한마디로 머엉- 해진거죠. "쌍둥이 동생..?" "응. 쌍둥이 동생. 더 서프라이즈한 사실을 알려줄께! 오늘 하루종일 너랑 있었던 애는 김예나가 아니라 김예봄 이였어. 끄하하하 지대로 개그지?" 저는 생각했습니다. 지금 이순간 없는 사람이 된것만큼 소외되고 있다는걸요. 그래서 문득 언니가 됐으면 좋겠다구 느꼈어요. 왜냐면 언니로 있을때는 많은 사람들이 제게 관심을 가져주고 이야기를 건냈거든요. 무엇보다 절실히 느낀건... 구해찬의 시선이였어요. "김예나." "왜 짜식아. 목소리가 왜그래? 누님이 널 용서해줬는데!!!" 구해찬은 언니에게 얘기하곤 있지만 저를 쳐다보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무지 달랐어요. 그 눈빛이 아까랑은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너 앞으로 나한테 연락하지 말아라." 화가 난거 같아요. 자신을 속였다는거에 대해서요. 일부로 그런건 아닌데 구해찬은 저렇게 차갑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말에 언니도 꽤나 충격을 먹은듯 순간 할말을 잃고 조용해졌어요. "얌마 구해찬. 너 왜그래" 이현태가 구해찬을 잡아보지만 소용 없었습니다. 구해찬은 거칠게 신발장으로 걸어가려고 몸을 돌렸고, 저는 그제서야 구해찬의 옷깃을 잡았어요. "저.저기요" 이런건 정말 싫어요. 제가 잘못한 일이잖아요. 고의가 아니든 고의이든 남을 속인건 일단은 나쁜일이니. "........." 대답대신 절 물끄러미 쳐다봐요. "죄송해요. 하지만 일부로 속인건..." "너 다 들었잖아" 그리고는 대뜸 저렇게 소리쳤습니다. 왠지 모르게 무서워요. 아까 따스하게 절 위로해주던 구해찬이 아닌거 같았어요. "네...?" "내가 술취해서 하는말 다 들었잖아." ".....네..." "너한테는 그저 재미고 흥미 였겠지만. 나한텐 그거 아니였거든. 술김에 한말이라지만" ".............." "3년동안 혼자 힘들어하다가 겨우 꺼낸말이라고." "죄송해...." 진심으로 사과하려는데 구해찬이 묘하게 웃었습니다. 뭐랄까 그순간 느낀건 제가 아주 큰 잘못을 했다는거였습니다. .. .... "그럼 놔주실래요." 그랬기에. 구해찬에 옷자락을 힘없이 놓을수밖에 없었어요. -------------- §가그린§ (godqhrgkehfhr@hanmail.net) 플티〃가그린〃소설 (http://cafe.daum.net/Gagrin) -------------- <5> "아 열받아. 지가 뭔데!! 지가 뭔대 내동생한테 지랄이야 지랄은!!" 구해찬이 간 지금, 언니는 분을 이기지 못참겠다는듯 저렇게 소리만 치고 있어요. 저요? 저는 괜한 죄책감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죠. 기분이 이상하고, 아무튼 지금은 좀 그래요. "이해해라. 구해찬 저놈이 성질이 저래서 그렇지. 나쁜놈은 아냐." ... 그런 저에게 이현태가 말해요. 알았다는듯 고개를 끄떡여 보지만 마음은 여전히 불편했습니다. "나쁜놈이야 예봄아. 저게 얼마나 나쁜놈인데!!" "야 김예나 그만해라." "이현태. 너야 말로 그만해! 너같으면 안열받겠냐!!" 언니의 성난 목소리에 포로로 하고 한숨을 쉬는 이현태에요 이현태는 알고 있는거 같았어요. 지금 구해찬의 마음을. 왠지 모르게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어쨌든 이현태의 말에 언니가 뭐라고 반발할려 하자 황여민이 두손을 벌려 막았구요. 저는 그대로 방으로 들어와버렸습니다. "휴.." 기분이 자꾸만 이상해요. 아마 구해찬에게 상처를 준것만 같아서 미안한가봐요. \다음날 시험은 그러니까, 어제 하루가 지났으니. 음. 그래요! 이제 3일밖에 남질 않았어요. "예봄아. 언니가 정말 미안해. 그대신 63빌딩은 꼭!!!" "언니." "응??" "나 안가면 안될까..??" 어렵게 꺼낸 말인데 언니의 표정이 곧바로 변했어요. 뭐랄까 실망했다는 표정일까요? 그랬기에 저는 곧바로 말을 바꿀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냐. 나 갔다올게. 오늘도 꼭 백점 맞아오겠습니다" 사실대로 말하면요.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어요. 왜냐면요. 학교에는 구해찬이 있잖아요. 지금 구해찬은 제게 너무 많이 화가 나 있잖아요. 그래서 싫었어요. 하지만 언니에게 내색할수 없었던건, 저는 한국에 있을동안은 착한딸. 착한동생이 되기로 했기 때문이에요. ... "그래. 김예봄 시험에만 집중하자. 시험에만" 저는 위와 같이 다짐하고는 그렇게 씩씩하게 집을 나와서 학교로 향했습니다. 어제 보다는 이 교복도, 이 길도 조금은 익숙해진 느낌이에요. "어? 김예나!!!가 아닌가? 당신 누구셔." 오늘 볼 과목을 손에 들고는 어제 공부한것들 위주로 보고 있을때였어요, 뒤에서 아주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더니 그사람은 제 어깨에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손을 올리곤 말했어요. 갑작스러운 그 행동에 제가 두눈을 꿈뻑이면서 가만히 있자. "김예봄이구만.? 맞지 너 예나동생!" 혼자 낄낄대면서 까르르 웃어 보여요. 맞아요. 어제 봤던 황여민이였습니다. 그순간 느낀거요? 그렇다면 지금 내뒤에 이현태하고 구해찬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였죠. "네? 네. 저 그럼 전 이만" 그 생각에 참을수 없었어요. 구해찬을 마주치기 싫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대충 황여민에게 고개를 까딱 해보이고는 뒤돌아서서 앞만 보고 걷기 시작했습니다. 구해찬이 제 뒷모습을 쳐다보고 있겠죠? 어제 그 눈으로 말이에요. 그 무서운 눈으로. 타악- 그렇게 정신 없이 앞만 보고 걸었을때였어요. 갑작스럽게 누군가가 제 손목을 잡고는 자신의 뒤로 숨기듯 끌어 당겼고, 동시에 아주 빠른속도로 아까는 미처 보지 못한 오토바이가 쌔앵- 하고 지나갔습니다. "위험하잖아." 구해찬이였어요. 잠을 잘 못잤는지 조금은 눈이 충혈되어 있는 구해찬이요. "고. 고마워요" 지금 제가 이렇게 떨고 있는건 오토바이가 정말 무서운 속도로 지나갔기 때문에 놀라서였는지도 모르겠고. 구해찬의 뜻밖에 친절에 당황해서였는지도 모르겠어요. "착각같은거..." "네. 착각같은거 안해요. 어쨌든 감사해요" 구해찬말을 가로채듯 그렇게 대답하자 구해찬이 저를 빤히 내려다 봐요. 어제도 느낀거지만 이남자 눈이 정말 예뻐요. 속눈썹도 예쁘고요. "골때리게 똑같네. 짜증나" 구해찬은 그렇게 뒤돌아서요. 저는 피식하고 웃고야 말았습니다. 왜냐구요? 제 우려와는 달리 어제 그렇게 화내던 구해찬은 없었거든요. 생각보다 단순한 모양입니다. 하루만에 벌써 화가 가라앉은거 같았어요. 아마 오늘 어쩌면 구해찬이 언니에게 쭈볏쭈볏 사과를 할지도 모르겠어요. \학교 "야. 김예봄" 제가 뭐랬어요. 구해찬이 언니에게 사과를 할꺼 같다구 했죠? 저의 예상은 그날 시험이 끝난후 한치의 오차 없이 딱 들어맞았습니다. "네?" "반말까. 같은 나인데" 시험이 끝나고 채점 시간이였을 때에요. 뭔가를 계속 고민하던 구해찬이 이내 결심을 한듯 제 자리 옆에 털푸덕 앉아버린건요. 그리고는 저와 계속 눈을 마주치지 못한채 저러고 있어요. "응!!" 한치의 망설임 없이 말을 놓자 그러자 구해찬이 놀란 모양이에요. 아주 약간이지만 동공이 조금 커졌거든요. 어쨌든 저의 대답에 구해찬은 제 책상 위로 초코우유 하나를 내밀었습니다. "어제 화낸건 미안한데. 아니 미안한게 아니라 뭐 솔직히 니가 잘못한거니까. 그러니까 어쨌든 근데 난 사과하는게 아니라 니가. 그러니까" ... 그런데 구해찬은 지금 무슨말을 하는걸까요. 제가 생각하기로는 미안하다고 하려고 하는거 같은데 미안하다는 말이 그렇게 쑥스러운걸까요? 정말 이해할수 없는 남자에요. "그러니까. 미안하다구?" 구해찬이 내민 초코우유를 한모금 마시면서 제가 말했어요. 그러자 버럭 소리를 지르는 구해찬이에요. "내가 언제!!!!" "그럼요?" "그러니까.." "응. 그러니까?" 빤히 구해찬을 쳐다보면서 초코우유를 한모금 더 마셨습니다. 차갑구 달콤한 우유가 입안에 퍼지면서 초코향이 가득해졌어요. 으헤헤. 정말 맛있어요. 아빠는 이런거 잘 못먹게 했거든요. 우유도 꼭 하얀 우유만! 과자는 하루에 간식시간만! 그렇게 철저하게 정해져 있어서 정말 오랜만에 먹는 초코우유는 맛있었어요. 그것도 무지! "그러니까." 다시 한번 구해찬이 뜸을 들이며 말해요. 저는 벌써 무슨말을 할지 눈치 챘는데 말이에요! "응!" "아씨 그러니까 김예나 화 푸는것좀 도와달라고." 언니가 없었으면 이남자가 제게 초코우유를 뇌물로 먹이는 일도 없었을테고, 이렇게 우습지만 진지하게 부탁하는 일도 없었겠죠? 문득 또 다시 언니가 부러워졌어요. 하지만 질투하거나 그러진 않아요. 왜냐면 "겨우 초코우유 하나로?" 언니는 이런 사랑을 받을만큼 예쁘고, 밝고, 매력적인 사람 이거든요. 아! 하나더 추가요! 착하기도 하고 솔직하기도 해요! "............" 저의 장난섞인 말에 구해찬은 한방 먹은듯한 표정이였어요. 저는 자꾸만 웃음이 터져나오는걸 겨우 겨우 참았습니다. 그때. "어이 구해찬. 시험 잘봤냐. 꼴등은 면한다며." 아주 당당하게 앞문이 열리더니 이현태가 반에 들어와요. 이반에 오는게 아주 익숙한가봐요. 이상하게 이현태가 등장하자 반 아이들이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고개를 숙였습니다. 뭐랄까 갑자기 문득 이반에 구해찬과 이현태밖에 없는 느낌까지 들정도였어요. "이현태" "응? 예봄이도 있네." 아참. 말 안한게 있어요. 오늘 이현태가 제게 아주 잘해줬어요. 1교시가 끝나고 화장실 앞에서 만났을때도 무지 반갑게 인사도 해주고. 2교시때는 함께 매점도 갔습니다. 편하게 말 노라면서 웃어주기까지 했어요. 그래서 저는 언니의 친구들중 이현태가 제일 좋아요. 매너도 좋고 무지 착하거든요. ... "개자식아. 뭐? 성격이 달라!? 얘 김예나 판박이야!!!!!!!!!" 어쨌든 그런 이현태에게 구해찬이 크게 소리를 질러요. 아무래도 ‘겨우 초코우유 하나로?’ 라는 제 말이 충격적이긴 했나봐요. "예봄아 구해찬님이 무슨일인데 또 폭팔하셨어." 그런데요. 지금처럼 구해찬과 이현태는 자연스럽게 제 이름을 불러줬어요. 저는 지금 김예나인데 이사람들은 김예봄으로 불러주고 생각해줘서 그게 너무 기뻐요. "그게 아니라." "응?" "야 됐어. 됐고, 김예봄 어쨌든 오늘 끝나고 우리반으로 와." 다정스럽게 이현태가 이야기를 들어주려는데 갑자기 구해찬이 말을 가로막고는 그랬어요. 그런데 정말 구해찬은 바보같아요. "저..있잖아. 지금 우리 같은반인데?" "어쨋든" *방과후 이현태하고 황여민이 찾아와서는 피시방을 가자고 졸라대는걸 모두 거절하고는 구해찬은 저와 함께 학교를 나왔어요. 왜 구해찬과 함께냐구요? 그건 제가 묻고 싶은 말이라구요. "그.그런데 내가 왜 함께 가야해??" "김예나 동생이니깐" "하지만. 언니 화푸는데 내가 왜 필.." "김예나 선물이면 껌뻑 죽잖아. 같이 골라줘" 피식하고 웃으며 그래요. 고개를 끄떡이긴 했지만 저는 막막했습니다. 왜냐면 저는 언니에 대해서 아는게 별로 없거든요. 어느정도냐면 심지어 언니가 선물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도 처음 들어보는거였어요. 아이러니 하게도 구해찬보다 제가 언니에 대해서 아는게 더 없네요. 순간 씁쓸하고 슬퍼지고 무튼 그랬어요. "그리고." "응?" "비밀이다. 내가 김예나 좋아하는거," 구해찬은 또 쑥스러운가봐요. 앞만보고 책을 읽듯 아주 어색하게 말해요. 그 모습이 얼마나 우스운지 저는 웃음을 못참고 다시 피식 하고 웃어버렸습니다. 그러자 구해찬은 한쪽 눈썹을 구기고는 기분이 나쁘다는듯 저를 노려봤고 그 눈빛에 겁먹은 저는 곧바로 표정을 바꿨어요. "응! 알겠어." 그리고는 이렇게 고개를 끄떡끄떡 했죠. 그러자 구해찬이 다시 한번 말해요 "그리고 또." "응.?" ... "이왕 이렇게 된거 팍팍 밀어줘라." 이쯤 되면 구해찬도 이왕 들켜버린거 막나가자 이거죠? 으헤헤. 보일듯 말듯 고개를 끄떡이고 있을때. "김예나!!!!!!!!!!!!!!!!!" 다른 학교 교복을 입은 무리중 한 사람이 언니의 이름을 크게 불렀어요. 시내가 다 흔들릴정도로요. 그순간 구해찬의 표정이 아주 무섭게 굳은건 잘못본게 아니겠죠? "김예봄." "응? 그런데 저사람도 언니 친구야?" 그 남자는 무지 무섭게 생겼었어요. 티비속에서만 보던 불량아들의 정석 이라고나 할까요? 아무튼간에 보기만 해도 두려움이 느껴질 정도였으니깐요. "지금부터 일어나는일, 김예나한테는 비밀이다. 알았지?" "응?? 그게 무슨말...." "우리둘만에 비밀. 씨클 말야 씨클. 오케이?" 사실 그때는 정말 생각같아서는 주저 앉아서 크게 웃어버리고 싶었어요. 그리고는 구해찬을 놀리고 싶었죠. 도대체 씨클이 뭐냐구. 설마 비밀(secret)을 씨클이라고 하는거야? 라고 말이죠. 하지만 그럴수 없었던건요. 웃기도 전에 구해찬이 먼저 선수를 쳐버렸기 때문이에요. ... "선배님, 안녕하세요." -------------- §가그린§ (godqhrgkehfhr@hanmail.net) 플티〃가그린〃소설 (http://cafe.daum.net/Gagrin) -------------- ※헬리오토로프는 5월 24일의 탄생화로 사랑이여 영원하라 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6> "선배님, 안녕하세요" 하고 크게 소리를 지르자, 그 낯선 남자가 조금은 인상을 찡그린채 구해찬쪽으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왠지 모르게 이상한 느낌이였어요. 뭐랄까. 저는 여자라서 잘 모르겠지만 남자들만의 어떤것이 느껴졌다고나 할까요? 음. 음 이건 정말 뭐라 설명하기 조금 어렵네요. "구해찬, 간만이다" 어쨌든 그런 구해찬에게 그 남자는 말해요. 그건 약간은 비꼬는듯한 느낌이였는데, 그걸 구해찬이 모를 리가 없잖아요. 구해찬이 살짝 인상을 찌푸렸습니다. "네. 안녕하셨어요." "그래. 근데 김예나 넌 도대체 왜 연락을 안하는거냐. 응?" 저는 저도 모르게 이게 무슨소리지 어랍쇼. 하고 고개를 갸우뚱 할뻔 했어요. 그 무서운 남자가 구해찬의 인사를 가볍게 받고는 곧바로 제게로 시선을 돌렸거든요. 우와. 지금 이런말 무지 분위기 깨는거 알지만 이남자 말할때마다 피어씽이 씰룩여요. 저는 정말이지 그 모습이 신기했습니다. "피어씽" 그래서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듯 위와 같이 말했어요. "응? 아 피어씽? 어제 했다. 두 개는 좀 징그럽다고 해서 눈썹에 있던거 빼고 입술밑에 밖은거지. 왜. 오빠 멋지냐" ... "만져봐도 되요?" "뭐?" "피어씽 말이에요. 이거 만져봐도..." 그러자 그 불량스러운 남자는 피식 웃으며 허리를 조금 더 수구렸어요. 그리고는 만져봐도 된다는듯 고개를 끄떡였습니다. 와- 정말 만져봐도 되는거에요 이거.? 말할때마다 입술이 움직이는게 너무 신기해서요. "아 잠깐-" 그러니까 그건 정확히 그때였어요. 제 손끝이 그 남자의 입술 밑에 있는 은색 피어씽에 달려는 찰라, 갑자기 구해찬이 제 손을 저지 하고는 앞에 서고는 말해요. "형. 할말이 있어요" 라면서 그래요. 그러면 그 형이라는 사람은 아무말 없이 무섭게 구해찬에게 시선을 돌렸습니다. 어서 말하라는듯한 눈초리였어요. 그러자 구해찬은 아무 표정 없이, 감정 없는 목소리로 조금은 딱딱하게 입을 열었습니다. "저요" "어" "오늘부터 예나랑 사귀거든요." "뭐?" 구해찬의 뜬금없는 그말에 저는 한쪽 손으로 입을 가리고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왜냐면 구해찬에 엉뚱함과 질투심이 우습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아무튼간에 그랬거든요. 언니에게 비밀로 해달라는게 아마 이거였나봐요. "그래서 말씀드릴께요. 예전에는 예나가 형 잘 따르고 해서 가만히 있었는데. 이젠 제 여자친구니까" "............." "그러니까 앞으로 건들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뭐? 야 임마 너." "남자가 되가지고 사랑하는 여자 정도는 지켜야 되잖아요." 구해찬이 말을 마치곤 씽긋 웃는데요. 그 형이라는 사람은 무언가 뒷통수를 얻어 맞은듯 가만히 그렇게 멍해진채로 서있어요. 그순간 두 사람의 모습이 참 대조되어 보였습니다. 구해찬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요? 씨클이라고 할때까지만 해도 무지 머리가 안좋은줄 알았는데, 저는 지금 이 아이디어는 아주 좋았다고 봐요. "예나야, 너 정말 구해찬 저자식이랑 사귀는게 맞아?"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요. 구해찬의 말이 끝나고 한 2분정도 지났거 갔습니다. 다시금 정신을 차리려는듯 고개를 두어번 젓던 남자는 이내 제게 물었어요. 저는 슬며시 구해찬의 눈치를 보았고, 구해찬은 그런 저에게 뒤로 살짝 주먹을 내미는 시늉을 하면서 어줍짢게 협박했습니다. 아그! 저런 모습을 보면 이런 거짓말에 협조하고 싶지 않지만, "네. 사귀는게 맞아요." 저도 언니가 이런 사람과 잘되는것은 싫기 때문에 협조를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어쨌든 제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구해찬은 승리한 사람처럼 개구지게 웃어요. 그리고는 내친김에 저에게 어깨 동무까지 해오네요. 솔직히 이건 좀 아니다 싶었어요. 그런데 구해찬이 너무 기분이 좋아보여서 저는 꾹 참은채 웃으며 그 거짓말에 협조했습니다. 으헹- 이건 어째 한국와서 거짓말만 늘어가는거 같다구요. "그럼, 형 저희 예쁜 사랑 하겠습니다. 형도 얼른 좋은 여자 만나셔야죠. 갈께요!" 얼씨구! 저는 이렇게 거짓말이 늘어만 가서 걱정인데 구해찬은 신나 죽겠나봐요. 그 작은 입가에 웃음이 끊이질 않는걸 보면요. \선물가게 "아 진짜 십년만에 먹은 떡국이 소화되는 느낌이네." 지금은 선물가게에요. 이곳은 밖보다는 덥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에어콘이 무지 빵빵 했거든요. 그리고 지금 우리는 선물을 고르고 있어요. "십년만에 먹은 떡국?" 그런데 아까부터 구해찬은 선물 고르기에 집중하지 않고, 저렇게 이상한 말만 해대요. 아까는 '경오리 입을 찢어버린 멋쟁이 구해찬' 라면서 그랬어요. 아무래도 그 선배라는 사람한테 한방을 먹인게 신나 죽겠나봐요. 구해찬은 정말 어린애 같았습니다. ... "어. 왜. 너도 언어의 마술사 같냐?" 아, 맞다. 구해찬이 이렇게 웃으며 한말 때문에 또 까먹을뻔한게 생각났어요. 구해찬은 저런 이상한말을 하면서 제게 자랑 하나를 했는데요. 고등학교 1학년때 자기가 쓴 시를 보면서 문학 선생님이 언어의 마술사라나 뭐라나 했다고 그랬어요. 정말 엉뚱하죠? 이남자는 알면 알수록 모르겠다구요! "아니. 그런 이상한말이 어딨어" "지 언니 꼭 빼닮아서, 성질하고는. 너도 김예나처럼 딴건 다 배웠는데 인정하는법만 못배웠나보네" "맙소사. 그게 도대체 무슨," 저는 정말 어이가 없었습니다. 솔직히 구해찬이 무슨말을 하는지도 이해가 안갔거든요. 그래서 차근차근한 목소리로 구해찬에게 말했는데요. 구해찬은 됐다는듯 절레절레 손짓을 하면서 ... "빨리 선물이나 골라." 라고 그랬어요. 제가 이쯤대서 구해찬에 대해서 하나 더 알아낸건요. 그게 뭐냐면 구해찬은 저렇게 할말이 없을땐 버럭 소리를 지른다는거에요. "그런데, 구해찬은" "어.?" "언니가 왜 그렇게 좋아?" 선물가게에는 사람들이 꽤 많았어요. 오늘이 무슨날이지 라고 궁금해 할 정도로요.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오늘은 아무날도 아니였고, 제가 내린 결론은 사람들이 많은건 '에어컨' 때문이라는 거였습니다. "그냥-" 어쨌든, 저는 꽤나 망설이곤 물었는데 구해찬의 대답은 너무나도 간단하고 싱거웠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진열대에 놓인 선물을 이것 저것 들여다보면서 저는 다시 물었어요. "그냥?, 그런게 어딨어" "당차고. 밝고 그런게 예쁘잖아" 대충 둘러댄 말 치고는 썩 그럴싸 했습니다. 구해찬은 말을 마치곤 얼굴이 벌개진채 뒤돌아 섰어요. 그리고는 신경질적으로 소리쳤지요. "아씨. 근데 여기 왜이렇게 더워!!!!!" "저.저기 근데 구해찬" "왜." 역시 구해찬은 바보가 틀림없습니다. .. "여기 지금 에어컨 빵빵해." .. .......... ........ 지금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선물은 뭐샀냐구요? 무려 3시간 동안이나 고르고 골라서 산 선물은 [선인장]이였습니다. 선인장은 분홍색 꽃이 펴있고, 노란색 화분에 들어있었는데, 아무튼간에 무지 예뻤어요. 구해찬도 선인장을 들고는 흡족한듯 웃어보였으니깐요. "구해찬. 근데 그거 알아요?" "응.? 뭐" "지금 구해찬 무지 웃기다는거" 둘이서 집으로 걸어가는길. 그 길이 너무 어색해서요, 저는 괜히 구해찬에게 말을 걸어 보았어요. 그러자 구해찬은 아무런 반응 없이 손에 든 선인장만을 빤히 바라봐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걸까요. 문득 궁금해졌어요. 만약 구해찬의 머리가 뻐엉 하고 열린다면 저는 아마 일등으로 달려가서 그 안을 들여다 볼꺼에요. 구해찬은 그만큼 연구대상 이거든요. 으하하 "나말야." 그때, 선인장을 만지작 만지작 거리면서 별안간 구해찬이 입을 열었습니다. "응?" "김예나가 왜이렇게 좋지?. 개는 왜 미운짓을 해도 예쁜지 몰라." 구해찬이 웃었어요. 왜 그런거 있잖아요. 생각만해도 기분 좋다는 웃음. 그래요. 지금 구해찬의 웃음이 딱 그랬어요. 저는 그런 구해찬의 순수한 모습에 슬며시 웃어 보여요.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남자한테 사랑 받으면 어떤 느낌이 들까. 하고요. 이렇게 죽도록 한사람만을 심장에 담을수 있는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다면 무지 행복하겠지? 하고요. "언니는 좋겠다. 구해찬이 이렇게 많이 좋아해주고!" 저는 사실 그날이후, 진정한 사랑을 해본적이 없어요. 그럴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나는 그사람을 불행하게 만들었으니, 그런건 더 이상 없을거라고 매번 수없이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한국에 와서 구해찬을 만난후, 자꾸 누군갈 사랑하고 싶다는 주제 넘는 생각이 들어요. .. "응. 내가 멋지긴 하지?" "구해찬! 난 그런말은 한적 없다구요!" 어느새 해가 기웃기웃 저물어 가고 밤이 오고 있었습니다. 그즈음 구해찬과 저는 집앞에 도착했는데요. 집에 도착하자 마자 영양가 없는 대화를 하면서 신나게 걷던 걸음이 멈추어버렸어요. 타악- 하고요. 그런데 저는 그소리가 이상하게 슬프게 느껴졌습니다. "............" 얼마후, 구해찬에 손에서 소중히 들려있던 선인장이 투둑 하고 떨어지면, 저는 구해찬을 안쓰럽게 쳐다봤어요. 왜냐면 구해찬도 저도 보고야 말았거든요. 집앞에서 어떤 남자와 키스를 하고 있는 예나 언니를 말이에요. "구해찬..?" 저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저 조차도 이렇게 목소리가 떨리는데 구해찬은 지금 얼마나 복잡할까요. 어쨌든 구해찬은 제 물음에 피식 하고 웃었어요. 피식 하고요. 허탈하게. 그렇게요. "더럽게 쪽팔리네." "......." 구해찬이 말해요. 하루종일 언니의 화를 어떻게 풀어줄까 고민했던 구해찬이. 선배에게 당당히 언니를 지킨다고 귀여운 거짓말을 했던 구해찬이 언니에게 줄 선물을 3시간동안 신중히 골랐던 구해찬이, 언니의 당차고 밝은 모습이 예쁘다고 수줍게 말하던 구해찬이, 언니 이야기에 계속해서 웃음을 지었던 그런 구해찬이 ... "나 바보 같지.?" 이렇게 슬프게 말해요. "구해찬.. 하나만 물을게, 죽어도 언니여야해? 다른 사람이 좋아지진 않아??" 꽤나 어려웠어요. 저런 말을 구해찬에게 꺼내는건요. 하지만 꼭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아니 물어봐야 했어요. 왜냐면 그순간 언니가 스치듯 지나갔거든요. 절대 구해찬은 사랑이 될수 없다는 언니가요. "응." 하지만 망설임없이 대답하는 구해찬이였습니다. "왜?" "왜냐면." "응.." ... ............. "김예나 없는 구해찬은 상상도 하기 싫거든." 솔직히 그때는요. 언니에게 달려가서 소리치고 싶었어요. 언니만 3년동안 바라본 이 바보같은 남자도 한번만 봐달라고. 충분히 그래줄순 있지 않냐고. "........." "아 춥다. 오랜만에 닭살 돗는말 했더니 추워 디지겠네. 어이 꼬맹이, 난 그럼 간다! 아. 그리고 오늘 고마웠고" 잠시 분위기가 어색해지자 괜스레 팔뚝을 마구 비비면서 구해찬이 분위기를 띄우려고 노력을 해요. 하지만 마음이 불편한건 어쩔수 없는 모양입니다. 저는 자꾸만 구해찬을 안쓰럽게 쳐다봤어요. "하지만." "아 진짜 난 괜찮다니까." ".........." "이렇게 뒤에서 죽도록 기다리면 언젠가 오겠지. 뭐." ... 씩 하고 그렇게 또 다시 웃어요. 아까와 같은 실망감을 어느새 얼굴에 싹 지우고는 또 그렇게 거짓말을 하는 구해찬이였습니다. 그때. 그러니까 정확히 구해찬이 뒤돌아 서려 할때 언니의 밝은 목소리가 들려왓어요. "어? 예봄아!!! 구해찬??! 니네 거기서 뭐해??" "........." "아 맞다. 니네 얼른 와바!! 예봄아 언니가 언니 남자친구 소개시켜줄께!!" ... 솔직히 지금은 언니가 야속하고, 무지 밉네요... -------------- §가그린§ (godqhrgkehfhr@hanmail.net) 플티〃가그린〃소설 (http://cafe.daum.net/Gagrin) -------------- ※헬리오토로프는 5월 24일의 탄생화로 사랑이여 영원하라 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7> "저거봐, 김예나 눈치 하난 더럽게 없지?" 저도, 구해찬도 그 누구도 발걸음을 움직이지 않고 있을때 구해찬이 얼굴을 찌푸리면서 그래요. 저는 그말에 피식 하고 웃어버리고야 말았죠. "그러게" 그런데 구해찬이 뜻밖에도 입을 열어요. "가자." 라면서요. 깜짝 놀라서 이게 무슨소린가 하고 고개를 돌리면 "응? 어딜?" "김예나한테." "뭐? 정말 괜찮겠어??" "너 지금 그말투 나 무시한거냐" "아니." "그럼 가자" 정말 알수없는 사람이에요. 방금전엔 그렇게 슬픈 표정을 지었으면서, 지금은 또 예나언니에게 가재요. 이렇게 너무나도 낯설게 제 손을 꼭 잡고는 말이에요. 저는 잠자코 구해찬을 따라 걸었습니다. "근데 니네 둘이 왜 같이 있어?" 이윽고, 언니 앞에 짜잔- 하고 우리 둘이 등장하자 언니가 조금은 신난 음성으로 말했어요. 언니랑 구해찬은 참 닮은게 많아요. 화가 나다가도 좋은일만 있으면 이렇게 한번에 풀어지는걸 보면요. 언니는 우리가 몇시간동안 고른 선물이 무색하게 화가 다 풀린듯한 모양이였습니다. "왜. 그러면 안돼냐?" 그런데 제발 구해찬 이렇게 버럭 소리좀 지르지 말라구요. "뭐야, 왜 또 시비래." "이번엔 또, 뭐냐 연하냐? 어쨌든 지금의 구해찬은 완벽히 변신을 완료했습니다. 3년동안 김예나를 좋아한 구해찬이 아닌 3년동안 김예나와의 절친한 친구인 구해찬으로요. 구해찬은 한심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인상을 찌푸리며 예나언니 옆에 멀쭉히 서있는 남자아이에게 말했어요. "안녕하세요." 그러자 그 남자아이가 꾸벅 하고 예의 바르게 인사를 건냅니다. 언니는 귀여워 죽겠다는듯 그 남자아이의 머리를 이리저리 흐트러 놓으며 웃어요. 그순간 저는 똑똑히 보았습니다. 슬프게 웃음짓는 구해찬을요. 꼭 영화 같잖아요 이거. 이렇게 서로 엇갈리고 가슴앓이 하는거 영화에서 흔히 나오는 장면이라구요. "어. 아 춥다. 야 김예나 인사 받았으니까 이제 됐지? 이 형이 오늘 무지 바쁘거든. 이만 간다.?" "뭐? 너 이 싸가지 없는 세끼-" "사돈 남말 하지 마시고" "아오 진짜 구해찬 이자식 친구만 아니면 넌 나한테 벌써 뒤졌어. 알아?" "우와. 김예나군 사람 한명 죽이시겠는데요." 장난스러운 구해찬의 말에 언니가 갈갈히 날뛰며 죽여버리겠다고 그래요. 그럼 구해찬은 어린애 같은 얼굴로 도망가고 언니는 거기서라면서 쫒아가고. "얘기 들었어요. 예나누나랑 쌍둥이라면서요?" "네? 아 네" 결국은 우리 둘밖에 남질 않았어요. 그러니까 언니의 새로운 연하 남자친구랑 언니의 쌍둥이 동생인 김예봄. 이렇게 둘이요. 날이 꽤 어둑어둑해졌네요. 왜냐면 언니의 새로운 남자친구의 얼굴이 어둠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았거든요. 얼핏 보이는걸로는 꽤 젠틀한 외모를 가지고 있는거 같았습니다. 하지만 구해찬 만큼은 아니에요. 이런말 하는거 조금 그렇지만 구해찬은 정말 무지 잘생겼거든요. "진짜 닮았다. 처음엔 예나누나인줄 알고요. 깜짝 놀랐어"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 쓰면서 그 남자아이가 옅게 웃었어요. "아. 그래요? 으헤헤 그렇구나." "그런데 저 둘이요, 많이 친한가봐요." "아. 언니랑 구해찬이요?" "네. 사실 예나 누나랑 안지는 오래됐는데, 제가 오늘 고백한거거든요. " "아 그렇구나" "근데 많이 들었어요. 예나 누나한테 저사람 이야기" 고개를 돌려 아직도 티격태격 거리고 있는 구해찬과 예나언니를 응시하며 그래요. 뭐랄까 남의 얘기 하는 말투랄까요. 어쨌든 언니의 남자친구라는 그 남자아이의 눈은 계속 그들을 좇았고 저는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습니다. "저도 사실 한국에 온지 별로 안돼서 잘 모르겠지만, 한가지 확실하게 알수 있는건요. 상상할수 없을만큼 친하다는거에요 저 둘. 그냥 친한게 아니라 서로에게 많이 의지하면서." 비록 한사람은 우정, 한사람은 사랑이지만요. \다음날 "예봄아. 어제 언니 남자친구 어땠어? 귀여웠지!" 오늘은 시험 마지막 날입니다. 김예봄이 김예나가 되기로 한지 마지막 날이란 말이지요. 어제는 공부를 늦게까지 하지 못하고 자버려서요. 여간 불안한게 아니에요. 저는 학교를 좀더 일찍 가서 조금이라도 더 볼라고 아침 일찍부터 서둘르고 있습니다. "응? 응 귀엽더라. 우리보다 한 살 어려?" "응! 근데 개가 오늘 너 맛있는거 사주겠대. 시간 되지?" "오늘?" 책을 마악 다 넣었을때 언니가 두눈을 땡그랗게 뜨며 고개를 끄떡여요. 오늘이라면 나쁘진 않지만 왠지 가고싶지 않은걸요. 왜냐면 저는 구해찬의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아니까. 그러니까 제가 왠지 간다면 배신하는것 같은 느낌이 들거 같습니다. "응. 안돼나?" "안돼는건 아닌데. 그냥 조금 피곤할꺼 같아서" 그랬기에 저는 언니에게 어설픈 거짓말을 해보아요. 들키면 어쩌지 콩닥콩닥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면서요. 슬며시 언니의 눈치를 살피는데 역시나 쿨한 언니는 단숨에 고개를 끄떡였습니다. "알았어. 다음에 먹지 뭐! 예봄이 오늘까지만 수고하고! 우리 내일 63빌딩 꼭 가는거야! 알았지?" 휴 다행이에요. 거짓말이 들통날까봐 얼마나 가슴을 졸였다구요. 미국에 살 때 아빠는 제 거짓말을 금새 맞추곤 했어요. 거짓말을 할때 제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린대나 뭐래나. 어쨌든 그렇게 거짓말을 들킬때면 저는 벌을 서곤 했어요. 어렸을땐 그게 너무 싫어서 거짓말을 할때마다 눈을 꼭 가려보기도 했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습지만요. "응! 그럼 언니 나 갔다올게" 그러고보니 언니의 가방을 메는것도 오늘이 정말 마지막이네요. 이렇게 생각하니까 조금은 섭섭해요. 이렇듯 저는 괜한거에도 정이 많답니다. 전 오늘따라 무거운 발걸음을 끌고는 집을 나섰습니다. \학교 오늘은 삼일을 통 틀어 제일 일찍 온 기록을 세운 날입니다. 왜냐면 제가 일등으로 학교에 도착했거든요. 텅텅 비어버린 교실을 둘러보다가 저는 익숙히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웬걸. 이거 왜이렇게 무섭지요? 혼자 텅 빈 교실에 앉아 있는건 생각보다 무지 무서워요. "음 개항 이후 조선 정부는 국민을 계몽하기 위해 박문국을 설립하고." 저는 공부나 하자, 공부에 집중하면 덜 무서울꺼야 라는 생각으로 무작정 책에 있는것을 큰 소리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부분은 어제 분명히 공부한 부분인데, 이상하게도 처음보는거 같아요. 내용이 머리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너무 일찍왔나봐요. 세벽 하늘도 어둑어둑하고, 교실엔 아무도 없고 이런건 정말 싫다구요. 드르륵- 그때였어요. 조용한 교실에 문이 조심스럽게 열린건요. 드르륵 하는 소리가 빈교실에 울리는데 식은땀이 나고 아무튼간에 그랬습니다. "얌마 뭘 쫄아 있고 그래" "어.? 구해찬?" 문을 연 주인공이 구해찬이라는 사실을 알게 돼자 긴장했던 몸에 힘이 쫙 풀리는듯 했어요. 구해찬은 확실히 움츠려 있는 제가 웃기다는듯 건방지게 웃으며 제 앞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구해찬은 도대체 생각이 있는걸까요 없는걸까요? "구해찬 너 가방은?" 그랬습니다. 구해찬은 시험을 보러 학교에 왔으면서 가방조차 들고 있지 않았어요. 저는 꽤나 걱정스럽게 이야기를 한건데 구해찬은 성질이 난다는듯 훽 뒤돌아서서 괜스레 제게 소리를 질러요. 뭐라면요. "이게 다 누구때문인데 뒤질래?" 라고요. 억울합니다. 억울하다구요. 방금 구해찬 이말투 꼭 저를 탓하는거 같아서 저는 너무나도 억울해져왔습니다. 그래서 되려 소리를 지르면서 말했어요. "구해찬이 가방 안가져온게 왜 내 잘못이야?" "니네 잘난 언니가 전화만 안했어도 안왔어. 다 큰 기집애가 혼자 학교도 못오냐 넌- 챙피한줄 알아." 잔뜩 성이 난 구해찬의 목소리였습니다. 사건은 이랬어요. 평소 같았으면 1교시가 시작 된후 느릿느릿 등교를 하던 구해찬이 오늘 이토록 일찍 온 이유는 바로 예나 언니의 전화 때문이였대요. 새벽부터 언니가 전화를해서 예봄이가 너무 일찍 간거 같다며 니가 가보라고 했다나 뭐래나 아무튼 그랬대요. 언니의 부탁이니 거절할수는 없고 졸린 눈 비벼가면서 학교에 등교했다고 구해찬은 그렇게 제게 설명했습니다. "그랬구나. 그런데 구해..." 저는 괜히 오해한거 같아서 밥은 먹었어? 우유라도 사줄까? 라고 말하려던 참이였는데 더 이상 말을 이을수 없었습니다. 왜냐면 구해찬이 어느새 잠들어 버렸거든요. 제 앞자리 책상에 완전히 드러 누워서 쌔근쌔근 하고 말이에요. 분하지만 구해찬은 자는 모습 또한 예뻤어요. "잘자 구해찬" 아무 생각 없이 구해찬의 어깨를 두어번 두들긴후 저는 다시 보고 있던 프린트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까와는 달리 내용이 쏙쏙 머릿속에 들어오는 느낌입니다. 아무래도 이렇게나 든든한 구해찬이 옆에 있기 때문인가봐요. \ "저기 예나야. 해찬이 좀 깨워줄래? 나 왠지 무서워서" 어느새 시계는 6시 50분에서 8시를 향해가고 있어요. 아이들도 차츰 많아졌고 교실은 텅텅 비었던 아까와는 달리 상당히 활기를 띄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구해찬에게 자리를 뺏겨버린 아이가 제가 조심스럽게 부탁을 합니다. 곤히 자고 있는 구해찬을 깨운다면 그 뒤에 보복이 두렵다면서 슬며시 웃고는 말이죠. "응? 알겠어. 구해찬. 구해찬!!!!!!!" 구해찬을 흔들며 깨우는 지금에도 제가 의문인건 도대체 구해찬은 학교에서 얼마나 무섭게 굴길래 아이들이 이렇게 벌벌 떠나 하는거였어요. "아씨!!!!!!!!!!!!!누구야" 하지만 그런 저의 궁금증은 단숨에 풀려버렸습니다. 이렇게 구나봐요 구해찬은 반 아이들한테. 이렇게 무식하게 소리를 빽빽 지르면서 자기 멋대로 말이에요. 으구 할튼간 구해찬. 성격은 알아줘야 한다니깐요 "일어나 구해찬. 이제 곧 종친단 말야" 솔직히 저도 그땐 그아이가 조금 무서웠습니다. 그아이가 누구냐구요? 누구긴요 구해찬이지요. "제기랄" 어쨌든 구해찬이 작게 욕을 뱉으며 절 노려보더니 훽 하고 일어섰을때 즈음이였어요. "오늘 제일 일찍 온 사람 누구야. 얼른 말 안해?" 그와 동시에 선생님의 화난 목소리가 들려온건 말입니다. 작가말+ 사실 이소설을 몇번이고 포기할 생각을 했어요. 그연을 포기하면서 헬리도 놓아버릴 생각이였습니다. 차라리 이럴바엔 혼수상태라도 끝까지 쓰자란 생각이 컸어요. 저는 지금까지 독자분들이 제 동시연재에 대해서 그렇게 안좋게 생각하는줄 몰랐거든요. 그래서 모든걸 포기하고 혼수상태만 전념할 생각이였습니다. 일단 그것만이라도 완결을 내자는 생각에서야. 하지만 그게 정말 황당한 자기합리화라는걸 어제 깨달았어요. 결국은 혼자만의 이기심이였죠. 릴레이만도 그래요.그렇게 쉽게 허무하게 포기하는게 아니였는데.. 지금에서 후회해봤자 소용없지만요^^; 아무튼 죄송합니다. 제가 벌린 소설인만큼 제가 끝까지 마무리 지을께요. 연재가 더딜지 몰라요. 하지만 절대 포기하는일은 없을것입니다. 끝까지 함께 해달라는말 안해요. 하지만 이 소설을 읽는 지금 이순간만큼은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해요.^^* 많이 기다리셨죠? 몇분이 남아 있을지는 모르지만. 단 한분이라도 헬리 독자분들이 계신다면. 열심히 성실히 연재하겠습니다. 오늘도 좋은하루 되세요!! -------------- §가그린§ (godqhrgkehfhr@hanmail.net) 플티〃가그린〃소설 (http://cafe.daum.net/Gagrin) -------------- ※헬리오토로프는 5월 24일의 탄생화로 사랑이여 영원하라 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8> "오늘 제일 일찍 온 사람 누구야. 얼른 말 안해?" 선생님의 무서운 말에 저는 선뜻 '제일 일찍온건 저에요' 라고 말할수 없었어요. 왜냐면 눈꼬리가 아주 매섭게 올라가 있으셨거든요. 제가 무슨 잘못을 한걸까요? 하지만 아무리 곰곰히 생각해보아도 답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누구냐고! 말 안해?" 선생님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질 무렵이였습니다. 살살 눈치를 살피던 제가 일어서려는건요. 일어서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어찌됐든 제가 제일 먼저 온것은 맞으니까요. 하지만 더 빨랐습니다. 그게 누구냐면요. 바로 구해찬이요. "전데요." 저는 가만히 내려다 보아요. 일어서려는 저를 막아선 구해찬의 큰 왼쪽손을요. 그순간에도 저는 구해찬 손이 참 예쁘다 라는 실없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야?" "네." "따라나와." "무슨일이신데요." "따라나오라고" 잠깐만요. 잠깐만요. 하마터면 구해찬의 손에 정신이 팔려서 잊어버릴뻔했어요. 지금 저 대신 구해찬이 일어서있다는걸요. 이건 아니에요. 구해찬은 제일 일찍 오지 않았다구요. 오늘 아침 제일 먼저 교실에 도착한건 바로 김예봄입니다. 구해찬이 아니라구요. "저 선생님 잠깐만요!" "뭔가?" 갑작스럽게 일어선탓에 반아이들의 시선이 제쪽으로 향했습니다. 순간 얼굴이 빨개졌지만, 그만큼 챙피했지만 저는 꾹 참고 입을 열었어요. "오늘 아침 일찍 온건 구해찬이 아니..악" 하지만 더이상 말을 이을수 없었어요. 왜냐구요? 왜냐면요. 구해찬이 제 발을 밟아 버렸거든요. 눈이 마주치자 구해찬은 "가만히 있어." 라고 그래요.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할 수만 있다면 구해찬의 머리를 열어보고 싶어요. 도대체 어떤 생각이 담겨져 있는지. "구해찬?" 아무튼 간에 저는 다시 한 번 구해 찬을 불렀습니다. 왜그러냐는듯 말이에요. 그러면 구해찬은 그냥 가만히 있으라는 듯 고개를 저어요. 그리고는 선생님을 따라갑니다. "무슨 일이래?" "글쎄, 또 사고친거겠지 뭐" 구해찬이 완전히 교실을 나간 뒤에야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따갑게 들려옵니다. 그러나 그 수군거림도 시험을 알리는 종소리에 곧 조용해지고야 말아요. "다들 자리에 앉아서 시험 준비해라" 정말 시험이 시작되려나봐요. 왜냐면 시험지를 가지고 온 선생님의 목소리가 무거운 교실에 울려 퍼졌거든요. 하지만 나는 그 소리가 하나도 들려오지 않았어요. 구해찬이 나간 그 자리만 멍하니 쳐다볼뿐이였습니다. 나는 정말 겁쟁이에요. 왜 당당히 말하지 못했을까요. "김예나. 너 빨리 안앉어?" "네?" "시험 종 친 거 들었어 못 들었어?" "아. 죄송합니다." 저는 선생님의 고함소리에 놀라 그제야 자리에 앉았습니다. 하지만 어떡하죠? 시험 문제가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아요. 언젠가 아버지가 우스갯소리로 했던 말처럼. 말 그대로 하얀 건 종이고 까만 건 글씨였습니다. 왜냐면. "..........." 시험문제 대신 나 때문에 시험도 보지 못하고 끌려간 구해찬이 자꾸 눈에 밟혔거든요. 맘 같아선 당장이라도 일어나고 싶었어요. 그리곤 그 선생님께 오늘 제일 일찍 온건 저라고.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는거냐구 말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던 건 바로 눈앞에 보인 시험지 때문 이였어요. 저는 지금 김예봄이 아닌 김예나니까요. \ 오늘 시험은 몇 점을 맞았는지 몰라요. 왜냐면 채점을 하지 못했거든요. 그건 시험이 끝나자마자 구해찬이 있다는 학생부 앞으로 달려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해찬이 끌려갔다고?" 아 하나 잊을 뻔했네요. 저는 지금 혼자 학생부 앞에 서있는게 아니에요. 언니와 구해찬의 친구 황여민, 그리고 이현태와 함께 있답니다. 이현태의 물음에 저는 작게 고개를 끄떡였습니다. "왜?" 그러자 황여민이 이어 제게 물었어요. "나 때문에.." 저는 죄책감에 고개를 숙였습니다. 어찌됐든 구해찬은 나 때문에 시험을 보지 못한 거니까요. 나는 정말 나빠요. 그리고 비겁해요. 드르륵- 그때였습니다. 아까부터 우리 세 사람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던 학생부의 문이 다소 거칠게 열린 건요. 그 소리에 저는 숙였던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보고야 말았어요. 뭘 봤냐고요? "구해찬!!!" 바로 엉망진창이 되어 있는 구해찬의 얼굴이요.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내 대신 황여민이 먼저 입을 열었어요. "야 무슨 일이야?" "몰라. 시험지가 없어졌다나 뭐라나" 그러자 아무렇지도 않게 말해요. 그렇게 구해찬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네가 훔쳤어?" "미쳤냐." "그럼? 너 얼굴이 왜 이 모양이냐" 모두가 궁금한 그 질문에 구해찬이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대답합니다. "무조건 나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러다가 증거 없으니까 가보래. 아 진짜 내가 이놈의 학교를 그냥!" 라고요. 그 순간 느낀 건요. 구해찬은 정말 바보 같다는거에요. 화가 날 만큼. "그냥 뭐?" "졸업만 해봐. 다 불태워버리자" 구해찬의 말에 이현태도 웃었고 황여민도 웃었지만 저는 웃지 않았어요. 엉망진창이 되어 있는 구해찬의 얼굴을 보고 도저히 웃을 수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제 눈에서 웃음 대신 눈물이 나온 건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어? 야 울어?" "..........." 늘 생각해왔던건데요. 한번 터져 나온 눈물은 잘 멈추지 않는 거 같아요. 닦아도 닦아도 쉬지 않고 나와 버리죠. 지금 제가 그래요. 제 눈에서 나오는 눈물이 그래요. 그러자 제 눈물에 당황한 구해찬이 저를 쿡쿡 찌르더니 "야 왜 울어" 라면서 그래요. 저는 그런 구해찬의 손을 뿌리쳐버렸습니다. 그리곤 울면서 소리쳤어요. 미국에 살 때 옆집 살던 할머니께서 절대 울면서 소리치지 말라고, 넌 그럴 때가 제일 밉다고 했던 말도 까먹고선 말이에요. "바보에요?" 내 엄청난 목소리에 구해찬은 눈을 크게 떠 보아요. 아니 그건 구해찬 뿐만 아니라 옆에 있던 황여민과 이현태도 마찬가지였어요. "뭐?" "구해찬 바보냐구!!!!" "뭐가?" "먼저 일찍 온건 나인데. 왜 구해찬이 일찍 왔다고 그래? 의심을 받아도 내가 받아야 하는 건데. 도대체 왜 그랬냐고!! 머리 나쁜 건 알았지만 이정도 일 줄은 몰랐어!!!" 저는 화를 잘 내지 않습니다. 화를 내기 보다는 웃는걸 택하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오죽했으면 별명이 ‘답답이’였겠어요. 그건 누군가한테 화를 내면 내 마음, 그리고 그 사람 마음도 편치 않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참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저는 화를 냈습니다. "나는 그게 아니라." "됐어. 됐다고요. 꼴도 보기 싫어!!" 언니의 오랜 친구 구해찬에게 말이에요. \ "따라오지 마 구해찬." 이라는 제 말이 구해찬에게는 들리지 않는 모양입니다. 구해찬은 아까부터 홱 돌아선 저의 뒷꽁무늬를 졸졸 쫒아오고 있거든요. "구해찬!!" "솔직히 미안하지? 너 그래서 이렇게 화내는 거지?" ".........." 깐죽거리는 구해찬 말에 마땅히 대응할 말을 찾지 못한 건 구해찬 말이 모두 맞기 때문 이였습니다. 저는 구해찬에게 너무 많이 미안했으니까요. 모두 내 탓인 것만 같아서. "김예봄!" 그때 구해찬이 제 이름을 부르며 저를 돌려 세웠어요. 저요? 저야 당연히 구해찬의 단단한 팔목에 저항 한번 하지 못한 채 힘없이 빙그르르 돌아버렸죠. "왜!" "고맙다 알려줘서." "뭘?" "너 같은 애도 화 낼 줄 아는 거. 앞으로 조심해야 갰다고 느꼈어" 또에요. 또 웃어요. 구해찬은. 내가 미워할 수 없게 그렇게 너무나 예쁘게 웃어버려요. 결국 아까부터 꾹 다물고 있던 제 입은 피식 하고 작은 실소를 터트려버렸습니다. "미안해. 구해찬" 그리곤 말했어요. 사실은 아까부터 제일 먼저 했어야 하는. 그리고 하고 싶었던 그 말을 조심스럽게 말이에요. 그 순간은 정말이지 또 다시 눈물이 나올 것 같았습니다. 저는 이렇듯 눈물이 무지 많아요. "괜찮아. 난 원래 이런 거 익숙한 날라리거든." "그런 말이 어디 있어!" "아무튼 울음 그쳐서 다행이다. 난 진짜 여자 우는 게 제일 무서워" 볼멘소리로 그 아이가 그래요. 그것도 살짝 눈살을 찌푸리면서요. 저는 그 순간 구해찬 눈 밑에 있는 애교 살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튼 간에 구해찬은 말을 마치곤 제 머리를 잠시 헝클어 놓다가 '그럼 나간다.' 라고 돌아서려고 했어요. 저는 저도 모르게 그런 구해찬의 옷깃을 작은 손으로 잡아버렸습니다. "잠깐만 구해찬." "왜?" "같이 갈래?" 그러면 춥다며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 놓은 채 연신 통통 튀던 구해찬이 고개를 돌리면서 그래요. "어딜?" "63빌딩!! 시험 끝나고 언니랑 같이 가기로 했는데. 내가 조금만 구경하다가 빠져줄게." 내가 지금 이런 호의를 베푸는 건 결코 구해찬이 예뻐서가 아니에요. 오늘 너무 미안했으니까 그래서 그러는거라구요. 아무튼 간에 제 말에 구해 찬이 예쁘게 웃어 보입니다. 정말 좋아 죽겠다는 표정으로요. 그리곤 그대로 저를 와락 안아버리는 구해찬이였습니다. 숨이 막히도록요. 순간 알싸한 담배냄새가 제 코에 닿았어요. "아 진짜 왜 이렇게 예뻐. 예뻐 죽겠네. 김예봄" "에엑?! 구해찬! 이거 놔! 방금 한말 취소하기 전에 얼른 안 놔?!" "알았어!" 그 말에 구해찬이 저를 얼른 놓아줘요. 어린애 같은 그 모습에 정말이지 저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결국 피식하고 웃어버렸어요. "구해찬씨 그렇게 좋아요?" "응. 꼬맹아 오빠가 뽀뽀해줄까?" "됐거든요!! 그냥 나 언니랑 둘이 갈래!" "야 알았어. 안 할게! 미안하다니까!!" 이때까지만 해도 저는 제가 잘한 줄 알았어요. 구해찬과 함께 63빌딩에 가기로 한 거 말이에요. 어쩌면 언니와 구해찬이 우정이 아닌 사랑으로 잘될 수도 있을꺼란 기대에서였죠. 제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구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저는 정말 맹세코 몰랐다고요. 그런 대형사고가 터질 줄은... 이제 헬리 슬슬 시작해야 하네요. 으하하..!!다들 반가워요. 저 조차 까먹은 스토리 열심히 기억해내겠습니다(__) 헬리는 40~50편정도 되는 중편이에요! ♡조금만 힘내자구요♡ 연재속도가 많!이 느리더라도 이해해주기_ -------------- §가그린§ (godqhrgkehfhr@hanmail.net) 플티〃가그린〃소설 (http://cafe.daum.net/Gagrin) -------------- ※헬리오토로프는 5월 27일의 탄생화로 사랑이여 영원하라 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9> "예봄아! 한겹 더입어! 밖에 무지 추워 지금" "응? 진짜?" "응!! 기달려봐. 언니가 목도리 가져올께" 지금은 63빌딩 갈 준비가 한창이에요. 언니는 목도리를 가져와야겠다 면서 그제서야 제 방에서 나갔어요. 쾅- 하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저는 기다렸다는듯 눈치를 보며 전화기를 들었습니다. "에..그러니까 구해찬 번호가" 그리고는 손가락 한개를 쭈욱 펴서는 구해찬의 핸드폰 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답니다. 꾹 꾹 이렇게요. Rrrrrr-Rrrrrrr 저는 혹시나 언니가 들어올까 노심초사 하면서 수화음이 시작된 수화기에 귀를 가까이 대요. 으악 왠지 떨려요. 이거 무슨 007작전도 아니구 말이에요. -여보세요. 얼마 안가 수화기 너머에선 개구쟁이 구해찬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런데요 그 목소리가 무지 컸어요. 저는 혹여나 밖에 있는 언니에게 들릴까봐 두근두근 거리면서 작으만한 목소리로 이야기했습니다. "조용히해!" -김예나? "김예봄!" -김예봄? 어 왜? 어 왜라니요? 구해찬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수가 있는걸까요? 구해찬은 멍청이가 틀림없어요. 벌써 잊어버리다니. "63빌딩 가기로 했잖아!!" -아 맞다. 야 어디야 너. 죽을라고 설마 혼자갔어? "..........." 저는 순간 할말을 잃고 잠시 멍해질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단순하고 멍청할수가 있는건지 그래도 한편으로는 이렇게 엉뚱한 구해찬이 귀엽다고 생각했어요. -김예봄? 끊긴건가 하는 투로 물어오는 구해찬의 목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저는 아! 하면서 정신을 차렸습니다. 멍하게 있을때가 아니잖아요! "응응. 안갔어, 지금 막 가려고해 그래서 전화한거잖아." -아 "우리 지금 나갈꺼 같거든? 그러니까 20분뒤에 63빌딩앞에 서있어!" -오케이, 알겠어 "응!!" 기분좋게 알겠다고 대답하는 구해찬의 웃음에 저도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와 웃어버렸습니다. 그리고는 행여 언니한테 들킬새라 수화기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어요. "예봄아! 얼른 나와! 목도리 가져왔어" 그때즈음 저를 찾는 언니의 목소리가 들려요. 저는 수화기를 한참을 내려다보던 시선을 그제서야 그쪽으로 돌렸습니다. 왠지 모르게 두근두근 거려요. "응!! 지금 나갈께" 타악- 하고 대답을 마치곤 일어서서 문을 열었어요. 그러자 언니가 밝게 웃으며 손에 든 목도리를 제게 칭칭 감아줬습니다. 그순간 저는 생각했어요. 오늘은 구해찬의 개구진웃음을 봤으면 좋겠다고. "가자!" 뭐랄까, 그냥 웃음 말구 언니옆에 서서 해맑게 웃는 웃음이요. \63빌딩 "우와 진짜 커." 마치 어린애처럼 언니손을 꼭 잡고 도착한 육삼빌딩은 정말 무지하게 컸어요. 올려다 보는데 목이 아플만큼이요. 오랜만에 와보는 육삼빌딩은 한국에 왔을때 만큼이나 제게 설레임을 주는곳이였습니다. "그치? 우리 예봄이 삼일동안 수고했어, 나 대신 시험보느라 푸하하. 진짜 내 인생 최고의 시험성적이였다구" 저는 통쾌하게 한바탕 웃으며 차가운 제손을 꽉 잡는 언니를 보다가 웃어보였습니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떡끄떡. ".........." 그나저나 구해찬의 모습은 도대체 왜 안보이는걸까요?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그 멋지구리한 모습은 그 어느곳에서도 보이지 않았어요. 구해찬이 얼른 와야될텐데, 큰일입니다. 우리 귀가 빨개질때까지 기다릴순 없으니까요. "어?! 왔어?" 그때였습니다. 갑자기 언니 얼굴이 밝아진건요. 구해찬이 왔나보다! 라는 생각으로 저는 언니의 시선이 향한 그곳으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그리고는 보았어요. "응! 누나" 구해찬이 아닌 언니의 새로사귄 남자친구를요. 맙소사. 그래요 이건 정말 말그대로 맙.소.사 인 경우에요. 언니가 예쁘게 웃으며 그 남자친구에게 다가갈동안에도 저는 망부석처럼 그자리에서서 어쩔줄 몰라했어요. "예봄아 이제 가자!" "어? 언니 그게 아니라" "빨리와! 성현이 기달려" 언니는 막무가내였습니다. 언니는 자꾸만 제 손을 잡아 당겼어요. 저는 어떻게서든 버텨야겠다는 생각에 온몸에 힘을 꽉 주었습니다. "예봄아!!! 너 왜그래?" 이건 아니에요. 이건 아니라구요. 정말 이젠 어떻게하죠? 그리고 그때였습니다. 정말 굿타이밍으로 구해찬의 목소리가 들려온건요. 저는 할수만있다면 시간을 돌려버리고 싶었습니다. "김예...." 제 이름을 크게 부르려다가 우리를 발견하고는 멈칫 하고 서버리는 구해찬이였어요. "구해찬? 니가 여기 왜." 언니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습니다. 잡고있던 제 손을 놓고는 구해찬에게 다가서는 언니였어요. 저와 눈이 마주치자 구해찬은 어이없다는듯 피식 하고 웃어보였습니다. 그순간은 정말이지 '미안해. 이럴줄은 나도 몰랐어.' 라는 말을 입밖으로 자꾸만 내뱉고 싶어서 죽는줄 알았어요. "........" 구해찬은 아무말이 없어요. "언..니!" 저는 그런 구해찬을 가만히 보다가 언니를 불러봅니다. "응?" "구해찬 내가 부른거야! 내가" "니가?" "응! 구해찬도 같이 가고싶어서. 우리 빨리 구경하러 가자!" 그제서야 언니가 고개를 끄떡이고는 구해찬의 등을 한쪽손으로 타악- 하고 장난스레 쳐보였습니다. 그순간까지도 구해찬의 표정은 아무변화가 없었어요. "구해찬." "........." "구해차안!" 이번에도 아무 대답이 없자 저는 콕콕-하고 구해찬의 마이를 한쪽손으로 찌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제서야 구해찬이 입을 열어요. 그것도 아주 무~섭게 말입니다. "김예봄." "응??" "너 오늘 나랑 싸우자. 진심이야." "미안해. 나도 진짜 이럴줄은 몰랐어. 나도 진심이야" 인상을 찌푸리며 손을 싹싹 하고 빌었어요. 손이 막 뜨거워질만큼이요. 예전에 아빠한테 늦게 들어왔다고 정말 된통 혼났을때만큼이나 많이 저는 구해찬한테 빌었어요. 왜냐면 너무 많이 미안했거든요. 그리고 전 그래서 언니의 새로운 남자친구가 정말 미워졌습니다. 정말 미워요. 웃는것도 밉고 그냥 서있는것도 밉고, 말하는것도 모두! 모두 미워요. "후, 이걸 진짜 때릴수도 없고." 살짝 손을 드는 시늉을 하다가 다시 장난스레 내리는 구해찬의 모습에 저는 피식 하고 웃어보였습니다. "그래도 오늘 이왕 이렇게 온거, 구경하러가요! 알았지? 언니 같이가!" 저는 앞에서 성현이라는 사람과 웃고있는 언니에게 크게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언니는 손짓을 하네요. 막 빨리오라는듯 말이에요. 저는 저보다 아주 큰 구해찬의 옷깃을 꾸욱 잡고는 그쪽으로 향했습니다. 저의 작전과 구해찬의 작전은 모두 실패했지만 그래도 지금 이순간 기분이 나쁘지많은 않아요. 그건 이제 정말 63빌딩에 들어가기 때문인가봐요. 나는 63빌딩이 정말 많이 좋거든요. 왜냐면 우리가족끼리 마지막으로 간 곳이니까요. # 수족관에 들어서자마자 저는 입을 다물지 못했어요. 사방이 온통 물고기들 천국에다가 신기한것 투성이였기 때문입니다. "입좀 닫어." 아까부터 뚱한 표정이였던 구해찬은 저의 쩌억 벌어진 입을 친히 닫아주었습니다. 저는 헤에 하고 웃으며 그런 구해찬을 따라가요. 이곳에 물고기들이 정말 많아요. 거의 대부분 이름을 모르는 물고기들이 많아서 저는 꼼꼼히 수족관을 구경했습니다. "우와 구해찬! 일로와바." 이 물고기좀 봐요. 코가 엄청 길어요. 진짜 신기하고 예쁘다. "......" "구해찬! 빨리와봐!" "......" 원래 신기하고 예쁜건 혼자보면 재미없잖아요. 그래서 구해찬을 불렀는데 구해찬은 대답이 없었습니다. 왜그러지? 라는 마음으로 고개를 들어 구해찬을 보니 구해찬은 한곳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곳은. "누나, 여기 진짜 신기하다 그치" "응. 오랜만에 오니까 좋네." "난 저번주에도 왔었는데도 좋아." "왜?" "누나랑 왔으니까!!" 투닥투닥거리며 웃고있는 언니와 남자친구쪽이였어요. 그제서야 저는 입가에 방실방실 띄어 놓았던 웃음을 지워버렸습니다. 김예봄은 정말 바보에요. 나는 정말 멍청이에요. 이럴꺼라는거 잘 알면서 구해찬을 끌고 오는게 아니였는데. ".....김예봄" 잔뜩 풀이 죽어서 울상을 짓고 있을때였습니다. 제 이름을 부르는 구해찬의 목소리가 들려온건 말이에요. 저는 그제서야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보였습니다. "응.?" "잘못했지.?" "응..."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자 큰 손으로 구해찬이 제 머리를 헝크려트러 놓았습니다. "그럼 웃어 임마. 그런표정 짓지말구." 그리고는 말해요. 예쁘게 웃음지으면서 말이에요. \라이스. 수족관에서 한참을 구경하다가 이번에는 63빌딩 내에 있는 식당에 왔습니다. 식당이라기 보다는 레스토랑이라는 분위기가 물씬 날정도로 정말 근사한곳이였어요. "난 새우볶음밥. 예봄이 넌 뭐먹을래?" 여기저기를 신기한 눈으로 둘러보고 있을때 언니가 제게 말했어요. 저는 그제서야 고개를 끄떡여봅니다. "응! 나도." 네모난 테이블, 맞은편에는 언니와 언니 남자친구가 그리고 제옆에는 구해찬이 앉아있어요. 저는 왠지 모르게 이 자리가 어색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냥 그래요. 구해찬한테서 애기냄새가 나서 그런가봐요. "구해찬, 넌 김치볶음밥이지? 성현아 넌 뭐먹을래?" 언니는 구해찬의 대답도 듣지 않은채 옆에 있는 남자친구에게 물었습니다. 아까부터 아무말이 없던 구해찬은 그제서야 입을 열었어요. 바로 이렇게요. "나도 새우볶음밥 먹는다." 장담하건데 방금 구해찬 이 목소리, 예나언니 옆에 있는 성현이라는사람을 의식한게 분명하다구요. 저는 심하게 깐 구해찬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웃음을 참지 못하고는 푸풉 하고 웃어버렸어요. 구해찬은 왜이렇게 엉뚱한걸까요? "그러던가. 성현이 너는?" "난 김치볶음밥." 언니를 보기만 해도 좋은가봐요. 눈이 마주치자 연신 싱글벙글 거리는 성현이라는 사람이였습니다. 탕- "..깜..짝이야!!" 그모습에 심술난 구해찬은 괜스레 잡고있던 물컵을 타앙- 하고 식탁에 놓아버립니다. "구해찬 꼭 그렇게 무식한 티를 내야겠어?" 구해찬 마음의 마! 자도 모르는 언니는 이렇듯 인상을 훽 하고 찌푸리더니 한소리를 합니다. 그말에 구해찬 또한 인상을 팽- 하고 구기며 받아쳐요. "나 무식한거 인제 알았어?" 바로 이렇게요. "너 솔직히 말해봐, 방해할려고 왔지." "넌 내가 그렇게 시간이 남아도는 새끼로 보이냐?" "그걸 몰라서 물으시나." 타악- 그리고 그때였습니다. 갑작스럽게 구해찬이 화악 하고 일어서버린건요. 드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의자 끌리는 소리가 신경질적으로 울렸습니다. 저는 가만히 구해찬을 올려다봤어요. 아무표정없이 구해찬은 언니를, 그리고 언니 남자친구를, 찬찬히 보더니 마지막으로 저에게 시선을 돌렸습니다. "김예봄." "으..응?" 그순간은 말이죠. 구해찬의 눈이 저를 향해 있었지만 저는 알수 있었어요. 사실 구해찬의 마음의 눈은 지금 온통 언니를 향해있다는 사실을요. "넌 참 다행이다. 니 언니 하나도 안닮아서." 구해찬은 이 한마디를 남기고는 훽- 뒤돌아섰습니다. "뭐? 야 구해찬!!너 거기 서봐, 그거 무슨말이야. 무슨 의미인데! 내가 뭐 어떤데!!!" 언니에 대해 제일 먼저 알아간건 바로 언니가 다혈질이라는것 이였어요. 오늘도 언니는 언니의 성격 답게, 구해찬의 한마디를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서버렸습니다. 한가지 궁금한게 생겼어요. 저 둘은 도대체 어떻게 지금까지 친구를 할수 있었을까 하는 궁금증이요. "잠깐만요." 그리고 그순간이였습니다. 타악- 하는 소리와 함께 신경질적으로 걸음을 옮기던 구해찬의 발걸음이 멈추어 버린건요. 구해찬은 한쪽눈썹을 구긴채 그대로 뒤돌아서서 봅니다. 누구를 보냐구요? 바로 10초전에 구해찬에게 '잠깐만요'라고 외친 예나언니 남자친구를 말이에요. 그순간 둘 사이에서는 알수없는 긴장감이 멤돌았어요. 보는 제가 식은땀이 날만큼 말이에요. .. "한가지만 물을께요." "....뭐?" "예나누나 좋아해요.?" 그순간 느낀건요. 우리언니는 세상에서 제일 둔한 바보라는것이였어요. 왜냐면, 오늘 처음 본 예나언니 남자친구가 느낄만큼 큰 구해찬의 마음을 언니만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구해찬의 마음을 가장 알아주어야 할 ...언니만. -------------- §가그린§ (godqhrgkehfhr@hanmail.net) 플티〃가그린〃소설 (http://cafe.daum.net/Gagrin) -------------- ※헬리오토로프는 5월 27일의 탄생화로 사랑이여 영원하라 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10> 잠시동안 어설픈 침묵이 흘렀습니다. 왜 어설픈 침묵이냐구요? 침묵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이상했거든요. 뭐랄까, 침묵이 흐르기는 하는데 침묵 같지 않은 아무튼간에 그랬어요. "........" 그때였어요. 가만히 언니의 남자친구를 노려보던 구해찬이 피식 하고 어이없는 웃음을 터트린건 말이에요. "어이, 김예나 애인." 그리고는 말해요. 무지무지 무서운 목소리로 말입니다. 저는 구해찬의 이런 목소리를 언제 한번 들은적이 있어요. 언니인척 했다는걸 들켰을때 구해찬은 이것과 같은 목소리로 제게 그랬었죠. '놔주실래요' "네."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때 구해찬의 목소리와 지금 구해찬의 목소리가 아주 똑같다구 말이에요. 구해찬의 무서운 목소리에 언니의 남자친구는 조금 놀란듯 대답했습니다. "내친구 애인이라고 해서 내가 봐줄거 같냐?" "네?" "적당히 까불어, 나 주먹 엄청 매워," 말을 마치고 입을 꾸욱 다무는 구해찬이였어요. 그리고는 신경질적으로 이곳을 나가버리는 구해찬이였습니다. 오늘 아마 가장 힘들었을 구해찬이였어요. 이순간 가장 비참했을지 모를 구해찬이였습니다. "아! 혈압, 진짜 저자식이 죽을라고!!!" "......" "성현아 신경쓰지마, 넌 그니까 왜 쓸데없는 얘길 해서 그래." 언니가 미워요. 정말 너무 많이 미워요. 이러면 안돼는걸 잘 아는데 제 마음은 조금씩 언니를 그렇게 미워하고 있어요. "나..갈께 언니" 하루종일 구해찬이 얼마나 들떠했는지, 어린아이처럼 웃었는지, 그 이유가 모두 김예나였다는걸 언니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너무 야속했습니다. "어? 어딜가게" 언니는 뒤돌아 서는 제 손목을 다급하게 잡고는 말해요. "구해찬한테." 지금 가장 힘들 구해찬한테 가려구요. "뭐? 아직 63빌딩 반도 구경 못했잖아." "....." "그자식 원래그래! 지멋대로에다가 자기 맘대로 짓껄여! 그러다가 내일이면 또 언제 그랬냐는듯 풀어질놈이야 신경쓰지마" 그렇게 구해찬을 잘 아는 김예나면서 왜 정작 구해찬의 마음은 모르는걸까요.? 저는 언니를 두동공에 빤히 담았습니다. 나는 언니가 너무 부러워요. 언니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그게 얼마나 행복한일인지 언니가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나처럼 다시는 사랑을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언니." "응?" "정말 미안해요. 그런데 손 좀 놔줘." 그제서야 스르륵 하고 제손을 붙잡고 있던 언니의 손에 힘이 풀렸습니다. 손이 자유로워지자 저는 망설임없이 뒤돌아섰어요. 그리고는 달렸습니다. 일단은 구해찬을 위로해줘야겠다는 생각뿐이였으니까요. # "구해찬!!!" 곧바로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63빌딩을 나오고 나서도 저는 구해찬을 찾을수 없었습니다. 그새 어디로 간걸까요. 저는 63빌딩 앞에서 구해찬의 이름을 불러 보지만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만이 돌아오네요. 걸음이 왜이렇게 빠른거에요. 정말. "휴," 여기저기를 둘러봐도 구해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는 구해찬을 찾는것을 포기해버리고는 63빌딩 앞에 있는 벤치에 털썩 앉았어요. 앉자마자 엉덩이가 차가워졌습니다. 그러고 보니 날씨가 제법 추워요. 아까도 무지 추웠는데 지금도 엄!청 추운거 같아요. 저는 괜스레 두손을 슥슥 비비며 호오 하고 불어봅니다. "진짜 추워 죽겠네. 구해찬 정말 바보같.." 같..아! 라고 말을 뱉으려고 했지만 저는 그러질 못했습니다. 왜냐면 갑자기 몸이 따듯해졌거든요. 꼭 따듯한 난로가 내 몸을 감싸 안은것처럼 말이에요. 저는 깜짝 놀라하면서 뒤를 쳐다봤어요. 그리고는 볼수 있었습니다. "죽고싶냐?" 바로 저를 향해 웃어보이는 구해찬을 말이에요. 저는 눈을 크게 떠보였습니다. 그리고는 그제서야 알수 있었어요. 구해찬의 따스한 잠바가 제 몸에 걸쳐있다는 사실을요. "구해찬!!!!!!!!!" "응. 왜?" .. ..... "구해찬!! 정말 정신이 있는거야 없는거야. 그렇게 나가버리면 어떻게? 그리고 말도없이 사라지면 당연히 남겨진 사람들은 걱정하지. 아무리 봐도 구해찬은 없지! 날씨는 춥지! 내가 얼마나 놀랐는줄 아냐구." 숨쉬지 않고 하고싶은 말을 다 내뱉으니 속은 좀 쉬원해졌는데 말이죠. 힘들어 죽겠습니다. 저는 구해찬에게 소리를 꽥 지르고는 숨을 헉헉 거렸어요. 구해찬은 그런 저를 보더니만 어처구니가 없다는듯 말합니다. "임마, 너 성질 최고다. 진짜." "장난하는거 아니라구.!!!" 그렇게 사라지면 미안하다는 말도 못하잖아. "..너 울어?" 왜 눈물이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미안해서 그런가봐요. 나때문에 구해찬은 오늘 또 상처를 받았으니까. 그래서 너무 많이 미안해서 눈물이 나오는 모양입니다. 나는 싫어요. 정말 싫어요. 누군가가 나때문에 상처받고 아파하는건 정말 그만하고 싶어요. "안울어.." "우네." "안운다니까." "에이. 우는데 뭐." 쿡쿡, 장난스러운 미소를 띄우며 구해찬이 제 볼을 찔러봅니다. 그것도 매끈한 한쪽손가락으로 말이죠. "안울어, 안운다니까요! 안우는데 정말 왜그래!!!!" 저는 그런 구해찬의 손가락을 탁 치며 소리쳤습니다. 그런데 정말 자꾸만 눈에서 눈물이 퐁퐁 쏟아지는건 왜그럴까요. 눈물아 제발 그만좀 흘러라! 그만 좀 멈춰. 이젠 자꾸만 흐르는 눈물이 챙피해 지기까지 해요. "선수치지마, 화내야할사람은 엄연히 나야" "...." "할말없지?" "응." 사실 그건 그랬어요. 구해찬의 말처럼 화내야할사람은 엄연히 구해찬이지요. 지금 김예봄이 이렇게 푼수처럼 울면서 화내야할 상황은 절!대!로! 아니라 이말씀. 그래서 저는 고개를 끄떡였습니다. 그러자 구해찬이 피식 하고 웃으며 그래요. "나.." 그리고는 하늘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킵니다. "응." "잊어볼라구." "아...그렇구..뭐???????" 깜짝놀랐습니다. 믿을수 없는 구해찬에 말에 저는 정말 깜짝 놀랐어요. 그래서 이곳에 꽤나 많은사람들이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도 잊은채 저는 소리를 버럭 질러버리고야 말았어요. 잊다니요..? 누구를..잊는다는 말일까요? "김예나, 이제 잊어볼라고." 제마음을 읽은것인지 구해찬이 이어 대답했습니다. 갑자기 언니를 잊는데요.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언니 생각에 웃었던 사람이 갑자기 언니를 잊어보겠다고 말해요. "갑자기...왜?" "오늘 느꼇는데, 다르더라, 김예나 웃음이." "뭐?" "나랑 그새끼한테 짓는 웃음이 다르더라고, 한명은 친구 한명은 사랑이니까 당연한거겠지." 아... 여기서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요. 꼭 지금 저 바보가 된거 같아요. 아무말도 못하겠으니까요. "하지만 구해찬." "김예나한테 구해찬은 죽을때까지 친구라는걸 오늘..알았어." 정말이지 그순간은 눈물이..나올꺼 같았습니다. 지독하고 오랜 구해찬의 짝사랑은 지금까지 얼마나 이렇게 슬펐던걸까요.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구해찬." 저는 구해찬을 불렀어요. 그러자 구해찬은 살며시 하늘로 고정시켰던 시선을 제게로 돌리네요. 구해찬의 눈은 젖어있었습니다. 아니 사실은 눈뿐만이 아니라 모든것이 젖어있었어요. 눈도. 얼굴도. 목소리도. 뒷모습도. 모두..모두 말입니다. "응." "난 구해찬이 얼마나 부러운지 알아?" "너 지금 나 놀리냐." 이게 죽을라고. 라면서 내 머리를 콩 하고 쳐보이는 구해찬이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랑곳 하지 않고 말을 이어 나가요. "구해찬은 구해찬의 사랑에 당당하잖아. 누가 뭐래도 구해찬은 지금 그 누구보다 멋지게 구해찬 마음에 충실하고 있는거라구. 그러니까" "....." "그런 니 사랑을 배신하려 하지마." 말을 마치고는 저는 구해찬에게 웃어보였습니다. 그러자 구해찬은 무언갈 골똘히 생각하는듯 금새 생각에 잠기는 모습이에요. 이렇게 나란히 앉아 있어서 알게 된 사실인데요. 구해찬한테는 참 좋은냄새가 나요. 아이냄새같은 좋은냄새 말이에요. 나는 이런 구해찬의 냄새가 좋아질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 누나 저기 누나 동생" 그리고 그순간이였습니다. 아무말없이 서로 다른곳을 바라보고 있던 우리에게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온건 말입니다. 누나 동생..? 저는 들려오는곳으로 고개를 돌렸어요. 그러자 보이네요. 언니의 남자친구 성현이라는 사람과 그 남자에 손을 꼭 잡고는 이쪽을 응시하는 언니가요. 구해찬을 보자마자 언니의 입가에 두둥실 떠다니고 있던 웃음이 금새 사라지고야 맙니다. "김예봄!!!!" 언니는 구해찬 대신 저를 불러요. 서로의 손을 꽉 잡고는 우리에게 다가오는 그들이였습니다. 나는 살며시 구해찬을 쳐다봤어요. 구해찬은 아무말없이 입술을 꾹 깨물고 있었습니다. "응." 언니가 이내 바로 앞까지 오자 그제서야 언니쪽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리고는 대답했어요. '응'이라고 힘없이 말이에요. "여기에서 언제까지 있을래. 집에 안가?" "...아.." "가자 얼른. 그.리.고" "응..?" 슬쩍 구해찬을 바라보는 언니였어요. "구해찬한테 전해줄래. 오늘 진짜 많이 실망했다고!!" 그러자 피식하고 구해찬이 웃어 보여요. 그리고는 타악- 하고 주머니에 손을 쿡 찔러너은채 일어서죠. .. "김예봄, 간다. 옷은 내일줘." 모든게 완벽했어요. 목소리도, 표정도 구해찬은 철저히 자신의 감정을 숨겼습니다. 하지만 딱 하나 숨기지 못한게 있었어요. 그건 바로 예나언니와 남자친구가 서로 꽉 잡고 있는 손을 슬프게 응시하는 눈이였어요. 그순간 왠지 모르게 화가났습니다. 구해찬은 이렇게 가슴아파 하는데, 언니는 아무렇지도 않게 저렇게 행복해 하는 모습이. 화가났어요. 언니가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구해찬의 저 마음을 제발. 제발. "언니 정말 바보야???" 그건 정말 저도 모르게 나온 말이였습니다. 눈에 눈물을 글썽이며 꽤액 하고 소리치자 구해찬의 걸음이 타악- 하고 멈추었어요. 언니 또한 무슨말 하냐는듯 눈을 크게 더보여요. 아 물론 성현이라는 사람도 꽤나 궁금하다는듯 저를 응시합니다. "뭐가?" 라고 언니가 이내 물어왔습니다. "이제 알아줄때도 됐잖아..요" "뭘.?" "구해찬.." "구해찬?" 그순간 터벅터벅- 하고 구해찬이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구해찬이 오기전에 말해야해요. 구해찬의 마음을 언니가 알아야만 한다구요. "3년동안 친구였다면서 왜 친구마음을 그렇게 모르냐구, 구해찬이랑 가장 가까우면서 도대체 왜몰라. 왜" "개 마음이 뭔데.?" "언니는 정말로 구해찬이 지금 누구를 좋아하고 있는지!!진짜 모르겠.." ... ........... ... "니동생 좋아해. 나" "엄마야!!!!" 그때 언제 내옆까지 걸어왔는지 갑작스럽게 제 어깨를 자신의 손으로 감싸않는 구해찬이였어요. 그바람에 저는 정말이지 우습게 '엄마야!!' 라고 소리칠수밖에 없었습니다. "뭐??" 구해찬에 말에 입을 쩌억 벌리며 그대로 얼어버린 예나언니였습니다. 그리고는 경악하면서 되묻습니다. 잠..깐만요. 잠깐만요. 이게 무슨일이에요? 언니의 놀란 목소리에 저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리고는 눈을 땡그랗게 뜨고 구해찬에게 소리쳤어요. "구해찬 너 지금 미쳤." "축하해줘라." "......" ...?? "나 김예봄이랑 사랑에 빠졌다." 구해찬의 말에 저는 그대로 들고있던 가방을 떨어트렸습니다. 그렇게 투둑- 하고 가방이 바닥에 떨어지는것을 멍하게 바라볼수밖에 없었어요. 아아..맙소사. 정말이지 이건 최.악.입.니.다. 최.악.이.라.구.요. -------------- §가그린§ (godqhrgkehfhr@hanmail.net) 플티〃가그린〃소설 (http://cafe.daum.net/Gagrin) -------------- ※헬리오토로프는 5월 24일의 탄생화로 사랑이여 영원하라 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11> “뭐?” 멍해진채로 서있을 그무렵 황당한 언니의 목소리가 들려와요. 그제서야 저는 놓았던 정신을 다시 잡고는 구해찬에게 시선을 돌렸습니다. 구해찬은 아무말없이 예나언니를 응시합니다. 그순간 내가 알수있었던건요. 바로 구해찬의 마음이였습니다. 구해찬은 지금 너무나도 힘들어 하고 있어요. 분명해요. 저 눈을 보면 알수있다구요. “니동생이랑 사랑에 빠졌다고.” “구해찬!!” 참다 못한 제가 구해찬의 이름을 크게 불러보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구해찬은 더욱 세게 제 어깨를 잡습니다. 아마 가만히 있으라는 뜻인 모양이에요. 하는수없이 저는 입을 꾹 다물고는 고개를 숙였어요. 그러자 알수없는 웃음을 띄며 언니가 묻습니다. “정말이야?” “어.” “내가 널 아는데?” 언니의 말에 구해찬이 피식하고 웃어요. 그리곤 말합니다. “진심이다. 나 정말 진심으로” 라구요. “...........” “......김예봄이 좋아졌어.” 하지만 난 알아요. 구해찬이 지금 진심으로 하고싶은 말은 ‘김예봄이 좋아졌어’가 아닌 ‘김예나가 좋아졌어. 아주 오래전부터.’ 라는걸 말이에요. # ‘나 김예봄이랑 사랑에 빠졌다’ 지금은 집이에요. 하지만 집에 돌아와서도 제 머릿속에는 구해찬의 그 말이 팽그르 하고 돌고있습니다. 구해찬은 도대체 어떤생각으로 그런 말도안돼는 소리를 한걸까요? 그냥 언니한테 솔직히 말하지. 그렇다면 언니도 최소한 구해찬의 마음을 알아주긴 할텐데 말이에요. 똑똑- 아직까지도 낯선 제 침대에 누워서 얼마나 생각에 잠겨있었을까요. 문밖에서 누군가 두들기는 소리에 저는 몸을 일으켰어요. 스르륵- 이렇게 말이에요. “누구세요?” “예봄아 언니.” “예나 언니?” “응 과일가져왔어. 근데 언니 팔 떨어지겠다.” “응? 아! 미안!!” 방문 틈새로 들려오는 언니의 나른한 목소리에 잠시 문을 열어줘야 한다는 사실을 바보처럼 까먹고야 말았어요. 하여간 김예봄 이 둔탱이- 타악- 재빠르게 몸을 일으켜서 방문을 열자 언니의 말대로 정말 과일이 먹음직스럽게 담긴 접시를 들고있는 언니가 보였습니다. 그 접시에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딸기도 있고 그 다음으로 좋아하는 키위도 있었어요. 벌써부터 입가에 침이 고이는걸요! “고마워. 언니!” “고맙기는. 과일 뭐 좋아해?” 언니는 자연스럽게 묻고는 제 침대에 앉았습니다. “나? 키위도 좋아하고 딸기도 좋아해!” “난 키위랑 딸기라면 질색인데. 얼굴만 똑같지 취향은 완전 정반대네.” 언니가 한쪽볼에 가득 바람을 넣으며 볼멘소리로 말했어요. 저는 그저 아무말없이 웃으며 포크를 집어들었구요. 뭐랄까, 지금 사실 굉장히 기분이 이상해요. 그냥 떨어져있었던 많은 시간들의 공백이 느껴진다고나 할까요. 사실 전 언니가 무슨과일을 좋아하는지 조차도 몰랐거든요. “근데..예봄아” “응?” 딸기는 역시 맛있어요. 큼지막한 딸기를 입에 넣고 오물오물 거리고 있을때 언니가 조심스럽게 나를 불렀습니다. 저 또한 기다렸다는듯 대답을 합니다. 왜냐면 나는 알고있었거든요. 언니가 지금 왜 과일을 들고 제방에 들어왔는지, 내게 무슨말을 하고싶은건지 말이에요. “구해찬이 너 좋아한다는거, 정말 나 놀리는거 아니야?” “......” “나 놀리는거 맞지?” 언니의 물음에 첫 번째로 들었던 생각은요. 무슨대답을 해야할까 였구요. 두 번째로 든 생각은 이렇게 묻는 언니가 조금 의외라는 생각이였어요. “왜? 언니. 구해찬이 나 좋다니까 신경쓰이는거야?” 저는 언니에게 챙- 하고 은색포크를 내려놓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언니는 곧바로 와하하 하고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려요. “글세- 그런걸까?” 하면서 말입니다. 언니의 웃음은 참 예뻤어요. 왜 구해찬이 그렇게 언니를 좋아하는지 알수 있을만큼 매력적이였거든요. “언니 그거 무슨뜻..이야?” “무슨뜻이긴. 그냥 넌 내동생이고 구해찬은 나랑 제일 친한 친구니까. 뭐랄까 구해찬이 널 좋아한다는 얘기를 들으니까 기분이 좀 이상한거지 뭐..” “응.?” “일종의 서운함? 뭐 그런거가 아닐까. 나 원래 질투 많거든!” 눈가에 주름이 생길정도로 웃는 언니를 보며 그 서운함의 대상이 나인지 구해찬인지 묻기 위해 내가 입을 열려고 할때였습니다. Rrrrrr- Rrrrrrr- 요란하게 전화벨소리가 방안에 퍼졌어요. 그랬기에 언니와 저는 요란하게 울려대는 전화기로 동시에 시선을 돌렸습니다. 엄마인가? 라는 생각에 전화기로 손을 뻗으려고 하는데, “내가 받을께!” 라면서 언니가 먼저 전화기를 들었어요. 저는 아직 순발력이 언니에 비해서 떨어지는 모양입니다. “여보세요? 응. 지금? 뭐? 나말구? 그럼 누구!” “........” “...예봄이..?” 신난 목소리로 전화를 하는 언니를 멀뚱히 쳐다보던 나는 내이름이 나오자 깜짝 놀라 두눈을 똥그랗게 떠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눈은 언니가 전화기를 제게 건내주자 더 커졌구요. 왜냐면 내게 전화를 할 사람은 없으니까요. 한국에서 나는 거의 외톨이나 마찬가지인데. “언니..내전화라구?” 그때까지도 믿기지 않아서 수화기를 꼭 붙들고는 언니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언니는 고개를 끄떡이고는 그래요. “구해찬이야.” 라면서 말이에요. 그제서야 저는 아 구해찬이구나 하면서 수화기를 귓가로 가져갔습니다. “여보세요?” -지금 나와 김예봄, “네?” -지금 나오라니깐. 학교앞으로. 앞뒤말 다 짤라먹고는 소리치는 구해찬의 말에 저는 난감해졌습니다. 왜냐면 뭐라고 말해야할지도 모르겠고 무엇보다 호기심어린 눈으로 절 쳐다보는 언니도 부담스러웠거든요. 정말 미치겠다구요. “지. 지금? 왜? 무. 무슨일 있어? 지금은 좀 고.곤란한데.” 사실은요. 지금 제가 왜 말을 더듬는지 조차 모르겠어요. 그런데 땀이 삐질삐질 나고 말도 잘 안나오고. 하여튼간에 지금 그래요. 하지만 얼마 안가 들려온 구해찬의 말에 긴장했던 몸이 쫘악 풀려버렸습니다. -너 지금 어딘데? 역시 구해찬은 바보가 틀림없다구요. ... ............. “구해찬! 바보야? 당연히 집으로 전화했으니까. 집이잖아!!” 바보 콘테스트나 나가보라구요. 구해찬씨! 아마 일등할꺼야. 그것도 엄청난 차이로 말이야! -알아!!!!! 그러자 갑자기 소리치는 구해찬이였습니다. 저는 갑자기 소리치는 구해찬의 목소리에 귀가 따가워서 살짝 멍멍해진 귀를 눌렀습니다. 목소리 하나는 하여간 엄청 크다니까요. “왜. 왜 큰소리 치고 그래?” -니가 나 무시했잖아!!!! “내가 언제요!!” -아 됐어. 됐고, 아무튼간에 그럼 10분내로 올수있겠네. 빨리와라. 그리고는 달칵. 하고 전화가 끊겻어요. 너무 황당하고 어이없어서 저는 뚜뚜뚜- 하고 요란하게 울려대는 전화기를 멍하게 바라봅니다. 제멋대로에요. 구해찬은 정말 제멋대로라구요. 아까일도 그렇고 지금일도 그렇고. 정말 제멋대로 마왕이에요. “둘이 언제 그렇게 친해진거야.?” 씩씩 거리며 마음속으로 구해찬을 씹고 있을무렵 언니가 뜬금없이 물었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언니쪽으로 시선을 돌렸어요. “응?” “아니 둘이 많이 친해진거 같아서.” “아..아니야! 친하긴. 그냥 언니 친구니까 그렇지.” “데이트하기로..한거야?” “그런게 아....” ‘그런게 아니야’ 라고 말하려다가 저는 입을 꾹 다뭅니다. 그건 아무래도 언니가 이상하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맞아요. 언니가 뭔가 이상해요. 생각해보면 아까부터 무언가 좀 이상하긴 했어요. 자꾸만 구해찬에 대해서 묻고, 질투가 난다고도 하고. “응?” “아. 아냐. 언니 나 나갔다올께! 금방올께!” 저는 혼란스러움을 머릿속에서 지우고는 일어섰습니다. 일단은 구해찬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에서였어요 그러자 언니도 고개를 끄떡여주네요. 방을 나와서 주섬주섬 신발을 신고는 벌컥-하고 문을 여는데 아파트 복도에서 쉬원한 바람냄새가 제 콧등을 스쳤습니다. 왠지 기분이 좋아요. ‘일종의 서운함? 뭐 그런거가 아닐까. 나 원래 질투 많거든!’ 엘리베이터에 타고나서부터 1층에 도착할때까지 저는 언니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어쩌면 언니의 마음속에도 구해찬이 있는것이 아닐까 하구요. 원래 사랑은 자신의 옆에 있으면 소중함을 모른다고 하잖아요. 그 익숙함에 그것이 사랑인지도 모른다고, 사실은 자신의 마음의 정답은 정해져있는데 말이에요. 혹시 언니도 만약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면 구해찬도, 그리고 언니도 서로 아파하지 않을니까요. 나는 진심으로 언니와 구해찬이 잘됐으면 좋겠어요. 왜냐하면..왜냐하면 말이에요. “.........” 언니는 내 하나뿐인 언니이고, 구해찬은 그런 언니를 너무 많이 사랑해주는 사람이고, 무엇보다도 나는 엇나간 사랑이 얼마나 아픈지 잘 아니까 말이에요. #학교. 그날 학교 운동장에서 본 하늘에는 붉은 노을이 지고 있었어요. 그 하늘은 텅빈 운동장과 왠지 모르게 어울렸구요. 아마도 그래서 느티나무 아래 마련된 회색 의자에 앉아있는 구해찬이 멋져보였는지도 몰라요. 그래요 그건 틀림없이 이 하늘과 운동장 때문이였을꺼에요. “너 다리가 땅에 붙었지.” 구해찬이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저를 보며 건낸 첫마디가 고작 저거였습니다. 정말 못됐다구요! “아니요! 이렇게 멀쩡히 걸어다니고 있네요!” “나 원래 사람 잘 안기다리는데. 영광으로 알아라. 김예봄씨” 피이- 하고 콧방귀를 뀌면서 나는 구해찬의 옆에 앉았어요. 앉자마자 또 다시 구해찬 특유의 냄새가 제 코에 닿아요. 그순간 생각한건 언제 한번 구해찬에게 무슨 스킨을 쓰냐고 꼭 물어봐야겠다는 거였습니다. 향기가 너무 좋았거든요. 구해찬과 닮았어요. “그런데 구해찬씨. 무슨일이야?” 제물음에 대답대신 일어서요. 그리고는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하얀 담배를 입에 물어요. 곧이어 구해찬의 예쁜입술에 물린 담배는 라이터로 인해 연기를 내기 시작했어요. 구해찬은 볼이 움푹 패일정도로 깊게 담배를 빨아 들였습니다. “...무슨일..있어?” 나는 다시 물었습니다. “아까 미안했어. 맘대로 그런말 한거.” ‘.....김예봄이 좋아졌어.’ 구해찬의 말이 끝나자 마자 제 머리는 아까의 일을 똑똑히 기억해냈습니다. “아냐. 내가 먼저 잘못햇는데 뭘. 그런말 꺼내는게 아니였어. 난처하게 만들어서 나야 말로 미안해.” 저는 다시 한번 담배연기를 깊게 들이 마시는 구해찬을 보며 말했어요. 그러자 구해찬이 피식 하고 웃더니 입을 열었습니다. “김예봄. 나 말야” 라면서 말이에요. “응.?” “담배가..왜 이렇게 쓰지?” “............” 그리고는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운동장 쪽으로 퉁 튕겨 버리고는 다시 한번 말을 이어 나갑니다. “아까 내가 그랬잖아. 김예봄 잊어본다고. 근데 너가 그랬잖아. 내 사랑에 배신하지 말라고.” “으응.” “그래서 집에 돌아가서 계속 생각해봤어. 근데 도저히 모르겠더라. 잊을려고 하면 자꾸만 미련이 남고, 계속해서 사랑해보려고 하면 ” “........” “자꾸만 아까 그남자애 앞에서 웃던 김예나가 떠올라서” “........” “뭘 어떻게야 할지, 도저히” 말을 마치고는 긴 한숨과 함께 그대로 쭈그리고 앉아버리는 구해찬. 팔을 두 무릎위에 살짝 걸쳐놓고는 나를 바라봅니다. 이제야 알겠어요. 이제야 알겠습니다. 구해찬이 나를 대뜸 부른이유. “어떻게 해야할지 나한테 물어보는거야. 구해찬.?” “응.” 짧게 대답을 하고는 나를 향해 웃어보입니다. 내가 여기서 뭐라고 대답을 해줘야 할까요? 그건 나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나는 구해찬에게 이 대답을 꼭 해줘야 할지도 모르고 아무말도 하지 않아야 하는지도 모르니까요. 사랑엔 원래 정답이 없잖아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굳이 정답을 고르라고 한다면 “음..그럼 구해찬! 우리 동전에 물어볼래?” .....그건 운명에 맡겨야 하는일이 아닐까 싶어요. “동전?” “응! 동전.” 말을 마치고는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동전 한 개를 꺼내들었어요. 그러자 구해찬은 의미모를 웃음을 짓더니만 이내 내말에 동의한다는듯 고개를 마구 끄떡였어요. “앞면이 나오면 남자답게 고백한다. 뒷면이 나오면 잊는다. 정말로 이제부터 아무 여자나 닥치는데로 만나고 다닌다. 오케이?” “아무 여자나 닥치는데로는 좀 그렇잖아!!!” “됐고. 빨리 던져봐.” 그말에 저는 고개를 끄떡이고는, 손을 펴서 쥐고 있던 동전쪽으로 시선을 옮겼습니다. 제발 앞면이 나오길, 마음속으로 빌면서 말이에요. 앞면이 나와요. 제발 구해찬의 슬픈사랑이 이대로 끝내버리지 않도록, 앞면이 나오도록 도와주세요. 하고 주문을 걸면서 말이에요. “그럼 진짜 던진다!.” 말을 마치고는 구해찬의 발밑을 향하여 저는 동전을 던졌습니다. 또르르르- 하고 동전이 구해찬의 발 밑을 향하여 굴러가요. 그리고는 이내 그 은색의 동전은, 그러니까 저의 주문이 담긴 동전은 정확히 구해찬의 하얀 운동화 앞에서 땡그르르 몇 번을 돌다가 멈췃습니다. “..........” “...........” 우리 둘의 시선이 동시에 그 동전으로 향했습니다. 구해찬은 그 동전을 말없이 내려다봐요. 김예봄 또한 그 동전을 말없이. 그렇게 꽤나 오랬동안 내려다 봅니다. “잊는다..” 동전은 뒷면이였습니다. “............” “잊는다. 잊는다. 잊는다...” 동전을 계속 쳐다보며 허탈한 웃음과 함께 자꾸만 잊는다는 말을 중얼거리는 구해찬이였어요. “구..구해찬! 이건 그냥 재미삼아서 해본거니까 신경쓰지말자!! 에이 뭐 이런건 다 재미삼아인데 뭘!” “........잊는다..” 당황해서 아무렇게나 버벅거리는 제말은 신경쓰이지 않는다는듯, 녀석은 다시 한번 피식하고 웃더니 바닥에 떨어진 동전을 주어들고는 일어섰습니다. 아... 지금 제가 무슨말을 할수 있을까요. “구해찬..” 이내 구해찬은 제앞으로 걸어왔어요. 저보다 키가 한뼘넘게 큰 구해찬은 예쁘게 웃더니만 제손에 무언가를 쥐어주면서 말했습니다. “구해찬은 이제 정말로 김예나를 잊는다.” “..........” 저는 구해찬이 제손에 놓아둔 뒷면의 동전을 가만히 바라봐요. 동전이 울고있는것 같은건 제 착각일까요. 제손에 놓여진 동전은 꼭 울고있는것 같았습니다. 아주... .....아주 처절하게 말이에요. “김예나를....잊는..다.” 그런 저를 향해 구해찬은 다시 한번 말해요. 그렇게 다시 한번 떨리는 목소리로, 조금은 슬프게, 조금은 아프게, 조금은 힘겹게, 어쩌면 조금은 잔인하게, 그렇게 그날 구해찬은 한여자만을 담았던 자신의 심장에, 자신의 사랑에 사형선고를 내렸습니다. .......아주 힘겹게...말이에요.. -------------- §가그린§ (godqhrgkehfhr@hanmail.net) 플티〃가그린〃소설 (http://cafe.daum.net/Gagrin) -------------- ※헬리오토로프는 5월 24일의 탄생화로 사랑이여 영원하라 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12> \다음날. "예봄아, 왜이렇게 젓가락질이 쉬원치 않아. 한국음식이 입에 안맞는거야?" 어제 밤에 잠을 설치는 바람에 오늘은 늦잠을 자서 늦게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언니가 학교 가는걸 보지 못했구요. 그리고 지금은 엄마와 함께 아침식사를 하고 있는데 자꾸만 밥을 휘저어 대는 저의 모습에 엄마가 걱정스럽게 물어요. "네? 아니. 아니에요. 맛있어요!" 저는 엄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입에 밥을 한아름 넣고 웃으며 꼭꼭 씹었어요. 괜히 엄마를 걱정시켜드리긴 싫었거든요. 그런데 사실은 무슨맛인지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자꾸만 신경이 쓰여서 그런가봐요. 어제의 구해찬이 "그래, 맛있게먹어! 엄마가 오늘 일끝나고 맛있는 저녁사줄께." 그렇게 억지로, 억지로 밥을 삼키고 있는데 엄마가 먼저 식탁에서 일어나면서 말해요. 저는 엄마의 급작스러운 말에 깜짝 놀라 밥을 먹다말고 고개를 들었습니다. "...네?" "우리딸 엄마올때까지 먹고싶은음식 생각해두세요. 알았지?" "......." "한국까지 왔는데 엄마가 많이 못챙겨줘서 미안해. 예봄아." 엄마는 말을 마치고는 내 머리를 두어번 쓰담았어요. 그순간은 꼭 눈물이 나올것만 같았습니다. 나는요. 나는말이에요. 미국에서 살면서 얼마나 외로웠는지 몰라요. 엄마가 있는 친구들을 보면서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이울었는지 몰라요. 엄마아빠도 미웠고, 하느님도 미웠었어요. 정말로 내가 '엄마'라는말을 얼마나 내가 하고싶었는지 아빠는 모를거에요. "네..고맙습니다. 엄마." 그래서 지금 너무 많이 기뻐요. 행복합니다. 한국에 와서, 언니와 엄마를 만날수 있어서, 엄마를 부를수있어서 나는 너무 많이 행복..합니다. 눈물이 나올만큼 말이에요. # 삑- 삐릭- 삐리리릭- 이게 무슨소리냐구요? 이건 김예봄이 리모콘 전원을 누르는 소리입니다. 저는 아까부터 티비를 켰다. 껐다를 반복하고 있어요. 그건 딱히 할일이 없기 때문이였습니다. 헤헤. 아무튼간에 저는 지금 무지. 정말 무지! "심심하다구요.!!" 아무도 없는 빈집에 저의 목소리가 울리자 저는 꽤나 쑥쓰러워서 푸히 하고 웃어보여요. ".........." 언니는 학교에갔고, 엄마는 회사에 갔어요. 그래서 지금 집에는 김예봄 혼자랍니다. 음..있죠. 혼자라는건 언제나 그렇듯 외로운일인거 같아요 이 큰집에 달랑 나 혼자만 있다는 생각을 하니까 괜스레 콧등이 시려워지려해요. 언니는 언제 오는걸까요? "아!! 맞다!" 이 지루한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하고 곰곰히 생각하던 도중에 제게는 좋은 생각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저는 무언갈 발견한 사람처럼 손뼉을 치고는 쇼파에서 일어났어요. 그건 할일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그게 뭐냐구요? 그건 말이에요! 저번에 언니에게 떡볶이를 해주기로 했는데 해주지 못했잖아요. 그래서 전 지금 떡볶이를 해보려고 해요. 오늘 실력발휘를 해보는거죠! 물론.. 떡볶이를 어떻게 만드는지는 모르지만 말이에요. 하하. \현대백화점. 엄마께서 나가기전에 먹고싶은게 있으면 사먹으라고 주신 돈 이만원을 주머니에 꾹 쑤셔놓고는 제게 온곳은 집 근처에 있는 백화점이였습니다. 어디서 떡볶이 재료를 사야하는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무지 신나요! 이렇게 사람이 붐비는곳에 있는건 정말 신나는일이에요. "그러니까, 저번에 언니가 떡이랑 오뎅이랑 사오랬으니까." 까먹지 않게 '떡이랑 오뎅'을 중얼거리며 식 품코너를 찾고있을 무렵이였어요. "김예나!!!" 라는 낯익은 이름이 제 주위에서 들려온건 말이에요. 언니가 있는건가? 라는 생각으로 저는 주위를 둘러봤지만 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어요. 그렇다면. "가 아니라 김예봄!!예봄아!!" 역시 저의 예상은 딱 맞았어요. 언니의 친구일꺼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한쪽손을 조금은 방정스럽게 흔들며 언니의 친구 이현태가 저에게 인사를 건냈습니다. 겨우 이틀정도 보지 못했을뿐인데. 이런데서 만나니까 너무 반가워요. "어? 안녕!" 저는 웃으면서 이현태와 마찬가지로 인사를 건냈습니다. 그러자 이현태는 익숙히 제옆에 섭니다. 이현태는 교복이 무지 잘어울리는거 같았어요. 가방도 무지 예쁘구요. "순간 김예나인줄 알았어. 아임쏘리요." "아니야! 그럴수도 있지 뭐." "근데 예봄이 넌 여기 어쩐일이야?" "응? 아..그게 뭐좀 살게 있어서." 왠지 모르게 쑥쓰러웠어요.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그러자 현태는 예쁘게 웃으면서 제게 말했습니다. "살거? 뭐?" "떡하고..오뎅. 떡볶이좀 만들어볼라구. 언니가 좋아한다고 해서" "그렇구나. 같이갈래?" "응? 아냐! 아니야!" "아냐. 같이가자. 어차피 구해찬 때문에 나도 할짓없어." 밝게 웃으며 현태가 나를 이끌어요. 그런데 방금 구해찬 어쩌고 저쩌고 한거 같은데. 자세히 듣지 못했어요. 무슨말이였을까요? "고마워!!!!" 아무튼간에 나는 현태에게 웃어보입니다. 현태는 정말 착한거 같아요. 매너도 좋고 예의도 바르고, 왠지 모르게 문득 언니가 부러웠어요. 저와는 다르게 무지 좋은친구들을 두고 있으니까요. "떡볶이 만들줄은 알아?" 식품코너앞에 도착해서 이리저리 구경하고 있을때즈음 현태가 제게 물었어요. 사실 저는 떡볶이라는 이름조차 생소해요. 어떤맛인지도 잘 모르구요. 고개를 절래절래 젓자 이현태는 하얀 떡 하나를 집어들어요. "이거 큰일이네. 너 그렇게 요리못하면 시집 못가." "...정말?" "응. 정말로." "근데 나 요리 잘해! 떡볶이만 못하는거지." 불끈하며 말하자 이현태가 저를 쿡 찌르며 장난스레 말합니다. "에이 거짓말." "진.진짜야!" "거.짓.말!" 날 놀리는게 재밌나봐요. 현태는 내반응이 재밌었는지 오뎅을 살때도 '시집 어떻게 갈까나~' 라면서 놀렸으니까요. 하지만 정말로 전 요리에 젬병은 아니란 말이에요. 물론 아빠와 함께 만들었던 치즈케익이 그리 훌륭했다곤 할수 없었지만 그래도 꽤 맛있었단 말입니다. "8200원입니다." "여기요." 떡과 오뎅을 집어들고는 계산을 하려고 주머니를 뒤적이려는데 이현태가 먼저 지갑을 들고는 계산을 해줍니다. "어? 나 돈있어!" "알아. 가자" 에에? 이건 아니라구요. 주머니를 뒤적이는 저를 무자비하게 끌고 가는 이현태였습니다. 저는 그순간 생각했어요. 이현태가 왜 구해찬의 친구인지 말이에요. 이런건 어쩜 이렇게 비슷할까요.? 아무튼간에 그래도 저는 만족합니다. 무사히 떡볶이 재료들을 샀으니까요. "맛있을까나" 현태와 백화점을 나오는길. 봉투를 살짝 열어 떡볶이재료들을 보며 중얼거리는 현태. 너무 하다구요. 나는 괜히 자존심이 상해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맛있을껄요. 틀림없이!" 사실은...자신은 없지만. "하하. 알았어 장난 그만칠께." "....." "삐졌어?" "아!니!요!" 또박또박 한글자 한글자 내뱉는 저의 말에 현태가 다시 한번 크게 웃어요. 그리고는 손에 들린 봉지를 제게 건내주죠. 바스락, 소리를 내면서 이내 그 떡볶이 재료들은 저의 손에 들어왔습니다. 이렇게 드니까 꽤나 묵직한거 같아요. "분명 맛있을꺼야. 원래 정성이 제일 맛있는법." 그순간 말하면서 머리를 쓰담아주는 이현태의 손길이 그리 기분나쁘지만은 않았습니다. "응!" "그럼 다음에 또 보자. 너무 늦게 들여보내면 김예나가 나한테 지랄할게 분명해." "히히. 응!! 오늘 고마웠어" 아까 처음에 만났던것처럼 인사를 건내고는 뒤돌아섰어요. 그나저나 이현태의 말처럼 떡볶이가 맛있게 만들어져야 할텐데 걱정입니다. 집에가서 얼른 인터넷에 검색해봐야겠어요 그렇게 '빨리 집에가야겠다' 생각으로 걸음을 바삐 움직이려 하던 순간이였습니다. "구해찬, 넌 인마 친구버리고 아직도 연애질이냐." 라는 현태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온건 말이에요. 구해찬? 그리고 연애질?이라니요. 알수없는 현태의 말에 저는 무슨말이지 라고 생각하기도 전에 먼저 반사적으로 몸을 돌렸어요. "........" "........" 그리고 눈이 마주치고야 말았습니다. 구해찬과 말이에요.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구해찬과 그옆에서 다정히 팔짱을 끼고있는 한 여자아이와 말입니다. 나는 믿을수가 없어서 좀더 눈을 크게 떠 보였습니다. 하지만 다시 눈을 감고 떠보아도 아까와 같은 모습이 내 눈에 담겨요. "구..해찬." "어. 김예봄도 있었네." 믿을수 없는 내목소리에 나를 발견한 구해찬은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내게 입을 엽니다. 자연스럽게 옆에 있는 여자아이에게 어깨동무를 하고선요. 그순간 제 머리속을 스치고간 장면은 말이죠. 바로 어제 '잊는다.'라고 중얼거리던 구해찬의 모습이였습니다. 그래요, 맞아요. 구해찬은 이제 정말 언니를 잊으려나봐요. 정말 가슴아프겠지만, 언니를 그렇게 힘겹게 잊으려나봐요. 저는 구해찬이 힘들면 그럴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건 아니라구요. 이건..너무 비겁하잖아요. "응..누구야?" "아. 오늘 생긴 내애인. 예쁘지?"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한테 이러는건 너무 비겁하잖아요. 자기 사랑을 잊으려고 저여자아이에게 좋아하는척, 하는건 너무 나쁘잖아요. 내가 아무말이 없자 옆에 있던 현태가 내게 말했어요. "1년동안 이혜연이 구해찬 죽어라 좋아했거든, 근데 구해찬이 오늘 받아줬댄다." "......." "너무 그런눈으로 보지마. 이자식한테는 이게 최선이야." "......" "구해찬! 그럼 이따 연락해 데이트 찐하게해라. 우린 갈께." 심상치 않은 제표정을 느꼈는지 현태는 나를 서둘려 보내려했지만 나는 꿈쩍도 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구해찬을 노려봤습니다. "좋아하는거 아니잖아." 그리고는 말했어요. 무지무지 화난 목소리로 말이에요. "......" "구해찬은 저분 좋아하는거 아니잖아!!!!" "좋아해." "비겁해" "좋아한다고." "구해찬은 비겁해!!!!세상에서 제일 겁쟁이야!!!!!" 구해찬 옆에 있는 여자아이가 제말에 조금은 기분나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저는 멈출수가 없었어요. 너무 화가났거든요. 하루종일 구해찬을 걱정했던 내 자신에게 실망할만큼 나는 구해찬에게 너무나도 실망했어요. 저여자아이는 사랑이지만 구해찬은 사랑이 아니잖아요. 구해찬의 이기심때문에 저여자아이한테 상처주는일이잖아요. 비겁해요. 자신이 잊으려고, 저여자아이에게 상처주는일은 너무 비겁해요. "오바하지마 김예봄. 그리고 내일에 신경쓰지마." 조금은 피곤한표정을 지으며 구해찬이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하늘에선 빗방울이 한방울 두방울 떨어지기 시작해요. 빗물이 닿은 머리가 금새 차가움을 느껴요. "응. 알겠어." 저는 고개를 끄떡여보이고는 뒤돌아섰습니다. 한방울 두방울 내리던 비는 점점 거세졌어요. 손에 들고 있던 봉지에 투둑투둑 하고 빗방울이 요란스럽게 내려앉았습니다. 추워요. 그리고 미워요. "예봄아!" 현태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와도 저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는 계속해서 비를 맞으며 걷습니다. "진짜 미치겠네. 야. 김예봄" "........" 이번에는 구해찬이 뒤에서 저를 불렀어요. 하지만 이번에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어요. "감기걸리잖아!!!!!" 그러자 구해찬은 제게로 달려와 저의 손목을 타악- 하고 잡으며 소리쳐요. 어느새 한손에 우산을 들고말이에요. 준비성은 하나도 없어 보이는 구해찬인데 그래도 이렇게 우산을 준비해온거 보면 준비성이 아예 없는건 아닌가 봅니다. "놔..!!" "비맞잖아." "......." 저는 구해찬을 계속해서 노려봤어요. 용서할수 없기 때문이에요. 사람 마음가지고 장난치는건 정말 나빠요. 난 세상에서 그게 제일 싫어요. 사랑은 사랑일뿐인데. 왜 그 간절한 마음가지고 장난을 칠까요. 화가나요. 너무너무 "알았어. 알았다고! 내가 잘못했어." "......" "잘못했어. 그니까 노려보지말고 우산써. 비맞잖아." "......" "감기걸리면 어쩔려고 이기집애가." 그러면서 구해찬은 꽉 잡은 저의 손목을 자신쪽으로 끌어당겨 우산을 씌어줍니다. 그러자 내머리로 떨어지던 차가운 빗방울은 더이상 내게로 떨어지지 않았어요. "정말이지? 저여자한테 사과해야해. 꼭." "알겠어. 알겠다고" "응!!!!" 저는 그제서야 구해찬을 향해 웃어보입니다. 다행이에요. 저여자아이가 더 큰 상처를 받지 않게되서 말이에요. \까페 구해찬과 처음만난날 구해찬이 사주었던 녹차라떼가 다시 한번 내앞에 놓여져있습니다. 그때도 맛있었는데 지금도 무지 맛있어요. 특히 지금은 더더욱이요. "춥지? 그러니까 고집은 왜부려. 빨리 우산써야지" "그여자애한테는 잘 말했어?" "응." 내물음에 구해찬은 짧게 대답하고는 꽤나 머쓱한듯 창가로 시선을 돌렸어요. 그런 구해찬을 보며 나는 찻잔을 만지작 만지작 거리며 입을 열었습니다. "사람 마음가지고 장난치는거 아니야 구해찬. 니가 노력해서 잊어야지. 그렇게 남의 마음한테 상처주면서까지 잊는건 난 완전 반대라구요" "그래. 근데." "응.." 짧은 저의 대답에 이번엔 창가로 돌렸던 시선을 제게 두는 구해찬이였습니다. "못잊겠어 도저히. 잊는다는 생각으로만으로도 김예나 생각이니까. 자꾸만 보고싶고. 그래서 그랬어. 그냥 아무여자애랑 사귀면 괜찮아질꺼 같아서." "......" "나도 내마음이 이렇게까지 깊을줄은 몰랐다.." 녹차라떼는 식어가고 있지만 저는 녹차라떼를 마실수 없었어요. 그대신 계속해서 구해찬에게 시선을 둘뿐이였죠. 구해찬은 말을 마치고는 푸우 하고 한숨을 쉬더니 테이블에 고개를 숙였습니다. "힘들어. 이제 그만 잊고싶어." "....응.." "내가 해줄수 있는게 잊는거밖에 없어서 화나. 근데 나 욕심부리지 않을려고. 난 사랑 잃으면 그만이지만, 김예나까지 친구 잃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 "........" "그런데...있지 김예봄 나 지금 너무 많이.." "........" ... ........ "...김예나가 보고싶어." 구해찬의 안쓰러운 목소리에 나까지 슬퍼졌어요. 그래서 아무말도 할수 없었습니다. 생각보다 구해찬은 많이 힘겨웠나봐요. 그 무게를 가늠하기 힘들만큼 말입니다. 안쓰러운 구해찬의 모습에 저는 저도 모르게 구해찬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는데. 그순간이였습니다. 타악- 하는 소리와 함께 뒷 테이블에서 누군가가 일어선건 말이에요. "역시 제 예상이 맞았네요." 그 누군가를 보자마자 저는 헉 하고 소리를 낼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면 "............" "형이 제 여자친구 좋아하는거 말이에요." ....그사람은 언니의 남자친구였거든요. ----------------------------------------------------------------------------- ★한개의 꼬릿말이 큰 힘이 됩니다★★한개의 꼬릿말이 큰 힘이 됩니다★ ★한개의 꼬릿말이 큰 힘이 됩니다★★한개의 꼬릿말이 큰 힘이 됩니다★ ★한개의 꼬릿말이 큰 힘이 됩니다★★한개의 꼬릿말이 큰 힘이 됩니다★ 헬리가.. 갑자기 미친드시 잘써지는 이유는 멀까여.... ㅋㅋㅋㅋ 아무튼 짱짱 킹왕짱 오랜만인 헬리!♥.♥ 앞으로 이것도 자주자주 뵈요! 저 요즘 짱 열심히죠? 다 여러분들 덕분!!!!! 더더 열심히 쓰고 올리겠습니다. 킹왕짱!!♥.♥ -------------- §가그린§ (godqhrgkehfhr@hanmail.net) 플티〃가그린〃소설 (http://cafe.daum.net/Gagrin) -------------- ※헬리오토로프는 5월 24일의 탄생화로 사랑이여 영원하라 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13> ".........." 언니의 남자친구는 아무말없이 우리를 내려다 봤어요. 저는 무어라 말해야 할지를 몰라 두눈을 끔뻑이다가. 구해찬에게 시선을 돌렸습니다. 하지만 구해찬은 정말 이상할 정도로 당당했어요. 오히려 언니의 남자친구를 삐딱하게 노려봤으니까요. "그래서." ".........." "불만이야?" 그순간 느낀건요. 역시 구해찬이다. 라는 생각이였어요. 궁지에 몰리면 더 당당해지는 무대뽀 구해찬 말이에요. 구해찬의 삐딱한 말에 알수없는 웃음을 짓더니 언니의 남자친구가 피식 하고 웃어보였어요. 그 모습에 나까지 기분 나빠집니다. 한 사람한테는 3년동안 힘겨웠던 짝사랑인데 3년동안 이렇게 수십번, 수백번, 수천번, 가슴앓이 해왔던 사랑인데 그렇게 쉽게 비웃다니요. 뭐라고 한마디 해줘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언니의 남자친구를 흘기며 일어서려 합니다. 하지만 더 빨랐어요. 구해찬이 말이에요. "김예나한테 말할려면 말해. 난 상관없으니까." 그리곤 타악 하는 소리를 내며 일어섭니다. 나는 뻥진 표정으로 입을 다물지 못한채 그런 구해찬을 바라봐요. 어쩔려고 그러는거지. 예나 언니가 알게된다면, 곤란해지는건 저남자가 아닌 구해찬이라는걸 나도 구해찬도 둘다 잘 알고 있는 사실인데 말이에요. "구해찬!!!!그래도 그건 좀..." 주춤주춤 나도 따라 일어섭니다. 아직 한입도 먹지 못한 녹차라떼가 맘에 걸리긴 했지만요. 아무튼간에 내말에 구해찬은 여유로운 웃음을 짓더니. 언니의 남자친구의 어깨를 두어번 두드리고는 .... "그대신, 넌 그날 나한테 죽어." 라고 무섭게 내뱉고는 다시 옅게 웃어보였습니다. 그리고는 뒤돌아섭니다. 나는 구해찬의 살기어린 말에 잔뜩 겁먹어 아무말도 못하는 언니의 남자친구의 모습을 보며 왠지 모르게 쌤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혓바닥을 쪼끔 내밀고는 구해찬을 따라 까폐를 나가요. 역시 구해찬은 최고야 라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의외로 쿨하고 멋진면이 있네. 라는 생각도 하면서 말이에요. . . . 라고 생각한지 30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요. 저는 앞에서 자꾸 촐랑대며 왔다갔다 거리는 구해찬의 모습에 아까 한말을 취소하려고 해요. 그러니까 쿨하고 멋진면이 있다. 라는 말 말이에요. "아. 미치겠네 진짜. 그새끼 말하면 어떡하지?" 손톱을 물어 뜯으며 신경질을 부리는 구해찬. 나는 그 모습에 너무 궁금해서 조심스럽게 묻습니다. "말해도 괜찮다면서요! 그럼 구해찬 아까 한말은 뭐야?" "넌 몰라." "뭐가 몰라?" "그건 남자들만 아는거야. 남자들만의 자존심."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합니다. 아...정말 구해찬은 바보에요. 그게 남자들만의 자존심하고 무슨 상관관계가 있냔 말이에요. 순 엉터리에요. 구해찬은. 나는 삐쭉 입을 내밀다가 이내 벤치에서 일어섰습니다. 왜냐면 시간이 너무 많이 늦었거든요. "구해찬. 난 이만 가야겠어." "........" "구해찬.??" "어.? 어." 얼마나 골똘히 생각에 잠겼던건지. 내말도 듣지 못했던 구해찬은 두어번 흔든후에야 나에게 시선을 둡니다. "너무 걱정하지마. 말 안했을꺼야." "......" "아 춥다. 나 먼저 갈께. 구해찬도 얼른 가! 늦기전에" 주머니에 손을 쿡 찔러 놓고는 뒤돌아 섭니다. 걸음을 옮기면서 문득 생각에 잠겨요. 오늘은 참 많은 일이 일어난 날이였으니까요. 한국에 오면서 정말 하루라도 조용할 날이 없었던거 같아요. 하지만 저에겐 이런 하루하루가 너무나도 소중합니다. "잠깐." 그나저나, 엄마가 걱정하면 어쩌죠. 오늘 맛있는 저녁을 해준다고 했었는데. 늦지 않고 갈라면 서둘러야 겠습니다. "잠깐만 김예봄!!!!!!!!!" 타악-. 그순간 누군가가 주머니에 푹 찔러 넣은 내 팔목을 잡고 나를 돌려 세웠습니다. 빙그르르 돌게 되면서 보인건 구해찬의 잘난 얼굴이였어요. 그제서야 안 사실은 지금 구해찬의 얼굴과 저의 얼굴간의 사이 간격이 매우 좁다는것이였어요. 왠지 모르게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것을 느낍니다. 저는 이렇듯 사소한것에도 부끄러움을 잘 느끼니까요. "어..?" "만약에. 정말 만약에 김예나가 내가 좋아했다는 사실 알게되면." "응." 그러자 잠시 머뭇머뭇 거리던 구해찬은. 이내 결심한듯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습니다. "니가 내 여자친구 해줘." "......." ......... 그말에 나는 아무말도 할수가 없었어요. 정말 시간이 멈추어 버린것처럼 흘러가는 시간속에 나 혼자 정지해 있는것처럼 멍해졌거든요. 무슨말이냐고 묻지조차 못했어요. 그저 말없이 구해찬을 바라봅니다. "그러니까. 아씨 미치겠네." 답답하다는듯 자신의 머리를 두어번 헝크러놓는 해찬이. 나는 그제서야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그게..무슨말이야? 구해찬." "내가 김예나한테 3년동안 내마음 전하지 못한 이유가 뭔지 알아?" "...응?" 쌩뚱맞게 물어오는 해찬이의 말에 나는 두눈을 크게 떠보였습니다. "그사실 알면, 나는 더이상 김예나랑 친구조차 할수 없으니까. 김예나를 영원히 잃게 되니까. 그래서 그랬어. 누구보다 난 김예나 잘 알아. 내가 자기 3년동안 좋아했다고 하면 개 나 안봐. 미안해서. 자기한테 난 죽어도 친구니까" 조용히 고개를 끄떡입니다. "........." "그러니까, 김예나가 만약 알게되면, 구해찬은 이제 김예나 다 잊고 김예봄 좋아하는거라고. 그래서 우리 사귀는거라고 그렇게..거짓말 해주면 안될까." 나는 구해찬이 지금 제게 무슨말을 하는지 이해할수 있었고 구해찬이 지금 어떤 마음인지도 이해할수 있었습니다. 사랑이라는건 원래 그러니까요.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고, 붙잡고 싶은게 사랑이니까요. 나는 구해찬의 마음을 잘 알것 같았습니다. 구해찬이 사랑을 숨겨온건, 언니를 위해서였고, 자신을 위해서였던것 이였습니다. 언니에겐 친구를 잃게 하고 싶지 않았던것이고 구해찬은 사랑을 잃기 싫었던것이기에. 3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혼자서 긴 아픔을 짊어진것이였어요. "응.!!!!" 나를 불안한 시선으로 응시하는 구해찬에게 나는 힘차게 고개를 끄떡였습니다. "어...?" "응!!그럴께. 언니의 남자친구를 일단은 믿지만 만약에 언니가 알게 된다면." "......" "구해찬 말대로 그럴께!!!" 그제서야 구해찬은 그 특유의 웃음을 지어 보여요. 그리고는 큰 한쪽손으로 내머리를 이리저리 헝크러트려 놉니다. ... "고마워." 나는 생각합니다. 미국에서 그사람을 떠나보내지 않았더라면 나도 이렇게 예쁜 사랑을 할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 말이에요. 이렇게 따스하고 눈물나는 사랑을 나도 할수 있지 않았을까.. \다음날 "언니!!!" 다음날 아침, 나는 바쁘게 머리를 말리고 있는 언니를 힘껏 불렀어요. 위이잉 거리는 드라이기 소리때문에 언니는 내말이 잘 들리지 않는지 뭐라구? 라고 재차 물어옵니다. 그런 언니의 모습이 귀여워요. "그러니까. 오늘 언니 남자친구 만나냐구!" 내말에 언니는 타악- 드라이기의 전원버튼을 끄고는 화장대에서 삥그르르 돌아 나를 바라봅니다. "왜?" "어? 아. 아니 그냥.." "넌 해찬이 만나??" "어? 아니!!!!!!!아니!!!!!!!!!!!!!" 갑자기 뜬금없이 언니의 입에서 흘러나온 구해찬의 이름에 나는 얼굴이 새빨개진채 손을 오바스럽게 저었습니다. 휴. 괜히 이거 도둑이 제발 저리는 셈 아닌가요? "왜 그렇게 과민반응해. 아 잘됐다. 그럼 학교끝날때쯤 학교와! 성현이가 저번에 맛있는거 사준댔는데 못사줬잖아. 같이가서 먹자!" "응...?" "이번에도 거절하면 알아서해! 꼭 와 알았지?" "언니!!!!" "응? 악!!!!!늦었다. 엄마!!내 마이 어딨어?" 무어라 대답할새도 없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분주하게 거실로 가서 엄마를 찾는 언니였어요. 순식간에 엄청난 일이 일어난듯한 기분이에요. 10초만에 오늘의 약속이 정해졌으니까요. 언니에게 지금이라도 가서 안간다고 말할까 하다가 그냥 입을 꾹 다뭅니다. 저번에도 거절했는데 2번 거절하긴 좀 그랬거든요. 아니. 솔직히 말하면, 어떻게서든 남자친구의 입을 막아서 구해찬의 사랑을 지켜야 겠다는 생각이 좀 더 컸던것 같아요. "알았어 언니. 늦지 않고 갈께!" 신발장에서 운동화를 아무렇게나 구겨신는 언니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소리칩니다. 그러자 언니는 오케이 싸인을 해주곤 쏜살같이 문을 닫고 가버려요. 문득 그모습을 보면서 나도 다시 교복을 입고 싶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예봄아, 국 다 식겠다! 얼른 밥먹어야지" "네? 응! 알겠어요 엄마!!" 그러나 곧, 부엌에서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에 그 생각을 얼른 지우고는 침대에서 일어섰습니다. 아침마다 엄마가 정성스레 차려주는 따듯한 아침밥을 먹을수 있다는건 정말 너무 행복한 일이거든요. \학교. 저의 손목에 채워져 있는 노란시계의 은색 시계바늘은 정확히 4:30분을 가르키고 있습니다. 지금은 학교가 끝나서 교문으로 많은 학생들이 밀물 빠져나가는것처럼 우르르 빠져 나가고 있어요. 저는 교문 앞 난관에 걸터앉아 대롱대롱 다리를 흔들며 언니를 기다리고 있는중이에요. 다들 저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가요. 수근거리는 아이들도 있구요. 아마두 교복무리들 사이에서 혼자 사복을 입고 있어서 그런 모양이에요. 히죽 하고 바보처럼 웃어보이며 언니가 언제올까 라는 생각에 시계를 멀뚱히 바라봅니다. "어...?" 째깍째깍 흘러가는 시계바늘을 계속해서 바라보고있는데 순간 낯익은 목소리가 귓가에 내려앉습니다. "김예봄!!!!!!!!!" 빠르게 달려오는 발걸음소리, 그리고 이내 그 발걸음은 점점 커지더니 그사람은 내목을 한쪽팔로 꽉 안아버려요. 그러니까 조금은 우스운 어깨동무라고나 할까요. "구해찬..?" "야 인마 너 오늘 왜이렇게 귀여워. 어쩐일이야" 가방은 어디다 두고 온건지, 교복만 달랑 입은 구해찬은 개구지게 웃으며 내머리를 또 다시 아무렇게나 헝크러 트려 놓습니다. 내후드티 모자를 장난스럽게 만지작 거리는 구해찬. 뭐가 이렇게 이아이를 신나게 한걸까요? 저는 문득 궁금해져왔습니다. "......." 그리고 그때, 나는 그순간 발견해버리고 말았어요. 교문을 향해 걸어오는 언니와 언니 남자친구의 모습을 말이에요. ... 4명이서 마주친다면 틀림없이 이상한 분위기가 흐를것입니다. 틀림없이 상황이 뻘쭘해질거라구요. 어떡하죠? 초조하게 나는 손톱을 물어 뜯으며 잠시 고민에 빠집니다. 그러다가. "...구해찬" "어? 왜?" ... ....................... "뛰어!!!!!!!" 나는 무작정 구해찬의 애기같은 손을 잡고 뛰기 시작합니다. 아주 빨리. 빨리 말이에요. ----------------------------------------------------------------------------- ★한개의 꼬릿말이 큰 힘이 됩니다★★한개의 꼬릿말이 큰 힘이 됩니다★ ★한개의 꼬릿말이 큰 힘이 됩니다★★한개의 꼬릿말이 큰 힘이 됩니다★ ★한개의 꼬릿말이 큰 힘이 됩니다★★한개의 꼬릿말이 큰 힘이 됩니다★ 헬리는 40편~50편정도면 끝나는 중편입니다♪ 슬슬 스핏을 올려야죠!ㅜㅜ 이제 6편만 있으면 중반부로 췌인지!ㅋ.ㅋ -------------- §가그린§ (godqhrgkehfhr@hanmail.net) 플티〃가그린〃소설 (http://cafe.daum.net/Gagrin) -------------- ※헬리오토로프는 5월 24일의 탄생화로 사랑이여 영원하라 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14> "김예봄, 너 미쳤어?" 나는 나보다 큰 구해찬을 낑낑 끌다싶이 뛰어갔어요. 그러자 구해찬, 더이상은 못참겠는지 마주잡은 두손에 힘을 꽉주고는 멈추어 섭니다. "돌았지. 너" 제 딴엔 무서워 보이라는듯 눈썹을 팽 찡그리고는 제게 소리치는 구해찬이였습니다. 나는 구해찬을 바라봐요. 시간이 없다구요. 이러다가 언니와 언니의 남자친구가 오기라도 하는날엔. 정말 생각도 하기 싫을만큼 끔찍하다구요. 난 이유가 어찌됐든 싸우는건 싫어요. 분위기가 어색해지는것도 싫구요. "구해찬 난 멀쩡해. 미치지도 않고 돌지도 않았다구" "근데?" 내말에 삐딱하게 대답하는 구해찬이였습니다. 정말 구해찬의 승질머리를 누가 당해낼까요. 아무래도 변명거리가 필요할듯 싶었습니다. 구해찬에게 무슨말이라도 해야지 구해찬이 얌전히 협조를 할꺼 같아요. 둘러대기 그럴싸한 말이 없을까 하고 곰곰히 머리를 굴리던 나는 이내 구해찬에게 다급하게 입을 엽니다. "그런데...아무튼간에 그냥 뛰고싶어서. 아 그래 나 살이쪄서 운동할라구!" "간다" 그러자 아무말없이 나를 한심하다는듯 바라보다가 망설임없이 뒤돌아서는 구해찬이에요. "구해찬!!!!!!!!" "응 안녕 잘있어. 김예봄" "구해차안!!!!!!!!" 구해찬은 내말을 모두 무시하고는 우리가 뛰어왔던 길을 다시 혼자 되돌아 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러다가 언니와 언니의 남자친구와 마주치게 된다면... 저는 생각만 해도 끔찍한 상상에 도리도리 고개를 젓습니다. 분위기도 어색해 질테고 남자친구가 구해찬이 언니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말했을수도 있고, 혹 구해찬을 보고 언니에게 말해버릴수도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 "잠깐만 구해찬." 무엇보다 어떤상황이든 구해찬이 상처 받을께 분명하다구요. "아 왜. 왜 또!!" 이런 내마음을 알리가 없는 구해찬, 다시 한번 성가시게 자신을 부르는 나를 귀찮다는듯 훽 돌아보며 소리칩니다. "나 사실은 구해찬 보러 온거야." "나?" "응. 구해찬 너." "왜?" "그게." 무작정 내뱉은말에 할말이 없어진 나는 잠시 눈을 하늘쪽으로 올려 뜹니다. 이건 내가 무언가 고민할때마다 생기는 버릇이에요. 아무튼간에 잠시동안 고민하던 나는 구해찬의 아이같은손을 다시 잡고는 무작정 이끌었습니다. 그러자 구해찬은 이번엔 아무말없이 묵묵히 따라와줬습니다. "응 뭔데요." 그리고는 장난끼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쿡쿡 찌르며 물었어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이.일단!!어디 까폐같은데라도 가자!!!여기에서는 말 못해!!!!" 다급하게 소리치는 내모습을 빤히 내려다보는 구해찬. 무언가 생각하는듯 싶더니 눈웃음을 짓으며 말합니다. "대단한 얘긴가보네. 아싸 신난다." 도리어 먼저 앞장서서 걷는 구해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녀석이 알게 모르게 한숨을 땅이 꺼져라 푸욱 쉬었어요. 일단은 급한대로 산은 넘었지만, 더 큰 산이 기다리고 있다는걸 잘 알았기 때문이였죠. 온몸에 힘이 쭉 빠지는것이 느껴졌습니다. 구해찬에게 무슨말을 하죠? 아무런 할말이 없는데. 도대체 무슨말을 해야 하는걸까요? 그리고. "....같이가. 구해찬" 아무것도 모른채 교문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언니는 어떡해야 하는거죠. 정말 머리가 아플만큼 혼란스러워져요! \까폐 "으아아! 으휴! 정말 미치겠네!!" "엄마야. 씨껍했네." 긴 빨대를 입에 물고는 나를 바라보던 구해찬은 갑작스러운 제 행동에 정말로 깜짝 놀란 모양이였습니다. 놀란 표정으로 멍하니 저를 응시하는 구해찬을 보며 나는 바보처럼 실실 웃어보입니다. "김예봄. 너 왜 갑자기 머리를 쥐어뜯어" "응? 아. 머리가 간지러워서." 머리가 간지러운게 아니라 지금 이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서 그런다구! "할말이 뭐야?" 언니는 어떡하지. 많이 기다리고 있을텐데. 구해찬에겐 무슨말을 해야하는거지. 아무런 할말이 없는데. 차라리 그냥 무작정 뛰어나오지 말껄 그랬나. 언니 남자친구가 말 안했을수도 있잖아! "김예봄!!!!!!!!!" 여러가지 복잡한 생각이 머릿속에 마구 뒤엉켜 떠다니고 있을때, 순간 구해찬은 깜짝 놀랄만큼 내이름을 큰소리로 불렀습니다. "어? 응? 응? 구해찬 왜?" "할말이 뭐냐구요." 구해찬은 자신이 앞에 놓인 키위쥬스를 빨대로 휘저으며 내게 물었어요. 차라리 솔직히 말하는게 나을까요? 넷이서 마주치면 분위기가 어색할꺼 같아서 그랬다고. 만약, 남자친구가 구해찬에 대해서 언니에게 말했더라면 서로 민망하니까 그랬다고 말하면 지금 앞에 앉아있는 똥꼬집에다가 다혈질인 구해찬이 이해해줄까요? 저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습니다. 절대로 그럴리가 없잖아요. "음 그러니까 구해찬 있지." "너 자꾸 시간끌래?" 구해찬은 자꾸만 말을 하지 않고 돌리는 저에게 이제 슬슬 짜증이 나는 모양인지 주머니에서 담배를 뒤적이며 말했습니다. 그러다가 이내 녀석의 매끈하게 뻗은 손가락 사이로 하얀 담배가 걸쳐졌어요.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해찬이는 자신이 교복을 입고 있다는것을, 그리고 이곳이 금연장소라는것을 깨달았는지 담배를 하얀담배각에 구겨 넣었습니다. 그것을 빤히 보던 나는 말끝을 흐리며 간신히 입을 열었어요. "그러니까..." "응." 자꾸만 구해찬의 시선이 얼굴에 닿는게 느껴져요. 그시선에 우물쭈물하다가 입을 꼭 다물었습니다. 그리곤 한참을 말없이 고개를 푹 숙이곤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해서 심각한 고민을 하던 도중, 순간. 정말로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저에게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생각난거 있죠? "맨정신으로는 말 못하겠다!!술이라도 사줘. 술먹을래 나!" "뭐?" 맨들맨들한 의자에서 벌떡 일어서서 소리치는 나를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구해찬이였지만. 저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까폐 출입문쪽으로 휘적휘적 걸어나갔습니다. 오래전, 아빠께서 지나가는 말로 가르쳐 주셨던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였어요. 단어가 너무 어려워서 지금껏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지만 딱히 쓸만한 상황이 오지 않아 한번도 써먹지 못했던 한국말이였거든요. 그런데 지금, 나는 구해찬이 모르게 그말을 조심스럽게 중얼거립니다. .... ......... "이게 바로 김예봄의 임기응변!!" 그리곤 혼자 뭐가 좋은지 실실 웃고야 말아요. 그것이 임기응변이 아닌 최악의 실수였다는걸 미처 깨닫지 못하곤 말이죠. \술이네술집. 구해찬이 나를 데리고 온곳은 언젠가 구해찬과 한번 와본적이 있었던 술집이였습니다. 이름이 특이해서 늘 기억하고 있었던 곳이에요. 구해찬을 처음 만난날, 언니 행새를 하며 이곳에 왔었거든요. 그러고 보면 그것 모두 짧은시간내에 추억이 되버렸네요. "........." 구해찬은 번거롭게 너때문에 옷을 갈아입으러 집에 들렸다면서 이곳에 오는 내내 투덜거리더니 이번에는 내앞에서 시큰둥하게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문자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 쪼잔한 녀석. 슬슬 삐지려나봐요. 나는 술집 구석에 메달아져있는 시계의 길다란 시계바늘을 바라봅니다. 아까 집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올때 엄마가 적어도 10시까지 오라고 했으니까 귀가시간까지 이제 2시간정도 남았네요. "맛있게 먹어요. 모자르면 더 달라구 하고.!" 이윽코 테이블위로 철판위에 먹음직스럽게 지글지글 거리고 있는 불닭이 올라왔습니다. 사실 불닭이 뭔지는 몰라요. 구해찬이 주문을 할때 분명 불닭을 달라고 해서 이 음식이 불닭인줄 아는것일 뿐이니까요. 음식이름에 닭이 있으니 닭고기요리인거 같았습니다. 나는 구해찬에게 빨간 양념위에 뿌려진 깨를 젓가락으로 툭 건드리며 물었습니다. "이번엔 왜 곱창 안시켰어?" 그러자 핸드폰으로 시선을 줄 곧 고정시켰던 해찬이가 무심한듯 대답합니다. "너 잘 못먹잖아." 그순간은 말이죠. 왠지 모르게 기뻤어요. 가슴이 벅차오르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누군가에 머릿속에 나에 대한 기억이 있다는 증거였으니까요. 그건 생각보다 행복한 일이에요. 함께한 시간을 잊지 않고 기억한다는것은. 생각보다 가슴 벅차오르는 일이잖아요. "고마워!!" "뭐가?" "기억해줘서." "기억하고 싶어서 기억한게 아니라 똑똑해서 이 머리가 안잊어먹는거야!!!!!!" ".........." 자신의 두 눈을 똑바로 보고 얘기하는 내모습에 짐짓 쑥스러웠는지 해찬이는 또 다시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나는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귀여워 쿡 하고 웃음을 터트렸어요. "김예봄. 무슨말인데 진짜 이렇게 시간끌어." "응?" "니가 자꾸 이렇게 시간끄니까 진짜 심각한말인거 같아서" "겁나?" "뭐?" "에이. 구해찬은 겁쟁이." "김예봄 너 벌써 술취했냐?" "나 아직 술 한방울도 안먹은거 구해찬이 더 잘알잖아. 아 기달려봐. 나 지금 먹는다 한잔!" 말을 마치고 둥그런 소주잔에 소주가 출렁이도록 채우고는 집게손가락으로 잔을 들어요. 그리고는 저번에도 먹었던 하나도 맛없고 쓰기만 한 그 소주를 꼴깍 단숨에 삼켜버렸습니다. 내가 아까 까폐에서 세운 야심찬 계획은 이거였습니다. 이렇게 몇잔정도 술을 먹거나 먹는 시늉을 하고나서 취한척을 하는거에요. 그리곤 다음날 할말이 뭐였는지 기억 안난다고 잡아뗄 작정이죠. 거짓말은 나쁜거라는걸 잘 알지만, 가끔씩 이런 선의의 거짓말도 필요하다고 아빠는 늘 말씀하셨다구요. "........." 나는 목구멍을 타고 몸 안속으로 들어간 소주로 속이 타드러갈것만 같았지만 꾹 참고는 젓가락으로 앞에서아직까지도 지글지글 소리를 내고 있는 불닭이라는것을 집었습니다. 그리고는 오므리고 있었던 입술을 벌려 그사이로 고기를 집어 넣었어요. 결과는? ".........매워." "당연히 맵지." "매워...구해찬." "당연하지. 바보야?" "매워!맵다구 매워!!!!!!!!!!" 혀끝까지 얼얼해져오는 매운맛에 호들갑을 떨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미국에서는 이런 한국의 매운음식을 접할 기회가 자주 없기 때문에 나는 매운음식을 잘 먹지 못해요. 그런데 이건 보통 매운음식이 아닌듯 싶었어요. 혀가 온통 타들어갈껏만 같은 느낌까지 들었으니까요. 일단 물을 먹어야 겠다는 생각에 나는 아무거나 잡히는대로 집어 입에 쏟아넣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또 하필이면 소주였을까요. 최악. 최악중 최악이였습니다. "야 그거 소주..." 재빠르게가 아닌 한발 늦어버린 구해찬이 내손에 들린 소주병을 한손으로 잡고 뺏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말그대로 한발 느린 행동이였어요. 이미 많은양의 쓰디쓴 소주는 제 몸속으로 퐁당 하고 들어가버렸거든요. 그순간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속이 쓰리다가 심장까지 타들어가면 어쩌지 라는 말도 안돼는 생각을 말이에요. 나는 구해찬을 바라보다가 털썩 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구해찬의 검은 동공에 흐트러진 내모습이 담겼어요. 지금 구해찬의 얼빠진 표정은 사진이라도 찍어놓고 싶은 심정이에요. 너무 우스꽝스러웠거든요. "진짜..무슨일 있는거야?" 다시 한번 구해찬은 나를 향해 묻습니다. 그런데 아까와는 달라진건 바로 나긋나긋하게 변한, 구해찬의 목소리였어요. 나긋나긋하다기보다는 걱정이 잔뜩 묻어있는 그런 듣기 좋은 목소리. "아니. 없어요. 근데 구해찬. 나 왜 머리가 어지럽지?" "한번에 그렇게 많은 소주를 입에 넣었으니까." "진짜? 원래 이건 이렇게 조금 먹어도 이러는거야? 속이 아프다. 부글부글 끓고 있는거 같아" "....병신." 벌써부터 늘어지는 말을 횡설수설 내뱉는 나를 보더니 피식 하고 웃는 구해찬이였어요. 그리곤 자신의 둥근 잔에 담긴 소주를 입으로 가져가요. 그러자 구해찬의 목젓이 위로 올라갔다가 내려갔어요. "구해찬도 힘든거지?" "뭐?" "구해찬도 사랑때문에 힘든거잖아. 많이 힘들어하고 있지?" 뜬금없는 내말에 구해찬의 시선이 나를 향해 오랫동안 머물렀습니다. 이게 바로 술기운이라는 건가봐요. 나는 나도 모르게 진실해 지고야 말았어요. 그냥 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속이 부글부글 끓는듯한 느낌은 여전했지만. 누군가에게도 하지 못한 내 이야기를 지금 이순간. 내앞에 앉아있는 이아이에게 해야겠다는 생각 뿐이였습니다. "취했네 너." "나도." ".........." "나도 힘들었어. 구해찬. 나도 많이 힘들었고 죽을것같았어. 그리고 지금도 아파." 온몸에 힘이 쭉 빠지는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머릿속에는 온통 그날의 일들이 오래된 필름처럼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끔찍했던 비명소리들. 차 클랙션소리. 모두가 엉켜버립니다. 그날의 끔찍했던 기억들 모두가 엉켜 내머리, 내심장을 괴롭혔습니다. "김예봄. 너...울어?" "나때문에...사람이 죽었거든.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죽었어 구해찬." ".........." "내가 죽인거야. 나때문에 죽은거야." 나때문에 그애가 죽었어. 내가 너무나 사랑했던 그애가 죽었어 구해찬. "...김예봄." "구해찬. 이거 술 진짜 이상하다. 속만 아프면 되지. 왜 마음까지 아픈거야?" "예봄아..." "이것때문에..그애가 더 보고싶잖아." 원망스럽게 푸른색 소주병을 노려보다가 눈물 고인 눈으로 바보처럼 웃어보였어요. 맹세코 정말 처음이였습니다. 누군가에게 그아이의 대한 이야기를 한건. 그리고 내 진심을. 내마음을. 내 아픔을 들어낸건 처음이였어요. 그래서 나는 내앞에 얄밉게 놓은 술병이 밉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습니다. 그냥 그랬어요. 고마운건. 구해찬은 더이상 내게 묻지 않았어요. 천천히 따듯한 그 손으로 테이블 위에 엎드려 있는 내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어 줄뿐. "울지마 임마." 나는 알았어요. 그것이 서툰 구해찬의 위로라는걸. 혹, 무슨말이냐고 물으면 내 상처를 건드릴까봐, 아무말없이 내게 힘내라는 따스한 위로라는걸. 나는 따듯한 구해찬의 손길에 오랜만에 편안해진 기분이 들었습니다. 천천히..아주 천천히 눈을 감아요. "난 너 웃는모습이 좋아" 구해찬의 듣기 좋은 나긋나긋한 목소리를 자장가 삼아서 말이죠... ----------------------------------------------------------------------------- ★한개의 꼬릿말이 큰 힘이 됩니다★★한개의 꼬릿말이 큰 힘이 됩니다★ ★한개의 꼬릿말이 큰 힘이 됩니다★★한개의 꼬릿말이 큰 힘이 됩니다★ ★한개의 꼬릿말이 큰 힘이 됩니다★★한개의 꼬릿말이 큰 힘이 됩니다★ -------------- §가그린§ (godqhrgkehfhr@hanmail.net) 플티〃가그린〃소설 (http://cafe.daum.net/Gagrin) -------------- ※헬리오토로프는 5월 24일의 탄생화로 사랑이여 영원하라 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15> “우으음” 처음엔 너무 편한 나머지 내가 침대에 누워있는것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고른 숨소리와 함께 아주 조금씩 움직이는 몸 때문에 침대가 움직이기도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마지막 “.......” 내가 아닌 누군가의 숨소리가 들리자 내가 누워있는곳은 침대가 아니구나 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습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눈을 떠요. 눈을 뜨자마자 보인건 좋은 냄새가 나는 구해찬의 머리카락 이였습니다. 나는 그제서야 이곳은 침대가 아닌 구해찬의 넓은 등이라는걸. 내가 그 등에 엎혀있다는걸 알았지요. “구.구해찬!! 미.미안해!! 나 내려줘!” 그순간은 정말이지 정신이 번쩍 뜨는 기분이였어요. “깼어?” “내려줘!!!!!!!” “시끄러. 나 지금 말할 기운도 없거든!!” “내려줘 내려줘!!!!” “한마디만 더하면 진짜 확 뒷산에다가 놓고간다.” 챙피해요. 무거울텐데. 이럴줄 알았으면 불닭을 먹지 않을껄 그랬어요. 구해찬의 목소리는 딱 보기에도 힘들어 보이는 목소리였습니다. 하지만 구해찬의 고집을 아는지라 녀석이 저를 쉽사리 내려주지 않을것 같아서 저는 천천히 조금씩 엉덩이에 힘을 주고 들어올렸습니다. 이러면. 이러면 조금 더 가벼워보이지 않을까 하고. “김예봄.” “어..?으응?” “힘뺀거 다 티나. 그냥 있어.” 구해찬의 말에 나는 순간 얼굴이 화르륵 달아오르는듯한 기분이였어요. 나는 결국 꽉 주고 있던 힘을 풀고는 내려오는것에 대해서 포기한채 가만히 엎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아까의 일이 떠올라 조심스레 녀석을 향해 입을 엽니다. “구해찬.” “왜 임마.” “왜 안물어봤어.?” “뭐가?” 구해찬이 말할때마다 등에서 숨소리가 느껴져요. 이히. 신기해라. “아까. 내가 술먹고 한말. 솔직히 궁금했잖아. 근데 구해찬 아무것도 안물어봤어.” “안 궁금했으니까.” “에이 거짓말. 궁금 했으면서.” “별로. 그리고.” “응?” “굳이 말 안해도 되.” 구해찬이 배려라는것도 할줄 아네. 나는 구해찬의 말에 피식 하고 웃으며 천천히 구해찬의 넓은 등에 얼굴을 기대요. 따듯했습니다. 구해찬의 등은. 언젠가 엎였던 아빠의 등처럼. 넓고 따듯했어요. “외로웠어.” 누군가 검은 도화지위에 흘려 놓고간 가로등의 노란빛이 여기저기 번져가고 있는 그런 늦은밤. 구해찬의 발걸음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그런 고요한 밤. 내 목소리가 문득, 그곳에 옅게 퍼져나갔습니다. 구해찬의 발걸음이 아까보다 좀 더 느려집니다. “많이 외로웠어. 그렇다고 아빠가 싫다는건 아니야. 그래도. 외로운건 어쩔수 없었나봐. 왜 난 제대로 된 가족이 아닌거지? 왜 엄마랑 언니랑은 같이 살수 없었던거지.? 친구들 보면서 맨날 울었어. 나” “.......” “그런데..한국에 와서 너무 행복한거 있지.? 미국에 있을땐 늘 집에 혼자 있었거든. 이제 그러지 않아도 돼. 집에 가면 누군가가 나를 기다려 주고. 나를 위해서 따듯한 밥을 지어주고. 그리고 너같이 든든한 친구도 있고. 그래서 잇지. 고마워 구해찬...” “........” “나랑 친구가 되줘서.” 그리곤 다시 비스듬히 든 고개를 구해찬의 등에 푹 묻었어요. 구해찬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생각했습니다. 지금 이순간,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고. \다음날 “예봄아. 일어나렴. 늦잠 안자던 얘가 왜 오늘따라 늦잠이니.” 분명 엄마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지만 나는 뒤척이다가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려버렸습니다. 엄마에게는 죄송하지만 좀 더 자고싶어요. 머리가 아프고, 속이 막 따갑고, 아무튼간에 그랬거든요. “예봄아!!” “엄마 냅둬. 좀 더 자게. 어제 늦게 들어와서 피곤한가봐.” “그래? 위험하게 밤늦게 돌아다녀서 따끔하게 혼낼려고 했더니. 우리 딸.” 따듯한 엄마의 손이 내 머리를 두어번 쓰다듬다가 이내 이불을 좀 더 내려 숨막히지 않게 덮어주었습니다. 그순간, 왠지 모르게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떠지지 않는 눈을 힘겹게 뜨려는 데. 달칵- 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습니다. 아마 엄마가 나간 모양이에요. 그래서 좀 더 잘까 하다가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언니의 한숨소리에 천천히 눈을 떳습니다. “어? 예봄아 깼어? 미안.” 내 방 화장대 앞에 앉아서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언니가 말했습니다.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힘겹게 몸을 일으켰어요. 몸이 왠지 모르게 찌뿌둥합니다. 나는 일어나자마자 시계를 찾아요. 시계의 긴 바늘은 어느새 12시를 가리키고 있었어요. 이건 늦잠 정도가 아니라 왕 늦잠이라구요! “아냐. 근데 언니. 왜 학교 안갔어?” “오늘 놀토잖아.” “아. 맞다. 근데 언니.” “응?” “왠 한숨이야. 무슨일 있어..??” 내말에 언니는 알수없는 표정으로 힘없이 고개를 저었습니다. 하지만 알수 있었어요. 지금 언니가 거짓말 하고 있다는걸요. 왠지 모르게 불길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언니.??” “응? 아. 아무것도 아니야 예봄아. 씻을꺼지? 언니가 수건 가져다줄게.” 갑자기 서두르는 언니의 표정도 이상해요. 무슨일이 있는걸까요.? 나는 재빨리 방을 나가는 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이불을 걷고 일어섰습니다. 왠지 모르게 찝찝한 기분이 들었지만요. * * * * “예나, 엄마 음식 맛없어? 왜 이렇게 젓가락질이 시원치 않아.” “응. 엄마 음식 맛없는거 하루이틀이야?” “뭐? 이기집애가!” 식탁 위, 말장난을 하는 언니와 엄마의 모습에 나는 쿡 하고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다정한 언니와 엄마의 모습은 정말 보기 좋았어요. 엄마의 빈 자리 옆에 아빠가 앉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잠시 나는 미국에 있을 아빠 생각에 잠겨요. 문득, 아빠가 보고싶어졌습니다. 이곳에 있는게 너무 즐겁고 행복해서 잠시 아빠를 잊은 모양이에요. “아 진짜. 못먹겠다. 나 그만먹을래.” 엄마의 반찬 중에는 오징어볶음이 제일 맛있어요. 달콤하고 매콤하고 쫄깃쫄깃한 그 맛에 내 젓가락은 수십번 오징어볶음쪽으로 오갔지요. 그러니까. 제가 다시 한번 흰밥을 입에 넣고 오징어 볶음을 집으려던 순간 언니가 의자를 끌며 일어섰습니다. 나는 오징어볶음을 집다 말고 그런 언니를 바라봤어요. “뭐? 니가 왠일이야. 밥을 다 남기고.” “그냥..오늘 기분이 별로라서, 나 나갔다 올게.” 의자를 밀어 넣고는 시큰둥하게 대답하는 언니. 엄마는 그런 언니에게 나를 힐끔 보더니 말했습니다. “엄마 오늘도 일나간단 말야. 집에 예봄이 혼자 있을텐데, 같이 있어주면 어디가 덧나니?” 아니에요 엄마. 전 괜찮아요. 라고 말하려고 입을 여는데, 순간 더 빨랐습니다. 누가? 바로 장난스럽게 웃음지으며 입을 여는 언니가요. “잠깐 이 앞 만화책방 가는거거든요? 안그래도 예봄이 때문에 오늘은 하루종일 집에 있을라구 했다구요.” “아 정말?” “우리 김여사. 예봄이 걱정 엄청 하시네. 엄마의 소중한 딸 예봄인 어제 하늘같은 언니를 바람맞췄다구.알긴 아시나?” “맞다. 언니 그건!” “됐어 김예봄. 이제와서 미안한척 하지말라구!” “아.아니야 언니. 어떡해. 진짜 미안해..” 깜빡하고 있었어요. 구해찬 때문에. 아니 사실 이건 핑계에요. 내 잘못이였습니다. 언니와의 약속을 잊고 있었어요. 소중한 사람에 대한 약속하나 지키지 못하는 전 정말 구제불능 이에요. “어? 엄마 예봄이 울먹거린다. 짱인데?” 나와 똑같은 크기의 언니의 손이 내 머리를 이리저리 흐트러 놓습니다. 맞은편, 앉아있는 엄마 또한 저의 우스꽝스러운 표정에 풉 하고 웃음을 터트리셨습니다. 그런 엄마의 모습에 울먹이던 저 또한 결국 웃음을 터트리고요. “언니. 아무튼간에 어젠 정말 미안해. 정말 어쩔수 없는 사정이 생겨서..” “그럼...” “응?” ... ............... “언니랑 같이 만화책 빌리러 가자!” * * * * * 밥을 좀 더 먹고 가라는 엄마의 말에 배부르다는 거짓말을 하고는 모자를 대충 눌러쓰곤 언니와 함께 집을 나왔습니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서자 땡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스르륵 열렸어요. 엘리베이터 앞에 마련된 거울에 비친 츄리닝에 큰 후드를 대충 입은 언니는 엄청 귀여웠습니다. 그에 비해 전. 정말 초라했지요. 얼굴은 똑같은데 어떻게 이렇게 다른 느낌이 날까요. 윽. 정말 좌절이라구요. “미국에서도 만화책 같은거 있어?” “응! 그럼요. 근데 난 거의 못봤어. 아빠 때문에. 아빠가 못보게 했거든!” 아무생각 없이 한 대답에 언니의 걸음이 느슨해지더니 이내 아파트 입구 복도에서 멈추어버렸습니다. “예봄아.” “응?” “아빠는.” “.....어..?” “아빠는..어떤 사람이야?” 고르게 뛰던 심장이 갑자기 빨라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언니의 말에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은채 언니를 봤습니다. 왜 지금껏 생각하지 못했을까요. 언니도 아빠를 많이 그리워 하고 있을꺼라는걸요. “아니다. 괜한 말이였네. 가자 예봄아!” “엄마같은사람.” “......” “엄마처럼 따듯한 사람이야 아빠도. 언니만큼 자상한사람이고. 나만큼 언니를 많이 사랑해주시는 분이야.” 싱긋 웃는 나를 보더니 알수없는 웃음을 지어보이는 언니였어요. 언니의 얼굴에 옅게 퍼진 웃음이 왠지 모르게 예쁘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걸음을 옮겼습니다. 언니와 만화책에 대한 시시콜콜한 수다를 떨면서 말이에요. 그런데 우리의 이야기는 머지 않아 뚝 끊겨버렸습니다. 아니 끊겨버릴수밖에 없었어요. “야호. 놀랐지.” “미친. 여기 앞까지 온 보람이 없게 만드는 차림새구만.” 나오자마자 계단에 앉아있던 누군가. 아니 누군가들이 우리의 모습을 보자마자 툭 튀어나왔거든요. 나는 어안이 벙벙해진 얼굴로 그들을 쳐다봤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오랜만에 보는 황여민과 이현태. 그리고 “니네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꼴로 밖을 나올수 있냐.” 어제도 보았던 구해찬이였습니다. 나를 빤히 쳐다보는 황여민의 시선에 나는 모자를 좀 더 눌러썻어요. “너가 예나동생이지? 이젠 안헷갈려. 하이. 오랜만이다 예봄씨잉” “응? 아. 으응” 황여민의 말에 수줍게 고개를 끄떡끄떡 거리자 이현태가 그런 황여민의 머리를 투박하게 손으로 내리쳤어요. 왠지 모르게 정신이 없어진 기분이에요. “임마 너 때문에 예봄이 겁먹었잖아.” “아닌데에. 예봄인 지금 나한테 홍가있어.” “이 미친새끼 또 말도 안돼는 소리 하네.” 재미나게 싸우는 그들을 향해 아무말도 없던 언니가 입을 연건, 바로 그때였습니다. “니네 여기 왜있어?” “원래 서프라이즈. 깜짝 놀래켜줄라고, 예고도 없이 찾아와서 널 부를려고 했는데. 너가 나와버렸어!” 정신없이 떠들어 대는 황여민을 한심하게 보던 언니는 이내 그들을 지나쳐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그건 정말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 저 또한 갑작스러운 언니의 행동에 얼떨떨한 표정으로 서있을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어? 김예나 어디가! 우리 너랑 놀라고 왔다니까?” “나 지금 바빠.” 황여민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는 걸어가는 언니. 그 순간 나는 무언가를 느꼈습니다. 아침부터 줄 곧 이상했던 언니, 불길한 느낌. 그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어요. “야. 김예나” 잠자코 계단에 삐딱히 앉아있던 구해찬이 일어서서 언니의 앞을 막아섰을때, 언니의 표정에서 나는 내가 예상하는 그것이 확실하다는것을 느꼈습니다. “비켜.” “뭐? 얌마. 너 뭐야.” “넌 뭔데?” “뭐..?” “비켜 너랑 말하기 싫으니까.” 구해찬을 비켜 가려는 언니를 구해찬은 다시 한번 막아서요. 이번엔 구해찬의 표정도 뭔가 굉장히 화난 표정으로 바뀌었습니다. “너 갑자기 왜이렇게 삐딱한건데.” “비키라고 했다.” “못비켜. 너 내 성격 몰라서 이래?” “어. 몰라.” “뭐?” 구해찬을 노려보는 언니. 무언가 꾹 누르고 있는듯 싶다가. 이내 구해찬에게 소리를 버럭 질러버립니다. “몰라. 내가 니성격을 어떻게 알아? 3년동안 나 속여왔는데. 내가 널 어떻게 알겠어. 3년동안 널 친구로 생각하고 믿었는데. 넌 날 3년이나 속여왔잖아. 근데 내가 널 어떻게 알겠어?” 제 예상이 맞았습니다. 언니는. 결국 알아버린 모양이에요. 오랫동안 숨겨왔던 구해찬의 마음을... 하지만 언니는 구해찬의 마음만 알고 있을뿐, 그거 하나만 알아버렸을뿐, 모르고 있습니다. “..........” “지금이라도 말해 구해찬.... 성현이가 잘못 안거라고. 너 나 좋아하지 않는다고. 좋아하는거 아니였다고. 말하라구!!!!!!" 지금 언니의 말에 구해찬의 가여운 심장이 조금씩. 조금씩...시들어 가고 있다는것을요..... ----------------------------------------------------------------------------- ★한개의 꼬릿말이 큰 힘이 됩니다★★한개의 꼬릿말이 큰 힘이 됩니다★ ★한개의 꼬릿말이 큰 힘이 됩니다★★한개의 꼬릿말이 큰 힘이 됩니다★ ★한개의 꼬릿말이 큰 힘이 됩니다★★한개의 꼬릿말이 큰 힘이 됩니다★ 헬리의 스핏을 올려보지요♪ 당분간 헬리는 좀 더 집중이 될듯 싶습니다. 오늘 위험한 남자 2편이 목표였눈데. 헬리 쓰느라고 못썻네요!ㅜㅜ.내일은 기필코 위남을! 그리고 다시 헬리를 함께 올리도록 노력해보지요!♪ 성실연재했으니. 눈팅으로 지나치지 마시고 꼬릿말 고고씽!_♡ 힘을주세엽 얍! -------------- §가그린§ (godqhrgkehfhr@hanmail.net) 플티〃가그린〃소설 (http://cafe.daum.net/Gagrin) -------------- ※헬리오토로프는 5월 24일의 탄생화로 사랑이여 영원하라 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16> “..........” 언니의 말에 아무말 없이 흔들리는 눈동자로 언니를 바라보는 구해찬이였습니다. 순간, 우리 다섯명 사이로 알수 없는 침묵이 흘러갑니다. 그순간 느낀건 내게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이 있었으면 하는 거였어요. 적어도 이런식으로 부딪히지는 못하도록 5분전, 만화방을 가자는 언니를 말렸더라면, 아니면 2일전 구해찬과 그 까폐에 가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끝도 없이 후회하고 있을 무렵. 언니가 다시 입을 열었어요. “왜 아무말이 없어. 다 맞는말이야? 내가 지금 들은말들 모두 사실인거야?” “야. 김예나.” 언니의 신경질적인 목소리에 보다못한 이현태가 언니를 말리려는지 언니를 향해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곧 그런 이현태의 발걸음은 멈추어버려요. 그건.... 어렵게 입을 연 구해찬 때문이였죠. “응. 맞아.” 구해찬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대답합니다. “하..뭐라고?” “너 좋아했었다고. 그런데. 말 그대로 좋아했었다고야. 과거야” 기가막혀 하는 언니의 표정에도 아랑곳 하지 않은채 흔들림없는 눈으로 언니를 바라보는 구해찬. 녀석의 눈동자는 이내 내게로 멈추어섰습니다. “..........” “너 때문에 일부로 니동생 좋아하는척 했었던거 아니야. 정말 좋아졌어. 그리고” “그리고.?” “사실 나 2일전부터 김예봄이랑 사귀기로 했어.” 구해찬의 충격적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습니다. 언니도. 황여민도. 이현태도. 그리고 구해찬도. 한꺼번의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은 나는 어쩔줄 몰라하며 구해찬을 바라봤어요. 무슨말이든 해야겠는데, 무슨말을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아..그러니까.” “진짜야 예봄아?” 믿을수 없다는듯 나를 쿡 찌르는 이현태의 말에 나는 고민할수밖에 없었어요. 그렇게 한참을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을 하다가 이내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떡입니다. “응. 맞아요. 나 구해찬 좋아.” 내가 무턱대고 내뱉은말에 분위기는 점점 더 이상해졌어요. 하지만 나에겐 이말이 최선의 대답이라는걸 알아요. 이틀전, 구해찬과 약속했으니까요. ‘만약에. 정말 만약에 김예나가 내가 좋아했다는 사실 알게되면.’ ‘응.’ ‘니가 내 여자친구 해줘.’ 구해찬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이것이 언니에게도 나에게도 언니의 남자친구에게도 구해찬에게도 최선의 방법일것이라는 생각에서였어요. 그제서야 언니는 허탈하게 웃어보입니다. “뭐야. 괜히 오바했네.” 그리곤 투박하게 구해찬의 어깨를 툭 하고 쳤죠. “이젠 정말 안좋아하는거지 나?” “잊게해줬어.” “.........” “니 동생이.” 또 다시 구해찬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러자 이번엔 나를 향해 괜찮다는듯 예쁘게 웃어보이는 구해찬이였어요. “오 둘이 벌써 찐한사이가됐어? 난 예봄이가 나한테 홍가있는줄 알았단말야!” 그런 우리 둘을 보며 황여민이 호들갑을 떨어댔어요. 아마 어색한 분위기에 도저히 못견디겠던 모양이에요. “진짜 다행이야. 친구 잃을까봐 걱정했잖아. 난. 그래도 그동안 날 좋아하고 있었다는건 좀 충격이긴 했어.” 그제서야 언니의 표정이 다시 예전처럼 밝아졌습니다. 언니도 웃으며 황여민의 옆으로 가서 장난을 쳐대요. 왠지 모르게 씁쓸해진 마음에 나는 땅바닥으로 고개를 숙였습니다. 구해찬과 눈을 마주칠 용기가 나질 않았거든요. 만약 녀석과 눈이 마주친다면 나도 모르게 동정하는 표정을 지어버릴까봐요. “그래도 이제 아니잖아. 해찬이에게 넌 과거의 여자일뿐이야. 너 같은 섬머슴 이제 구해찬한테 아웃당했어!” “뭐? 야 이 개새끼야 죽을래?” “아니. 안죽을껀데!” “너 거기 안서? 아나 진짜 너 잡히면 진짜 뒤졌어.” 황여민과 티격티격 거리다가 이내 언니를 약올리고 도망가는 황여민. 그런 황여민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쫒아가는 언니였어요. 결국 아파트 입구 계단에는 나와 구해찬, 그리고 이현태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이죠. 언니가 뛰어가는 사이 구해찬은 비스듬히 문에 기대 주머니를 뒤적입니다. 그리곤 하얀 담배 하나를 입에 비집어 넣어요. “이제 정말 어떡하냐. 둘이 진짜 사귀어야겠네?” 찰칵 하고 라이터 뚜껑을 엄지로 밀어 올린후 구해찬에게 불을 붙이며 나를 향해 이현태가 말했어요. 순식간에 이현태의 라이터에 빨간 불이 구해찬의 입에 물린 담배 끝으로 옮겨갔습니다. “응.?” “이렇게 일이 커졌잖아. 이미 물은 엎어졌고. 김예나 속일라면 사귀는 시늉 제대로 해야할껄.” 이현태는 모든걸 알고 있었나봐요. 이현태의 말에 피식 하고 웃더니 볼이 움푹 패이도록 담배연기를 빨아 들이는 구해찬이였어요. 구해찬의 입에서 알싸한 담배연기가 흩어져 나옵니다. “현태야.” “왜.” “그새끼 죽일까.”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어 놓고는 이현태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묻는 구해찬. 이현태 또한 주머니에서 꺼낸 담배 하나를 입에 물고는 불은 붙이지 않은채 피식 하고 웃어보입니다. “지랄하네.” “그럼 저 등신 울겠지?” “응.” 이내 이현태의 담배에도 빨간 불이 붙었어요. 나는 그 빨간 불을 멍하니 바라봅니다. 생각해보면 언니가 잘못한건 아니에요. 그렇다고 구해찬이 잘못한것도 아니구요. 누가 더 잘못했다고 잘잘못을 따질수 없는게 사랑이니까요. 나는 계단 난관에 살짝 걸터앉았습니다. 그러자 힐끔, 구해찬의 시선이 내게 다시 닿았어요. “아무튼 앞으로...” “........응?” “잘부탁해. 김예봄.” “...........” ... ............ “당분간만이라도..나 비참하지 않게.” 솔직히 그때까지만 해도 알지 못했어요. 오늘 이날이 얼마나 후회스러울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한테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게 될지. \집 “예나. 우리가 아무리 친구라지만 솔직히 난 예나 널 못믿겠어.” “뭐? 말 다했냐?” “아니. 정정할게. 널 못믿는게 아니라 니요리실력을.” “후라이팬으로 맞기 싫으면 닥치시지요.” 엄마가 나간 후, 구해찬과 나 그리고 황여민 이현태 언니. 이렇게 다섯은 지금 우리 집에 들어와 있어요. 그러니까 언니는 아까부터 맛있는 치즈떡볶이를 해주겠다면서 부엌에서 달그락달그락 거리고 있구요. 황여민은 그 옆에서 언니를 약올리며 깐죽대고 있어요. 이현태는 제 방에서 컴퓨터로 싸...싸 뭐였죠? 아 그래요! 싸이월드를 하고 있어요. “..........” “..........” 그리고 구해찬과 저는 어색하게 조금 떨어져서 쇼파에 앉아 티비를 보고 있습니다. 왠지 각자 따로 노는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다같이 집에 있으니까 뭐랄까 기분이 좋았어요. “김예봄.” 그때, 여전히 티비를 빤히 응시하면서 구해찬이 제 이름을 불렀습니다. “응?” “옆으로와. 떨어져 있지말고.” “응????” “안 잡아먹어.” 여전히 티비만 쳐다보면서 말해요. 하는수 없이 나는 쭈삣쭈삣 녀석의 옆자리로 엉덩이를 조심스럽게 옮깁니다. 순간 구해찬 특유의 애기냄새가 코 끝에 내려앉았어요. 기분 좋은 냄새에요. 나는 구해찬의 이 냄새가 좋아요. 어린아이같은. 깨끗한. 기분 좋은 냄새. “소감이 어때.” “응? 무슨 느낌?” “너같이 하찮은애가 나같은 대킹카랑 사귀는 소감. 비록 가짜 연인이긴 하지만 그래도. 어때.” “..............” ......너무나도 뻔뻔한 구해찬의 물음에 할말을 잃은 저는 입을 다물지 못하곤 구해찬을 바라봤어요.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는걸까요? 아무리 뻔뻔하다고는 하지만 자기 입으로 자기가 대.킹.카 라니요. 물론 구해찬이 잘난건 알아요. 인정하긴 싫지만 구해찬은 정말 잘생겼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뻔뻔한 왕자병은 정말 아니라고 본다구요! “왜. 영광이라서 대답도 못하겠어?” 제가 아무말이 없자 티비로 고정시켰던 시선을 옆으로 돌려 저를 바라보며 말하는 구해찬이였어요. 한마디로 이건 기가막힙니다. 기가막혀서 아무말도 할수 없다구요! “웃기시네!!!!!!!구해찬은 정말 뻔뻔해!!!!!!!!!!” 단순한 저는 아까일을 모두 잊어버리곤 구해찬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부엌에 있던 언니가 놀라 뛰쳐 나올만큼 말이에요. “뭐야. 니네 벌써 싸워?” 언니가 들고 있던 갈색 주걱에는 알수없는 형태의 빨간 고추장들이 엉켜 묻어있었습니다. 순간, 언니가 만든 떡볶이의 맛이 어떨까 하고 궁금해졌어요. “신경끄시지.? 남 연애하는거에.” 그 순간 구해찬은 제게 자연스레 어깨동무를 하고는 언니에게 쏘아붙이듯 말했습니다. “뭐? 이게 나 좋다고 할땐 언제고.” “지는. 싫다고 할땐 언제고. 이제와서 아쉽냐?” “드디어 미쳤네. 우리 해찬들” “너 내가 그거 하지말랬지.” “뭐? 해찬들~ 이거? 싫은데?” “아 진짜 저걸 그냥 확.” 구해찬이 일어서는 시늉을 하자 언니가 꺄르르 웃으며 부엌으로 쏜살같이 도망갑니다. 구해찬은 그런 언니의 뒷모습을 노려보다가 이내 허탈하게 웃으며 다시 쇼파에 털썩 하고 앉았어요. 그런 구해찬에게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엽니다. “해.찬.들.” “뭐?” 허업. 그러자 엄청나게 무섭게 쳐다보는 구해찬. “그게 뭐야? 해.찬.들” “하지마.” “응? 왜? 나쁜거야? 해.찬.들” “너 죽는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거야.” “응? 뭔데요 해.찬.들” “야 김예봄!!!!!!!!!” 얼굴이 벌개져서 소리를 꽥 지르다가 이내 제 머리를 자신의 옆구리에 끼고는 꽉 조르는 시늉을 하는 구해찬이였어요. 그러니까 일명 헤드락! 이라고 하죠? 이런 자세를. “구.구해찬 나 숨쉬기 힘들어. 그만. 그만해!” “잘못했어요. 오빠 해 빨리.” “켁켁 숨막히다니까.” “잘못했어요. 오빠 안해?” “자.잘못했어요 오빠!!됐지 빨리 풀어줘!!” 약간의 오바를 하자면 정말 숨이 멈출것같이 막혀왔어요. 그래서 구해찬의 말대로 어쩔수없이 ‘잘못했어요 오빠’라고 소리칠수밖에 없었지요. 그러자 만족스러운듯 저를 놓아주고는 다시 티비에 열중하는 구해찬이였어요. 해찬들이 도대체 뭐길래 저렇게 갈갈히 날뛰는건가요?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요. <17> “이현태! 빨리와. 둘이 먹다가 하나 죽어도 모를 김예나표 떡볶이 완성이다.” “둘이 먹다가 둘다 죽어도 책임 못질이 아니라?” 잠시후, 하얀 접시위에 한가득 담긴 빨간 떡볶이를 쟁반위에 올려놓고 거실쪽으로 걸어오는 언니. 떡볶이 위로 아지랑이처럼 모락모락 김들이 피어올랐어요. 그 뒤를 포크를 문 황여민이 졸졸 따라오고 있구요. 왠지 모르게 김예나표 떡볶이는 그럴싸 했습니다. 먹음직 스러웠거든요. “야 이현태 빨리 나오라고!” 언니의 고함소리에 컴퓨터를 하고 있던 이현태 또한 어슬렁 어슬렁 거실로 나왔고. 이윽코 우리 다섯은 떡볶이를 올려 놓은 탁자앞에 삥 둘러 앉았습니다. “자.” “응?” “포크.” 언니의 떡볶이가 무슨맛일지 궁금해서 얼른 포크를 집으려고 하는데, 그런 내손에 먼저 포크를 집어 쥐어주는 구해찬이였어요. 그것을 어색히 받아들고는 통통한 떡 하나를 포크로 꾹 집었습니다. 떡 사이로 삼지창 모양의 포크가 푹 박혀요. “미친거 아니야? 아 닭살.” 그런 구해찬의 모습에 언니가 인상을 찌푸리며 자신의 떡볶이를 입에 쏙 집어 넣었어요. 그리고 그때, 제일 먼저 떡볶이를 시식한 이현태가 조용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습니다. “미친건...” “.............” “이 떡볶이가 아닐까...?” 무슨 말도안돼는 소리를 하냐는듯한 표정으로 떡볶이를 오물오물 거리던 언니. 그러나 곧 언니의 표정이 순식간에 종이처럼 굳어져 가요. 그리고는 이내 울상을 짓더니 바로 화장실로 달려가는 언니였습니다. 나는 그런 언니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포크를 내려 놓았습니다. 언니에겐 미안하지만. 먹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에요. “예나 넌 아무래도 나중에 결혼해서 사랑받긴 글러먹었다.” 황여민 또한 나처럼 포크를 내려놓고는 리모컨을 만지작 거리며 말했어요. 언니는 그런 황여민의 말에 왠일인지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은채 조용히 자신의 떡볶이를 들고 부엌으로 갔습니다. 어쩐지 언니의 떡복이 맛이 어떤맛인지 조금은 알꺼 같았어요. “에이 배고픈데. 우리 피자나 시켜먹자! 잠깐만 내가 시킬께!” 우리집이 자신의 집인것처럼 아주 익숙하게 전화번호부를 뒤적이는 황여민, 이현태는 다시 일어서서 컴퓨터를 하러 갔습니다. 그리하여 거실에는 언니와 나, 그리고 구해찬밖에 남지 않게 되었지요. 왠지 모르게 어색한 분위기가 흐를때 즈음 언니가 거실바닥에 털썩 앉더니 구해찬을 향해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구해찬. 믿어도 되는거지?” 언니의 뜬금없는말, 구해찬의 시선이 천천히 언니에게로 닿습니다. “뭘.” “예봄이 좋아한다는거. 나랑 닮아서가 아니라 그냥 예봄이 자체를 좋아해줘야해. 알았지?” “지랄.” “그래도 난 너무 기분좋다. 친구 안잃어서.” “..............” “근데 예봄이 어디가 그렇게 좋았어?” 구해찬에게 다가가며 언니가 묻자 구해찬의 시선이 이번엔 내게로 머물렀습니다. 나는 녀석과 눈이 마주치기가 무섭게 고개를 푹 숙여요. 언니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양심이 쿡쿡 찔려왔어요. 어쩌면 세상에서 거짓말 하는일이 제일 힘든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순수한거.” “순수한거? 하긴 예봄이가 순수하긴해.” “난 그렇지 못한데. 함께 있으면 나까지 그렇게 될것만 같은,” “뭐?” “난 행복하지 못했는데, 행복해질것만 같은. 그래서 좋아.” 그순간은 말이죠. 정말이지 기분이 이상했어요. 왠지 모르게 기분이 이상했어요. 분명 내가 아닌 언니에게 하는말일지도 모르고, 아니면 대충 둘러대기 위한 말일지도 모르는데, 뭐랄까. 기분이 정말 이상했어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간에 그랬습니다. 그래서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나봐요. * * * * * * “왜 우리가 쫓겨 나야 하는거야?” 구해찬의 말에 동의한다는듯 한숨을 푹 쉬었습니다. 문득 5분전 우리를 밖으로 떠밀며 소리쳤던 언니의 말이 떠오릅니다. ‘안된다니까! 니네는 지금 한가하게 우리랑 있을 시간이 없어. 사귄지 2일밖에 안됬는데 지금 막 따끈따끈한 남녀가 이렇게 방해를 받으면 되겠어? 빨리나가! 나가서 데이트라도 좀 하고와. 구해찬 넌 임마 남자가 무드도없이! 빨리 안나가?’ ... ......... “하여간. 못말린다니까.” 구해찬 또한 언니를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피식 하고 웃더니 손에 들린 열쇠 고리를 빙빙 돌리는 구해찬. 그순간 나는 그 열쇠가 무슨 열쇠인지 궁금해져왔어요. 집 열쇠일까요? 아니면 오토바이 열쇠일까요? 영양가 없는 고민에 빠지며 아파트 입구에서 나오자 시원한 바람이 우리사이를 지나갔습니다. 그건 정말 기분 좋은 바람이였어요. “우리 이제 어디가지?” “응? 그러게” 사실은 지금 어디 가는것에 대한것보다, 그것보다 언제까지 이렇게 거짓말을 해야하는가에 대해서 더 궁금했어요. 언제까지 이렇게 언니를 속여야 하는걸까요? 막막한 기분이 들어요. 언니에게 너무 미안하기도 했구요. 타악. 몇걸음이나 갔을까요. 순간, 구해찬의 따듯한 손이 제 손을 잡았습니다. 그건 정말 눈 깜짝 할 새에 일어난 일이였어요. 너무 놀라 손을 빼려고 하자 그런 제 손을 더욱 꽉 잡는 구해찬이였어요. “가만히 있어. 저새끼들 위에서 보고 있잖아.” 구해찬의 말에 슬그머니 고개를 올렸어요.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베란다에서 우리들을 쳐다보고 있는 세명이 보였어요. 마음 같아선 언니에게 전화라도 걸어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아무리 커텐으로 그렇게 가려도 황여민에 삐쭉 내민 고개는 가려지지 않는다고 말이에요. 휴. 하고 한숨이 절로 흘러나와요. 하는 수 없이 나 또한 구해찬의 말랑말랑한 손을 잡아요. 뭐랄까. 구해찬의 손은 되게 크고 따듯했어요. 편안하고 포근한 느낌. 그러니까 이 손을 잡고 있다는것 자체만으로도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는, 그런 느낌 있잖아요. “근데 구해찬. 이제 뭐해 우리?” “잠깐만. 담배 한 대 좀 피고.” 다른 반대편 쪽 손으로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입으로 담배 하나를 빼서 물고는 다시 주머니에 담배각을 집어 넣습니다. 그리곤 불을 붙이려는지 잠시 내 손을 잡고 있던 손을 빼려고 하는 구해찬. 나는 그런 구해찬이 손을 빼지 못하도록 힘을 꽉 주었어요. “..........” 그러자 왜 그러냐는듯 쳐다보는거 있죠? “담배 몸에 되게 안좋대.” “근데?” “나 미국에 있을때, 옆집 살던 할머니도 담배 많이 피셔서 몸 나빠지셨었어” “근데요.” “피지마. 구해찬씨. 나는 간접흡연 하기도 싫어!”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던 구해찬은 이내 하는수 없다는듯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바닥으로 떨어트렸어요. 간만에 예쁜짓하는 구해찬이에요. “고마워!” “김예봄.” “응?” “너 한국와서 영화관 간적 있어?” 영화관이라는 말에 두눈을 동그랗게 떠보였어요. 미국에서도 잘 가지 않은 영화관을 한국와서 갈 리가 있나요. 고개를 도리도리 젓자 오케이 라면서 장난스럽게 대답하는 구해찬. “가자.” 그리고는 갑작스럽게 꽉 잡은 제 손을 이끌었어요. 구해찬은. “응? 어. 어딜??” “영화관말야 이 어리버리야.” \영화관. 정말로 구해찬이 절 데려온 곳은 영화관이였던거 있죠? 지나가면서 몇 번 보긴 했지만 이렇게 영화를 보러 올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 못했던 터라 저는 바보처럼 입을 헤 벌리고 이리저리 신기한눈으로 둘러 봅니다. 큰 포스터들이 주렁주렁 메달려 있고, 영화관 앞에 마련된 매표소에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잇었습니다. 그리고 고소한 팝콘 냄새가 가득했구요. “구해찬! 정말 우리 영화 보는거야?” “그래. 시간 떼울때도 없는데 영화나 보자. 뭐볼래?” “응? 난 아무거나 다 좋아!” 느슨했던 심장이 다시 빨라집니다. 너무 떨리고 긴장되고 기대됬어요. 한국에서 보는 첫 영화라니. 왠지 모르게 너무 기뻤답니다. 방글방글 웃으며 대답하는 저를 내려다 보던 구해찬은 저렇게 좋을까. 라는 표정으로 나를 다시 한번 쳐다 보다가 이내 매표소 쪽으로 걸음을 옮겨요. “입 떨어지겠다. 좀 다물어.” “응? 구해찬 어디가!” “표 사러 갔다 올게 기달려.” 라고 말하곤 말이에요. 나는 구해찬이 사라진 쪽을 바라봤습니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 구해찬은 유독 튀고 있었어요. 이렇게 보고 있으니 어쩌면 똥꼬집에 제멋대로에 엉뚱한 구해찬이지만, 꽤나 근사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만큼 구해찬은 근사해보였거든요. 아. 이럴게 아니라 구해찬이 오기전에 팝콘과 콜라를 사와야겠어요. 팝콘과 콜라가. 아 저기서 파네요!. 나는 주머니를 뒤적거려 지폐 몇장을 꺼내곤 팝콘을 파는 곳으로 걸어갔습니다. 매표소와 매점이 조금 떨어진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제 걸음은 조금씩 빨라졌어요. 구해찬이 오기전에 빨리 사와야 했으니까요. 그런데. 너무 빨리 걸었던 탓일까요? 타악- 하고 매표소쪽으로 걸어오는 누군가와 부딪히고야 말았습니다. “아 씨발” 동시에 살벌하게 그사람의 입에서 욕이 흘러나왔어요. 나는 재빨리 고개를 숙였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죄송하다면 다야? 니 눈엔 지금 이거 안보여?” 신경질적으로 소리치는 남자의 목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들었어요. 부딪히면서 콜라가 엎질러진 모양입니다. 남자의 하얀 셔츠에 콜라가 쏟아져 바닥으로 뚝뚝 콜라가 방울방울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죄. 죄송해요. 어떡해..세탁비 드릴께요. 정말 죄송해요.” “내가 지금 너한테 세탁비나 받게 생겼어? 엉?” 한쪽 손가락으로 제 머리를 툭툭 내리치는 남자. 고개를 푹숙이고는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눈물이 나올것만 같았습니다. “죄송해요..” “돌겠네.” 그순간. 나를 향해 흘러나온 음성은 앞에 있던 남자의 것이 아니였습니다. 익숙한 목소리였지요. 그 목소리에 나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것 같은.. 바보같은 눈으로 고개를 들어 구해찬을 바라봅니다. 구해찬이였어요. 한손에 영화 티켓 두장을 들고는 삐딱히 이쪽을 노려보는 구해찬 이였어요. “너 방금 뭐라고 짓껄였냐.” 그리고는 이내 무섭게 우리쪽으로 오더니 남자 앞에서 삐딱히 서서 낮은 음성으로 입을 열었습니다. 그순간은 정말이지 구해찬이 아닌거 같았어요. 평소 개구진 모습과는 180도 아니 360도 달랐거든요. “뭐?” “방금 뭐라고 짓껄였냐고.” “세탁이나 받게 생겼냐고 했다. 왜.” 아무래도 구해찬의 기에 눌린듯 아까와는 좀 다른 목소리로 대답하는 남자였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쪽으로 닿는게 느껴져요. “그전에.” “뭐?” “그전에.” “씨발이라고 했....” 그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말릴수가 없었습니다. 눈 깜짝할 새에 남자의 얼굴을 단단한 주먹으로 내리치는 구해찬. 사람들의 술렁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나는 너무 놀라 그대로 돌처럼 딱딱히 굳어졌어요. "죽고 싶지 않으면. 건들지마. 알아 들었어?“ 분노 섞인 목소리로 쓰러져버린 남자를 향해 말해요. 그리곤 제 손을 꽉 잡고 이끌었죠. 하지만 나는 꿈쩍도 하지 않았어요. 그리곤 구해찬을 노려보았죠. 이건 아니에요. 아무리 구해찬이 오늘 화가나는 일이 있었어도. 언니 때문에 상처를 받았어도. 속상했어도. 이렇게 애꿎은 사람한테 화풀이 하는건 아니라구요. 그리고 이 일은 분명 내가 잘못한 일아라구요. “너 깡패야?” “뭐.?” “구해찬 너 깡패냐구. 내가 잘못한건데 왜 사람을 때려? 왜 애꿎은 사람한테 화풀이하냐구. 너 이렇게 형편없는 애였어? 구해찬은 왜 자기 생각밖에 못해?” 눈물 고인 눈으로 구해찬을 힘껏 노려보다가 소리를 꽥 질러 버렸어요. 왜였을까요. 너무 화가 나서 참을수가 없었습니다. 어이없다는듯 쳐다보는 구해찬의 눈을 피하고는 나는 구해찬에게 맞아 쓰러져버린 그 남자쪽으로 다가갔어요. “죄송해요. 정말 죄송합니다.” 얼마나 세게 때렸는지 입술이 터져 있는 남자였어요. 고여 있는 피를 닦아주어야 겠다는 생각에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가방을 뒤적이는데 남자가 신경질적으로 일어섰습니다. “재수가 없으려니까.” 그리고는 구해찬을 노려보는것 대신 나를 노려보고는 모여든 사람들 사이로 빠져 나갑니다. 손에 든 휴지를 가만히 내려다 보다가 나는 일어섰습니다. <18> “김예봄.” “..............” “김예봄!!!!” 그리곤 뒤돌아 서서 무작정 걷기 시작했어요. 구해찬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지는듯 싶다가 이내 녀석의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 지더니 내 팔목을 타악 하고 낚아 채는 녀석이였어요. “놔줘 구해찬.” “김예봄. 너 어디가.” “구해찬이랑 더 이상 있고 싶지 않아. 구해찬은 이기적이야. 구해찬은 못됐어. 구해찬은 나빠.!!!!!!!!” “김예봄.” “너한테..정말 실망이야.” 그러자 한숨을 쉬며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리다가 “그럼 화 안나? 너한테 욕하고 니 머리 툭툭 치는데. 화 안내?” 구해찬도 조금은 화난듯 신경질적으로 말했어요. 말도 안돼는 변명이였습니다. 구해찬의 지금 말은. 거짓말 이였어요. 구해찬은 내가 그런일을 당했다는것에 대해서 화난게 아니라. 원래부터 이곳에 오기 전부터 화가 나있었던 거에요. 내가 아닌 언니 때문에. 화가 나있었던 거라구요. 그런데 구해찬은 거짓말로서 자기를 합리화 시키고 있어요. “니가 왜? 니가 왜 화를 내?” “뭐?” “구해찬. 나 김예나 아니야. 김예봄이야.” “..........” “나 언니가 아니라구. 구해찬은 왜 거짓말해? 나 때문에 화가 난게 아니잖아. 왜 애꿎은 사람한테 화풀이를 하냐구.” “............” “갈게. 부탁이니까 그냥 가게 내버려 둬.” 사실은 잘 모르겠어요. 내가 왜 이렇게 화가 나는지. 구해찬은 이번엔 다시 뒤돌아 서는 나를 붙잡지 않았어요. 한쪽 어깨에 가방을 메고는 영화관을 빠져 나옵니다. 그 순간까지도 화가 가라앉지 않아요. 미국에서의 나는 화를 잘 내지 않는 편이였어요. 화를 내는걸 싫어했었거든요. 그런데 이상하게 구해찬에겐 이번이 2번째로 화내버리고야 말았네요. 왜 전 구해찬 앞에선 늘 이렇게 되는걸까요? 사실 그보다 더 궁금한건. “...........” 내가 왜 이렇게까지 화가 나는건가 였어요. 도대체 왜 이렇게 화가 나는 걸까요.. \집 “요즘 예봄이 자주 외출하네.?” 집에 들어오자마자 신발장에다 신발을 벗으려는 나를 향해 엄마가 말했습니다. 그러자 언니가 방에서 쪼르르 나와서 능글맞은 표정으로 소리쳐요. “으응 그럴일이 있거든. 우리 예봄이가!” “응? 무슨일인데?” “엄마는 몰라도 되셩. 우리 자매들끼리의 비밀이니까 그치 예봄아?” 왠지 모르게 언니가 들떠 보이는 느낌이였어요. 그래서 나는 어쩔수 없이 고개를 끄떡이고는 신발을 마저 벗었어요. 신발을 벗는 그 순간까지도 아까의 구해찬이 마음에 걸리기 했지만 말입니다. “엄마. 저 오늘은 피곤해서 먼저 잘께요.” “응? 왜 무슨일 있어?” “아니요 아니요! 그냥 좀 피곤해서요! 죄송해요.” 저는 신발을 다 벗고 엄마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는 제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런 저를 언니는 졸졸 쫓아왔어요. “김예나! 예봄이 쉬게 얼른 안나와?” 라는 엄마의 말에. “알았어. 잠깐만 비밀애기할꺼야!” 라는 의미심장한 대답을 던지곤 말이에요. 이내 달크닥 하고 문이 잠기자 언니는 침대에 앉아 있는 제 옆으로 다가와요. “예봄아!!어땠어? 오늘 재밌었어?” “응...?? 아..응” “다행이다. 구해찬이 너 울리면 나한테 말해 아주 내가 본떼를 보여줄께!” 주먹을 쥐는 시늉을 하면서 소리치는 언니. 그냥.. 오늘 구해찬 때문에 울었어. 구해찬이 나 울렸어 언니. 라고 확 언니에게 일러버릴까요? 구해찬 그럼 언니한테 한소리 듣겠죠? “아니야. 그런거!” “응응 피곤하지? 푹 쉬어. 언니가 안마해줄까?” “어? 아니! 아니 괜찮은데!” 괜찮다는 제 말에도 언니는 막무가내로 저를 돌리더니 제 어깨를 조막만한 손으로 이리저리 주물르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하나도 시원하지 않았습니다. 아프기만 했어요. 그렇지만 그런말을 할수 없었던 저는 잠자코 언니의 안마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언니의 안마가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언니가 조심스럽게 제게 말해요. “예봄아..언니 부탁이 있는데!” 살짝 귀여운 울상을 지으며 말이죠. “응? 부탁?” “응! 부탁!” 무슨 부탁이길래 이러는 걸까요! 언니는 두손을 모으며 간절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왠지 모르게 불길한 예감이 드는건 왜..일까요? 침을 꼴깍 삼키곤 흔들리는 눈으로 언니를 바라봐요. “무슨...부탁?” “언니가 내일 성현이랑 데이트가 있는데! 정말 정말 예전부터 남이섬 놀러가기로 약속 도장까지 꼭꼭 찍었는데!” “...응?” “그런데 내일 학교가는 날인걸 깜빡했어. 그래서 그런데...예봄이 니가 이번 한번만 더 나인척 하고 학교 갔다오면 안될까? 그냥 출썩 도장만 찍어 응? 부탁할.” 언니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다가. 이내 이해할수 없는 부분이 생겨서 나는 언니의 말을 끊고는 물었어요. “하지만 언니. 내일은 일요일인데??” “알아. 그런데 보충수업겸 자습이 있거든. 사실 오늘도 놀토지만 가야했는데 안갔잖아. 근데 너 오기전에 선생님한테 전화온거 있지? 내일도 안오면 알아서하라구.” “응..? 하지만 언니 황여민하고 이현태. 구해찬도 가지 않았잖아” 언니는 어느새 제 앞으로 와서 제 두손을 꼭 잡고는 눈을 반짝였어요. “개넨 다른반이라서 모르겠지만. 푸하하하 적어도 구해찬은 이제 내일가면 엉덩이 엄청 맞을꺼다. 아무튼 부탁좀 할게. 응?응?” 다른때 같았으면 응 언니 알겠어 라고 망설임없이 대답하며 언니의 부탁을 들어줬을 저였지만 이번만큼은 망설일수밖에 없었어요. 또 다시 남을 속이는것이 걸리기도 했지만, 어쩌면 그건 핑계와 변명이였고. 아마도. 지금 제 마음속에 가장 크게 걸리는것은. “구해찬도..와?” 구해찬이겠지요. 이렇게 뻘쭘한 상태에서 구해찬과. 그것도 학교에서 마주친다면. 윽 그건 뻘쭘의 그 자체라구요.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언니의 입에서 흘러나올 다음말을 기다렸습니다. “갠 그래도 맨날 뺀질거리면서 안나와.” “아 정말..?” 그건 정말이지 다행중 다행이였습니다. “아! 아니다 나올려나? 예봄이가 가니까! 그럴게 아니라 지금 문자해야겠다! 내일 나오라고” “아니야! 아니야 언니! 나갈테니까 대신 구해찬에게 아무말도 하지 마” “응.? 왜? 둘이 싸웠어..?” “아..아니 그건 아니라..” “그럼?” 호기심 가득한 언니의 눈동자를 요리조리 피하며 무어라 둘러댈까 고민을 하던 저는 일단은 아무렇게나 둘러되야겠다 라고 생각하고는 말도 안돼는 말을 꽤나 논리정연한척 늘어 놓았습니다. “아 그게 음..그러니 구해찬이 날 대하는 태도가 언니랑 다르면 다들 의심할지도 모르잖아. 차라리 조용히 가서 자습하고 오는게 낫지 않을까?” 그러자 무언가를 생각하는듯 하다가 이내 박수를 치며 언니가 고개를 끄떡였어요. “아. 그런가? 그래! 그렇겠다. 아구 이쁜 예봄이. 정말 고마워 예봄아! 난 예봄이밖에 없어!!” 늘 느끼는 거지만 언니의 품은 엄마 품 못지않게. 아빠 품 못지않게 따듯해요. 나를 꽉 껴안은 언니의 품에 안겨서 생각했습니다. 정말이지 한국에 와서 나는 거짓말쟁이가 되가는거 같다구요. 이러다가 정말 나중에 벌 받으면 어쩌죠? \다음날. 오늘 아침은 정말 바빴어요. 언니는 남이섬 갈 준비에. 저는 학교갈 준비에 바빴지요. 엄마에게 들켜선 안된다면서 재빠르게 둘이 동시에 나갔을땐 얼마나 웃겼는지 몰라요. 아무튼간에 지금 저는 정말 오랜만에 입는 언니의 교복을 입고 가방을 메고 학교로 향하는 보도블럭을 차근차근 밟고 있는 중이랍니다. 김예봄이 아닌 김예나로써 하는 등교지만 어찌 되었든 학교를 간다는건 무지 기쁜일이에요. 소망이 있다면 한국의 학교에 다니고 싶다는거에요. 하지만 그럴수 없다는걸 그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건 말 그대로 소망으로 남을수밖에 없죠. 이루어질수 없는 소망. 말이에요. “어? 예나야!” 드르륵, 거리는 문을 열기가 무섭게 앞에 서있던 아이가 저의 이름을. 아니 언니의 이름을 부릅니다. 인기척이 나자 공부하고 있던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뒷문쪽으로 쏠렸어요. 그순간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느낌에 고개를 푹 숙이고는 오랜만에 온 교실에서 서툴게 언니의 자리를 찾았어요. 그러니까 언니의 자리가 어디였지요.? “예나야!” “네.? 아니. 응?응?” “교무실부터 가봐. 너도 오면 교무실로 일단 오라고 하셨어” 안경을 한쪽 손으로 올리곤 말하는 아이의 말에 저는 고개를 끄떡이고는 닫지 않은 문으로 교실을 나왔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저 아이는 분명 반장이였던거 같은데. 아무튼간에 저는 가방을 내려 놓지 못한채 교실에서 나와 교무실을 다시 찾습니다. 그러니까 교무실은 또 어디였죠? 왠지 모르게 한참을 찾을거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요. \교무실. 제 추측과는 다르게 교무실이 바로 앞에 있어서 금방 찾을수 있었어요. 그런데 왜 선생님은 저를. 아니 언니를 교무실로 부르셨을까요? 알수없는 불안감에 심호흡을 하고는 드르륵 교무실 문을 조심스레 열었습니다. 그리고 보인 광경에 저는 입을 떡 하고 벌릴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니까 왜. 왜하필 이곳에. “왠수들, 줄줄히 들어오는구만.? 김예나 넌 거기있어. 일단 구해찬부터 혼나야하니까” 구해찬이 있는거죠? 분명 구해찬은 뺀질거린다고 안온다고 했잖아요!. 언니가 혹시 연락을 한걸까요? 복잡해오는 머리로 아직은 보기 껄끄러운 구해찬을 바라봤습니다. 엎드려 있는 구해찬. 선생님의 손에는 두툼한 두께의 몽둥이가 들려져 있었어요. 구해찬은 힐끔 나를 보더니 다시 앞으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타악- 타악- 타악- 선생님 손에 들린 몽둥이가 구해찬의 엉덩이를 내리쳤어요. 보기만 해도 아파보이는데 구해찬은 끄떡없이 선생님의 매를 다 맞고는 일어섰어요. 그리곤 다시 저를 쳐다봤죠. “김예나. 이제 너 일로와.” 서. 설마 저도 저렇게 엉덩이를 맞는건가요? 구해찬을 다 때린 몽둥이를 휘저으며 이쪽으로 오라는 손짓을 하는 선생님의 모습에 저는 돌처럼 딱딱히 굳어져갔어요. 제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 하는것중 하나가 주사와 매였다구요. 선뜻 갈 용기가 나지 않아 머뭇머뭇 거리자 선생님이 다시 한번 소리치셨습니다. “빨리안와?” 라고 말이에요. 그제서야 저는 금방이라도 울듯한 표정으로 쭈삣거리며 그곳으로 다가갑니다. 구해찬 옆에 서자 구해찬 특유의 향기가 코 끝에 내려 앉았어요. “구해찬 넌 나가봐.” 제가 다가오자 선생님은 구해찬을 돌려보냈어요. 그러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구해찬은 교무실을 나가버렸습니다. 쾅 하고 조금은 신경질적이게 문을 닫으며 말이에요. 구해찬은 제가 김예봄인걸 알고 있을까요? 아니면 김예나라고 생각하고 있는걸까요. 녀석의 뒷모습을 보며 문득 궁금해져왔어요, “너. 내가 다신 보충 빠지면 가만히 안둔댔지. 너희들 쌍으로 지금 뭐하는짓이야? 어제 너희 둘밖에 안왔어! 알아들어? 전원 출석할수 있었단말이야!” 녀석이 나간 자리를 빤히 쳐다보다가 저는 이내 무서운 선생님의 말에 얼른 고개를 돌려 숙였어요. 그 리곤 모기만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죠. “죄송합니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너도 구해찬처럼 자꾸 뺀질대면 너도 다음번엔 때릴꺼야 알았어?” “네? 네!!!!!” 맞지 않았다는것에 대한 기쁨에 우렁차게 대답하지 하여간 이라며 혀를 끌끌 차시는 선생님이였어요. 아무렴 어때요. 매를 맞지 않아도 되니까. 그것만으로도 제겐 정말 큰 행복이라구요. 선생님께 구십도로 인사를하고는 잔뜩 겁먹어 움츠렸던 어깨를 폈어요. 그리고는 아까보다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교무실 문을 열었어요. 걱정 되긴 했죠. 반으로 가면 구해찬과 마주칠텐데. 사실 내심 구해찬이 저를 언니라고 생각했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고. 어제일 때문에 뻘쭘해서 눈도 마주치지 못할꺼 같기도 했고. 아무튼간에 머리가 복잡했어요. 그래서 한숨을 푹 쉬고 교실로 향하려는데. 순간 눈앞에 누군가의 길다란 팔이 보였어요. 그 누군가는 그 길다란 팔로 저를 지나가지 못하게 막아요. “김예봄...” 역시. 구해찬은 한번에 제가 김예나가 아닌 김예봄이라는걸 알아차렸나봐요. “...........” “김예나 대신 학교 온거야?” “...........” “후..왜 말안해.” “.............” “너 계속 나한테 화낼꺼야?” “..........” 아무말없는 제 모습에 깊은 한숨을 쉬는 구해찬이였어요. 사실 무슨말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어색하고 뻘쭘하다는 생각이 더 컸거든요. 그래서 입이 잘 떼어지지 않았어요. “어젠 미안해. 잘못했어.” “............” “미안하다니까. 화내서 진짜 미안해 앞으론 안그럴게. 어?” 그런 저에게 구해찬은 옅게 웃으며 두손을 비는 시늉을 해요. 그모습에 웃음이 나올뻔 했지만 꾹 참고는 고개를 드는데. “잘못했어요 누나. 응?” 고개를 비슴드히 숙이고는 나를 향해 어린아이처럼 웃는 구해찬의 모습에 결국 피식 하고 웃음을 터트리고야 말았습니다. “화 푼거다. 응?” 어쩌다가 이렇게 되버렸을까요? 김예봄 정말 바보. 난 정말 바보라구요.. 나는 어느새 구해찬의 옅은 웃음 하나에도 금방 화가 풀려버릴만큼 바보가 되버렸어요. 정말 어느새... ----------------------------------------------------------------------------- ★한개의 꼬릿말이 큰 힘이 됩니다★★한개의 꼬릿말이 큰 힘이 됩니다★ ★한개의 꼬릿말이 큰 힘이 됩니다★★한개의 꼬릿말이 큰 힘이 됩니다★ ★한개의 꼬릿말이 큰 힘이 됩니다★★한개의 꼬릿말이 큰 힘이 됩니다★ 중반부 시작이지요♪ 헬리만 너무 올려서ㅜㅜ위험한남자 속도 연재가 늦어지고 있는점 죄송해요. 헬리는 40편정도가 완결이라서 금방금방 내야겠다는 생각에. 마음과는 다르게 위험한남자에 소홀해 지고야 말았네요. 이해해주세요!!!ㅜㅜ* 그리고 이건 팬까폐 특권 소설이잖아요! 그래서 그런가? 많은분들이 눈팅 안하셔서 너무너무 좋아요*_* -------------- §가그린§ (godqhrgkehfhr@hanmail.net) 플티〃가그린〃소설 (http://cafe.daum.net/Gagrin) -------------- ※헬리오토로프는 5월 24일의 탄생화로 사랑이여 영원하라 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19> \교실 “구해찬” “어 왜.” “그런데 있지.” “어어 왜왜.” “학교엔 왜 온거야?” 정말이지 진지하게 물었습니다. 정말로 궁금했거든요. 구해찬은 학교에 도대체 왜 온걸까요? 그도 그럴것이 구해찬은 제 옆에 떡하니 앉아서 아까부터 펜을 굴리거나 펜 뚜껑을 끼었다 뺐다 하는것과 같은 의미없는 짓들만 하고 있었거든요. 모두 공부를 하고 있는데 구해찬 혼자만 딴짓을 하고 있어요. 가만히 앉아 있는걸 견디지 못하는 어린아이처럼 계속해서 부산스럽구 말이에요. “내 맘.” 물어본 제가 잘못이였지요. 구해찬에게 무얼 기대하겠어요.? 그냥 상대를 안하는 편이 훨씬 나을꺼에요. 저는 구해찬에게 두었던 시선을 다시 책으로 돌렸습니다. [name] 이라는 미국에서 이곳에 올때 가져온 책이였어요. 사실 자습이라고 해서 저 또한 딱히 구해찬처럼 할 일이 없었기에 책을 읽기로 한거지요. 한 장한장 책을 넘기며 열심히 읽고있는데 누군가의 시선이 빤히 제게로 닿았습니다. 누구냐구요? 그야 당연히. “뭘봐 구해찬?” 제 옆에서 턱을 괴고 있는 구해찬이였죠. “나도 그거 읽다가 만 책이거든.” “...응?” “한 반정도.” “푸...푸하하하.” 너무나도 당연하게 말하는 구해찬의 모습에 저는 결국 웃음을 터트리고야 말았습니다. 조용한 교실에 제 웃음소리가 가득 울려 퍼지자 아이들의 시선이 제게로 향해요. 그제서야 저는 입을 막고는 고개를 수그렸습니다. 그런데도 웃음이 멈추지 않아요. “왜 웃냐.”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한쪽 눈썹을 찡그린채 제가 물어요. 나는 당연하다는듯 대답했습니다. “웃기니깐.” “왜지?” “구해찬은 씨크릿도 씨클이라고 했던 사람인데. 영어로 된 이 책을 어떻게 읽었다는 말이야? 너무 터무니 없는 거짓말이잖아 그건!” “.........." 그러자 살짝 나를 흘기는 구해찬이였어요. 하지만 사실은 사실이잖아요! "좀 그냥 그러려니 넘어가주면 안되? 신분 상승좀 해볼려고 했더니. 정곡을 찌르네. 못된 기지배." 신분상승? 말도 안돼는 말을 하며 그제서야 다시 고개를 돌리는 구해찬. 저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니 제가 다 민망해지잖아요. 구해찬은 하여간 사람 민망하게 하는데 뭔가 있다니깐요. 천천히 손으로 책장을 넘기며 읽는데. 다시 한번 구해찬의 시선이 빤히 제게 닿아요. 구해찬 때문에 신경쓰여서 책을 읽지 못할만큼 빤히 말이에요. “구해찬 또 왜!” “뭐가?” “자꾸 쳐다보잖아!” “내가 언제.” “뭐??” “생사람 잡지 좀 마.” 그리고는 책상위에 그대로 엎드려 버립니다. 그순간 나는 생각합니다. 구해찬은 정말 바보가 틀림없다구요. 휴 하고 한숨을 내쉬고는 이제 정말 집중해서 읽자! 라는 생각으로 다시 책으로 시선을 고정시켰습니다. 그러나. 툭툭- 휴.. 아무래도 오늘 책 읽기는 틀린거같아요. 또 다시 구해찬이 볼펜 뚜껑으로 저를 쿡쿡 찔렀거든요. 이번에는 저 또한 구해찬의 표정을 흉내내며 훽 고개를 돌렸습니다. “구해찬!!!또 왜. 왜!” “야...” “왜! 왜요 왜!” “나.....” “............” “배고파.” 내 눈치를 살살 보면서 개구진 표정으로 구해찬이 말해요. 구해찬을 누가 말리겠어요. 나는 다시 한번 한숨을 쉬고는 책을 덮었습니다. 그리고는 소곤소곤 구해찬의 귀에다가 중얼거렸습니다. “근.데.요?” 그러자. 우리 구해찬은 눈썹을 팽 찡그리네요. 약올르지? 히히. 혼자 장난치고는 혼자 즐거워하며 혼자 꺄르르 입을 막고 웃는 멍청이 김예봄. “또.라.이.” “...이씨.” 그런 나를 향해 중얼거리듯 말한 구해찬의 말은 정말이지 다시 생각해봐도 충격이였습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또라이라니요. 내가 또라이라면 구해찬은 더 왕왕더더또라이 라구요!. 하지만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은채 입을 합 다물었습니다. 왠지 구해찬에게 왕왕더더또라이 라고 말한다면 맞을수도 있겠어 라는 걱정에서였어요. 자세히 말하진 않았지만 어제의 구해찬의 화난 모습은 그만큼 무서웠거든요. 가슴이 콩닥콩닥 거릴만큼 무서웠다구요. “뭐 먹으러 가자.” 다시 한번 나를 쿡 찌르며 말하는 구해찬. 저는 구해찬을 약올릴 심정으로 얄밉게 혀를 쏙 내밀고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싫어! 메롱. 구해찬이나 먹으러가” “배 안고파?” “응! 전~혀 안고파!” 꼬르륵. 하지만 그때, 구해찬과 저 사이에 메아리처럼 울렸던 그 소리, 꼬.르.륵. 나는 허겁지겁 배를 부여잡아 보지만 구해찬은 이미 들은모양인지 피식 하고 웃어보여요. 거짓말 한 벌 받나봐요. 이게 무슨 개..망신 인가요? * * * * * “이렇게 막 나와도 돼?” 결국 우리는 꼬르륵 거리는 배를 채우기 위해 몰래 교실을 나왔습니다. 구해찬의 말을 빌리자면 이건 땡땡이래요. 그러면서 구해찬은 땡땡이는 나쁜애들만 하는거라느니, 너도 이제 순수한사람이 아니라니 뭐라니. 마구 저를 놀렸어요. 그래도 아무렴 어떤가요? 솔직히 저도 지금은 참을수 없을만큼 배가 고프다구요! “김예봄, 우리 스파게티 먹으러 갈래?” “스파게티? 응! 스파게티 먹으러 갈래!” 사실 오랜만에 스파게티를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었거든요. 그런데 제 맘을 꼭 알아 맞춘 구해찬이 신기해서 신난 목소리로 대답했어요. “하여간....” “하여간 뭐어?” “먹는거 좋아한다구 임마.” 장난스레 제 머리를 한쪽손으로 꾸욱 누르곤 웃어요. 왠지 모르게 분했지만 나는 잠자코 있습니다. 맛있는 스파게티가 두 눈에 둥둥 떠다녔거든요. 치즈 스파게티를 먹을까요. 아니면 크림 스파게티를 먹을까요? 생각만 해도 신이나요.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구해찬을 따라가자 구해찬은 아무래도 확실히 그런 제가 우스운듯 피식 하고 웃어요. 웃어도 좋아요. 지금은 제 눈엔 스파게티밖에 안 떠다니거든요! 다른건 하나도 안보인다구요. \쏘렌토 정말 많은 고민을 한거 같습니다. 치즈스파게티를 먹을지 크림 스파게티를 먹을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러니까 앞에 앉아 있던 구해찬이 슬슬 신경질을 낼때쯔음 결국 치크 스파게트로 결정을 했어요. 음료수는 레몬에이드로 시켰구요. 구해찬은 해물스파게티와 콜라를 주문했습니다. “야. 너 지금.” “응? 나 왜요?” “스파게티 못먹어서 죽은 귀신 붙은애 같아. 진짜 미친거 아냐?” “구해찬! 꼭 그렇게 말을 해야겠어?” 아주 구해찬은 태클쟁이에요. 맨날 허구헌날 태클만 건다구요! 못돴어요. 못됬어. “누나. 아예 접시까지 씹어 먹지 그러세요...?” 우적우적 스파게티를 입에 넣고는 냠냠 씹어대는 저를 보며 어처구니가 없다는듯 말하는 구해찬이였습니다. 그러니까, 저게 저렇게 다 들어가? 이런 표정이였지요. 하지만 억울하다구요. 전 그렇게 많이 입에 넣진 않았다구요. 그저 적당한 정도만 넣었는데... 왜 구해찬의 표정은 저를 괴물 취급 하고 있는거죠? “구해찬! 난 평소처럼 먹는것 뿐이라구. 내가 구해찬 앞에서 막 내숭 떨었으면 좋겠어? 이렇게 스파게티면 하나씩 이렇게 먹었으면 좋겠냐구!” 괴물 취급 당하는게 속상해서 한마디 하고는 다시 후루룩 스파게티 면을 입에 넣었어요. 기가 막히다는듯 저를 보며 허 하고 웃음을 터트리는 구해찬. 그러다가 순간, 손을 제게로 내미는 녀석이였습니다. 한쪽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제 입가에 묻은 스파게티 소스를 문지르듯 닦아냅니다. “알았으니까. 묻히지나 말고 먹지 그래?” “아. 고! 고마워!” 솔직히 말하면 그때 정말 민망했어요. 쥐구멍이 있으면 제 큰 몸을 꾸역꾸역 접어 집어 넣고 싶을 만큼 말이죠. 이제는 절대 안묻히고 먹어야 겠다 라는 생각으로 조심스럽게 다시 스파게티를 입에 넣었습니다. 그러자 다시 한번 구해찬이 저를 불러요. “김예봄.” 이번에도 또 스파게티 소스가 묻은걸까요.? 저는 재빨리 입가를 닦아냈습니다. 하지만 손에는 아무것도 묻어 나오지 않았어요. 그럼 구해찬은 저를 왜 부른걸까요? “응? 왜?” “나 눈에 지금 뭐 들어갔나봐.”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는 구해찬. “어? 정말?! 내가 불어줄까?” 저는 정말로 구해찬의 눈에 들어간 먼지를 불어 줄 작정으로 살짝 몸을 들어 올리렸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으로 들려오는 장난끼 가득한 구해찬의 말에 그대로 우스꽝스럽게 정지 자세가 되버리고야 말았어요. “예뻐..” “........어?” “김예봄 니가, 지금 예뻐 보인다고 임마.”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습니다. 놀란 심장은 도저히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어요. 거울로 보진 않았지만 아마 지금 제 얼굴은 그 어느때보다, 그러니까 언니가 어제 만들어 주었던 떡볶이보다 더 빨개져 있을게 분명해요. 얼빠진 표정으로 저는 구해찬을 바라보았습니다. 쿵쾅쿵쾅. 점점 커져가는 심장소리를 구해찬이 들을까봐 조마조마 하면서 말이에요. “뭐...?” 얼굴이 화르륵 달아올라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하자 갑자기 쓰러져서 웃어대는 구해찬이였어요. 앞에 있는 제가 민망할정도로 녀석은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탁자까지 치면서 웃어대는거 있죠? 한참을 웃던 구해찬은 이내 정신을 차렸는지 다시 제자리로 와서는 턱을 괴고는 말합니다. “너도 여자구나 예봄아. 쑥스러워 하는것좀봐.” 역시나..... “...............” “이거 되게 재밌다. 우리반 여자애들한테도 한방씩 날려줘야겠다.” 구해찬은....... 날 가지고 노는게 재밌나봐요. 맨날 저렇게 장난만 치고! 날 놀리기나 하고 !“...............” “다 너같이 얼빠진 표정일려나? 너 표정 진짜 사진찍어 놓고 싶을 정...” “구해찬! 너 죽을래?!!” 나는 찰싹 찰싹 하고 구해찬의 팔쪽을 무작정 내리치며 때렸습니다. 사실 더 때릴려고 했지만 아. 아파!!!라고 스파게티집이 떠나가라 챙피하게 소리를 질러대는 구해찬 때문에 2대밖에 때리지 못했어요. 구해찬은 정말 엄살쟁이에요. “김예봄! 너 ‘죽을래’ 이말은 또 어디서 배웠어, 이게 못된말만 배워가지고 쓰는것좀 봐.” 어느정도 상황이 정리 된 후 레몬에이드를 쪽쪽 빨고 있을때 구해찬이 나를 노려보는 시늉을 하면서 입을 열었습니다. 나 참 기가막혀요. 그래서 허 하고 실소를 터트리고야 말았죠. 지금 구해찬은 무슨 염치로 저런말을 하는걸까요? 죽을래! 라는 말은 구해찬이 늘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잖아요. 하지만 어느정도 구해찬 말도 일리가 있긴 했습니다. 그런 험한말을 쓰지 않았던 저였는데 어느새 구해찬 말투가 입에 베었나봐요. 그래도 그런말은 나쁘니까 쓰지 않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구해찬도 맨날 못된말 하잖아.” “난 남자잖아.” “그런 말도 안돼는 말이 어딨어?” “여깄어. 병신아” 제말에 맞받아 치고는 제 레몬에이드에 자신의 빨때를 쏙 꽂아 넣는 구해찬이였어요. 하여간 못말린다니까요. 남자는 못된말 해도되고 여자는 못된말 하면 안된다는 법은 없는데 말이에요. 나는 구해찬을 보며 피식 하고 웃다가 구해찬에게로 레몬에이드를 내밀었습니다. “나 이거 먹을래 김예봄.” 구해찬은 내심 저의 레몬에이드가 먹고 싶었던 모양이였는지 그대로 빨대로 쪽쪽 빨아 먹었어요. 그 박자에 맞춰서 레몬빛의 에이드가 출렁거렸습니다. 나도 구해찬의 콜라가 먹고 싶어서 구해찬의 콜라에 빨대를 꼽고는 콜라를 먹었어요. 시원한 콜라의 탄산이 목끝으로 부드럽게 넘어갔습니다. 목이 따갑긴 했지만요. 드르륵. 그때 레몬에이드를 어린아이같은 표정으로 먹고 있었던 구해찬의 옆에서 진동이 울렸습니다. 핸드폰 문자가 온 모양인지, 구해찬은 입에 빨대를 문채 핸드폰 플립을 탁- 하고 열었습니다. 그리고..핸드폰 문자를 확인한 구해찬의 표정은 알수 없이 변해갔어요. 무슨 문자길래...저러는걸까요.? <20> “구해찬 왜? 무슨 문잔데?!” “김예난데” “응...?” 언니? 살짝 말끝을 흐리며 다시 문자에 집중 하려는듯 눈을 살짝 찌푸리는 구해찬이였어요. 구해찬의 표정이 슬슬 구겨지는걸 보니까 문자 내용이 썩 달가운 내용이 아니였던 모양이에요. 나는 무슨문자길래 그러냐고 꼬치꼬치 캐묻기 보다는 구해찬이 말해줄때까지 기달리는게 낫겠다는 생각에 잠자코 구해찬을 바라봤습니다. “지금 자기 남자친구랑 데이트 한다고, 너랑나랑 같이 더블 데이트 하자는데?” 그리고 이내 구해찬의 입에서 흘러나온 충격적인 한마디에 멍 해질수밖에 없었지요. 더. 더블데이트? 그것도 언니네 커플이랑 우..우리랑?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건 말도 안돼는 이야기에요! 둘 둘 씩 만난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 저는 이미 63빌딩때 경험 했었다구요. “어쩔까?” 대뜸 싫다고 할줄 알았는데 의외로 구해찬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치면서 제게 물어봅니다. “당연히...” “만나야겠지?” “뭐어???????” 나는 만나지 말아야지 라고 말할려구 했던거라구 구해찬!!! “그래. 그자식 얼굴도 보고싶었고, 그리고 안나가면 더 의심받을수도 있으니까.” “구.구해찬 그래도 그건 좀.” “가자 김예봄! 절대 꿀리지 말자 그새끼한테. 알았지?” “구. 구해찬! 그래도 이건 아닌거 같은...” “빨리 나와. 계산 하고 있을게.” 구해찬에게 이미 제 말따윈 들리지 않는 모양이였어요. 머엉. 이게 도대체 무슨일인가요. 무언가 굉장히 굳은 결심을 한듯 보이는 구해찬은 계산서를 들고는 망설임없이 일어서더니 카운터 쪽으로 휘적휘적 걸어갔습니다. 혼자 남겨진 저는 아직 상황파악이 되질 않아 두눈을 꿈뻑 거리고 있구요. “김예봄. 빨리 나와!” 구해찬은 손에 들린 핸드폰을 쉼없이 두들리며 말했어요. 아마 언니에게 만나자는 답장을 보내고 있는 모양이였습니다. 나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가방을 들고 일어섰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일이 어떻게 진행되어 가고 있는거죠? 아 갑작스럽게 일어나버린 일에 머리가 복잡해져요. “구해찬 다시 생각해봐. 응?” 쏘렌토에 나와서 구해찬의 팔에 메달려 녀석을 말려보려 애썼지만 구해찬은 꿈쩍도 하지 않은채 완강히 고개를 저어대고 있어요. 녀석의 말을 빌리자면 그런 싸가지 없는 놈은 조져나야하는건데, 조져놀수가 없으니 오늘 기를 팍팍 죽이고 오겠다나 뭐라나. “구해찬!!!!” 하지만 아니에요. 그건 정말 아니라구요. 불길했습니다. 분명 큰 싸움이 일어날꺼 같다구요!. “니가 생각하는 그런거 아니니까 이제 그만좀 해라. 어?” “난 안갈래! 그럼 구해찬 혼자가!” 제 말은 하나도 들으려고 하지 않는 구해찬 때문에 속이 상한 말투로 시내 한복판에 우뚝 멈춰스자 그제서야 구해찬은 뒤돌아 봅니다. “얌마. 니가 안가면 어떡해.” “내가 왜!!!! 구해찬은 내말 하나도 안듣잖아.” “병신아. 여자친구가 안가면 더블데이트에 의미가 없어지잖아.” 그말에 또 다시 이상하게 심장이 뛰기 시작했어요. 여자친구. 여자친구. 왠지 모르게 낯설게만 느껴지는 그말이였습니다. 그래요. 깜빡 잊었어요. 구해찬과 지금 저는 연인사이라는걸 말이에요. 비록 완벽한 가.짜 였지만. “....어..어?” “걱정마. 참을꺼야. 뒤집어 놓을짓같은거 안해. 그냥 가서 놀자. 나 아무렇지도 않게 잘 지내고 있다는것만 보여줄라고 그래.” “.............” “갈꺼지?” 그순간 느낀건 구해찬에겐 알수없는 힘이 있다는 거였어요. 쌩뚱맞은 말일지 모르지만 구해찬은 정말 그랬어요.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힘. 사람에 화를 금방 풀리게 하는 힘. 사람을 기분 좋아지게 하는힘. 사람 마음을 약해지게 만드는 힘. 그리고. “알겠어. 진짜 근데 싸우지 않기야 알았지?”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 심장 속도를 조금씩 빠르게 만드는 힘. * * * * * 언니와 만나기로 한 장소는 공원이였습니다. 당연히 무슨 데이트를 공원에서 하냐며 구해찬은 투덜거렸지요. 아무튼간에 언니를 의식해서 구해찬과 저는 손을 꼭 잡고 공원으로 향했습니다. 그러자 저 멀리 언니와 언니의 남자친구가 보이네요. “아. 저 개자식.” 언니의 남자친구를 보며 흥분하는 구해찬을 진정시키고는 저는 언니를 향해 인사를 했어요. 그러자 벤치에서 일어서서 반갑게 반겨주는 예나언니. 힐끔 언니의 남자친구를 쳐다보자. 양심은 있는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더라구요. 흥. 나빠요 정말. 일이 어찌됐든 그런건 말하지 않는게 예의 아닌가요.? 나는 언니 모르게 슬쩍 남자친구를 노려봤습니다. “왜이렇게 늦게왔어? 아주 둘이 기어왔나보네?” “태클걸지마. 넌 챙피하게 데이트를 공원에서 하냐?” 언니의 말에 맞받아 치며 언니의 맞은편 벤치에 구해찬이 털썩 앉아요. 어정쩡 서있던 저도 따라앉았습니다. 그러자 맞은편으로 바로 언니의 남자친구의 모습이 보여요. “원래 호프 갈라고했는데. 니네 교복이라서 여기서 한잔 꼴깍 할려고 불렀지! 서늘한 바람 맞으면서!” “중딩이냐? 이런데서 노상까게.” 까칠한 구해찬의 대답에 언니는 입을 삐쭉 내밀며 구해찬을 때리는 시늉을하다가 이내 남자친구를 의식하고는 흠흠 하고 헛기침을 했어요. 그러다가, 분위기가 어색해지려고 하자 언니가 분위기를 띄우려는듯 방글방글 웃으며 말했습니다. “이럴게 아니라 빨리 술 한잔 해야지이? 내가 금방 사올게. 술 한잔 하면서 우리 남이섬 간 얘기도 해주고 오해도 풀고. 알았지? 금방 갔다올께!” 아무래도 언니가 우릴 부른 목적은 자신의 남자친구와 우리의 어색함을 풀기 위해서였던 모양입니다. 언니는 뭐라 할새도 없이 금방 지갑을 들고는 사라져버렸어요. 언니의 뒷모습을 아무생각없이 쳐다보던 저는 그제서야 차가운 기운을 느끼고는 재빨리 구해찬 쪽으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아아 이게 무슨 뻘쭘한 상황인가요? 언니의 남자친구, 구해찬. 그리고 제가 셋이서 이렇게 대면하고 있다니요. 어색하다 못해 이 주변을 꽝꽝 얼려버릴정도로 차가운 기운이 우리 셋 사이로 지나갔습니다. “그땐 죄송했어요. 저는 그런줄도 모르고. 누나한테 얘기 들었어요.” 그 어색한 침묵을 먼저 깬건 언니의 남자친구였어요. 그동안 많이 미안했는지 우물쭈물 말하는 모습이였어요. 나는 불안불안한 표정으로 구해찬을 바라봐요. 언제라도 구해찬이 뻥 하고 터질꺼 같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저의 예상과는 다르게 구해찬은 피식 하고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아니. 됐어. 괜찮아. 나도 사랑하는사람 있으니까.” 그리고는 갑작스럽게 제허리를 긴 팔로 감싸 안아요. 나는 너무 놀라 헙 하곳 숨을 들이켜 봅니다. “그래도..죄송해요. 저는 그때 형이 정말로 예나 누나 좋아하고 있는줄 알고.” “과거 이야기였으니까 오해할수도 있지. 뭐” 순간 할말을 잃고는 구해찬을 바라봤어요. 내가 알던 구해찬이 맞나 싶어서요. 예전 같았으면 당장이라도 언니의 남자친구의 멱살을 잡고도 남았을텐데 지금 구해찬은 이상할정도로 너무 나긋나긋해요. “그런데 형. 예나누나 동생, 예나누나랑 똑같이 생겨서 좋아하는건 아니죠?” 이런 무례하기 짝이 없는, 자존심을 건드는 말에도 구해찬은 피식 하고 여유있게 웃어보일 뿐이였죠. “김예나랑 김예봄은 달라.” “네?” “그런걸 떠나서 김예봄 마음, 하는짓, 모두 다 내눈엔 너무 예뻐, 그러니까 꼬맹아.” “.............” “김예봄은 김예나랑 비교도 안될만큼 나한테 소중한 사람이니까. 다 참아도 예봄이 기분나쁘게 말하는건 못참는다. 알겠어?” 정확히 말하자면 아마 이때부터였을꺼에요. 무언가 제 마음에서 이상함을 느낀건 말이죠. 평소와는 달랐어요. 구해찬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들 모두 지금 거짓말이라는걸 알면서도 심장이 두근두근 거리고 얼굴이 화끈거렸으니까요. “그런뜻으로 말한거 아니에요 형. 그렇게 생각하셨으면 죄송해요.” 아무튼간에 구해찬에 말에 머쩍은 웃음을 지으며 언니의 남자친구가 대답햇습니다. 이렇게 보면 그렇게 나쁜 사람 같지는 않은데 말이에요. 왜 언니에게 그건 말해가지고 미움을 살 짓을 했던걸까요? 하나는 알면서 둘은 모르는 사람인가봐요. “자자. 술이 왔습니다!!” 언니의 목소리였습니다. 이런걸 이른바 굿타이밍이라고 하죠? 말그대로 언니는 굿 타이밍으로 술이 가득 든 봉지를 들며 벤치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벤치 앞에 마련된 나무 테이블에 신이 난 표정으로 맥주캔들 그리고 과자들을 늘어놓기 시작해요. 그런 언니를 구해찬은 아무말없이 한참을. 정말 한참을 바라봅니다. “자. 일단 마셔! 한잔씩! 예봄이 넌 술 못마시지?” 각자 앞에 맥주캔을 하나씩 올려 놓던 언니의 손은 제 앞에서 멈추어 섰습니다. 그리곤 너무나도 당연하다는듯 위와 같이 물어오는 언니였어요. 왠지 모르게 그순간, 양심이라는게 쿡쿡 찔려오는거 있죠? “넌 니동생 그렇게 몰라서 어떡하냐? 김예봄 술 잘마셔.” “그래? 의왼데?! 그럼 우리 예쁜 동생도 한잔!” 잘마시진 않는다구요!! 구해찬의 말에 반박하려고 할때, 구해찬이 먼저 제가 말할 타이밍을 뺏었습니다. 바로 제 자리 앞에 놓으려는 언니의 손에 들린 맥주캔을 낚아 채갔거든요. “뭐. 뭐야 구해찬” “잘마시긴 하는데. 김예봄이 술마시는건 싫어.” 그리고는 맥주대신 콜라캔을 내밀었어요. 그순간, 저는 분명 들었어요. 들릴듯 말듯한 아주 작은 목소리로 제게 중얼거리듯 내뱉었던 구해찬의 장난스러운 말을. “뒷감당이 안돼거든. 그치 김예봄?” 으으 구해찬을 정말 그냥!!! 꼬집어 버릴까요? 정말 너무 얄밉다구요! 아무튼간에 하는수 없이 다들 맥주를 마실 때 저는 콜라를 홀짝홀짝 마실수밖에 없었습니다. 한참동안 과자를 주어먹으며 콜라를 마시고 있는데. “그런데 니네 진도는 어디까지 나갔어?” “푸..푸풉” 갑작스러운 언니의 말에 입에 있던 콜라를 앞으로 분출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다행이 아무에게도 튀지 않았지만 이게 무슨 개망신일까요? 챙피함에 얼굴이 벌개졌어요. 마치 술먹은 사람 처럼 말이에요. “예봄이 당황했다. 성현아 내동생 표정좀봐 깔깔.” “누나, 누나 동생은 보기에도 딱 순진해보여서, 형이 아직 아무것도 안나갔을꺼 같아.!” 잔뜩 당황한 저를 보더니 깔깔 거리며 웃는 언니였어요. 그리곤 덩달아 웃는 성현이라는 남자였지요. 나는 알게 모르게 다시 한번 언니의 남자친구를 소심하게 노려봤습니다. 정말 나쁜사람이에요. 못됬어요!. “아닌데.” 그리고 그때였습니다. 맥주캔을 따고는 하얀 거품의 맥주를 입에다가 털어놓으며 구해찬이 입을 연건 말이죠. “뭐? 아니라구?” 구해찬의 충격 고백에 언니가 자리에서 탱탱볼처럼 툭 튕겨져 나와 물었습니다. 도대체 구해찬은 자꾸 무슨생각으로 이러는걸까요? “응. 우리는.” “.................” 잠시 뜸을 들이다가 이내 부드럽게 제 허리를 감싸고는 살짝 얼굴을 비스듬히 하는 구해찬이였습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아무말없이 구해찬을 쳐다보고 있을때, 정말이지 그건. 눈 깜짝할사이에 일어난 일이였어요. 제 볼에 구해찬의 붉은 입술이 잠시동안 닿았다가 떨어진건. “이런사이야.” 갑작스러운 구해찬의 행동에 화가났지만 아무말도 할수 없었던건 심장이. 심장이 미칠만큼 뛰었기 때문이에요. 그랬기에 나는 아무말도 할수 없었어요. 천천히, 천천히 고개를 숙입니다. 심장소리가 멈추지 않아요. 그리고 나는 정말 그제서야,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나갈래 언니.” “응? 예봄아!!어디가!!!!!!!” ....... ............. 지금 내 마음에 확실히 변화가 생겼다는걸요. 절대 다시는 할수 없다고 생각한 감정이, 조금씩 다시 돋아나고 있다는걸. 결국 그래버리고야 말았다는걸. 구해찬이 꽉 닫혀 있었던 내마음을 그렇게, 열어 버리고야 말았다는걸. ....거짓말 처럼... ----------------------------------------------------------------------------- ★한개의 꼬릿말이 큰 힘이 됩니다★★한개의 꼬릿말이 큰 힘이 됩니다★ ★한개의 꼬릿말이 큰 힘이 됩니다★★한개의 꼬릿말이 큰 힘이 됩니다★ ★한개의 꼬릿말이 큰 힘이 됩니다★★한개의 꼬릿말이 큰 힘이 됩니다★ *분량 꽤 많아요ㅜㅜ3편이였는데 조금 모잘라서 그냥 2편으로 쭐여서 올린것입니다. 왁 기다리신 분들 캄사하구 늦어서 죄송합니다!!^^ *예나&예봄...군데군데 잘못된부분 고쳐써여, 제가 졸면서 썼는지 헷갈렸나봐요!ㅜㅜ *덧,) 헬리는 오직, 팬까에서만 연재되는만큼 그냥 지나치시지 마시구 꼬릿말이나 감상 달아주세요! 사실 위험한남자, 슬럼프인진 모르겠지만 지금은 왠지 모르게 팬까페에서만 연재하고 싶다는 생각에 자꾸만 저도 모르게 헬리에만 메달리게 되요. 그러니 얍, 힘을 주세요 -------------- §가그린§ (godqhrgkehfhr@hanmail.net) 플티〃가그린〃소설 (http://cafe.daum.net/Gagrin) -------------- ※헬리오토로프는 5월 24일의 탄생화로 사랑이여 영원하라 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21> “김예봄 어디가!” 보도블럭을 밟는 제 발걸음이 빨라질수록 뒤에서 뒤따라오는 발걸음 소리도 빨라졌어요. 나는 알았어요. 그 발걸음이 언니의 발걸음도, 그리고 언니의 발걸음소리도 아닌 구해찬의 발걸음 소리라는걸 말이에요. “예봄아.” 조금 더 스피드를 내서 달려온 구해찬의 손에 결국은 잡혀버린 팔을 가만히 내려다 봅니다. 이거봐요. 심장이 또 다시 두근거려요. 정말 어쩌면 좋죠. 정말 어쩌면 좋아요. “너 갑자기 왜그래 무슨일 있어?” 걱정스러운 구해찬의 목소리에 순간, 울컥 울음이 터져나올것 같았습니다. 구해찬은 얼마나 황당할까요.? 아마 많이 황당할꺼라고 생각해요. 나는 구제불능이에요. 구해찬 입장에서 수시로 감정이 변하는 제가 감당하기 힘들만큼 지칠꺼에요. 그리고 그건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변한 내 감정을 감당하기가 너무 힘들고 지쳤지요. “구해찬.” “어?” “구해찬은,” “.........” “구해찬은 괜찮아?” “뭐야. 괜히 쫄았잖아.” “............” 내 다음말을 숨죽이고 기다리고 있던 구해찬은 이내 허탈하다는듯,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습니다. 그리고는 한쪽 손으로 제 머리를 이리저리 헝클어 트려 놓았죠. “당연하지. 내가 찌질이냐?” “나는...” “응?” “나는요....” 하나도 안괜찮아요. 마음이 막 복잡하고 신경쓰이고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제일 잘 알아야 하는 내 마음을 모르겠어요. 눈물이 나올것만 같아서 고개를 푹 숙이고는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쥐어짜듯 억지로 한자 한자 내뱉어요. “자고싶어. 피곤해. 집에갈래 구해찬.” 그러자 가만히 구해찬에 시선이 제게로 닿았죠. 그리곤 이내 짧은 한숨과 함께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드는 구해찬이였어요. 폴더가 올라가자 까만 밤 푸른액정이 달빛처럼 빛났습니다. “어 김예나 난데, 우리 가야겠다. 김예봄 피곤하대 자고싶대. 먼저 간다. 어. 어” 언니와 통화를 하는 모양이였습니다. 구해찬은 통화를 마친것인지 핸드폰 플립을 덥고는 “데려다줄게, 가자” “...........” 라면서 제 손을 아무렇지도 않게 잡았습니다. 나는 그런 구해찬의 손을 빤히 내려다보았어요. 꿈쩍도 하지 않고 말이죠. 그러자 구해찬이 제 시선이 머물러 있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더니 이내 황급히 빼내요. “아 미안. 습관되서.” “응. 아니야.” 손가락이 스치듯 떨어지자 나는 먼저 걸음을 뗐어요. 그러자 옆에서 어색히 서있던 구해찬 또한 따라 걸어오기 시작해요. 그렇게 구해찬과 나는 어색히 걷기 시작합니다. 제법 쌀쌀해오는 날씨에 나는 언니의 교복을 여미며 걸었어요. 아무말도 오가지 않을만큼, 분위기는 정말 어색했어요.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무슨말이든 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만큼이요. 하지만 나는 아무말도 할수 없었습니다. 머리도, 마음도 온통 혼란스러웠거든요. “김예봄. 왜 아무말도 없어? 너 지금 기분 안좋지.” “응?” “눈도 축 쳐진게.” “응.” “이거봐 너 이상해, 장난쳐도 무반응이잖아. 갑자기 왜 그러냐 너.” 그순간 생각한건 구해찬의 입은 왜 저렇게 쉬도 없이 움직일까 하는 것이였습니다. 하루라도 장난을 치지 않으면 정말 엉덩이에 뿔이라도 나는걸까요? 구해찬은. 왜 맨날 장난을 치지 못해 안달인걸까요. 그런 생각으로 나는 구해찬을 보다가 피식 하고 웃었습니다. 그러자 금세 구해찬의 표정이 어린아이처럼 밝아졌어요. 정말 어린애라니까요. 어린애. “김예봄, 많이 피곤해?” “응. 조금 그런거 같아.” “그래서 이렇게 축 쳐져있는거야?” “그런가?” “이게 진짜 이상하네.” 구해찬은 작은 제 걸음보폭을 제법 잘 맞추고 있었습니다. 나는 구해찬의 말에 아무말없이 걸었어요. 어서 집에 도착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지요. 침대에 누워야겠다는 생각에서였거든요. 푹신한 베게에 누워서 자고 싶었어요. “김예봄.” “.............” “야 김예봄.” “............” “어쭈 야 꼬맹이.” 그런데 도저히 구해찬 저 구제불능은 저를 도와주질 않네요. 결국 저는 훽 옆으로 고개를 돌려서 소리를 질러버렸습니다. “왜!왜!! 구해찬은 왜자꾸 말시켜? 난 지금 피곤하단말야!” “어?” 구해찬이 제 큰 목소리에 놀라긴 놀란 모양입니다. 우스꽝스럽게 두눈을 땡그랗게 뜨고는 바보처럼 꿈뻑 꿈뻑 거렸으니까요. “왜. 구해찬 불렀으면 말을해!” “아니 난 그냥 심심해서...” 이럴줄 알았다구요. 이렇게 아무 이유 없을줄 알았다니깐요. 가뜩이나 마음이 복잡한데 구해찬까지 저러니 정말 미쳐버릴것 같았어요. 그래서 저는 다시 걷습니다. 그러자 이번엔 말없이 구해찬이 따라와줘요. 그렇게 한동안 말없이, 우린 걸었어요. 저녁이 몰고 온 바람이 뺨을 간질이듯 스쳐 지나갑니다. 제가 정말 구해찬을 좋아하게 된것일까요? 다시는 그런 감정이 없을것이라 생각했어요. 나는 세상에서 사랑이 제일 무서운 사람이니까요. 사랑할 자격이 없는 사람에겐, 사랑이 가장 무서울수밖에 없는건 당연하잖아요.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깁니다. 이 감정이, 제발 좋아하는 감정이 아니길 바라면서요. 내가 만약, 구해찬을 좋아하게 되었다면 존은, 존에게 전, 평생용서를 빌어야하는 그녀석에게 나는, “있지 구해찬.” 우뚝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러자 당연하게 구해찬의 걸음도 나를 향해 멈추었죠. “응?” 어느새 우리는 집 앞에 다 다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정말 20걸음만 옮기면 집 앞이였어요. 나는 구해찬의 깊은 눈동자를 느릿한 시선으로 응시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어요. “구해찬은 언니를 좋아했잖아.” “..........” “구해찬에게 언니는” “뭐?” “어떤존재야.....?” 그러자 구해찬은 말없이 나를 쳐다보다가 피식 하고 웃어버려요. 그리고는 걸음을 옮기더니 우리 옆에 있던 벤치에 털썩 하고 앉았어요. “아무도 없는 어둠속에 혼자 갇히게 됐을때, 희망조차 없는, 죽음 말고는 할수 없는 그런 곳에서 갇히게 됐을때,” “.............” 나는 가만히 구해찬의 말을 들어요. “그 어둠속 위로 아주 가느다랗게 새어나오는 햇살한줌. 따듯하게 머리 위에 비추는 햇살 한줌. 어둠속에서...유일하게 희망을 주고 살고 싶어지게 만들어주는 그 햇살 한줌,” “............” “내게 김예나는 그런 존재야.” 그렇구나. 그런거구나. 좋아한다는게 그런거구나. “아 씨 더럽게 쑥스럽네. 근데 왜?” “어? 아. 아니야. 늦었다. 나 정말 가야겠다. 바로 앞이니까 그냥 갈게 구해찬!” 구해찬이 알수없는 표정으로 나를 응시했지만, 더욱 더 혼란스러워진 마음으로 나는 구해찬이 붙잡기전에 얼른 집으로 향합니다. 아까보다는 좀 더 무거워진 발걸음으로 말이에요. \다음날 내가 정말 구해찬을 좋아하는걸까. 언니가 학교를 가고, 엄마가 일을 나가 또 다시 혼자가 된 집안에 우두커니 앉아서 생각을 했어요. 내가 정말 그애를 좋아하는걸까 라고 말이에요. 그렇다면 난 정말 나빠요. 김예봄은 세상에서 제일 나쁜애에요. 나빠요. 정말. 저는 침대에 좀더 편한 자세로 바꿔 누웠어요. 눕자 마자 길다란 시계바늘이 보였습니다. 정확히 5시를 가리키고 있는 시계바늘이였어요. 이제 좀 있으면 언니가 오겠군요. 아니지. 놀다 올려나? 나는 침대에서 폴짝 일어서서 부엌으로 향했습니다. “그게 어딨더라.” 언니가 오기 전에 저번에 언니가 실패했던 떡볶이를 만들 생각으로 말이에요. 나는 수납장을 뒤적이면서 재료들을 꺼냈습니다. 그러니까 그때 언니가 고추장하고, 설탕하고, 다시다하고 물엿을 꺼냈던거 같은데... 뒤적이며 조미료들을 꺼내고 냉장고에서 그때 남은 떡과 오뎅을 꺼내 들어요. 그리곤 둥근 프라이펜을 조심스럽게 전자렌지 위에 올려 놓고는 딸칵, 하고 레버를 돌렸습니다. 그러자 푸른 가스불이 프라이펜을 천천히 감싸 안습니다. 이제 물을 이렇게 붓고 끓이기만 하면... 쾅쾅, 그때, 그러니까 물을 붓고 나서 였을거에요. 순간 누군가가 저희집 문을 주먹으로 두드리는 소리가 난건요. 벨이 버젓이 있는데 누구지? 라는생각으로 뒤돌아서자. “예봄아, 언니야 문열어!” 언니의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나는 틀림없이 ‘언니야? 금방열어줄께!’라고 대답할 작정이였어요. 하지만 그럴수 없었던건, 꿀먹은 벙어리 마냥 가만히 서있을수밖에 없었던건. “김예봄 빨리열어. 남편도 왔다.” 신이 난 구해찬의 목소리도 들려왔기 때문입니다. 그순간은 정말이지 걸음이 움직이지 않았어요. 그냥 왜인지 발이 하나도 움직이지 않았거든요. 아무 대답이 없자 탕탕탕. 하고 문이 부수어질것처럼 두들깁니다. “예봄아! 자? 얘 자나봐. 그냥 비밀번호 누르고 들어가야겠다.” 아..이럴땐 정말 어떻게 해야 하는걸까요. 삑삑삑 거리는 버튼음이 들려와요. 어정쩡하게 서있던 나는 하는수 없이 언니의 말대로 자는척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얼른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눞고 이불을 얼굴 위까지 끌어당겼어요. 그러면서도 생각한건 내가 왜 이래야 하는거지 라는 생각이였죠. “그럴꺼면 애초부터 비밀번호 누르고 가도 된 일이였잖아. 또라이야” “뭐래. 이게 내 매력이거든? 그리고 머리에 든거 없는건 피차일반이면서 누구보고 또라이래 이게.” 이내 비밀번호를 모두 눌렀는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요. 그리곤 어느때와 마찬가지로 티격티격 거리는 구해찬과 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늘 느끼는거지만 둘은 모두 목소리가 무지 큰 거 같아요. “아 조용히해 피곤해.” “너 우리집 들어오지마.” “아 씨.” “들어올 생각하지마!” “알았어, 잘못했어.” “진작에 그럴것이지.” 옷자락이 부스럭 거리는소리, 신발을 벗는소리, 거실로 발걸음을 내딛는 소리, 나는 이불속에서 가만 가만히 숨죽입니다. “예봄이 자나봐.” “....그러네.” “어? 야 잠깐만 부엌에 뭐 끓는데? 엄마야! 왜 가스렌지가 켜있는거지?” 다급한 발걸음소리가 서서히 옅어졌어요. 아마 그것은 불이 켜져 있는 가스렌지에 놀라, 부엌으로 재빠르게 걷는 언니의 것이겠죠. 그리고 또 다른 발걸음 소리는 천천히 커져왔습니다. 아마 제 예상이 맞다면 이건 제게로 다가오는 구해찬의 것 이겠죠. 나는 그 발걸음소리가 가까워 질수록 눈을 꼭 감습니다. “김예봄 자?”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나봐요. 구해찬의 시선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잠시후, 구해찬의 향기가 코에 닿았어요. 내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쓰다듬는 구해찬의 손이 느껴집니다. 순간, 참을수 없는 두근거림에 나는 몸을 뒤적이는척 하면서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렸어요. 심장소리를 구해찬이 들으면 안돼는데... “야 구해찬!! 너 지금 예봄이방에서 뭐하냐? 자는애 덮칠라고 그래?” “내가넌줄 아냐?” 언니도 방에 들어 온 모양인지 언니의 목소리가 이곳에 쩌렁쩌렁 울렸습니다. 안돼겠어요. 이대로 자는척 하는건 정말 무리에요. “조용히해. 깨잖아. 너 언니 맞냐?”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조심스럽게 눈을 떴습니다. 아무튼간에 나는 어색하게 자다 일어난 척을 하면서 입을 열었습니다. “어..?언니. 언제와..왔어?” 라고 말이죠. 정말 누가 보면 연기 진짜 못한다 라고 수근거릴정도로, 아주 어색하게 말입니다. “어? 깼어? 미안해 예봄아!” 전 자지도 않았지만, 만약 자고 있엇더라면 분명 깨고 말았을꺼라구요! 언니와 구해찬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응? 아니야!” 하지만 언니는 의외로 저의 어색한 연기에도 깜빡 속은듯 옅게 웃어 보였습니다. 들키지 않았다는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리곤 언니에게 웃어 보이며 이불을 걷고는 일어서려는데, 갑자기 뾰루퉁한 구해찬의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얌마. 나는 안보여?” 구해찬이 보이죠. 왜 안보이겠어요. 하지만 구해찬에 눈을 마주칠 자신이 없는것 뿐이에요. 그냥 그래요. 나는 지금 무척 혼란스럽고, 그리고 또 뭐랄까. 솔직히 말하면 조금 화가 나는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결코 그것이 언니와 구해찬의 다정한 모습때문은 아니에요. 단지, 내가 구해찬을 생각하는것 만큼 구해찬은 날 생각하지 않고..그저, 언니 때문에 내게 잘해주고 있는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어? 보여. 아맞다! 언니 내가 언니 만들어 주려고 떡볶이 할라고 했는데, 기달려! 얼른 만들어야겠다!” 그랬기에, 저는 이번에도 구해찬에게 시선을 주지 않은채 침대에서 벌떡 일어서서 부엌으로 향합니다. 그러자 언니의 웃음소리가 등뒤로 들려왔어요. “정말? 그런데 예봄아, 언니의 요리실력을 본받아서는 안된다! 그건 언니도 인정해. 최악이야 진짜 내 요리는.” “히히. 금방 해줄께!” 사실은 구해찬이 신경 쓰였지만, 아무렇지도 않은척 부엌으로 와서 다시 불을 올렸습니다. 그리고는 환기를 하려고 창문을 살짝 열었지요. 그러자 차가운 바람이 금세 제 머리카락을 스쳤어요. 순간, 아까 제 머리를 조심스럽게 쓸어 넘겨주던 구해찬의 손이 생각나 버렸습니다. 또 다시 얼굴이 벌개지고야 말아요. “김예봄. 너 왜 나 무시해?” “........” 별안간 키 큰 녀석 하나가 불쑥 얼굴을 내밀고 소리치는 바람에 나는 깜짝 놀라 뒤로 주춤 물러났습니다. 구해찬은 잔뜩 서운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 보고 있어요. 그 시선이 느껴지자 나는 다시 재빨리 앞으로 시선을 돌렸어요. 그리고는 하얀 도마위에 길다란 파를 올려놓고는 칼로 천천히 자르기 시작해요. “너 나한테 뭐 화난거 있어? 진짜 어제부터 왜이래.” “..........” “어? 야 조심해!” 구해찬은 늘 한박자 느린 단점이 있어요. 그리고 그 단점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나타났죠. 이미 날카롭게 날이 서있는 칼은 파 대신 저의 손가락 하나를 베버리고 말았으니 말입니다. “아!...” 재빨리 손가락을 들었지만 살짝 벌어진 살틈으로 프라지아 꽃 같은 빨간 피가 흘러 내렸어요. “...........” 갑자기 마음과는 다르게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또 다시 이런모양이에요. 한동안 잠잠하다 싶었더니, 또 다시 피를 보고 나는 정신을 놓아버리고 말았습니다. 점점 엄습해 오는 두려움에 떨어요. 당연하다는듯 눈에 가득 고여버린 눈물, “김예봄...?” “..............” “예봄아...괜찮아.?” 이러다간 정말 목놓아서 울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렇지만 더 이상 눈물만큼은 흘리지 말자는 생각에, 나는 대충 바지 주머니쪽에 피를 닦고는 도망치듯 부엌을 빠져나왔습니다. “어? 예봄아 어디가??” 그리곤 거실을 빠져나와, 현관문을 열었어요. 갑작스러운 제 행동에 쇼파에 누워있던 언니가 일어섰지만, 나는 언니가 잡을새라 재빠르게 계단을 내려갔습니다. 왜냐면... 왜냐면.. “으....으..” 내 상처를 보이고 싶지 않았거든요. 내 눈물을 들키고 싶지 않았거든요. 계단을 내려가는게 오늘따라 너무 힘이 들기만 해요. 나는 울음이 터져나오지 않게 입술을 꾹 깨물고는 안간힘을 다해 걸음을 옮기고서야 그곳을 빠져 나올수 있었습니다. <22> 물결모양처럼 둥그렇게 그려져있는 지문의 지름이 일자로 잘라져 있었습니다. 나는 이제는 말라붙은 손가락을 가만히 내려다 봐요. 이렇게 견디기 힘들어하면서 아직 존 조차 잊지 못하고 있으면서, 구해찬을 좋아하게 되다니... 내 마음은 왜이렇게 이기적인걸까요? 한숨을 푹 쉬면서 이제는 어둑어둑해진 하늘을 올려다 보았어요. 물먹은 별들이 하나 둘 떠 있습니다. 내 머리로 쏟아질듯 말이에요. 문득 어쩌면, 언니가 나를 걱정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쉽사리 떼어지지 않는 발걸음에 나는 3시간째 공원에서 멍하니 앉아 있는 중입니다. 막상 도망치듯 집을 나오니 갈곳이 없었던거 있죠? 생각해보면 나는 한국에서 아는곳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래서 결국 언젠가 한번 와보았던 공원으로 올수밖에 없었던거죠. “시원하다. 밤공기.” 손바닥을 피자 저녁이 몰고온 바람이 손바닥을 간지렵혔습니다. 그것이 기분좋아 계속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손바닥을 피고 있을때, 그래요. 그러니까 바로 그때. “예나..?” 제 이름이 아닌, 언니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반사적으로 소리가 들려오는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교복 차림의 이현태가 보였습니다. 이내 이현태는 저와 눈이 마주치자 옅은 웃음을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어요. “예봄이구나.”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제 옆에 털썩 앉는 이현태였어요. 나는 고개를 끄떡입니다. 이현태가 앉자마자 뭐랄까. 구해찬에게서 자주 나던 알싸한 담배향이 코 끝에 내려앉았어요. 아무래도 둘은 같은 담배를 피는 모양입니다. 아니, 어쩌면 황여민 또한 같은 담배를 피고 있을지 몰라요. 이현태를보며 저는 이런 의미없는 생각들을 하다가 녀석에게 물어요. “이현태는 공원에 왜 왔어??” 라고 말이죠. “오토바이 산거 엄마한테 걸렸거든. 그래서 피신온거야. 우리 아줌마가 좀 성격 있으시거든. 이럴땐 무조건 피하는게 산책.” 그러자 입을 삐쭉 내밀며 대답하는 이현태였어요. 순간 웃음을 참지 못하고 풉 하고 터트려 버립니다. 그건 이현태에게도 이런 면이 있구나. 라는 생각에서였어요. 매너 좋고, 자상한면만 있는줄 알았는데 의외로 구해찬처럼 어리고 귀여우면도 있나봐요. “아..그렇구나" "너는?“ 이현태에 말에 잠시 침묵, 그러다가 피식 하고 웃으며 대답. “나도요.” “응? 너도?” “응. 나도 피신 온거야.” 내 마음에서 도망치고 싶어서 왔어. 내 마음으로부터 피신 온거야 나 지금. “예봄이 너도 사고 칠줄 알아? 이거 의왼데.” “...........” 현태가 장난스레 내 머리를 부비적 거렸습니다. 이건 구해찬이 늘 하던건데.... 나도 모르게 자꾸 모든일을 구해찬과 연결 시키고 있었어요. 그건 정말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인 행동이였죠. 천천히. 천천히. 그아이에게서 익숙해지고 있나봐요. “아무튼간에. 중요한건 우리 둘 다 시간 떼우려고 여기 온거다. 그치?” “그런가? 응! 그렇다!” “그럼 예봄아.” “응?” 별안간 이현태가 내 팔목을 잡아요. 그리고는 장난끼 가득한 눈으로 예쁘게 웃었습니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정쩡한 자세로 이현태를 바라보니 이현태가 말해요. “우리 오락실 가자! 조금 촌스럽기는 해도 거기가 시간 떼우는덴 최고야.” “오...락실?” “갈꺼지? 사실 피시방을 가고싶은데 넌 컴퓨터 잘 못할꺼 같아서...” “응 맞아. 나 컴퓨터 잘 못해!” 컴퓨터라는건, 어렵습니다. 물론 간단한 조작이나 메일을 보내는것, 메신저들은 할수 있어요. 하지만 특히 언니가 밤마다 하는 온라인게임은 정말 하!나도 모르겠어요. 키보드 n 을 누르면 칼이 움직이고 s를 누르면 캐릭터가 점프를하고, 또. 또 뭐였죠? 저는 이렇듯 계속 까먹고야 말아서 언니의 아이디로 온라인 게임을 할때면 언니에게 구박을 먹곤 했지요. 그 악몽이 떠올라 힘차게 고개를 끄떡이자 이현태가 의자에서 일어섰어요. 그리고는 제게 손을 내밀었죠. “그럼 가자!” “응..? 어디?” “어디긴 오락실이지요.” 살짝 이현태의 손을 잡고 일어섰습니다. 그리고는 얼른 놓아버리자 이현태가 조금은 머쓱한듯 그 손을 주머니에 푹 찔러 넣었어요. 나는 그런 이현태를 쫄래쫄래 따라갑니다. 문득, 한국의 오락실은 어떨까 라는 호기심에 제 걸음이 조금씩. 조금씩 빨라졌습니다. \오락실 “아니. 예봄아 그게 아니라 이 왼쪽 버튼은 점프고 그 옆이 물방울을 쏘는거라니까?” “응? 아 응.” “아니!!!거기가 아니라 왼쪽!!!” 오락실을 처음 이현태와 함께 온 것이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만약 구해찬과 함께 왔더라면 저는 구해찬에게 엄청 구박을 먹었을 것이니까요. 그래도 이현태는 말을 잘 못알아 먹는 저에게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오락기는 너무 어렵다구요. “이현태. 이렇게?” “응. 그래 잘한다 예봄이.” 버튼을 누르자 조그만한 캐릭터에 입에서 방울이 터져나왔어요. 나는 그것이 신기해 계속 버튼을 누르며 점프를 했지요. 그러다가 지루해지면 이현태가 악당들을 죽여 얻은 아이템을 달려가서 먹곤 했습니다. 이를테면 바나나나 복숭아 같은걸 말이죠. 게임은 무지 재미있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시간이 가는줄도 모르고 했던거 같아요. “어? 또 죽었다!” “죽었어? 기달려봐. 돈 더 넣어줄게.” 내 캐릭터는 자꾸만 악당들과 부딪혀 죽고야 말았어요. 그래서 이현태의 주머니에 있는 돈도 자꾸만 오락기 안으로 넣어졌죠. 다시 현태가 은빛 동전 하나를 오락기에 넣자 또르르 하고 동전이 들어가는 소리와 함께 다시 캐릭터에 불이 들어왔습니다. 나는 다시 신이나서 손을 올려 놓아요. 그리고는 문득, 정말 갑작스레 현태에게 입을 열었습니다. “현태야...” “응?” 내 갑작스러운 부름에 현태는 저를 향해 고개를 돌렸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어요. 여전히 오락기에 시선을 둔채, 캐릭터를 움직이며 천천히 말을 이었죠. “이건 내 친구이야긴데.” “친구??” “미국에 있는 내 친구...” “으응.” 고개를 끄떡여주는 현태. 하느님 자꾸만 거짓말 해서 죄송해요. “내 친구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그사람이 떠났거든, 멀리.. 그런데 그 사람이 떠난지 얼마나 됫다구, 다른 사람이 좋아지려고 한 대.” “...........” “정말 못됐지? 그거 정말 나쁜거지..? 어떻게 마음속에 두 사람을 담을수 있는거야.. 어떻게 자기가 좋아했던 사람을 그렇게 한순간에 잊을수 있는거야..그거 정말 못된거지?” 결국 내 캐릭터는 죽고야 말았습니다. 나는 깜빡이는 화면이 점점 흐릿해지는것을 느껴요. “예봄아 너 울어?” “응? 아니아니. 내가 왜 울어!” “........” 아무 말 없이 현태가 나를 바라봤어요. 나는 행여 정말 현태의 말처럼 눈물이 흐를까봐 눈을 크게 떠보이고는 애써 웃음 지었습니다. 그러자 녀석이 피식 하고 웃더니 내 머리를 조심스레 쓰담아 주었어요. 문득, 그 모습이 구해찬과 너무나도 겹쳐 보여서 나는 더욱 슬퍼지고야 말았습니다. 왜 이러는걸까요 정말. 나는. “사랑하는건 절대 나쁜게 아니야.” “...어?” “친구한테 전해줄래?” “.........” 이현태는 마치 알고 있는것 같았어요. 사실 나는 이현태가 이것이 내 이야기인 것으로, 아님 친구이야기인 것으로 믿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간에 이현태는 적어도 지금 이순간 만큼은 이 이야기가 내 이야기라고 알고 있는것처럼 그렇게 말했어요. 따스하고... 눈물나게.. “아마 떠난 그 사람은 자신을 잊어주길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잊어지지 않겠지. 잊지말되, 다시 찾아 온 사랑에 숨지 말라고. 그건 어쩔수 없는 거니까” “하지만 그러면 안되는거잖아...” “사람 마음이, 사람 마음데로 된다면 얼마나 좋겠어.” “............” “하지만 그럴수 없으니까. 솔직해 지라고해. 사람이 사랑하는건,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건 결코 어떤경우에도 죄가 될순 없어.” “.............” “사랑의 치료법은 또 다시 사랑밖에 없으니까.” .................. * * * * * * 무언가, 마음이 아주 편안해진 기분이였습니다. 그래서 아까와는 다르게 조금 나아진 기분으로 집으로 향할수 있었죠. 이현태는 이런 사람인것 같아요. 사람을 편안하게 할 줄 아는 재주를 가지고 있는 사람. 그러니까 함께 있는것만으로도 큰 힘이 될수 있는 사람 말이에요. “예봄아. 오늘 같이 시간 떼어줘서 진짜 고마워. 재밌었어” “응? 아니야! 나야 말로. 너 때문에 기분도 나아졌는걸.” “그래. 너무 늦은거 아냐? 얼른 들어가봐.” “으응. 이현태 너도 얼른 들어가!” “알겠어. 나중에 또 한판 하자. 잘들어가고, 예쁜꿈 꿔” 예쁘게 웃음 짓는 이현태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는 뒤돌아 서서 걸어요. 이현태가 아파트 입구까지 바래다 줘서 조금만 걸으면 바로 집이거든요. 그렇게 옷 소매를 비집고 불어오는 바람을 피하려고 몸을 공벌레처럼 웅크리고는 걸음을 재촉하는데, “김예봄.” 어디선가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죠. 그리고 난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너무나도 잘 알았어요. 천천히 걸음을 멈춥니다. “너....” 그러자 반대편에서, 그 목소리의 주인공. 그러니까 구해찬이 짐짓 화난 표정으로 무섭게 저를 향해 걸어왔습니다. “응.” “너 어디갔다온거야? 그렇게 말도 없이 나가서 지금까지 연락 하나 없고,” “...........” “김예봄 너는 왜 그렇게 니 멋대로인건데. 김예나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또. 또 김예나. 또 김예나였습니다. 구해찬의 입에선 늘 언니의 이름이 습관처럼 흘러나오곤 했지요. 사실 정말 솔직히 말하면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구해찬이 나를 걱정한건가 라는 생각에 기분이 얼마나 좋았는지.. 아마 나도 모르게 웃음짓고 있었을 거에요. 하지만 다시금 들려오는 언니의 이름에 금세 내 얼굴은 굳어지고야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구해찬을 향해 시선을 두어요. 천천히 입을 엽니다. “구해찬은...언니가 걱정하는게 싫었던것 뿐이야.” “뭐?” “내가 걱정된게 아니라...언니가 걱정하는게 단지 그게,” “김예봄 너 지금 무슨소리 하는...” “구해찬은....정말” “.............” “나빠....” 나빠. 구해찬은 정말 나빠. 정말 미워. 못됬어. 나빠. 미워...죽겠어. 고개를 푹 숙이고는 구해찬을 지나쳐 걷습니다. 정말 내 마음을 모르겠어요. 왜 자꾸 구해찬에게 이렇게 못되게 구는지도 모르겠고, 왜 이렇게 화가 나는지도 모르겠고. 자꾸 우울해지고 울고만 싶어져요. “김예봄. 너 진짜 왜그래?” “.........” “왜 자꾸 나 피하고, 나한테 화내고 신경질내고.” “.........” “내가 너한테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니가 지금 나한테 이러는건데.” 등뒤에서 둥글게 들려오는 구해찬의 목소리. 아무말도 할수 없었습니다. “김예봄.” “..............” “예봄아.” "나는." ".........." 짐짓, 구해찬의 말을 막아서요. 눈물이 나올것만 같아서 고개를 푹 숙이고 말이죠. 알수없는 침묵이 우리 둘 사이로 길게 늘어집니다. 가로등불빛만이, 머리 위를 노랗게 물들였습니다. "나는 김예나가 아니야." "뭐?" 갑작스러운 제말에 구해찬은 황당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봤어요. 한쪽 주머니에 푹 찔러넣은 손을 바라보며, 나는 다시 어렵게, 정말 어렵게 입을 엽니다. "김예나가 아니라. 김예봄이라구, 구해찬이 좋아하는사람이 아니라 구해찬이 좋아하는사람의 동생이라구. 그러니까 착각하지 말라는말. 하고싶었어. 난 언니가 아니야. 그러니깐, 잘해줄 필요없어." "김예봄 너 무슨 말을 그렇게해." "김예봄이니깐, 난 언니가 아니니까..." "...예봄아." “가야겠다. 아깐, 화내서 미안해 구해찬. 나 피곤해서 그냥 들어갈래. 다음에 보자.” 나는 결국, 따스하게 내 이름을 부르는 구해찬의 목소리에도. 아무말도, 그 아무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코 끝이 시려워요. \다음날 '하지만 그럴수 없으니까. 솔직해 지라고해. 사람이 사랑하는건,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건 결코 어떤경우에도 죄가 될순 없어.' '.............' '사랑의 치료법은 또 다시 사랑밖에 없으니까.' 밥도 먹지 않은채 가만히 누워서 이현태의 말을 떠올려봐요. 그리고 다시, 구해찬의 얼굴을 떠올려봅니다. 어젯밤 내가 너무 심했던건 아닌지 하는 고민도 해보고, 후회도 해봅니다. 그냥 모든게 어색하고 서툰 저였어요. "예봄아." 그때, 학교를 가려는지 빨간 가방을 메고는 방문을 빼꼼히 여는 언니가 보였습니다. 나는 급히 부스스한 머리를 일으켰어요. "응? 어 언니 왜.?" "어제 해찬이 만났어? 밖에서 너 기달리던데." "아...응 잠깐 만났지." "해찬이가 뭐래는데? 둘이 뭐했어??" "어..?" "아. 아니야. 선물은 봤구?" "무슨..선물?" 그러자 무언가 고민을 하는듯한 하다가, 슬쩍 곁눈질로 제 화장대 서랍장을 가리키곤 뒤돌아섭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언니는 다시 무언가 생각난듯 뒤돌아서서 입을 열었습니다. "예봄아 미안." "응? 뭐가?" "노력했어 나도. 정말 노력했는데..미안해, 어쩔수가 없었어 나도. 내자신을" 힘없는 목소리로 고개를 푹 숙이는 언니의 모습에, 나는 침대에서 완전히 일어섰어요. 무슨말일까. 노력했다니. 어쩔수가 없었다니. 온통 수수깨끼 같은 언니의 말에 나는 영문을 모른채 언니를 바라봤습니다. 하지만, 언니는 더 이상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어요. "언니. 그게 무슨말이야.?" "아직 나도 확실하지 않아. 그래서 견디고있어. 확실해질때까지..아니, 니가 다 알게될때 아니 그것도 아니라..아무튼 미안해." "...어?..." "언니 학교 늦겠다. 갔다올께!" 허겁지겁 서두르는 언니였습니다. 그순간 느낀건 무언가 불안한 기분이였어요. 언니의 눈빛, 말투, 그리고 표정에서 나는 무언가 느낄수 있었거든요. 그건 바로 오래전, 구해찬이 언니의 이야기를 하며 나를 바라보던 그 표정, 말투, 눈빛과 똑같았거든요. 알수없는 감정에 나는 멈추어선채 언니가 나간 뒷자리만 멍하니 쳐다보았습니다. 어쩌면, 앞으로 내가 더 많이 아프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요. 나는 언니가 나가자 드르륵, 하곤 천천히 언니가 가리켰던 화장대 서랍을 열었습니다. 텅 비어있는 서랍안, 아무것도 없는데 언니는 무슨 선물이라는거지, 라는 생각으로 다시 화장대 서랍을 닫을 무렵. 순간, 스치듯 본 반짝거리는 상자에 나는 다시 서랍을 열어요. 그리곤 그것을 조심스럽게 꺼내 들었죠. 노란색 포스티잇에 삐뚤삐뚤한 글자로 [연락 안되는 띨순이를 위한] 적힌걸 보고, 나는 이것을 여기에 놓은 사람이 단박에 구해찬이라는걸 알아냈습니다. 구해찬은 이렇게 글씨를 못쓰거든요. 알수없는 기분으로 상자를 열자 보인건, 은색빛의 핸드폰이였어요. ".............."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나올것 같아, 눈을 크게 뜨고는 천천히 전원 버튼을 누릅니다. 그러자, 푸른색의 한줄기 빛이 어둠을 서서히 밝혀요. 동시에 켜지자마자, '문자가 도착했습니다.' 라는 소리를 다섯 번도 넘게 쉬지않고 냈구요. [김예봄 핸드폰 이쁘지? 고르느라 죽는줄 알았어.] [왜 이렇게 연락이 안돼냐. 아직 핸드폰 못봤겠지 넌.] 저를 만나기 전에 보냈는지, 어제의 날짜가 선명하게 찍혀있는 문자를 보며 피식 웃음을 터트리다가, 나는 서툴게 다음 문자를 보기위해 버튼을 엄지손가락으로 꾸욱 눌렀습니다. [기분 풀리면 연락해, 괜히 민망하다고 쌩까지말고] [이기집애가 진짜 왜이렇게 신경쓰이게 한 대.] [화난거 있으면 말로하는거야. 속으로 삭히는거 말고.] 날짜는, 오늘. 시간은, 제가 핸드폰을 키기 바로 10분전 이였습니다. 아무말없이 앉아서 문자를 내려다보다가 이내 피식 하고 다시 웃음을 터트립니다. 이렇듯 나는 바보같아요. 금세 이렇게 웃어버리깐, 아무래도 어제 난 이아이에게 정말 심했던 모양입니다. 구해찬은 이렇게 날 생각해주는데... 그 생각에 미안해진 나는 조심스럽게 답장 버튼을 꾸욱 눌렀습니다. 그리곤 서툰 손놀림으로 글자를 눌렀어요. '아니야 구해찬. 어제는 정말 미안해. 화풀어' \ "구해찬, 너 정말 미치지 않았어?" 내가 이렇게 말을 험하게 하는 이유는, 다 내앞에서 능글맞은 웃음을 짓고 있는 구해찬 때문입니다. 장난끼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구해찬을 보며 나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엽니다. "구해찬! 아무리 그렇다고 학교를 빼먹고 우리집을 오면 어떡해!" 그랬습니다. 구해찬은 정말 생각없이, 내 문자를 보고 학교 가려는 경로를 우리집으로 바꿨답니다. 왜? 라는 질문에 어제 자신에게 신경질냈던 내게, 정신적 보상을 받으러 왔다는 말도 안돼는 대답을 하면서 말이에요. "너, 내가 어제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알아? 알긴해?" 말을 마치곤 제 집인냥 저희집 쇼파에 누워서 나를 바라봐요. 다행이 엄마가 없었길 망정이지, 제멋대로인 구해찬의 모습에 고개를 도리도리 저어요. "기가막혀! 구해찬이 왜 상처를 받아! 상처받는건 나...." "너가 왜?" "아니! 아니야 아무튼간에, 얼른 가!" "안돼. 보상받으러 왔다니까" 깐죽거리는 구해찬의 모습에 나는 팔을 걷어붙이곤 녀석을 밀어내지만 끄떡도 없는 구해찬이였어요. 사실, 구해찬이 움직일 리가 있나요. 전 여자고 구해찬은 남자인데. 답문자를 괜히 보냈다는 생각을 하며 하는수 없이 나는 바닥에 털썩 앉았어요. "알았어. 무슨 보상을 해줘야 하는건데요?" "우리.." "응 우리 뭐요." "바다가자." "..............." "바다말야 바다. 오랜만에 학교도 땡깠는데 쌔깐하게 바다정도는 가야지." 눈이 마주치자 눈매가 둥그레질정도로 웃어보이는 구해찬. 나는 그런 구해찬을 빤히 바라보다가 함께 웃어요. 그리곤 천천히 바닥에서 일어섰죠. "안녕 구해찬. 다음에보자." "어? 야! 야 임마!" 다급하게 내 손목을 잡아채고는 이번에는 아까처럼 당당한말투가 아닌 조금은, 뭐랄까 애원하는식으로 다시금 말해요. "나 지금 바다 못보면 죽을지도 몰라." "난 바다 싫어 구해찬! 막 바다에 퐁당 빠질꺼 같아서" "걱정마 김예봄, 너랑 나는 죽어도 안빠져" "응? 왜?" "우린 다른곳에 빠져있기 때문이야" ".....어디...?" 짐짓 심각한 구해찬의 표정. 무언가 엄습해오는 불안감에 덩달아 심각한표정으로, 묻자 "사랑에.." ... ........... ".............." ".............." 이런 말도 안돼는 말을 내뱉는 구해찬이였으니. 정말 구해찬을 어떻게하면 좋을까요?. 자신도 웃긴지 크게 소리내며 웃는 구해찬의 모습에 나는 한참 후 심각하게 물었어요. "구해찬 미쳤어요?" "멀쩡해" "정말 닭살에다가 왕왕 느끼해. 그리고 무슨 우리가 사랑에빠져" 아니, 어쩌면 구해찬의 말이 맞는지도 모릅니다. 사랑에 빠진건 틀린말이 아니니까요. 구해찬은 언니한테, 나는 구해찬한테, 다만 그 상대가 다를뿐이죠. "갈꺼지?" "동문서답하지마." "너야말로. 갈꺼지?" "안간다니까!" "간다구?" "구해찬!! 안간다니까!" "알았어! 빨리 가자!" 구해찬은 신이난 표정으로 일어섰어요. 내가 무슨말을 하든 들리지 않는다는듯 자기 멋대로 말이에요. 하는 수 없이 나는 한숨을 푹 쉬고는 녀석을 따라 일어섭니다. 그순간 문득 느낀건 나는 곧 죽어도, 100번 환생해도 구해찬만큼은 이기지 못할것이라는 확신이였어요. 나는 구해찬을 아마 죽어도 이기지 못할꺼에요. 이것만큼은 불변의 법칙이 될것이 분명하다구요. "알겠어, 구해찬 그대신 사고치면 안돼 정말 약속한거야!" 그리고 이때까지도, 나는 몰랐어요. 내가 걱정했던 그 '사고'가 구해찬이 아닌 나, 김예봄이 칠줄은 말이에요. * 분량이 좀, 좀, 많이 적어요 으엉ㅜㅜ 여기서, 끊으려면 어쩔수 없었다는. 그럼 우리 모두 24편에서 또 뵈요♡ -------------- §가그린§ (godqhrgkehfhr@hanmail.net) 플티〃가그린〃소설 (http://cafe.daum.net/Gagrin) -------------- ※헬리오토로프는 5월 24일의 탄생화로 사랑이여 영원하라 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23> 한국에 있는 바다를 가본적이 있나. 아마 그랬더라면, 아주 오래전 일이겠지. 끝이 보이지 않았던 바다는, 지금도 변함없이 그대로일까. 하는 생각에 잠겨 오는 내내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어요. 라고 하면, 그래도 뭔가 분위기 있어 보이겠지만. 보시다시피 전, "이 씨! 구해찬, 구해찬은 비겁해. 구해찬이 그러고도 남자야?" 기차에서 내려 출구로 걷는 내내 구해찬을 향해 입을 삐쭉 내밀고는 소리치고 있습니다. 아, 하나 추가하자면 손가락 두개 모양으로 벌겋게 부어오른 팔목을 붙잡고 말이죠. 팔목에, 누군가가 불씨 하나를 툭, 하고 던져 놓은것 같아요. 뜨겁고 빨갛고 아프고 화끈거리고 나는 내려다본 팔목의 처참한 모습에 울상을 짓습니다. "비겁 한게 아니라, 모든지 잘하는것 뿐이야" "웃겨! 아무리 그렇다고 여자 팔목을 이렇게 만드는게 어딨어!" "안한다고 했는데 또 하자며 달려든건 김예봄 너야." 구해찬이 이렇게 말하면 저야 할말이 없죠. 구해찬 말대로, 끝까지 한판더 한판더를 외친건 바로 저였으니까요. 하지만! 이건 정말 너무해요. 가위바위보 100번 해서 90번을 진 저도 너무하지만, 90번 이겼다고 90번 모두 다 때린 구해찬도 너무하다구요. 아무튼간에 저는 빈정이 상해서 구해찬 옆에서 툴툴 거리며 걸었어요. 적어도 저는! 제가 이렇게 말하면 구해찬이 미안하다고 사과할줄 알았단 말이에요. "어? 우리 예봄이 삐졌어?" 뒤뚱뒤뚱 먼저 걸어나가자 뒷편에서 장난끼 가득한 구해찬의 목소리가 둥글게 들려옵니다. 웃겨요. 이제 버스는 저멀리멀리 훠이훠이 떠났습니다. 지금 와서 저렇게 말해도 저는 절대로 화를 풀지 않을꺼라구요. ".........." "뭐 그런거가지고 삐져 임마." ".........." "진짜 말 안해?" ".........." "그래 맘대로해, 목마른데 난 시원한 음료수나 뽑아 먹어야지." "..........." 뒷편에서 타악, 하고 걸음을 멈추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물론, 구해찬이겠지요. 그리고 이쪽에서도 걸음을 멈추는소리가 따라 탁 하고 들려왔어요. 물론, 이 소리는 김예봄것이겠지요. 훽 돌자, 음료수를 뽑으러 갈줄 알았던 구해찬이, 그자리에 서서 뭐랄까, 거봐 그럴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습니다. "구해찬!!!세상에서 제일 치사한게 먹는거가지고 그러는거야!" "아닌데, 난 세상에서 제일 치사한게, 게임졌다고 삐지는거라고 배웠는데.." 얄밉게 내말을 맞받아치는 구해찬. 멍해지자 피식 하고 웃으며 내게 다가와요.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내손을 잡아끌고는 말합니다. 눈가가 둥그레지도록 예쁘게 웃음 지으면서 "사이다? 콜라?" "안먹어!" "오케이. 사이다" "구해찬!!!너 사람말이 뭘로 들.." "알았어. 그럼 콜라?" 정말 사람말이 말같지 않나봐요 구해찬은! 따끔하게 화를 내야겠어요. 이렇듯 제멋대로인건 정말 구제불능이라구요. "아니!!!!!!!!!!!!!!!" 족제비눈 모양으로 구해찬을 힘껏 노려보면서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서 빼액 소리를 지르... ..지르는것 대신 결국 김예봄은, 아주 조그맣게 녀석에게 말합니다. ".........." "...환타." 사실, 아주 많이 목이 말랐으므로 화를 내는건 다음에 해야겠어요. \정동진 "구해찬, 나 한국의 바다는 정말 오랜만인데, 아니 기억나지 않아서 처음이나 마찬가지인데 너무, 너무 예쁘다." 입에 물고 있던 빨대를 빼고는 끝도 없이 펼쳐진 바다에 시선을 고정시키는 저였습니다. 너무, 너무 예뻤거든요. 하늘에 번져있는 붉은 노을은 수평선 쪽으로 기울어 바다를 붉게 물들고 있었습니다. 만지면, 따듯할것만 같이 노랗게 물들어 있는 바닷물. "그러게, 죽인다" "응. 구해찬은 바다 많이 봤지?" "당연하지. 난 바다의 남자야" "바다의 남자는 다 얼어 죽었나..바다의 왕자겠지! 박명수!" "죽을래?" 구해찬은 정말이지 엉뚱하고 띨한구석이 있단말이에요? 아무튼간에 구해찬과 제가 그렇게 한참동안 바다를 바라보면서 감탄을 하고 있는데, 그순간 이였습니다. "저 남자애봐, 진짜 잘생겼다." "와 진짜 쩔어, 번호 딸까?" "병신아, 옆에 여자애 있잖아. 남자가 훨 아깝다." "그러니까. 아 진짜 내스타일인데. 몸매도 존나 좋아. 진짜 너무 멋있다." 어디선가, 두 여자의 수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온건 말이에요. 어처구니가 없어서 슬쩍 고개를 돌리자 모래사장에 앉은 언니들이 힐끔힐끔 이곳을 쳐다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어요. 남자가 훨 아깝다. 라는 말에, 물론 구해찬이 잘생긴건 알지만 저는 이미 기분이 상해서 울상을 짓고 있는 반면에 옆에 있는 구해찬은 거봐 봤지? 라는 표정으로 나를 향해 웃고있었습니다. 나는 괜스레 질투가 나서 구해찬 옆구리를 쿡 하고 찔러요. "구해찬 은근슬쩍 웃지마." "안웃었어!!!!" "구해찬 지금 좋아하고 있잖아. 자기 잘생겼다니깐!" "입에 경련이 온것 뿐이거든." 갑자기 가만히 있던 입에 경련이 왜 올까요? 구해찬은 정말 바보에요. 괜히 좋아했으면서! 예쁜언니들이 멋있다고 하니깐 기분이 좋은거겠죠. 그냥 저도모르게 자꾸 질투가 나서 입을 삐~쭉 하고 내밀게 되요. "구해찬 하나도 안잘생겼어!" 그리곤 이렇게, 심통난 목소리로 내뱉었습니다. 그러자 왕자병, 아니 대대대왕왕왕자병 구해찬은 어처구니없다는듯 여유롭게 피식 하고 웃으며 제게 자연스레 어깨동무를 하곤 말했어요. 아주 말도 안돼는 말을. 말이죠 "야, 너 우리학교 다녀봤는데도 그러냐? 이 오빠, 인기 짱이다" "뭐?" "나 좋다는 여자애들 쭉 세우면 서울에서 부산까지가" 사실, 언젠가 언니에게 지나가는말로 들은적은 있었어요. 구해찬이 저렇게 병신같이 보여도 학교에서 진짜 인기가 쩐다고, 저는 그당시 쩐다는 말이 무슨말인지 몰라서 언니 쩐다는말이 뭐야? 라고 물었더니 언니가 뭐 최고, 짱이라는 말로 한거라고 대답하더라구요. 그러면서, 진짜 최고로 짜증난다. 병신이다 이런뜻으로도 쓰일수 있다고 덧붙였었죠. 아무튼간에 저는 지금 그게 생각나서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말했어요. 바로 ... ...... "쩐다.... 쩔어" 라고 말이죠. 언니가 말해준 뜻 중 물론 후자의 뜻이였어요. "죽을래? 그런말은 또 어디서 배웠냐." "쩐다 쩔어!" "하지마 김예봄, 그런말 쓰는거 아냐 여자가" "쩐다!! 쩔어!!!!" "이게 진짜." 살짝 장난스레 주먹으로 내얼굴을 조심스레 미는 구해찬이였습니다. 그러게 먼저 누가 왕자병 부리래요?! 나는 알게 모르게 언니들을 살짝 소심하게 째려보곤, 모래사장에 털썩 하고 앉았어요. 그러자 까끌까끌한 모래알들이 옷에 이리저리 엉겨붙습니다. "아 맞다 구해찬!" 그리고 그때, 갑자기 생각난 무언가에, 저는 모래사장에 엉덩이를 붙이자마자 그대로 일어섰습니다. 구해찬의 검은 눈동자가 그런 저를 따라 올라옵니다. "뭐가?" "진짜 예쁜거 보여줄께. 여기서 잠깐 기달려!" 티비같은데서 보면, 그러더라구요. 어둑어둑해지려고 할때 바닷가에서 불꽃놀이 같은걸 하는데 그게 그렇게 예뻐보일수가 없더라구요. 그 예쁜 불꽃을 구해찬에게 깜짝 선물하는거에요. 어때요. 정말 굿 아이디어죠? 그래서 저는 이 근처에 분명, 불꽃을 파는곳이 있을꺼란 생각에 허겁지겁 웃으며 걸음을 옮기려는데 단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왜냐구요? 왜냐면. 바로 "안돼." 제 손목을 타악, 하고 잡는 구해찬 때문이였지요. 이해할수 없는 녀석의 말에 나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입을 열어요. "왜?" "길도 잘 모르는게 혼자서 어딜간다고" "구해찬! 나 어린애 아니거든요!" "너 어린애 맞거든요." 으으, 정말 구해찬은 왜이렇게 삐딱선을 타는걸까요? 이해할수가 없어요! 내가 깜짝선물을 해주겠다는데, 왜 저런것도 도와주지 않느냔 말입니다. 제비눈을 하곤 구해찬을 바라보던 저는 다시금 굿 아이디어가 떠올라 웃어보이곤 입을 열었습니다. "안돼! 지금 빨리 가야된단말야." "어딜간다고 자꾸, 넌 기집애가 위험하게 진짜. 그럼 같이가." "구해찬은 여자화장실 가는 취미도 있어요?" 그제서야 민망한듯 구해찬이 제손을 스르륵 하고 놓아줍니다. "빨리 갔다와" 저는 말을 마치고 모래사장에 털썩 앉는 구해찬의 등을 바라봅니다. 참 넓어요, 언젠가 저 등에 엎혔던적도 있었는데. 아무튼간에 구해찬 말대로 빨리 갔다와야 겠다는 생각에 다시 걸음을 옮기려는데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익숙히 하얀담배를 입에 무는 구해찬 때문에 나는 또 다시 걸음을 옮기지 못했어요. 대신, "가기전, 이건 압수." 구해찬 입에 물린 하얀 담배를 재빨리 뺏고는 그제서야 뒤돌아 뛰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제 뒷모습을 바라보는 구해찬은 피식, 하고 비웃었겠지요. '김예봄 뛰는폼좀 봐,' 하고 말이에요. 이건 분명합니다. 제가 장담한다구요. 그런데, 그나저나 불꽃은 어디서 파는걸까요. 막대로 된 불꽃이 제일 예쁘던데, 소리도 크지 않고 별처럼 피슝피슝 빛나더라구요. 그 예쁜 막대불꽃을 사서 구해찬한테 불꽃에 불을 붙이고 깜짝 놀래켜주는거에요. 그렇게 야심찬 계획을 세우곤 저는 꼬불꼬불한 길을 열심히 올라갔습니다. 불꽃을 팔만한곳을 찾아다니기 시작한거죠. "아저씨, 막대 불꽃 팔아요?" "막대불꽃? 아 혹시 이거?" 그리고 마침내, 한 슈퍼에서 저는 빼빼로처럼 길다란, 회색의 불꽃을 살수 있었습니다. 그 불꽃은 윗부분이 하트모양으로 구부러져 있는 모양이였어요. 저는 아저씨가 건내준 불꽃을 이내, 받아듭니다. 정말 하트모양으로 예쁘게 구부러져있어요. 구해찬과 김예봄 하트? 갑자기 얼굴이 딸기처럼 붉게 물들어 버렸습니다. 도리도리, 급하게 고개를 저어요. 그건. 구해찬과 김예봄 하트는 될수 없다는걸 내 자신이, 잘 알기 때문이였습니다. 양손에 막대불꽃을 꽉 쥐고는 하트모양을 부딪혀가며 저는 그렇게, 열심히 다시 올라왔던길을 내려갔습니다. 구해찬도 좋아하겠죠? 드라마같은데서 보면, 다 좋아하더라구요! "으음..." 그런데, 그런데 말이죠. ".........." 이상해요. 왜 자꾸 구해찬이 보이지 않는걸까요? 벌써 슈퍼에서 나온지 10분이나 지났는데, 저는 구해찬을 여전히 찾지 못하고 있어요.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가 아까 함께있었던 지금은 구해찬 혼자 앉아있을 그 모래사장을 찾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왜 자꾸, 같은길을 빙빙 도는듯한 기분이 드는걸까요.? 그리고 정확히 그후로 다시 10분뒤, 저는 그제서야 알아차리고야 맙니다. "어떻게하면..좋지." 구해찬의 걱정대로, 구제불능 김예봄, 결국은 길을 잃어버리고야 말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아 맞다 핸드폰!" 그리고 그때, 그러니까 거리 정가운데에 서서, 어떻게하면면 좋을까. 라고 고민하던 저는 구해찬이 선물준 핸드폰을 기억해냈습니다. 지금까지 바보처럼 무얼 한걸까요? 구해찬한테 전화하면 되는거잖아요. 구해찬한테 전화해서 여기가 어딘지 모르니, 이리로 와달라는 말을 하면 되는거였는데 바보처럼 빙빙 돌기만 했으니. 김예봄 정말 바보! ......라고 1분전에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며 확신을 했는데 말이죠, 저는 핸드폰 플립을 열자마자 좌절하고야 말았습니다. 꺼져있는 핸드폰, 전원버튼을 한참을 누르고 있어도 여전히 액정은 검은색에서 변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어요. 아까, 기차에서 구해찬과 게임하면서 놀아서 밧데리가 다 나간 모양이에요. 그럼, 그렇다면. 이제, ".............." 점점 어둠이 몰려오고 있는 이 시각, 조금있으면 어둠이 모두 뒤덮을 바로 이시각, 저는, 김예봄은 어쩌죠. *소설 분량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1~2페이지 정도 모자르네요. 하디만 정말 어쩔수 없었다는거, 핑계가 아니라 마지막부분에서 컷 하려면 정말루 어쩔수 없어떠여! 마지막 부분 보시면 아실꼬에요ㅜㅜ!!♥ *노래 삽입하면 오류가.ㅠㅠ까폐볼륨업 해주세요 꼭꼭꼭!!! 이것 또한 마지막 부분 보시면 왜 이노래를 넣었는지 아실꼬에요!*_* -------------- §가그린§ (godqhrgkehfhr@hanmail.net) 플티〃가그린〃소설 (http://cafe.daum.net/Gagrin) -------------- ※헬리오토로프는 5월 24일의 탄생화로 사랑이여 영원하라 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24> 대책을 세워야해. 대책을. 길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에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한채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생각했어요. 이제 정말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을 말입니다. 그도 그럴것이, 하늘이 어둑어둑해지고 있었거든요. 여기서 더 어두워진다면, 나는 틀림없이 길을 찾는것이 더 힘들어질것이라는걸 알았습니다. 이러다가 티비에서 보던 깡패나 치한이라도 만난다면, 도리도리-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마자 힘차게 고개를 저어요. 생각도 하기 싫었거든요. "구해찬은..." 구해찬은 어딨는거야. 저를 많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근처에 공중전화 박스라도 찾아봐야겠습니다. 그러니까 구해찬 전화번호가 010으로 시작해서 몇 번이였더라. "저기요." 그래요. 그러니까 아마 그때즈음 이였을꺼에요. 구해찬의 번호를 머릿속으로 하염없이 외우며 공중전화 박스를 찾으려고 할때즈음, 한 남자의 으슥한 목소리에 나는 그대로 몸이 뻗뻗히 굳어버렸습니다. 슬쩍 고개를 돌리니, 천천히 내게로 다가오는 남자의 모습이 눈에 담겼습니다. 옥수수 수염처럼 길게 자란 턱수염이 남자의 얼굴을 뒤덮고 있었어요. 나보다 한 5살정도는 많아 보이는 남자였습니다. "네.네?" "저기, 그러니까" 점점 더 가까워지는 남자의 숨소리. 혹시, 이거 티비에서 보았던 그런 장면일까요? 엄습해 오는 두려움에 나는 뒷걸음질 칩니다. 이게 무슨 소설도 아니고, 너무 뻔하잖아요. 길잃은 여자, 그리고 점점 다가오는 낯선 남자. 티비나 소설에서는 남자친구가 짜잔 나타나서 구해주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지금 구해줄 남자친구는 없다는걸 잘 아는 저는 눈을 꼭 감아버리고 소리쳤습니다. "이. 이러지마세요!!!!!" "네? 아니 저 저는," 여기서 치한에게 죽을순 없어요. 저는 정말 그럴수 없습니다. 벌벌 떨려오는 몸으로 남자와 눈도 마주치지 못한채. 나는 마치 주기도문을 외우듯 빠르게 말합니다. "이러면 안돼는거잖아요. 아저씨 이러시면 정말 큰일나요. 그래도 전 어린앤데. 그런데." "저기.." 그순간, 남자의 큰 손이 제 어깨에 올려진 그순간, 온몸을 휘감은 두려움에 나는 빼액 소리치며 주저앉았습니다. "나 아이도 있구요. 그리고 아저씨보다 훨씬 무섭고 그리고 등치도 크고, 그리고 또, 또. 맞아요! 아저씨보다 털도 훨씬 많은 남편도 있어요!!!" "네? 저기 지금 무슨소리를 하는거.." 제 어깨에 올려 놓은 아저씨의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가자, 나는 그대로 도망가야겠다는 생각에 부르르 떨리는 몸을 뒤로 돌리려 했습니다. "응, 맞아 그러니까 그 손 치워." 그런데 그러지 못했던건, 정말로 소설처럼, 티비속 드라마처럼, 그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에요. 순간 눈물이 나올것 같았습니다. 소설속 주인공처럼 왜 이제야 왔냐고 소리치고 싶었는데, 막상 뛰어왔는지 거친숨을 내쉬며 우리쪽을,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남자쪽을 노려보는 구해찬을 본순간 나는 아무말도 할수 없었습니다. 그냥 기뻤거든요. 흐트러진 구해찬의 모습에 녀석이 날 걱정하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에 기쁘고 행복했거든요. "뭐? 뭐요?" "그 남편 여기 왔으니까, 손 떼라고 했다. 죽기 싫으면." 말을 마치곤, 왠지 모르게 잔뜩 화가 나 보이는 구해찬은 한쪽손을 주머니에 푹 찔러 넣은채, 남자의 배를 발로 퍼억 하고 걷어찼습니다. 무방비였던 남자가 그대로 신음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넘어지자 구해찬은 남자를 일으켜세워 남자의 얼굴에 주먹을 휘둘렀어요. "그만해! 구해찬!! 구해찬 정말 왜그래!"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에 큰소리로 구해찬을 말려보지만 구해찬의 단단한 주먹은 제 울먹이는 목소리에다 멈추지 않았어요. 정말 어떻게하지. 저렇게 사람을 때리는건 안된다구요! "구해찬이 깡패야? 그만해! 그만하라고!" 이래선 안되겠다는 생각에 울먹이며 구해찬의 허리를 꽈악 붙잡았습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정말 거짓말처럼 구해찬의 주먹이 멈추었어요. 분을 못이긴 녀석의 거친 숨소리가 귓가로 심장소리와 함께 들려옵니다. 얼굴에 닿는 구해찬의 등이 참 따듯하구나, 라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눈을 감으려는 순간, "아 씨 미치겠네! 발 밑에 뭐떨어졌다고요!!!! 그거 말해줄려는게 그렇게 잘못이에요???" 퉁퉁 부은 얼굴로 일어서서 신경질적으로 소리치는 남자의 말에, 약속이나 한듯 멍텅구리 구해찬과 김예봄은 그대로 굳어버립니다. ".............." "............." 둘다, 제 발밑에 애처롭게 떨어져 있는 하트 막대불꽃 두 개를 바라보며 말이죠. 순간, 알수없는 침묵이 바람과 함께 우리 사이에 무겁게 머물러요. 아주 오래도록, * * * *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해요. 저는 저도 모르게 치한인줄 알고.." "죄송해요. 정말 죄송합니다." 벌써 몇 번째나 구십도로 허리를 구부리면서 죄송하단 말을 한지 몰라요. 아마 수십번은 죄송하다고 반복했던것 같습니다. 하지만 100번이고 1000번이고 사과드려야 할 일을 만든건 분명 김예봄입니다. 바보, 바보 김예봄 괜히 오바해서 생사람이나 잡고. "죄송해요 정말" 다시 한번 구십도로 허리를 구부리며 말해요. "저도 죄송해요. 저는 얘 표정이 하도 오바하길래." 하지만, 그래요 분명 제가 잘못한게 맞지만 구해찬이 왜이렇게 얄미울까요? 물론, 구해찬의 말이 백번 맞는말이지만요. 구해찬도 오바했다구요! 저만 오바한거 아니라구요. "아니에요. 괜찮은데, 정말 그냥 그런거 아니니 오해하지 말아요. 전 그냥 발밑에 뭐 떨어져있길래 말한것 뿐인데, 치한취급이라도 받은것 같아서." "죄송해요.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아저씨" 정말 착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저 발밑에 무언가 떨어져 있길래 말해주려다가 치한취급 당하고 얻어맞게 됬는데도 저렇게 웃어보인다는게 쉽지 않을텐데 말이에요. 그런 착한 사람에게 괜한 상처를 준것 같다는 생각에 나는 몇 번이고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하면서 얼마 안돼지만 치료비로 지폐 몇장을 건내드렸습니다. "치료비같은건 안주셔도 되는데, 정말 괜찮습니다. 그리고" "네.네?" ... ..... "저 아저씨 아니에요 누나." "네..네?" "여기 여수중학교 3학년이에요." ........ 남자, 아니 아이의 말에 구해찬이 점점 울상이 되는 제 표정을 보며 푸풉 하고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구해찬이 저를 비웃던 말던 그순간 생각한건, 정말 어린아이에게 큰 상처를 주게 되었구나, 라는 생각이였어요. 콧수염만 기르지 않았더라도... 저보다 5살이나 위로 보진 않았을거라구요. 아저씨가 아닌 아이의 말에, 저는 죄인처럼 푹 고개를 숙이곤 중얼거리듯 말해요. "응 미안..." * * * * "잘한다 잘해. 김예봄, 너 정말." 피곤하다는듯 기지개를 쭉 피며 걸어나가는 구해찬의 얄미운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푹 숙입니다. 어느새 하늘은 어둑어둑해져서 까만도화지처럼 변해버렸어요. 하지만 아까와는 달리 하나도 무섭지 않아요. 왜냐면, 지금은 얄밉든 약오르든 구해찬과 함께니깐. "그렇게 말 안해도 나도 지금 무지 쪽팔리고 미안하고 그러니깐 조용히 해" "그러니까 내가 위험하다고 했지." "나도 오바했지만 구해찬도 오바했어! 뭐? 남편!" "나 화내려다가 참고 안내는건데. 화낼까." 순간 앞서 걸어가던 녀석이 타악 하고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리고는 그대로 삥그르르 돌아서 위와 같이 말했죠. 저는 어처구니가 없어 픽 하고 웃어보여요. "구해찬이 왜 화를내!" "걱정시켰잖아. 난 걱정하는게 제일 싫어." "......." "근데 그건 뭐야? 그거 사려고 그 난리 친거냐." 걱정했다는 구해찬의 말에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고, 마음이 따듯해져와서 제가 아무말없이 걷기만하자 구해찬은 화제를 돌리려는지 제 두손에 꼭 쥐어진 막대불꽃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그제서야 저도 막대불꽃이 생각나 손에 든 막대를 이리저리 흔들어 보아요. 놀래켜 준다는 계획은 보기좋게 무산되고야 말았지만. 그래도 불을 붙이면 정말 예쁠꺼에요. "이거! 막대불꽃이야. 얼마나 예쁜데! 구해찬 라이터있지?" "라이터?" "응! 라이터!" 그러자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라이터를 집어 제게 내밀려다가, 이내 다시 자기 쪽으로 가져가는 구해찬이였어요. 왜그런가 싶어 눈을 땡그랗게 뜨고 녀석을 바라보자. "줘봐. 내가 불 붙일게, 위험해" 라고 말하며 씩 하고 예쁘게 웃어보입니다. 이렇게 하나하나 배려해주는 구해찬의 모습에 왠지 모르게 코끝이 찡해져와요. 괜한 감상에 젖어 아무말없이 두손에 꼭 쥐어져있던 막대불꽃을 내밀자 구해찬은 이내 라이터를 딸칵 하고 키더니 빨간 불을 막대로 가져갔어요. 라이터에서 옮겨진 붉은빛은 이내 화르륵 하고 막대에 붙더니 치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이리저리 불꽃을 튕기기 시작했습니다. "와..." 그건, 정말 저도 모르게 나온 탄성이였어요. 하트불꽃은 정말로 너무나도 예쁘게 빛났거든요. 정말로 하늘에 떠있는 별처럼 너무 예뻣어요. 구해찬에게서 받아든 막대를 어린아이처럼 신이나 검은 하늘위로 올려 흔들었습니다. 이리저리 노란불빛이 허공으로 튀어 올라요. "이런거 좋아하냐. 유치하게." "구해찬도 사실은 지금 예쁘다고 느끼고 있잖아." "귀신같긴." 막대불꽃은 예쁘긴 하지만 금방 꺼져버리는 단점이 있죠. 우리의 막대불꽃 또한, 1분도 채 가지 않아 꺼져버리고 말았어요.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던 저는 왠지 모를 허무함에 자리에 털썩 앉아서 꺼져버린 막대를 흔들어요. 탄냄새가 코 끝에 내려 앉습니다. "금방 꺼졌어." "알아. 보여." "너무 허무해." "원래 이런거다 꼬맹아." 울상을 짖는 저를 보며 피식 하고 웃더니 따라 털썩 하고 앉는 구해찬이였습니다. 드넓은 모래사장에는 몰려온 추위에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 이제는 몇몇 사람들밖에 남질않았어요. 대신, 모래사장 끝 세워진 무대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공연을 하나봐요. 폭죽처럼 요란하게 반짝이는 조명을 멍하니 바라보던 저는, 이내 구해찬에게로 고개를 돌려 말했습니다. "그런데 구해찬." "응?" "우리 집엔 언제가?" "왜. 내가 너 잡아먹기라도 할까봐?" 구해찬은 어쩜 생각하는게 그런쪽으로밖에 생각하지 못하는걸까요? 정말 나중에 머리를 해부해보면 이상한곳만 발달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터무니 없는 생각을 하며, 나는 아까의 구해찬 말투를 따라해 대답했습니다. "귀신같긴." 그러자 웃어요. 내가 좋아하는 구해찬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웃음을 지어 보여요. "가야지. 이제" 그러면서 일어서려는 구해찬의 손을 나는 갑자기, 타악 하고 잡아챕니다. <25> "조금만 더, 있다가자." "뭐?" "그냥 밤바람도 좋구 바다 보는것도 좋구 해서." 솔직히 말하면 난 지금 열심히 핑계를 대고 있는거에요. 사실은 구해찬과 이렇게 함께 있는게 좋아서. 다시 집에 간다면 언니 바라보며 웃을 구해찬을 볼 자신이 없어서, 잠시동안만이라도 언니대신 이렇게 구해찬 옆에 앉아서 함께있을수 있다는게 행복해서. 사실은 좀 더 있고 싶은거니까요. 제말이 알겠다는듯 털썩 하고 앉아서 자신의 발밑에 떨어진 막대를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굴리다가 구해찬은 "근데 춥잖아." 라고 또 다시 걱정스럽게 입을 열었습니다. "아냐 안추워. 구해찬은 추워?" "벗어줄까?" 가볍게 제말을 무시하고는 교복마이를 벗는 시늉을 하는 구해찬, 저는 구해찬이 추울까봐 손사래를 치면서 아니라고 됐다고, 말하려는 찰라, 구해찬은 다시 교복마이를 주섬주섬 입으며 씩 하고 웃었습니다. "라고 할줄 알았지. 나 얼어죽으면 예봄이 울어서 안돼." 정말, 저는 언제쯤 구해찬을 이길수 있을까요. 또 다시 나를 놀린 구해찬을 째려보다가 이내 훽 하고 고개를 돌렸어요. 그러자 이번엔 정말로 어깨가, 그리고 등이 따듯해져와요. 구해찬에게서 늘 나던 특유의 애기냄새가 코 끝에 내려앉아요. "구해찬. 진짜 필요없어 나 그렇게 안추워." "넌 드라마도 안봐?. 원래 캡 잘생긴 얘들은 다 이래." 또 다시 터무니 없는 구해찬의 말에 피식. 하고 웃어버렸습니다. 그리고는 고개를 숙여 마이 왼쪽 가슴에 달아져있는 녀석의 명찰을 빤히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지요. [구해찬] 처음, 언니를 대신해 학교에 등교했을때 무턱대고 저에게 어깨동무를 해버린 구해찬 때문에 얼마나 당황했는지 몰라요. 정말 엉뚱하고 개구진 그 첫인상에 나도 모르게 호기심이 갔나봐요. 아니, 어쩌면 내가 알지 못하는 언니를 좋아한다길래 더욱 그랬을지도 모르구요. 부득이 하게 언니인척 속였을때, 그래서 구해찬의 진심을 알게 됐을때. 그때 아마 모든걸 멈추었어야 했을지 몰라요. 자꾸만 내게 잘해주는 구해찬에게 거리를 두어야 했었고, 마음이 깊어지기 전에 그만두어야 했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나는 결국 또 다시 가슴 아픈 사랑을 할수밖에 없나봐요. 두근두근, 일정하게 뛰는 심장이 말해요. 이제 더 이상 되돌릴수 없다고. 너에게 구해찬은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 눈물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고. "아까." "........"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뜬금없는 내말에 아무말없이 구해찬이 제게로 고개를 돌려요. 그아이의 시선이 빤히 제 얼굴로 머물자 고개를 푹 숙입니다. "그냥, 아까 구해찬은 날 위해서 뛰어왔잖아. 숨차도록, 그게 고맙다구." "넌 별게 다 고맙다." "별게 다 고마운게 아니라, 그게 구해찬이라서 고마운거야." "........." 머리위로 별이 쏟아질듯 반짝입니다. 왠지 모르게 어색한 분위기에 구해찬은 기지개를 피는 시늉을 하며 자신의 몸 뒤로 팔을 빼, 땅을 손으로 짚었습니다. "구해찬 기억나? 저번에 내가 좋아하던 사람이 나 때문에 죽었다는말." "응." 내말을 들어줘야 겠다고 생각했던걸까요. 조금은 나른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구해찬이에요. 그모습이 너무 예뻐 나는 나도 모르게 피식 하고 웃으며 다시금 입을 열어요. 왠지 모르게 포근하게만 느껴지는 밤바람에 몸을 기대곤 말이죠. "미국에서...나 혼자였거든. 외로웠어. 정말 많이..." "......." 살짝 떨리는 내 목소리에 아무말없이 들어주는 구해찬이에요. "그러다가 존을 만난거야. 펜팔친구라고 해야하나. 그래. 펜팔친구. 편지 주고받으면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수 있었어. 나는 어느새 존의 엄마아빠를 잃은 아픔을, 그리고 존은 가족과 떨어져서 아빠에게만 의지한채 외롭게 미국에 지내야만 하는 내 외로움을." ".........." "처음이였어 정말. 얼굴도 모르는 그 미국남자애가 걱정되고, 또 그 남자애 때문에 웃고, 단지 편지뿐이였지만, 나 때문에 담배도 끊었다는 그남자애의 말에 설레였던 내가 낯설만큼 그런 감정은 처음이였어. " ".........." "그리고 그날, 편지만 주고받다가 존이 우리집으로 놀러오기로 한날, 그렇게 우리 서로 처음으로 얼굴을 보게된 날, 나 정말 많이 행복했어. 정말로 재밌었거든. 자전거도 타고. 잔디밭에도 눕고 그렇게 행복하게 추억을 쌓았는데.. 그날, 그 아이... 돌아가던길에 차에 치여 죽었어. 난 울면서, 그아이가 있다는 병원으로 달려가다가 정신을 잃었어. 그게 다야. 나는 내 상처를 진심으로 위로해주고 걱정해줬던 그아이를, 그렇게 너무 허무하게 떠나보내고야 말았어. 내가 죽인거나 마찬가지야. 그날은 처음으로 그아이 웃는 얼굴을 본 날이였는데..... 그게 마지막이 된거야. 그아이, 웃음이 참 따듯했는데.... " 아무말없이 울먹이는 내 이야기를 잠자코 들어주는 구해찬이였어요. 결국 마지막에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트리는 나를, 구해찬은 말없이 바라봐요. 괜찮아. 울어도 되. 지금은, 눈물 흘려도 되. 구해찬의 눈이 제게 그렇게 말하고 있는것만 같았어요. ..... "사랑이 무서웠고, 사랑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어. 나는 이제 두 번다시, 그럴수 없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고마워. 구해찬한테 너무 고마워, 내 마음을 다시 따듯하게 만들어줘서. 이런 감정, 다시 느낄수 있게 해줘서. 사실은..... 나 무섭고 두렵고 가슴 아플꺼라는거 알지만 그래도, 무지 고마워. 구해찬 때문에 사랑을 잊을수 있었고, 사랑을 떠나보낼수도 있었고, 그 사랑을. 너무나도 무서웠던 그사랑을, 다시....시작할수 있었어. "쪼그만한게 눈물은 왜이렇게 많은거야." 고개를 숙여 나와 눈을 맞추곤 피식 하고 웃어요. 그리고는 따듯한 손가락으로 내 눈가에 잔뜩 묻은 눈물을 닦아줍니다. "구해찬..미안해, 이런얘기 해서 분위기 이상하게 해서." "알긴 알아?" "응.." "울지마. 왜 우냐. 누가 울보 아니랄까봐," "........" 아무말없이 천천히, 그렇게 천천히 다가오는 구해찬. 조심스레 나를 안아줍니다. 따듯한 구해찬의 품에 어정쩡하게 안겨있던 나는 이내 서툴게 구해찬의 허리를 꽈악 안았어요. 그리고는 녀석의 어깨에 얼굴을 푸욱 묻었습니다. 구해찬한테선 늘 이렇게 좋은냄새가 나요. "그런 기억은 잊으면 되는거야. 넌 예쁜 기억만해. 예쁜것만 추억해. 알았지?" "구해찬. 어떻게 예쁜기억만 있을수 있겠어. 슬픈기억도 있고 아픈기억도 있는거지." "병신아. 넌 그냥 예쁜것만 기억해." 또 또 말도 안돼는 억지를 부리는 구해찬이였지만. 이번에는 토달지 않고 고개를 끄떡였습니다. 지금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행복..했거든요. 웃음이 났거든요. 왜냐면. "응. 알겠어!" 구해찬이. 다른 누구도 아닌 구해찬이 곁에 있으니까. "그래. 예쁘다." 왠지 모르게 나랑 비슷한 상처가 있는... * * * * * "어? 구해찬! 공연하나봐. 아까 봤었는데 아직도 하네!" "응. 그러네?" "구해찬! 너도 나가봐. 상품권도 준다! 저거봐!" 집으로 가는길, 모래사장 끝에 마련된 무대를 바라보며 나는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무대 위 큰 현수막에 적힌 상금은 탐날정도로 컸어요. 100만원이라니. 우와. 두 눈을 크게 뜨고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구해찬을 바라보자 말도 안된다는듯 피식 하고 웃습니다. "돌았냐." 그럼 그렇죠. 구해찬이 그럴 리가 없죠. 분명 다음말은 이걸꺼에요 '남자가 가오 없게.' "왜!? 왜!" "남자가 가오 없게." 이거봐요. 제말이 맞죠? 맨~날 똥폼만 잡으면서 가오는 무슨! 이라고 말할려다가, 구해찬이 아까 위로해준게 생각나 입을 꾸욱 다물었습니다. 그리고는 한 여자가 노래를 부르고 있는 무대를 바라봐요. 그러다가 문득, 씩 하고 웃으며 구해찬을 다시 바라보는 김예봄이였습니다. "뭐. 왜." "구해찬! 나 저기 나갈래." "뭐??????" 지금 구해찬은 꼭, 거짓말하지마. 장난치지마 라는 듯한 눈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지만, 저는 그 눈을 그대로 외면해버립니다. 왜그러냐구요? 그냥, 문득 생각난 노래가 있거든요. 구해찬한테 꼭 들려줘야 할것만 같아서. 지금 이순간이 아니면 그 노래를 구해찬 앞에서 할수 없을것만 같아서 나는 조심스럽게 용기를 내봅니다. 왜냐면 오늘 구해찬은, 너무 따듯했으니까. "잠깐만 구해찬. 기달려!" "장난치지마 김예봄." 타악. 하고 제 손목을 잡는 구해찬. 하지만 저는 구해찬에게 마이를 건낸 후 무대 뒤쪽으로 구해찬에 잡기 전에 뛰어갔어요. 정말 무슨생각으로 저러는거야. 라는듯 구해찬은 그런 제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봅니다. 그리고 잠시후, 무대 뒤편에서 너무나도 쉬운 접수를 하고는 떨리는 마음으로 내 차례를 기다립니다. 포기한건지 구해찬은 자꾸만 피식 하고 웃으며 멀찌감치 떨어져 자리에 앉아있어요. 문자로 간간히 [미쳤네] [돌았네 우리 예봄이] [쪽팔린다. 아는척하면 죽어] 라고 저를 놀려댔지만, 저는 아랑곳 하지 않은채 제 차례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이내, 갑작스럽게 접수를 한 제 차례가 다가오자 그제서야 심장이 두근두근 하고 떨리기 시작했어요. "네. 다음 참가자입니다. 이름이?" 58번 이라는 제 번호가 불리자 저는 쭈삣쭈삣 무대위로 올라가요. 많은 사람들이 바라보고 있는 지금 심장이 아까보다 좀 더 뛰기 시작합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구해찬과 눈이 마주치자 웃겨 죽겠다는듯 구해찬이 호탕하게 웃어 보여요. "김예봄...이요." "아 굉장히 예쁘게 생겼어요. 인형같이 귀여운데. 노래도 잘하실지. 무슨노래 하실려구요?" "보아에 비. 비밀...일기요." 정말 심장이 폭주기관차처럼 쉬지 않고 뛰기 시작해요. 빨리 더 빨리, 뛰어대는 심장에 목소리까지 떨려왔습니다. 서서히 조명이 어두워지고 사람들의 박수소리가 아득하게만 들려올때즈음, 천천히 흐르는 멜로디에 나는 마이크를 꽉 잡아요. 숫기도 없는 내가, 이 많은 사람들 앞에 선건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에요. 구해찬에게 있어서 주인공이 될수 있는 마지막인 오늘, 나는 구해찬에게 들려준 과거의 내 이야기 뿐만 아니라 지금의 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에요. 그렇게 무대를 가득 메운 따듯한 반주소리에 눈을 감아요. 잘들어요 구해찬. 내가 이렇게 용기 낸 이유니까. 정말 가짜 김예봄 아니라 진짜 김예봄의 진심이니까. "언니의 생일날 그대를 만났죠. 운명이 날 빗겨간 날이였죠. 마법에 걸린듯 아무말 못하고 하루종일 슬픈 예감에 빠졌죠..." 구해찬은 지금 어떤 표정으로 나를 바라볼까. 내 노래의 의미를 알아줄까. 내 마음을 그녀석이 알아줄까. 차마 바라볼 자신이 없어서 구해찬을 보지 않은채 나는 떨리는 손으로 다시 잡은 마이크에 힘을 꽉 주었습니다. "친구의 동생으로만 어린아일 보는 듯이 어깨를 두드리며 귀엽다 말하고 나를 또 울렸죠. 어떡해야 해요..그댈 사랑해요.. 언니 옆에서 행복해하는 그 모습에 나는 또 울고. 꿈에서라도 그대 곁으로 다가갈 수 없다는걸 알죠.." ...... 알아줘 구해찬. "거울앞에 앉아 나를 바라보며 이런 마음 안된다고 말하죠. 언니의 친구를 사랑하는 나를 이해해 줄 그 누구도 없을테니. 언니의 이별이 오길 기도하는 내모습이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인걸 알지만, 어쩔수 없어요." 김예봄의 진심을, 오늘만큼은. 오늘 하루만은 제발 알아줘요..... "어떡해야 해요. 그댈 사랑해요.. 언니 옆에서 행복해하는 그모습에 나는 또 울고 꿈에서라도 그대 곁으로 다가갈 수 없다는걸 알죠. 차라리 영원히 내 눈앞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조금씩 천천히 지워버릴 텐데..." 이 시간이 지나면, 모른체 해도 되. 그러니까 오늘 하루만큼은 내 진심을, 내 마음을, 내 심장을 이해해주면 안될까. 알아주면 안될까요. "어떡해야 해요. 그댈 사랑해요.. 어린 나에게 처음 찾아온 사랑이란 그 소중함이 나를 더 많이 아프게해도, 미워할수 없다는 걸 사랑할 수 없다는걸... 잊어야만 한다는걸, 알죠..." 천천히 조명들이 다시 어두워지고, 그렇게 김예봄의 간절한 노래가 끝나고, 사람들의 꿈만같은 박수소리가 들려오자 내 눈은 천천히, 구해찬을 찾습니다. 그리곤 마주쳤어요. 아무말없이, 그래 정말 아무말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구해찬의 눈과. 나는 말없이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그런 구해찬의 눈을 바라봐요.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흔들리는 구해찬의 눈동자를. 믿을수 없다는 듯 그렇게 가슴 아프게 흔들리고 있는 녀석의 눈동자를.... *ㄲㅑ♥.♥ 삼십편의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아써여 열씨미 달리겠습니다^^* 그리고 이번편 늦게 가져와서 죄송해요!! 대신 3편 쓰리콤보 퐈밤!ㅋㅋㅋ -------------- §가그린§ (godqhrgkehfhr@hanmail.net) 플티〃가그린〃소설 (http://cafe.daum.net/Gagrin) -------------- ※헬리오토로프는 5월 24일의 탄생화로 사랑이여 영원하라 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26> "구해찬, 내가 노래는 잘부르나봐 3등이나하고, 그치?" "..........." "1등은 비록 못했지만, 그래도 3등도 상금이 20만원이나 되! 와 대단해 진짜!" 아무말도.. 정말 아무말도 하지 않아요. 구해찬은 아무말도 없이 애써 밝은척하며 떠들어대는 나를 무시하고 걸어요. 아무말도 하지 않은채 말이에요. 손에 쥐어진 상품권이 바람에 펄럭이는걸 바라보다가 나는 그런 구해찬의 뒤를 따라갑니다. 구해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왠지 모르게 화가 나기도 해요. 하지만 이건, 아까부터 알수없는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고있는 구해찬이 원망스러워서가 아니라 제 자신한테에요. 이것밖에 안돼는 김예봄 때문에, 그런 내자신 때문에 나는 너무 화가 났습니다. "........" 그래도 나는 후회하지 않아 구해찬. 언니 좋아하는마음, 나 좋아해달라고 떼쓰는거 아니야. 그냥 전하고 싶었던것 뿐이야. 그래 정말 그런것 뿐인데... 입가에 멤도는 말을 꾹 삼키며 다시 빠른걸음으로 부지런히 구해찬의 뒤를 따라 걷는데 순간, 걸음을 타악 하고 멈추는 구해찬이였습니다. 그바람에 뒤따라서 걷던 나도 깜짝 놀라 걸음을 뚜욱 멈추어버렸어요. 늦은 시각이여서 그런지 주변은 고요하고 조용했어요. 머리 위를 따듯하게 비추고 있는 가로등불빛만이 반짝이고 있을뿐, "물어봐도 될까. 김예봄." 내게로 시선을 주지 않은채, 그러니까 자신의 앞만 바라보면서 구해찬이 그래요.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조용히 김예봄에게 말해요. 그러면 나는 고개를 숙이곤 고개를 젓습니다. "아니.." ".........." 나는 아니까. 구해찬이 어떤말을 할지 , 내게 무엇을 물어볼지 나는 너무나도 잘 아니까. "안들을래. 대답도 안해. 우리 그냥 가자 구해찬." 도망치듯 기차역 방향쪽으로 빠르게 걷는데 그순간 타악,하고 앞서가는 내 손목을 잡아채는 구해찬. "그 노래, 그냥 부른거지?" 구해찬의 물음에 허탈한 웃음이 터져나왔어요. 피식 하고 입가를 비집고 나온 실소가 허공에 이리저리 흩어집니다. '응' 이라고 대답하면 되는데, 너무나도 이기적인 나는 차마 그 쉬운 대답조차 내뱉지 못했어요. 마음이 아파요. 그 쉬운 대답대신 나는 침묵을 선택합니다. 그러다가, "아니, 구해찬이 생각하는거 맞아." 아주 한참 뒤에야 대답하지요. 믿을수 없다는 표정의 구해찬에게. "그냥 그렇다는거야 구해찬. 달라지는거는 아무것도 없잖아. 그거면 됐어. 나는 그래도." 잠시 말을 멈추었어요. 그건, 더이상 뒤엣말을 이어 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였습니다. 흔들리는 구해찬의 눈동자에 내가 담겨요. "행복해. 언니랑 구해찬 이현태 황여민, 모두 좋은 친구니까." 잠시 멈추었던 말을 심호흡 길게 한번 내쉬고 다시 이어 나가자, 아무말없던 구해찬이 피식 하고 웃음을 터트렸어요. 그리고는 천천히 내게로 다가와 큰손으로 머리를 잔뜩 헝크려 놓아요. 눈물이 나올것 같아서 나는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그러자 구해찬이 말해요. "예봄아." "............" "고마워." ".....어?" 알수없는 구해찬의 말에 숙이고 있었던 고개를 들어 녀석을 바라보자 구해찬의 눈과 내눈이 순간, 마주쳤습니다. 눈이 마주치자 구해찬은 뭐랄까, 따듯한 표정으로 나를 다시 바라봤어요. 두근두근, 나는 심장 뛰는 소리가 구해찬에게까지 들릴까봐 조마조마하면서 눈을 꿈뻑입니다. 그런 내게로 구해찬은 살짝 허리를 굽혀서 눈높이를 맞추곤 다시 말해요. "그리고 미안해." 이라고. 정말로 따스하게. \다음날 구해찬의 고맙다던 그말, 무슨 의미였을까. 마음을 못받아줘서 미안하지만 자신을 좋아해줘서 고맙다는뜻이였을까. 아니면, 괜찮다며 모두 좋은친구라는 내말이 고맙다는 뜻이였을까. 미안하다는말은...아마 마음 못받아줘서 미안하다는 뜻이였겠지.? "예봄아! 파란색하고 분홍색중 어떤색이 더 마음에 드니?" "네. 네?" 구해찬 생각에 잠겨서 엄마의 말을 미처 잘 듣지 못했던 모양이에요. 내어깨에 손을 올리는 엄마의 말에 정신이 번뜩 든 나는 그제서야 허겁지겁 대답하며 웃어 보였습니다. 그러자 엄마는 손에 들고 있던 파란색 원피스를 내려 놓고는 걱정스레 물었어요. "너 정말 무슨일 있는거니? 어제 집에도 늦게 들어오고." "아. 아니에요 엄마! 그런거 정말 아니에요." 한국에 있는동안은, 걱정시켜드리고 싶지 않았는데 나는 또 다시 엄마를 걱정시켜 드렸나봐요. 엄마의 무거운 한숨소리가 들려오자 머릿속에 풍선처럼 둥둥 떠다니던 구해찬의 얼굴을 얼른 지워버리곤 밝은 웃음을 지어보였습니다. 그러자 엄마도 하는수 없다는듯 피식 하고 웃으며, 내려놓았던 원피스를 다시 들어 제게 대보아요. "예봄이 넌 역시, 파란색이 더 어울리는거 같아. 엄마 안목이 맞지?" "네. 정말 예뻐요." "너한테 잘 어울려서 예쁜거야. 이걸로 주세요." 하늘하늘한 레이스가 달린 파란 원피스는, 이내 엄마의 손에서 점원의 손으로, 점원의 손에서 쇼핑백으로 담겨 제손으로 왔습니다. 나는 배를 불룩하게 내밀고 있는 쇼핑백을 빤히 바라보다가 매장을 나서는 엄마의 뒤를 졸레졸레 따라갔어요. 그러다가 문득, 예나언니 생각에 조심스레 입을 열었습니다. "엄마. 저는 괜찮은데... 예나언니가 서운해하면 어떡하죠?" "예나는 옷 많아서 괜찮아. 엄마가 예봄이 옷 한 벌 사줬다고 서운해할애 아니야 우리 예나는." ".........." "예봄이 스파게티 좋아하지? 저기가서 밥먹고 집에가자." "네? 네. 감사해요 엄마." 엄마를 따라가면서 생각했어요. 우리 예나는,에서 내가 멈칫한건 아마 나에겐 없는 익숙함 때문이 아니였을까 하고, 언니보다 나는 엄마와 함께한 시간이 적으니까, 아마 엄마에게 나는, 언니보단 익숙한 존재가 아닐꺼에요. 엄마는 나보다 언니를 더 많이 잘알것이고, 언니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무슨 운동을 잘하고 어떤습관이 있는지 알테지만 나에 대해선 잘 모를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습관이 있는지...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니 문득, 코끝이 시려왔어요. * * * * "예나야. 예봄이 이따 꼭 저녁 챙겨주고, 엄마는 이제 회사 갈게." "엄마 왜 회사 지금가?" "예봄이랑 시간좀 보냈어, 백화점 쇼핑도하고 밥도먹고. 엄마 늦었으니까 다음에 얘기해! 예봄아 엄마 갈께!" 학교에서 지금 막, 온 언니가 신발장에서 구두를 신고 있는 엄마에게 묻자, 엄마는 정말로 바빳는지 대충 구두를 구겨 신으며 쇼파에 앉아있는 제게 인사를 하곤 현관문을 열고 쌩 나가버렸어요. 언니는 그런 바쁜 엄마의 모습이 황당하다는듯 신발을 벗지도 않은채 그대로 서서 멍하니 엄마의 뒷모습만을 바라볼 뿐이였죠. "언니. 왔어?" 그리고 그제서야, 언니의 시선이 내게로 닿았습니다. 언니는 아무말없이 나를 응시하다가 천천히 운동화를 벗고 집안으로 들어왔어요. "엄마 오늘 회사 늦게가네?" "아. 응! 그러시지 않아도 되는데, 나 옷도 사주시고 맛있는것도 사주셨어. 정말 안그러셔도 되는데." "옷? 너만?" 그순간 느낀건, 뭐랄까 언니의 말투가 평소 앙칼지긴 하지만 둥글고 따듯한 언니의 말투와는 조금 다른 가시가 돗힌듯 날카로운 말투였다는 것 이였습니다. 신경질적으로 내옆에 놓여진 쇼핑백을 뒤적이는 언니. "아. 응. 언니는 학교에 가서...그래도 사이즈 맞을테니깐! 언니 같이입자!" "내가 거지야? 니옷입게." 언니는 타악. 하고 신경질적으로 뒤적거리던 쇼핑백을 내려놓고는 그대로 일어서서 뒤돌아서서 자기방쪽으로 걸어갔습니다. 그제서야 이상함을 느낀 나 또한, 언니를 따라 일어섰습니다. "언니 화났어?" "내가 왜?" 왜 화가난건지, 내가 언니한테 무얼 잘못했는지 생각해 보아도 도저히 떠오르지가 않았어요. 그래서 그순간, 마음이 조금 답답했던거 같아요. "어? 아니. 그냥 언니 말투가 예전같지 않아서. 조금 화나보여서... 내가 뭐 잘못한거 있으면 말해 언니. 화내지말고 풀어." "너..." "어?" 언니는 언니를 잡고 있는 내손을 뿌리치면서 정말로 화난 표정으로 나를 노려봤어요. 처음 보는 언니의 표정에 겁부터 나요. 내가 언니한테 무의식중에 상처라도 줬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파왔습니다. 언니는, 나를 계속해서 노려보다가 무언가 참는듯한 표정으로 "착한척좀 그만해. 진짜 재수없어. 알아? 니 그 착한척 때문에 나쁜마음도 못먹고, 나쁜년되게 생겼으니까." 그리고는 그대로 뒤돌아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버리는 언니였습니다. 콰앙. 하고 닫힌 문소리가 텅빈 집안에 메아리처럼 울리다가 내 가슴에 파고들었어요. 나는 아무말없이 언니의 뒷모습을 바라봤습니다. 솔직히, 충격받지 않았더라면 거짓말일꺼에요. 언니의 차가운 태도에 눈물이 나올것만 같았으니 말입니다. "언니. 미안해. 왜 그런지 몰라서 더 미안해. 나 언니 화풀릴때까지 기다릴게." 언니의 방문 틈새로 조그맣게 중얼거리듯 말하고는 내방으로 들어가기 위해 뒤돌아서려는데, 발걸음이 무거웠어요.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발걸음이 아니라 마음이요. 마음이 무거웠어요. 나는 방으로 돌아와, 나보다 큰 곰돌이 인형을 꼬옥 안고는 침대에 앉았습니다. 그리곤 곰돌이 머리에 얼굴을 살짝 기대요. 그러자 곰돌이에서 기분좋은 애기냄새가 났습니다. 구해찬 냄새. 구해찬. 좋은냄새. ".............." 나는 슬며시 주머니에서 구해찬이 준 핸드폰을 꺼냅니다. 그리고는 한쪽 손가락으로 툭툭 액정을 건드려 보아요. 지금쯤 구해찬은 뭘 하고 있을까. 라는 생각에 말이에요. "전화왔으면..좋겠다. 전화와라. 얍." 이런다고 전화가 올 리가 없죠. 정말 오는건 소설속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라구요. 아무리 생각해도 방금 한 내행동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피식 하고 웃으며 손에 올려놓은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속에 넣으려는 순간 드르륵. 드르륵. 정말 거짓말처럼 손에 쥐어져 있던 핸드폰이 요란하게 진동소리를 냈습니다. 액정위로 구해찬 이라는 세글자를 깜빡깜빡 거리면서요. 우연치고는 너무 신기한 그 우연에 나는 전화를 받을 생각도 하지 않은채 토끼눈이 되어 드르륵 거리는 휴대폰을 내려다보았어요. 받으면 꼭 바로 끊어질것만 같아서 바보처럼, 나는 통화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전화 안받아?" "받아야죠. 받아야 하는....헉!" 갑작스레 들려온 낯익은 목소리에. 나는 정말 깜짝 놀라 그대로 '헉' 하고 엽기적인 소리를 내뱉을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내, 드르륵 드르륵 거리며 요란하게 울던 핸드폰 진동이 멈추자 나는 손에 들린 핸드폰과, 내방문에 기대 서있는 구해찬을 한번씩 번갈아 보았어요. 혹시, 이거 꿈인가요? 꿈이 아니라면 이런일이 일어날수가 없잖아요. 너무 황당해서 김예봄은 어버버, 하며 그상태로 굳어버렸습니다. "입 좀 다물어. 제대로 엽기다 정말." "구.구.구해찬!!!!! 구해찬이 여기 어떻게. 아니 그보다 들어오는 소리 안들. 안들렸는데" "너가 텔레파시 보냈잖아." "어.?" .... "보고싶다고." <27> 장난끼 가득한 얼굴로 방문에 기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구해찬의 모습에, 나는 정말 심장이 멎어버리는줄 알았어요. 그건 갑작스레 집으로 들어온 구해찬 때문도 아니였고, 혼자서 전화와라 얍 이라는 우스꽝 스러운 주문을 건것을 들켜서도 아니였습니다. 내가 심장이 멎어버릴것만 같았던 이유는. "아. 아니야!" 정말로 내가 텔레파시를 보낸걸 구해찬이 알고 있는걸까. 하는 바보같은 생각 때문이였어요. 그렇다면 정말, 언니의 말을 빌려 '개망신'인 것이잖아요. 텔레파시를 받은게 아니겠죠? 틀림없이 구해찬이 장난치고 있는 것일 거에요! "문 열려있길래, 말도없이 들어오게 됐어. 미안해 예봄아." "어? 현태..?" 그리고 그때, 구해찬 뒤에 있어서 아까는 보이지 않았던 현태의 자상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나는 그제서야 모든 상황을 이해했어요. 그러니까, 구해찬과 이현태는 우리집에 온거고, 엄마가 미처 잠그지 못하고 간탓에, 열려있던 문으로 들어왔던거군요. 그래서 난 알지 못했던거고. 우스꽝스럽게 핸드폰에 주문을 걸고 있는 나를 구해찬이 발견해서, 그걸보고 구해찬이 제게 전화를 한것이였어요. 정말 쥐구멍이 있다면 몸을 꾸역꾸역 넣고싶은 심정이에요. 장난스럽게 계속해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구해찬이 밉다구요. 보고싶다는 마음 취소에요. 취소! "응. 나 현태 맞아. 예나 방에 있지? 전화를 안받아서." 자상하게 웃는 현태. 역시 언니에게 무슨일이 있었던건가. 하는 마음에 나는 조심스레 고개를 끄떡였어요. "아...응. 방에 있어" "그래. 나 좀 들어가볼게. 이따보자." "저 현태야." "응?" "언니한테, 오늘 학교에서 무슨일 있었어?" 순간, 구해찬의 표정이 조금 굳었어요. "아니, 그냥 좀 선생님한테 혼나서 기분 안좋은가봐. 그래서 풀어주려고, 걱정할일은 아냐. 내가 얼른 풀어가지고 올게." 그래서 그랬던 거구나...나는 고개를 끄떡였습니다. 그리고 현태가, 언니의 방으로 가는것을 확인하고는 침대에 누으려다가 함께 따라가지 않은채, 그대로 내 방문에 기대있는 구해찬을 보곤 다시 일어서는 나였어요. "왜?"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제게 구해찬은 저렇게 뻔뻔하게 물어요. 왜긴 왜겠어요. 그걸 정말 구해찬은 몰라서 묻는걸까요? "구해찬은 왜 안가?" "불쌍해서." 말을 마치곤 제가 앉아 있는 침대 옆자리에 털썩 하고 앉습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픽 하고 웃으며 "뭐가 불쌍해?" 라고 묻자, 구해찬은 아주 여유롭게 제 어깨에 팔을 떡 하니 걸치며 말했습니다. "전화오라고 주문이나 외우는 친구없는 우리 예봄이가." 이렇게 말하면 또, 할말없지요. 사실은 사실이니까요. 모른척 해주면 안되나. 구해찬은 정말 너무 얄미워요. 꼭 저렇게 놀려먹어야 속이 시원한가봐요. 나는 구해찬을 눈이 돌아갈정도로 힘을 탁! 주며 노려보고는 어깨에 올려진 구해찬의 손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래! 나 친구 없어. 빨리 언니한테나 가봐. 언니 화 풀어주려고 온거잖아 구해찬은." 사실은, 조금 야속하기도 해요. 어제 내마음을 알았으면서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는 구해찬이. 조금, 아니 사실은 많이 야속해요. 하지만 이해할수밖에 없다는걸 난 알아요. 지금 구해찬에게는 자신을 좋아하고 있는 내 마음보다. 언니를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니까요. "김예봄. 어제..." 조금은 비참해질것 같아서 괜히 곰돌이에 얼굴을 푹 묻고 있는데 구해찬의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나는 얼굴을 들지 않은채 대답했습니다. "응?" "아니다." 푹 묻고 있는 얼굴을 그제서야 다시 구해찬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입니다. "뭐야 구해찬. 뭔데요?" "아니에요." "뭔데 그래!" "아니라구요." 나는 말을 말자 라는 식으로 다시 곰돌이에 얼굴을 푹 묻었어요. 푹신푹신하고 부들부들한 털이 피부에 살며시 닿자 조금 간지러웠습니다. ".........." 곰돌이에 얼굴을 푹 묻고있는 덕분에 나는 지금 구해찬이 어떤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지 몰라요. 지금 저녀석 표정, 동정하는 표정일까요. 그렇다면, 정말 나는 견디기 힘들지도 모르는데. "짜잔, 내가 예나 화 다 풀고왔어. 최고지?" 왠지 모르게 비참해지는 기분이 들때즈음, 현태의 둥그런 목소리에 나는 곰돌이에서 묻었던 얼굴을 천천히 들었습니다. 그러자 눈앞에, 교복입은 키 큰 현태와 어느새 사복으로 갈아입은 언니의 예쁜모습이 보여요. 나는 재빨리 일어서곤 말해요. "언니. 화풀린거야? 괜찮아 이제?" 시선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던 언니가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떡이자, 그순간은 정말이지 뭐랄까 조금 오바를 하자면 세상을 다 가진것같은 기분? 이였어요. 나는 정말 언니가 화나 있는것이 낯설고 무섭고 미안하고 그랬거든요. 기쁜 마음에 환하게 웃자 타악, 하고는 구해찬도 나를 따라 일어섭니다. "김예나 화풀린게 그렇게 좋아?" "구해찬도 좋잖아." 따박따박 말대꾸 하는 나를 보며 피식 하고 웃는 구해찬이였어요. 이거봐요, 언니가 화가 풀려서 제일 좋은 사람은 바로 구해찬이면서, 나는 구해찬을 힐끔 노려보다가 언니에 옆에 서있는 현태를 바라봤어요. 언니에 화를 풀게 만든 마법사같은 현태가 신기하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으니까 말이에요. 사실은, 언니가 왜 화가나있는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물어보는건 꾹 참기로 했습니다. "예봄아 아까 괜히 너한테 화풀이해서 미안해." 그런 내게 언니가 말했어요. 갑작스러운 언니의 말에 나는 손사래를 저으며 말합니다. "어? 아니야!" "..............." "괜찮아 난. 언니 밥은 먹었어? 내가 볶음밥이라도 해줄께." 볶음밥을 하는것이 자신은 없었지만, 그래도 엄마 어깨너머로 대충 흉내는 낼수 있을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언니에게 미숙하지만 볶음밥이라도 해주려고 일어서는데, 그런 내 손목을 붙잡은건 다름아닌 구해찬 이였습니다. "위험해. 저번처럼 다쳐서 울지말고 그냥 있어. 덜렁거리는게 뭘한다고" "구해찬보다는 안덜렁거리거든요!" "까분다." "놔! 언니 볶음밥 해줄꺼..." 내말이 끈이 댕강 잘리는것처럼 타악 하고 잘려 멈춰진 이유는 언니 때문이였어요. 그건 언니가 갑작스레 내 손목을 잡고 있는 구해찬의 반대편 소매를 잡고 끌었기 때문이였습니다. 그바람에 구해찬 손목에 차여있던 시계가 흔들렸어요. 그순간에도 나는 바보처럼 시계 정말 예쁘다. 라는 생각에 빠졌습니다. "아냐 예봄아. 구해찬한테 밥 사달라고하면되. 구해찬, 사줄꺼지?" 시계 정말 예쁘다. 구해찬은 왜 맨날 이렇게 예쁜것만 하고 다니는거야. 탐나게. "뭐? 김예나 너." "사줄꺼지? 나 아까 점심도 굶은거 너도 봤잖아. 사줘. 가자." 성격과는 다르게 구해찬, 손가락도 무지 길게 뻗어 예쁘다. 시계는 어디서 산걸까. "너 진짜 뻔뻔하게 빈대붙는다?" "이게 내 특기잖아. 사줄꺼야 말꺼야. 아니 무조건 사줘야되 알았냐 새끼야." 웃고 떠드는 언니와 구해찬의 목소리에 시계를 바라보던 나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습니다. 이런다고.. 이런다고 언니와 구해찬의 대화소리가 안들릴리 만무한데, 바보같이.. 나는 이렇듯 너무 이기적인거 같아요. 언니와 구해찬의 다정한 모습이 보기 싫어서 괜히 구해찬의 시계만 바라보며 딴생각 하는척을 하고 있으니, 나는 정말 이기적이에요. 왜 나는 이렇게 이기적인걸까요. 너무 못됐어요 내마음, 너무 미워. "알았어. 김예봄 이현태, 너희들도 가" 그러다가 갑작스레 잡고 있던 내손목을 다시 끄는 구해찬, 그리고 "아니. 너랑 나랑 둘이서만." 그런 구해찬의 말을 이번에도 딱 잘라 끊는 언니, 순간 알수없는 분위기가 내 방안을 가득 메웠어요. 무거운 침묵이 내마음을 더욱 무겁게 짖누르는 느낌이였습니다. 그순간 나는, 알 것 같았거든요. 아니, 알수 있었거든요. 적어도 나는 볼수 있었어요 "응! 맞아 구해찬! 난 안갈래. 아까 엄마랑 스파게티 먹어서 배불러." 조금씩, 조금씩 구해찬에게 기울고 있는 언니의 마음을. * * * * "이현태도 가지. 왜 안갔어?" "그러는 예봄이 너는?" "나는 정말 배불러서." "나도 배부르다니깐." 내말을 그대로 따라하며 이현태가 웃어요. 나는 그런 이현태의 웃음이 참 따듯하다고 느꼈습니다.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웃음 말이에요. 그러니까, 왠지 모르게 따스한 햇살같은 느낌?. 나는 그런 이현태를 부지런히 따라 걸었습니다. 고맙게도 이현태는 그런 내 보폭을 맞춰줬어요. "예봄아." "응??" "산책하니까 좋지?" "응! 기분이 상쾌해." 웃으며 숨을 훅 들이마셨다가 허공으로 뱉어냈어요. 정말로 이현태의 말처럼 산책하니까 기분이 한결 나아졌어요. 사실, 언니와 구해찬이 나가고나서 이현태와 혼자 덩그러니 집안에 남겨졌을때 뭐랄까, 비참하기도 하고 슬프기도하고 아무튼간에 되게 마음이 복잡했었거든요. 그래서 산책가자는 이현태의말에 가기싫은마음도 솔직히 조금, 있었어요. 그런데 오지 않았으면 큰일날뻔했어요 정말. 상쾌한 공기에 기분이 너무 좋아졌거든요. 공원 산책로를 밟으며 간간히 뺨을 스치는 바람도 너무 포근했구요. "나도 머리 아플때나 기분안좋을때 이렇게 걷곤하는데. 그러면 훨씬 괜찮아지거든." "응 맞아 그런가같아!" "다행이다. 아 여기 잠깐있을래? 음료수 뽑아올게" "음료수?" "응 음료수! 뭐마실래? 콜라? 사이다?" 문득, 장난스럽게 웃으며 콜라 사이다를 외치던 바닷가에서 구해찬의 생각나 나는 현태의말에 바로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만약 현태가 "응? 예봄아?" 라고 다시 되묻지 않았더라면 아마 대답하지 못한채, 계속 구해찬 생각에 잠겨 있었을지도 몰라요. 현태의말에 나는 옅게 웃으며 그때와 같이 대답했어요. "아니. 환타요!" 스르륵, 현태를 기다리기 위해 벤치에 앉습니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듭니다. 핸드폰 액정에는 제 바램과는 달리, 아무것도 뜨지 않은채 액정화면만이 떠있을 뿐, 문자나 전화가 왔다는 알림은 떠있지 않았어요. 왠지 모를 실망감에 나는 핸드폰 플립을 열었다가. 닫았다가를 반복하다가 이내, 전원버튼을 꾸욱 하고 누릅니다. 싫었거든요. 이렇게 계속 바보처럼 구해찬의 연락만 기다리는것이. "..........." 구해찬은 지금쯤, 행복해하고 있겠죠. 나는 이렇게 슬픈데, "으아아앙. 엄마. 엄마." 괜스레 운동화로 땅바닥을 툭툭 치고 있을 무렵이였습니다. 어디선가 아이 울음소리가 들려온건 말이에요. 너무 놀라 주위를 둘러보며 소리가 나는곳을 찾으려던 저는, 이내 발견한 울고 있는 어린아이의 모습에 벤치에서 벌떡 일어섰어요. <28> 왜 울고 있는지 다섯살정도 되어 보이는 꼬마 아이는 공원이 떠나갈정도로 울어대고 있었습니다. 나는 아이에게 다가서서 앞에서 무릎을 살짝 굽히고 아이의 눈물을 손가락으로 닦아주며 말해요. "괜찮아. 왜울어 응? 엄마 잃어버렸어?" 그러자 고개를 끄떡거리며 울어대는 아이였습니다. 많이 무섭고 두려워 하는 아이의 모습이 안쓰러워서 나는 아이를 꼭 안아줘요. 작은 아이의 몸이 제 품에 꼭 안겼습니다. "괜찮아 괜찮아. 누나가 찾아줄게, 누나랑 엄마 찾자. 알았지? 울지마." 토닥토닥, 서툴게 아이의 작은등을 조심스레 두들기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자 조금은 진정됬는지 아이의 울음소리가 서서히 잦아들었어요. 그나저나 정말 큰일입니다. 아이의 엄마께서도 많이 걱정하고 계실텐데. 빨리 찾아드려야 겠어요. "가자 누나랑. 엄마찾으러! 우리 멋진친구는 이름이 뭐야?" "김..민수요" "민수? 이름도 멋지다. 울지말구 뚝! 그래 예쁘다 예뻐."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자, 민수도 환하게 웃어보였어요. 고사리같은 민수의 손을 잡고 일어서자 아무말없이 서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현태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현태는 음료수 두 개를 흔들어 보이다가, 민수를 발견하고는 물었어요. "예봄아. 누구야?" "아! 공원에 놀러왔다가 엄마를 잊어버렸나봐. 울고있길래. 찾아주려고 엄마." "........." 그순간 느낀건, 현태의 웃고있던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렸다는거에요. 그런 현태가 조금은 힘겹고 아파보였던건 제 착각이였을까요. 조심스럽게 민수에게 다가온 현태는 민수를 빤히 바라보다가 아까와의 저처럼 무릎을 굽히곤 민수의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괜찮니. 엄마는, 금방 찾을수 있을꺼야." 그리고 그때, 나는 분명 알수 있었어요. 현태의 목소리가 떨려온걸 말이죠. * * * *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잠시 화장실갔다온사이 아이가 없어져서 얼마나 놀랐는지. 정말 너무 감사해요." 아이의 엄마는 얼마안가 쉽게 찾을수 있었습니다. 공원을 2바퀴정도 돌았을때 즘이였으니까, 아마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였을꺼에요. 저는 애타게 찾아다니는 아줌마의 모습을 보고 울음을 터트리며 '엄마' 라고 뛰어가는 민수의 모습에 왠지 모를 뿌듯함과 안도감과 다행함을 느꼈어요. 정말 다행이에요. 엄마를 찾아주게 되어서. "아니에요. 당연한일인걸요. 민수야 울지말구, 다음에 공원에서 또보면 누나한테 꼭 아는척 해야되!" 손을 흔들며 민수의 탱탱한 볼을 살짝 꼬집자 민수가 밝게 웃으며 '응! 누나 고마워!'라고 공원이 떠나갈듯 크게 소리쳤어요. 낼름낼름 거리며 현태가 사준 아스크림을 맛있게 먹으며 말이죠.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어요. 그래서 저는, 밝게 웃으며 엄마의 손을 꼭 잡고 가는 민수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민수가 공원에 엄마와 자주 놀러온다고 하니, 다음번에 만날땐 맛있는걸 사줘야겠다고 말이에요. "왠지 모르게 뿌듯하다 이현태. 그치?" 민수의 뒷모습이 점점 작아지자 저는 그제서야 현태에게 빙그르 돌며 말했습니다. 현태는, 민수의 뒷모습을 보이지 않을때까지 빤히 바라보고 있었어요. 아주 오래도록 말이에요. 그리곤 정말 한참뒤, 중얼거리듯 "좋겠다. 민수는" "응?" "버림받은게 아니라서." 갑작스런 현태의 말에 무슨말을 해야겠다곤 생각했지만 막상, 말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왠지 모르게 상처받아 보이는듯한 이현태의 모습에 아무말도 떠오르지 않았거든요. 무슨말을 해야할지. 현태의 말이 무슨뜻인지 궁금했지만, 물어볼순 없었어요. 내말이 혹, 현태가 가지고 있는 상처를 더 깊게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나는 조심스러울수밖에 없었습니다. "아, 미안해 예봄아." "응? 아니야 뭐가." "그냥, 별다른뜻은 없었어. 민수보니까 어렸을때 생각이 나서. 나도 어렸을때 저렇게 공원이 떠나가라 울었었거든." 말을 마치곤 입술을 꾹 깨물다가. 피식 하고 웃는 현태. 현태는 무언가 생각에 잠긴듯 허공을 응시하다가 다시 한번 피식 하고 웃음을 터트렸어요. "비록, 우리 엄마는 민수네 엄마처럼 잃어버린게 아니라, 버리러 온거였지만." "현태야.." "그냥 민수 찾아서 엄청 좋아하는 저사람 보면서 우리엄마도, 날 다시 찾는다면 저렇게 좋아해줄까 라는 생각이 드네." "..........." 무슨말을 해야할까요. 눈물이 나올것 같았어요. 젖어있는 현태의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서, 나는 아무말없이 현태를 바라봤어요. 현태는, 늘 행복할것만 같은 현태에게도 가슴아픈 상처가 있었던거에요. 시간으로도 절대 치유할수 없는 상처가. "그런 표정으로 보지마 김예봄. 지금은 나한테 더 좋은 엄마가 있잖아. 오토바이샀다고 엄청 혼내고, 늦게 들어온다고 걱정해주는 우리 잔소리쟁이." 나처럼, "그런뜻이 아니라 난 그냥..." "괜찮아. 난 정말 그동안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이런일가지고 이렇게 감성적이 되버린다는게 좀 신기하네. 예봄아 미안한데 담배펴도 될까?" "어? 응. 괜찮아."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현태는 벤치에 털썩 앉아서 주머니를 뒤적였어요. 그리곤 하얀 담배를 입에 물고는 라이터를 딸칵 켰습니다. 나는 조심스레 현태 옆자리에 앉았습니다. 현태는 볼이 움푹 패이도록 담배연기를 깊게 빨아들이며 제게 담배연기가 오지 않도록 반대편으로 하얀 담배연기를 내뱉었습니다. "처음 입양되고나서 얼마나 삐뚤었는지, 지금 엄마가 많이 고생했었어. 그래도 이렇게 버리지 않고 키워준거 정말 감사해." "......." "내 진짜 엄마는 버렸는데, 가짜 엄마는 안버려줘서. 너무 감사해." 다시 한번 허공으로 담배연기를 뱉는 현태. "왔으면, 민수네 엄마처럼 왔으면...난, 근데 결국은 온다고 했는데 안왔잖아. 나도 민수처럼 공원이 떠나가라 엄마이름 부르며 울었는데. 목이 터져라 간절하게 외쳤는데." 나도 그랬었는데. 나도 미국에서 엄마가 보고싶어서 울면서 엄마 불렀는데 볼수 없었었는데... 나는 왠지 현태의 마음을 이해할수 있을꺼 같았어요. 왜냐면, 나도 그랬으니까. 목이 쉴정도로 간절하게 불렀었으니까. "현태야.." 나는 잠시의 망설임뒤 조심스레, 현태의 이름을 조심스럽게 불렀습니다. 그러자 응? 하며 현태는 담배를 피다말고 내쪽으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그때 현태가 그랬지? 사랑의 치유법은 사랑밖에 없다고, 진짜 그런거 같아. 상처받은 현태 마음을, 지금의 현태 엄마께서 치유해주셨잖아." "그말..기억하고 있었네.?" 피식 하고 웃으며 담배 연기를 다시 한번 빨아들이다가 후우 하고 내뱉으며, 물고 있던 담배를 바닥으로 툭 하고 튕기듯 던져버리는 현태였습니다. "당연하지. 음..그런데 현태야. 난 처음에 엄마아빠가 이혼하셨을때, 그래서 언니랑 엄마랑 떨어져 살게 됬을때 너무 아빠가 미웠어. 아빠 때문에 엄마 기억속에서 내가 잊혀지면 어떡하지. 언니랑 엄마가 날 싫어하면 어떡하지하면서 울었어. 차라리 내 기억속에서 엄마랑 언니가 없어졌으면 좋겠는데 그러질 않아서 더 힘들다고. 너무 보고싶다고. 그런데 그때 아빠가 그러시더라. 미안하다고, 하지만 엄마는 절대로 널 잊지 않을꺼라고. 잊으려해도 잊을수 없을꺼라고 너처럼," "..........." "주제넘은말일지도 모르지만, 아마 현태네 엄마도 그러시지 않을까. 현태가 이렇게 그리워하고 슬퍼하고 보고싶어하고 힘겨워하는것처럼." "............." "분명 그분께서도 지금, 그러고 계실꺼야. 현태만큼, 아니 현태보다 더 마음아파하시고 그리워하실꺼야." 아마 현태는 그동안 참고 있었나봐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아무리 좋고 고마운 새엄마께서도 채우지 못했을, 그 그리움을 그동안 꾹 참고 있었나봐요. 현태는 입술을 꾹 깨물다가 민수가 그랬던것처럼,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살짝 뒤로 고개를 젖히며 십몇년전 그날, 어린현태처럼 그렇게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어요. 현태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들이 벤치위로 빗방울처럼 떨어집니다. "그랬으면..." "........." "좋겠다. 정말로." 무슨 용기였을까. 작게 중얼거리듯 내뱉는 현태를 보며 나는 천천히 현태를 안았어요. 정말 이런건 드라마같은데서나 나오는 여자들만 할수 있을뿐, 나는 절대로 할수 없을줄 알았는데, 정말 나도 모르게 나온 행동이였어요. 울고 있는 현태를 위로하고 싶었거든요. 번지르한 말들보다는 내 마음이 전해지도록 진심으로. "그럴꺼야. 분명히." 조용히 말하며 진심으로 나는 현태의 상처도 하루빨리 아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래전, 깊게 베인 내 상처가 아물수 있었던것처럼, * * * * 현태의 눈물을 보면서 나는 사람은 살아가면서 누구나, 작게든 크게든 베인 상처를 가지고 있다고 했던 아빠말이 떠올랐어요. 그동안 나는 내 상처만이 깊고, 내 상처만이 크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빠의 말처럼 이세상에는 나보다 더 깊게 상처받고 큰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이 물에 젖은 솜마냥 무거워진 기분이에요. 나는 내가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들이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거든요. 집에 거의 다다르자 나는 한쪽 손가락을 길게 뻗어 핸드폰 전원버튼을 꾸욱 하고 눌렀습니다. 현태에게 잘 들어가라는 문자라도 해줘야 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잠시후 요란한 소리와 함께 푸른 미명처럼 환한 액정빛이 어둠을 밝힐때 즈음, "김예봄." 들려오는 구해찬의 목소리에 나는 깜짝 놀라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는 고개를 돌렸습니다. 너무 어두워서 구해찬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고 대신, 구해찬이 물고있는 빨간 담뱃불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어요. 나는 계단에 삐딱하게 걸터 앉아서 담배를 물고있는 해찬이에게 조금 더 다가갑니다. "어? 구해찬! 왜 여기있어? 언니랑 스파게티는 맛있게 먹었고?" 그런데 구해찬, 왜 지금 나를 노려보고 있는거에요? "넌." 천천히 일어서는 해찬이. 그리곤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튕기듯 바닥에 던져버리곤 나를 바라봅니다. 왜 이렇게 무서운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는걸까요 구해찬은. "어?" "아무남자한테나 다 그래?" "뭐? 무슨말이야 구해찬." "아무남자한테나 웃어주고, 아무남자나 안아주고." 알수없는 구해찬의 말에 무슨말을 하냐고 물어보려고 하는데,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현태의 얼굴이였어요. 혹시 구해찬은 공원에서 현태를 위로하는 나를 본걸까요? 그런데 그게 뭐 어쨋다고 도대체 왜 지금 나에게 화를 내고 있는걸까요. "현태? 아까 봤어? 그럼 인사하지 왜 안했어 구해찬!" "넌 원래 그래?" 구해찬은 내말을 탁, 끊어버리며 삐딱하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바로 위와같이 너무 황당한말을 내뱉으며 말이에요. 어처구니가 없어서 나는 피식 하고 웃어버리고야 말았어요. 구해찬은 왜. 도대체 구해찬은 왜 나를 이렇게 비참하게 하는걸까요. 서러움에 눈물이 나올것만 같아요. "구해찬. 너 무슨말을 그렇게해...?." "그럼 무슨말을 해야하는건데.?" "뭐? 너 지금 왜이래. 왜이렇게 어린애처럼 말도 안돼는 억지부려. 언니랑 무슨일 있었어? 왜 나한테 화풀이해." 틀림없이 구해찬은 언니와 무슨일이 있었던게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괜히 나한테 화풀이를 하는거에요. 사실은 화가 나야할사람은 나잖아. 구해찬이 아니라 화내야할사람은 김예봄이잖아. 좋아한다고 고백까지 했는데, 비참하게 언니와 웃는 구해찬의 모습을 봐야만 하니까. 내마음을 알면서도 그런 내앞에서 언니에게 웃어주는 구해찬의 모습을 봐야만 하니까. 화내야 할사람은 나잖아. "너." "........" "나 좋아한다며." 하. 하하. 어처구니가 없어서 결국 김예봄은 웃어버렸습니다. 눈물이 가득 고인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지 않도록 참아보지만, 결국은 허탈함과 비참함과 황당함에 고여있던 눈물은 뺨을 타고 흘러 내렸어요. "넌 참 쉽구나 해찬아." "..........." "사람 진심 그렇게 쉽게 말하는거. 너한테는 참 쉬운일이구나." "김예봄." "니가 지금 왜 나한테 이렇게 억지를 부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후회된다. 너 좋아한다고 고백했던 시간이. 지금 진짜 너무 많이 후회되" 아파했던 그 시간이, 니 생각에 하루종일 아무것도 못했던 그 시간이, 지금 이순간 너무 후회된다구. 너 정말 못됐어. 사람 진심, 그렇게 짖밟는거 아니야 구해찬. 손등으로 눈물을 벅벅 닦으며 구해찬을 지나쳐 아파트 입구로 들어가려는데 순간, 구해찬이 그런 저를 잡아 세웠습니다. "김예봄 너 말 다했냐" "어." "진심이야?" "어. 놔줘" 그러자 구해찬은 허탈하게 피식 하고 웃더니 잡고있던 내손을 놓아줬어요. 그리고는 주머니에 있던 무언가를 꺼내 바닥으로 거칠게 타악- 던저버립니다. 신경질적으로 바닥에 던져진것은 다름아닌 구해찬의 핸드폰 이였어요. 둔탁한 소리를 내며 두동강난 핸드폰. "니가 알아서 버려, 나한테 이제 이딴거 필요없어" 멀어지는 구해찬의 뒷모습을 허탈하게 바라보던 나는, 이내 바닥으로 떨어진 핸드폰을 주웠습니다. 새 핸드폰을 산건지 어제와는 다른, 구해찬의 핸드폰이였어요. 나는 내 주머니속에 넣어둔 핸드폰을 다른손으로 꺼내들었습니다. 똑같은 모양의 핸드폰 두 개. ".........." 그렇게, 알수없는 기분으로 나는, 어느새 커플폰이 되어버린 그 핸드폰 두 개를 꼭 쥐어봅니다. *쓰고 날려서 얼마나...암울했는지. 덕분에 원래 쓰던거랑 느낌이 많이 달라졌네요ㅠㅠ *그리고 악. 이번편보고 이해안가시겠지만, 모든건 번외로^^*차근차근히 -------------- §가그린§ (godqhrgkehfhr@hanmail.net) 플티〃가그린〃소설 (http://cafe.daum.net/Gagrin) -------------- ※헬리오토로프는 5월 24일의 탄생화로 사랑이여 영원하라 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29> 물에 불은 가지처럼 축 늘어져서 엘레베이터 버튼을 꾸욱 누릅니다. 15층에 서있던 엘레베이터가 14층, 13층, 그렇게 내려오고 있을때. 나는 손에 쥐고 있는 핸드폰에게 시선을 다시 돌렸어요. 두동강난 구해찬의 핸드폰. 생각해보면 우리 둘다 그렇게 화낼 필요는 없었는데. 너무 어이없이 싸우고 말았네요. 착찹하고 속상한 마음에 구해찬의 핸드폰을 주머니에다가 아무렇게나 집어넣고는, 다른쪽 손에 쥐어진 제 핸드폰 또한 주머니속에다가 집어 넣으려는데 나는, 문자메세지 9개. 라는 표시에 멈칫, 해버리고야 말았습니다. 문자메세지 9통이라니, 번호를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던터라 문자메세지가 9통이나 올리 없는데 말이죠. 띵동, 하고 1층으로 엘레베이터가 내려왔지만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곤 벽에 기대 확인버튼을 꾸욱 눌렀습니다. 다시 스르륵 닫히는 엘레베이터 문을 바라보며 말이에요. [김예봄. 뭐해?] [너 안데려갔다고 삐졌냐. 오빠가 나중에 사줄께] [나 지금 폰 바꿨어. 너랑 커플폰, 우리 이제 똑같은폰이야 임마.] [짜증나] [스파게티 하나도 맛없었어 난 니문자가 더맛있어 문자좀해] [넌 내문자 맛있냐.] [죽고싶나보네 우리 예봄이] [있다가 보자 죽었다 넌] [우리 예봄이 혼내러 가는길] 발신번호는 모두 구해찬. 문자메세지함이 구해찬의 번호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피식 하고 결국은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어요. 어린애처럼 투정부리는 해찬이의 문자에 그냥, 그렇게 웃음이 터져 나왔어요. 이렇게 웃어주지. 아까도 화내지 말고. ".........." 마음이 답답해져와요. 핸드폰 플립을 닫고는 아까 해찬이가 있었던, 그자리를 한참동안 응시하며 생각합니다. 나 참 이상해. 구해찬이 웃어도 마음이 아프고, 화내도 마음이 아프니까. 알수없는 표정으로 핸드폰을 주머니에다가 아무렇게나 쑤셔넣어요. .....어느새, 이렇게 깊어진걸까. \집 "다녀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신발장에 아무렇게나 신발을 벗어놓고는 그대로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곤 어두컴컴한 방 불을 키기 위해 배를 불룩하게 내민 스위치를 탁- 하고 누르고는 쓰러지듯 침대에 누워버렸어요. "예봄아. 저녁 먹었어?" "네? 네 엄마." 나는 방문을 타고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에, 피곤이 덕지덕지 묻은 목소리로 대답해요. 사실은 저녁밥을 먹진 않았지만, 별 생각이 없었거든요. 하지만 먹지 않는다고 하면 엄마가 걱정할께 분명했기에, 나는 어쩔수없이 거짓말을 할수밖에 없었습니다. 푹신한 침대에 눕자 왠지 모르게 피곤함이 조금, 가시는듯한 기분 . ".........." 천장만 보고 있던 눈을 스르륵, 감자 아까의 화난 구해찬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왜 그렇게 화를 낸걸까. 정말 언니와 무슨일이 있었던걸까요. 그렇다고 성질 나는대로 휴대폰을 부셔버리다니, 정말 구해찬 다워요. 나는 빙그르르 몸을 한번 돌려 이불속에 폭 들어갔어요. '니가 지금 왜 나한테 이렇게 억지를 부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후회된다. 너 좋아한다고 고백했던 시간이. 지금 진짜 너무 많이 후회되' 조금은, 심했는지도 몰라요. 아니 어쩌면 너무 감정에 앞서서 많이 심했는지도, 아니, 많이 심했어요. 김예봄 정말 아무말이나 마구 내뱉어버렸다구요. 그래도 구해찬은, 계속 스파게티 같이 못먹은것에 대해서 미안해 했는데. 내 감정을 번복하고, 괜히 화풀이를 한것 같아요. 사실은 나는 어쩌면, 구해찬의 말때문에 화가 난게 아니라 그전에 언니와 구해찬의 다정한 모습땜에 이미 화가 나있었던건지도 모릅니다. "모르겠다. 모르겠어." 복잡해져오는 머리때문에 이불을 머리끝까지 쭈욱 당겼습니다. 그런다고 잠이 올리가 없지만 말이에요. 훼엑- 결국 김예봄은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덮고있던 이불을 가슴밑까지 내려버립니다. 구해찬도 잘못했지만, 나도 틀림없이 잘못한점이 있으니까. 아무래도 구해찬에게 사과를 해야겠어요.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나는 망설임없이 몸을 반쯤 일으켜, 핸드폰을 꺼내들었어요. 그리고는 구해찬번호로 미안하다는 문자를 적어 내려가다가. 문득, "........" 깨달은거죠. 구해찬의 두동강난 핸드폰을. \다음날. [학교에 온다구?] 엄마도 출근을 하고, 언니도 학교에 간 시각. 홀로 집에 덩그러니 남겨진 나는. 1시간전 맛있게 된장찌게를 먹은후 지금은 쇼파에 앉아서 아스크림을 먹으며 현태와 문자를 하고 있어요. 이러다 정말 살만 찌는거 아닌지 몰라요. -응응. 구해찬한테 할말이 있는데. 개 핸드폰 두동강났거든! 연락할방법이 없어서. 대신 비밀! [비밀은 지킬꺼 같아. 왜냐면 정작 비밀 폭로할 구해찬이 학교에 없거든.] 구해찬이 학교에 없다구?. 아스크림을 담던 숫가락을 입에 물곤 고개를 갸우뚱 거렸어요. 구해찬이 왜 학교에 없다는걸까요? -구해찬이 왜? [몰라. 학교 안왔던데. 핸드폰 연락도 안되구. 늦잠자나봐.] -현태야 구해찬. 무슨일 생긴거 아닐까? 혹시, 학교를 오는길에 교통사고를 당했다던가. 납치를 당했다던가. 아니면 깡패를 만났다던가. 한거면 어쩌죠? 물론, 납치는 말도 안돼고 깡패를 만나도 오히려 깡패가 구해찬의 불같은 성격에 도망갔겠지만 말이에요. 나는 이제는 아예 아스크림을 먹는것을 포기하곤 열심히 문자를 두들겼습니다. [아냐. 예봄이 넌 걱정이 너무 많아. 구해찬 날라리잖아. 자주 안와.] -그래도..정말 무슨일 생긴거면. [음. 정 걱정되면 해찬이네집 가있을래? 나도 이따 학교끝나고 여민이랑 갈껀데.] 현태는 나보다 문자답장속도가 매우 빨라요. 언젠가 현태가 문자를 하는걸 봤는데, 정말 손가락이 안보일정도로 슉슉 지나가더라구요. 이번에도 빠르게 온 현태의 문자에 나는 그러는게 좋겠다는생각에 입에 문 수저를 빼요. 구해찬이 걱정되기도 하고, 구해찬에게 해아 할말도있고, 그리고 그리고 또... -구해찬 집, 어디야? 구해찬이 보고싶기도 하고... * * * * "어디지? 그러니까, 이현태가 분명 5번버스를 타고 여기서 내리라고 했는데.."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낯선 풍경에 이리저리 둘러보며 현태가 적어준 구해찬의 집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언니의 옷을 입고 와서 그런지 조금은 불편한 기분이에요. 버스 정류장 유리에 비친 조금은 어색한 내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피식 하고 웃었어요. 구해찬 나 정말 웃기지? 구해찬에게 잘보이고싶어서 언니옷 입었어. 내 장롱에 있던 옷은 다 빨아서 예쁜게 하나도 안남아 있었거든. 그냥, 조금더 구해찬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 "그나저나 도대체 어딨는거야." 아파트나 빌라가 아닌 단독주택이라서 더욱더 찾기 힘들어요. 나는 다시 한번 현태가 준 문자를 꼼꼼히 읽어봐요. 그러니까 오번버스에서 내려서 5분정도 쭈욱 올라가라고 했으니까. 이곳이 맞을꺼에요. 핸드폰 플립을 탁 닫고, 나는 현태가 말해준대로 쭈욱 늘어진 길을 따라 걸어갔습니다. 구해찬을 보면 무슨말부터 해야할까요. 미안해. 라는말부터 해야할까요? "어? 예나누나. 학교 안갔어?" 그렇게, 무슨말을 해야할지 고민하며 구해찬의 집쪽으로 걸어가는데. 낯익은 누군가의 목소리에 나는 걸음을 타악 하고 멈추었습니다. 고개를 돌리니 언니의 남자친구 성현이라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마, 언니의 옷을 입고 있어서 내가 언니인줄 아나봐요. 이럴때면 조금 신기해요. 언니와 내가 남들이 구분하지 못할정도로 똑같이 생겼다는거니까. "아니 나는 예나언..." 언니가 아니라고 말을 하려는 찰라에 내게 다가온 성현이는 내 팔목을 다짜고짜 잡으며 소리쳤어요. "학교는 왜 안갔어. 연락 안돼서 걱정했잖아. 지금 누나네집 가려던 길이였는데.." .........?..... 연락이 안된다니? 분명, 나는 예나언니가 아니라 동생 예봄이야 라고 말할 작정이였어요. 분명 그랬는데. 뜻밖에 말에 그대로 말을 멈추고야 말았습니다. "어?" "말했잖아. 오늘 내가 전화를 몇통이나 한지 알아?" "아.아니 나는 예나언니가 아니라 동생 예봄인데요.." 그러자, 그제서야 표정을 싹 굳히며 나를 바라봅니다. "....아" "............." "그랬..구나. 난 예나누나인줄 알고." "아..네, 제가 오늘 언니옷을 입고와서. 착각하셨나봐요." "아. 응. 아..그럼 난 이만 가봐야겠다. 볼일봐." 무언가 실망한듯한 표정으로 뒤돌아 서는 언니의 남자친구 나는 잠시 우물쭈물 망설이다가 그 남자를 불렀어요. "저기..." "어.." "언니랑..요즘 사이 안좋아요? 언니랑 연락 잘 안돼요..?" 이건 예의가 아니라는걸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꼭 물어봐야만 했어요. 그랬기에 조심스레 묻자. 피식하고 실소를 터트리며 고개를 끄떡이는 남자였어요. "그러게...왜 자꾸 너희 언니가 날 피할까." "............" 순간, 느낀건 어쩌면 내 예감이 점점 맞아가고 있다는 거였어요. 언니도 지금, 어쩌면 구해찬에 관한 자신의 마음을 알아가고 있는걸까. "나 학교가야하는데. 가봐도 될까?" "아! 네네. 죄송해서 바쁘신데 시간 뺏어서." "그럼 이 옷깃을 놔줘야 가지." 아. 모르고 남자의 옷깃을 잡고 있었던 모양이에요. 어색히 웃으며 잡고 있던 옷깃을 놓자 "예나누나한테...나한테 연락좀 하라고 전해줘." 내게 말하며 알수없는 표정으로 돌아서는 언니의 남자친구. 조금씩, 멀어져 가는 성현이라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했습니다.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싫어하긴 싫지만. 지금껏 구해찬에게 상처를 줘서 미워했던 저사람. 어쩌면, 구해찬만큼이나 불쌍한 사람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말이에요. "......." 아. 이럴께 아니라, 구해찬네 집부터 얼른 찾아야겠어요. 그러니까. 이쪽으로 쭈욱 올라가라고 했죠? 53-2번지 라고 했으니까. 이쯔음 인거 같은데. 사실 평소에도 길같은걸 잘 찾지 못해서 구해찬네 집을 찾는것에 대해서 정말 자신이 없었거든요. 그렇게 얼마나 헤맸을까요. 아마 20분쯔음 지났을꺼 같아요. 정확히 그부근을 헤멘 20분뒤, 저는 으리으리한 집 앞에 멈쳐섰습니다. 53-2번지. 라고 적힌 집앞에서 저는 할말을 잃은채, 입을 떡 하고 벌리곤 궁전같은 집을 바라봐요. "정말..크다..." 이런곳에 구해찬이 산다니, 믿겨지지 않아요. 꼭 소설속에서 흔히 나오는 재벌2세 같다고 생각될정도로 구해찬의 집은 어마어마 하게 컸어요. 티비속에서 이런집이 나오면, 한번쯤 가보고 싶다 라는 생각을 했는데.. 막상 눈앞에 나타나자 발걸음을 쉽게 뗄수 없었습니다. 괜히 주늑들어서 초인종을 누르지도 못하겠는걸요. 사실 미국에서 살던 집도 2층집이었는데. 이곳은 정말 미국집과는 비교도 안되게 으리으리하게 컸어요. 스르륵- 나는 초인종을 누르려다가, 이내 멈칫하고는 다시 손을 내려버립니다. 도저히 못누르겠어요. 왠지 모르게 용기가 나질 않아요. "하지만...." 하지만 언제까지나 이러고 있을순 없는 노릇이였습니다. 그래 누르자 예봄아. 죄진것도 아니잖아. 구해찬. 그러니까 친구 보러온건데, 뭐하러 이렇게 쫄아. 그래 누르자. 나는 다시 한번 손가락을 초인종 위로 올려요. 그리고 짧은 심호흡뒤, 이내 눈을 꼭 감고 손가락에 힘을 실어 초인종 버튼을 꾸욱 눌렀습니다. ... 띵동 띵동. \구해찬네집. "여기 앉아. 아줌마. 마실거랑 쿠키랑 과일 좀 가져와요" "아니. 그러실필요 없는데.." "그래. 해찬이 친구라구?" "네? 네.." 구해찬의 집은 밖보다 안이 훨씬 근사하고 멋있었어요. 고풍스러운 가구들과 딱 보기에도 고가의 장식품들이 집안을 메우고 있었거든요. 나는 주위를 두리번 두리번 거리다가, 해찬이네 어머님의 말씀에 쇼파에 스르륵 하고 앉았습니다. 집이 정말 예뻐요. 근사해요. 꼭 동화속에 나오는 집 같기도 하고, 소설속에 나오는 집 같기도 하구. "그러고보니 저번에 한번 봤던거 같은데. 이름이..예나였던가?" 해찬이네 엄마께서는 아마, 언니를 기억하시고 계셨나봐요. 언니도 이곳에 분명 왔을테니까요. 해찬이네 어머님의 말에 나는 옅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때즈음 탁자 위로 일하시는 아줌마가 가져온 맛있게 구워진 쿠키와 오렌지 쥬스가 올려졌어요. 딱 보기에도 따듯하게 막 구워진 쿠키는 정말 먹음직 스러웠습니다. "아니요. 저는 예봄이라고..." "예봄이? 낯설지 않은 이름인데..언제 들었더라? 아. 아무튼 반가워요. 나는 해찬이 엄마야." "네??" "응? 왜그러니?" "아..아니에요. 안녕하세요!" 낯설지 않은 이름이라는 말에 적지 않게 당황해서 순간 예의에 어긋나게 놀라버리고 말았습니다. 저는 황급히 표정을 바꾸곤 조심스레 인사를했어요. 그러자 인자하게 웃어주시는 어머님이셨어요. 문득 느낀건, 그 웃음이 구해찬과 많이 닮아있었다는 거에요. 그렇게 생각하니 구해찬이 좀 더 보고싶어졌습니다. 구해찬의 웃음은 왠지 모르게 가슴이 아픈것도 따듯하게 바꿔주거든요. 꼭 마술처럼. "예의가 바르구나. 이거 먹고 있으렴. 해찬이 이제 곧 올꺼야. 아마 만화책 빌리러 간거 같은데." 순간, 과자를 집던 손이 타악 하고 멈추어버렸습니다. 만화책..이라니? "네? 만화책이요?" "응. 왜그러니..?" "아..그게..저는 구해찬한테 무슨일이 생긴줄 알고.." "나도 오늘 아픈줄 알았어. 그런데 아침까지만 해도 아파서 손하나 까딱 못하겠다는 놈이. 어느새 만화책 빌리러 갔네? 정말 꾀병대회나가면 일등할 녀석이야." "....아.." 아줌마의 말씀을 듣자 갑자기 모든게 억울해지기 시작했어요. 나는 그런것도 모르고 구해찬이 사고가 난게 아닌가 아니면 아픈건가 하는 생각에 오는 내내 걱정했는데.... 현태가 장담한것처럼 구해찬이 멀쩡하자 기뻐해야하는데, 하나도 기쁘지 않고 뭔가 억울한 기분이 드는거 있죠? 이럴줄 알았으면 현태의 말을 들을껄 그랬어요. "아무튼 조금있으면 올테니까 이거 먹고 불편하면 해찬이 방에서 기달려. 저기 복도 왼쪽 끝자락에 있는방이 해찬이 방이야." "아. 네. 감사합니다" 쿠키가 담긴 접시를 앞으로 내밀며 천천히 일어서는 해찬이네 어머님. 나는 어머님이 쇼파에서 일어서자, 따라 일어서서 입에 있는 쿠키를 꾸역꾸역 삼키곤 허리 굽혀 인사했어요. "응 그래그래. 재밌게 놀다가렴" "네. 아! 어머님" "응?" "쿠키..정말 맛있어요. 맛있게 잘먹겠습니다!" 그러자 또 다시, 인자하게 웃어주시는 구해찬의 어머님이셨습니다. 구해찬 웃음도 이렇게 사람을 기분좋게 만들어주는데... 문득, 나는 어머님의 웃음이 구해찬의 웃음과 참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나저나 구해찬은 언제쯤 올까요? 보자마자 무슨말을 해야할지. 미안해 구해찬. 아니면 어제 좀 심했던거 같아. 이것도 아니면, 너 만화책 보려구 학교 빠졌어? 이렇게? 아아 정말 머리가 복잡해져와요. 막상 이제 구해찬을 본다니깐 무슨말을 해야할지 도통 모르겠어요. "......" 아무튼 그후로, 혼자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쿠키 몇개를 더 집어먹고, 직접갈아서 더 맛있었던 오렌지 쥬스를 다 먹은후 나는 어머님이 말씀해주셨던것처럼 복도 끝자락에 있는 구해찬의 방으로 향했어요. 뭐랄까. 거실에 계속 있기가 민망하기도 했고. 이제 곧 구해찬이 온다니. 구해찬의 방도 구경하고 싶기도 했거든요. 나는 천천히 구해찬 방문앞에 서서 아까 초인종 누를때와는 다르게 망설임없이 달칵- 하고 문고리를 돌렸습니다. "와아..." 문을 열자마자 놀란건, 평소 구해찬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너무나도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는 방 안 때문이였어요. 침대 시트까지 구김없이 바르게 펼쳐져있었어요. 구해찬 한테도 이런 단정한 구석이 있다니 조금 의외라고 생각하며 나는 방으로 들어섰습니다. 방안에서는 평소 구해찬에게서 나던 좋은냄새가 났어요. 뭐랄까 기분 좋은냄새. 일명 구해찬 냄새. 언제 한번 구해찬에게 물어봐야겠어요. 무슨향수를 쓰냐고. 그만큼 구해찬에게서 나는 향기는 너무 좋은 향기였거든요. 찬찬히 구해찬의 방을 둘러보던 나는 이내 발견한 구해찬의 책상을 보며 피식 하고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정말 구해찬다운 책상이에요. 어떻게된게 저렇게 깨끗할까요? 보통 고등학생 책상이라면 문제집이 잔뜩 쌓여있길 마련인데. 구해찬 책상은 문제집은 커녕 교과서 또한 없었어요. 단지 영문 가득한 책들만 비치되어 있을뿐. 하지만, 나는 알았어요. 저 영문책들이 단순히 '장식용'이라는걸. 왜냐면 구해찬은 늘 말하지만 비밀을 씨클이라고 하는 사람이니까요. "....어...?" 얼마나 지났을까. 구경도 조금씩 지루해지고 정신없이 헤멘탓에 조금씩 피곤함이 몰려올때즈음, 그러니까 이제 구해찬의 방을 그만 구경해야겠다고 생각하곤 책상에 엎드리려 할때. 나는 무언갈 발견하고는 엎드리려했던 몸을 다시 일으켜세웠습니다. "우와. 예쁘다." 책상 한켠에 예쁜 하늘색 종이로 접혀있는 종이비행기. 의외로 구해찬은 이런 취미가 있나봐요. 아기자기하게 종이비행기 2대가 구해찬의 책상 한켠을 장식하고 있었습니다. 하늘색 비행기가 너무 예뻐요. 꼭 하늘로 금방이라도 날아갈것 같아요. 그렇게 신기한듯 엎드려서 종이비행기를 툭툭 손가락으로 건드리며 좋아하고있을 무렵이였어요 갑자기 타악 하고 문이 열린건 말이죠. "구해찬, 왜이렇게 늦게...." 당연히 구해찬일것이란 생각에 일어서서 문쪽으로 몸을 돌렸습니다. 그러나 혼자가 아닌 구해찬의 모습에 말을 멈출수밖에 없었어요. "같이봐. 혼자 치사하게 보지말고!!" "너 솔직히 말해 전생에 찐드기였지." 밝게 웃으며 방으로 들어오는 구해찬, 그리고 예나언니. 둘의 손에는 어머님이 말씀하신대로 만화책이 한가득이였어요. 나는 빤히 언니와 구해찬을 바라보았습니다. 들어오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해찬이의 웃음이 그대로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김예봄...?" 믿을수 없다는듯 나를 바라보는 구해찬이 지금은 왠지. "응...." 미워요. "예봄아 너 여기 왜왔어? 언제왔어?" 무얼 먹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입을 쉬지 않고 우물거리며 언니가 말해요. 지금 이순간, 왠지 모르게 비참한 기분이 드는거 있죠. 사실, 내가 이런 기분 느낄 이유는 없는데... "어..그게. 그냥 구해찬 학교 안왔다길래. 무슨일 생긴줄알고 나는... 아 이만 가봐야겠다. 어.언니 집에서 보자 우리." 방해자가 된 기분이에요. 왠지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어서. 나는 재빨리 구해찬을 지나쳐 방을 나왔어요. 그리곤 도망치듯 걸었어요. "김예봄." 사실은...야속하고 미워요. 나는 구해찬에게 무슨일이 있는건 아닐까. 내가 어제 심했던건 아닐까 하루종일 고민하고 고민했는데. 언니와 아무렇지도 않게 웃고 즐거워하는 구해찬에게 배신감이 들기까지 하니까요. 내 마음은 정말 못됫나봐요. "야 김예봄." 타악. 하고 이내 내 앞을 막아선건 다름아닌 구해찬. 나는 천천히 해찬이를 올려다 봅니다. "응." "왔는데 왜 그냥가. 우리집은 어떻게 알았어? 아 그전에 참고로 나 아직 화 풀린거 아니다." "구해찬은...바보야?" "뭐가?" 왠지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구해찬의 모습이 얄미워요. "난 걱정되서 온거란말야. 구해찬한테 무슨일이 생긴줄 알고. 구해찬이 아픈줄 알고! 그런데 이게뭐야. 화나. 구해찬이 멀쩡한게 너무 화나!" "무슨소리야 내가 멀쩡한게 화나다니. 그럼 내가 멀쩡하지 말아야 한다는거야 너?" 어...? 이.이건 아닌데. 흥분해서 말이 헛 튀어나온 모양이에요. 황당하다는듯 피식 하고 웃는 구해찬의 말에 할말을 잃어버린 바보 멍청이 김예봄은 괜스레 에라 모르겠다 라는 심정으로 방에 있던 언니가 뛰쳐 나올만큼 큰소리를 질러버렸어요. "모.몰라!!! 구해찬은 정말 구제불능이야!" 그리곤 다시 한번 더 붙잡히기 전에 도망치듯 구해찬의 집을 뛰쳐 나왔어요. 죽을힘을 다해 뛰어서. \집. 정말 챙피해요. 거기다 대고 구해찬이 멀쩡한게 화난다니. 나는 개그맨도 아닌데 왜 자꾸 이렇게 어처구니 없는일만 몰고다니는걸까요? "김예봄 바보. 바보 멍청이. 세상에서 제일 한심해." 구해찬이 나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완전 어리버리에다가 구제불능이라고 생각했겠지? 억지만 부리고. 어쩌면 머리가 텅 비어있을꺼라고 생각할지도 몰라. "으으. 한심해 김예봄!" 나는 그대로 곰돌이에 얼굴을 푹 묻었어요. 이런다고 빨개진 얼굴이 가라앉진 않겠지만 말이에요. 열두편 가량을 한번에 날려버린 후로 쓰기가 힘들어서 더 늦어버렸네요.ㅠㅠ -------------- §가그린§ (godqhrgkehfhr@hanmail.net) 플티〃가그린〃소설 (http://cafe.daum.net/Gagrin) -------------- ※헬리오토로프는 5월 24일의 탄생화로 사랑이여 영원하라 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30 나는 곰돌이에게 푹 묻었던 얼굴을 들고는 침대에 벌러덩 누워버렸어요. 잠을 잘 생각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잠이 오지 않아 하늘색 벽지로 온통 도배된 천장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김예봄이에요. “잠아 와라. 잠아 와라” 그리고 나는 바보처럼 이렇게말도 안돼는 주문을 반복하며 외우고 있어요. 그러면서도 마음 한켠에는 다른 생각을 하면서 말이에요 사실은.. ‘같이봐. 혼자 치사하게 보지말고!!’ ‘너 솔직히 말해 전색에 찐드기였지.’ 아까부터 자꾸만 언니와 구해찬의 다정한 모습이 눈앞에서 아른거립니다. 그래서 잠이 안오나봐요. 뭐랄까, 그순간 나는 알수있었거든요. 왠지 그 둘 사이에는 내가 끼어들지 못하는 벽이 있다는걸 말이에요. 3년이란 시간이 만든 보이지 않는 벽.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슬퍼졌어요. 아니 사실은 아주 많이요. “...........” 구해찬을 좋아하게 됬다는걸 느끼면서. 나는 단 한번도 내가 비참하다고 생각한적이 없어요. 첫사랑의 상처를 구해찬 덕분에 잊을수 있었던거니까 구해찬이 다시는 사랑할 자격도 없다고 믿은 나를 사랑할수 있도록 해줬으니까. 그래서 나는 구해찬이 내 고백에 아무말도 하지 않아도 밉지 않았어요. 비참하지도 않았구요. 그런데 오늘은, “조금은...” 비참한것 같아요. 조금은, 그래 아주 조금은 내사랑이. 가여워지는 날이네요. \다음날 어젯밤은 잠을 한숨도 자지 못했습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 보니까 자꾸만 뒤척이게 되고 결국은 한숨도 자지 못한채 시간을 보내게 된거죠. 조금씩, 창밖으로 하늘이 밝아지자 뭐랄까 지금 자면 아침 일찍 일어나지 못할꺼 같은 불안감도 들고. 밝아서 잠이 안올것 같고, 아무튼 그래서 나는 새벽부터 방청소도 하고 샤워도 하고 책정리도 했답니다. 그 덕분에 늦잠을 자지 않아 엄마와 함께 밥을 먹을수도 있었고 언니의 학교 준비도 도와줄수 있었는데... “응? 뭐라구..언니?” 엄마가 집을 나가자 마자 교복까지 다 갖춰 입었은 언니는, 이제 학교로 출발만 하면 되는 언니는, 갑자기 대뜸 교복을 훌러덩 벗기 시작했어요. 그리곤 제게 믿을수 없는 말을 내뱉었죠. “니가 오늘 내 대신 학교 좀 가달라구.” 그건 정말이지 마른하늘의 날벼락 이였습니다. “내..내가 왜?” “오늘 성현이랑 여행갔다 올라구.” “응....?” “여행가기로 했어. 바다 보기로 했어. 근데 엄마한테 걸릴까봐. 무서워서.” 뻥져 있는 내게 알수 없는 표정으로 교복을 내미는 언니. 내가 우물쭈물 받지 않자 언니는 억지로 아예 내게 교복을 떠맡기고는 옷을 입기 시작했어요. 나는 금방이라도 울듯한 표정으로 교복을 내려다 봅니다. “하지만...” 학교에는 구해찬이 있잖아요. 지금은 왠지 구해찬과 마주치기 싫은데. “부탁좀 할게. 동생아” 내가 우물쭈물 망설이자 어깨를 두어번 두드리고는 예쁘게 웃어보이는 언니. 그런데 그순간, 그건 제 착각이였을까요. 왠지 모르게 언니의 웃음이 정말...너무 슬퍼보였다는 건. “응. 알겠어.” 휴.. 이렇게 되면 어쩔수 없지 뭐.. 나는 고개를 끄떡이고는 받아든 교복을 들고는 체념한채 방으로 향했습니다. 이로서 김예봄이 아닌 김예나로 사는 하루가 더해졌네요. “예봄아.” 그렇게 내가 방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언니가 나를 조심스레 불렀습니다. 나는 교복을 든채로 빙그르르 언니에게로 돌았어요. “응?” “그리고 어제일. 오해하지마. 그냥 구해찬 학교 안왔다길래 놀러간거야. 만화책방에서 우연히 만난거고” “...........” “구해찬이랑 나는 친구잖아. 그리고 구해찬 여자친구는 너인데, 거기서 니가 왜 나가. 나가야 할 사람은 나였지.” “아. 아니야 언니 그런게 아니라!” “오늘 학교가는김에 구해찬이랑 풀어. 알았지?” 그순간은 정말이지 아무말도 할수 없었어요. 그저 아무말없이 언니를 멍하느 바라볼뿐. 말을 마치곤 예쁘게 웃음짓는 언니의 모습에 나는 문득,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거든요. 나는 언니와 구해찬 사이를 질투하고 속상해 했는데 언니는 이렇게 하나하나 신경써주고 있으니까요. 왜 나는 고작 이정도밖에 되질 않는걸까요? “응...고마워 언니.” 고개를 끄떡이자 언니는 따듯한 손으로 내 머리를 두어번 쓰다듬었어요. 그제서야 나는 언니를 향해 웃어보입니다. “아니, 내가 미안해. 오늘 저녁에 올테니 알아서 시간 좀 떼우다가 만나자.” “응응! 재밌게 놀다와.” “그래...잘정리하고 올게. 혼란스러운것들.” “응....?” “아니야. 늦겠다. 얼른 가!” 웃으며 내 등을 떠미는 언니의 손을 나는 천히 내려다봐요. 왠지 모르게 지금 언니는 나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나보다 더 복잡한 마음일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죠. \학교 학교를 올때마다 생각하는건, 꽤나 여러번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굉장히 익숙해지지 않다는 것입니다. 아직까지도 조금은낯설어요. 바람에 가지를 흔드는 포플라나무가 울창히 드리워져있는 이 길도, 그리고 고등학교 치고는 꽤나 넓은 이 운동장도, 아이들을 교실로 불러 모으는 종소리도, 선생님들도, 학생들도, 그리고 어색히 언니의 교복을 입은 김예봄도, .....익숙해지지 않는건 어쩔수 없나 봅니다. “어? 봄이봄이봄이 왔다!” 정문에서 슬리퍼로 갈아신고 있을 그때, 누군가의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그건 굉장히 신나고, 뭐랄까 반가운? 그런 목소리였어요. “봄?” “예봄아!!!” 그제서야 나는 나를 부르는것이라는걸 눈치채고는 소리가 나는쪽으로 시선을 돌립니다. 아니나 다를까 개구진 표정으로 서있는 여민이와 약간 피곤한 표정의 현태가 있네요. 헌데 구해찬은 보이질 않습니다. 어디있는걸까요? 반사적으로 내눈은 구해찬을 찾아요. “어? 얘들아 안녕!” “또 김예나 교복입고있네. 이번엔 또 왜?” “아..그냥 언니 여행간다고 해서” “아 그 꼬맹이랑? 김예나 이거 재미 붙였나봐. 아휴 불쌍한 우리 봄이. 못난 언니 때문에 고생이 많구나.” 무언가 굉장히 어른스러운 표정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는 여민이. 이.이걸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사실은 웃음이 날 것 같아 미치겠다구요. 마음 같아선 '여민아, 언니 남자친구보다 너가 더 꼬맹이같아.' 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상처받을수도 있으니 꾹 참아야겠어요. “예나 대신 왔어?” “응? 응!” “너 오늘 좀 피곤해 보인다. 괜찮은거야?” 아무튼간에 그렇게 웃음을 참으려 입가를 손으로 막고 있는데 현태가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내게 말해요. 그순간 느낀건요. 현태의 웃음은 정말 언제봐도 너무 따듯하고 포근하다는거에요. 음 현태의 웃음은 마치 어느 봄날같아요. “응. 당연하지! 그런데...” 구해찬은... “응?” “아. 아니야! 지각하겠다. 우리 얼른 들어가자!” 왜 안보이는걸까요. 혹시, 무슨일이 생긴건 아닐까요? 물론 어젯처럼 이런 걱정하는건 엄청나게 쓸떼없는 일이라는걸 잘 알지만 그래도 안보이니까 걱정되고 허전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 보고싶기도....하구요. \ [잠깐 좀 볼래?] 나는 반이 다른 현태, 여민이와 복도 끝에서 헤어지곤 언니의 반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곤 기억을 더듬어 찾은 언니의 자리에 가방을 내려 놓으려는데, 동시에 드르륵 하고 마이 주머니에 꼽아 놓았던 휴대폰 진동이 느껴졌어요. 누구지? 라는 생각에 망설임없이 나는 핸드폰 플립을 열어서 문자를 보낸 사람을 확인했습니다. “현태....?” 나는 현태의 번호가 선명히 찍혀있는 핸드폰 액정을 빤히 내려다 봐요. 잠깐 좀 보자니. 무슨일이지?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폰에 어느정도 익숙해진 손으로 천천히 버튼을 눌러 답장을 보냅니다. [응? 왜? 알았어. 어디서 볼까?!] “무슨일일까?” 나는 작게 중얼거리곤 언니의 자리에 천천히 앉았습니다. 답장이 오기 전까지 자리에 앉아 있어야 겠다는 생각에서 말이에요. 슬쩍 교실을 둘러보니,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현태의 말을 빌리자면 일명 ‘날라리’ 구해찬은 교실에서 보이질 않았어요. 도대체 구해찬은 등교시간이 언제인걸까요? 이제 조금 있으면 수업 시작인데 아직도 오질 않다니. 아니, 어쩌면 다행일지도 몰라요. 차라리 구해찬을 마주치지않는게 오히려 나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런데 생각을 한지 얼마 안돼 바로 구해찬이 콰앙. 하고 교실문을 거칠게 열고 가방도 없이 교실로 들어왔습니다. 순간, 내 머릿속에는 언젠가 아빠가 알려줬던 한국 속담이 떠올랐어요.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 라는 속담 말이에요. 나는 재빨리 구해찬이 나를 볼새라 그대로 올려 놓았던 가방으로 얼굴을 숨겼습니다. 왠지 모르게 어제일 때문에 챙피하기도 하고 밉기도 해서 구해찬과 마주치기 싫었거든요. 그렇게 가방으로 한참을 얼굴을 숨기다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안자 나는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습니다. 그러자 4분단 제일 뒷자리에 앉자마자 책상에 엎드려 그대로 자버리는 구해찬의 모습이 보였어요. 순간, 피식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습니다. "하여간..." 구해찬은, 못말린다니까. \ [줄거 있어서. 잠깐이면 되. 학교 뒤편에서 보자.] 현태와 만나기로 한 장소는 학교 뒤편에 있는 벤치였어요. 수업시간까지 20분도 채 남지 않은터라 빨리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시계를 자꾸만 확인하면서 벤치로 달려갔습니다. 벤치에는 이미 먼저 현태가 와서 앉아 있었어요. “예봄아, 여기” 현태의 머리 위로 따듯한 햇살이 내리쬐고 있어요. 나는 왠지 모르게 이 넓은 공간에 현태와 단둘이만 만난다는것이 쑥스러워 눈도 잘 마주치지 못한채 슬며시 옆자리에 앉아요. 그리곤 괜스레 핸드폰을 만지작 만지작 거리며 말했습니다. 이런 분위기 조금 어색하다구요! “현태야! 왜?” “자.” “으응?” “이거.” 내가 눈이 땡그래져 자신을 쳐다보던 말던 현태는 예쁘게 내게 무언가를 내밀었습니다. 우와. 라는 작은 감탄사를 내뱉으며 나는 그것을 내려다 봐요. 그리곤 머뭇머뭇 거리다가 이내 받아들죠. “현태야. 이게 다 뭐야?” “먹으면 좀 괜찮아질꺼야. 피곤해 보여서 샀어.” 작은 쇼핑백에는 박카스와 비타민, 초콜렛 등이 가득했습니다. 박카스 2병. 비타민은 비타민대로 초콜렛은 초콜렛 대로 잘 정리되어 있는 쇼핑백 안을 나는 한참을 바라봐요. 현태는 보이는 것처럼 성격도 깔끔한 모양이에요. 정말, 너무 예쁘게 잘 정리되어 있었거든요. “나 안 피곤한대. 진짜 괜찮아!” “거짓말 친다. 얼굴에 나 피곤합니다. 라고 써있네요 아가씨.” “진짜? 어디?” “여어기.” 현태는 말을 마치곤 손가락으로 쿡 내 볼을 찌르더니 웃어보여요. 나도 현태를 따라 웃습니다. 너무 기뻤거든요. 누군가가 나를 걱정해주고 챙겨준다는것 그 자체만으로도 어떤 사람이 안 행복하겠어요. “이제 가자. 수업 늦겠다.” 그때, 벤치에서 일어서는 현태에요. 그리곤 제게 자신의 손을 내밀어요. 나는 조금 망설이다가 웃으며 현태의 손을 잡고 일어섰습니다. 동시에 수업을 알리는 종소리가 이곳에 크게 울려 퍼져요. “고마워 현태야” 쇼핑백을 흔들며 말하자 내말에 순간, 허리를 살짝 굽혀 눈높이를 맞추는 현태. 눈이 마주치자 피식 하고 예쁘게 웃음짓더니, 잡았던 손을 놓고 내 머리를 잔뜩 헝크려 놓으며 말해요. ..... “별말씀을요.” 아주 자상한 목소리로 말이에요. \ 종이 울리자 마자 초스피드로 달렸건만, 교실에 다다랐을땐 이미 문이 굳게 닫힌채 수업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어떡해 하지. 수업을 하는 도중에 들어가면 분명 방해될텐데, 예의가 아닐텐데... 하지만 그렇다고 들어가지 않을수도 없는 노릇이였습니다. 이건 내 수업이 아닌 언니의 수업이고 내 점수가 아닌 언니의 점수니까요. 그렇게 나는 잠시동안 문을 열까 말까 고민을 하며 망설이다가이내 문을 열었습니다. 일단은 나보다 언니가 우선이니까요. “죄송...합니다.” 교실안에는 한창 수업이 진행 중이였어요. 칠판에 무언가 필기를 하고 계셨던 선생님의 날카로운 시선과 아이들의 시선. 그리고 구해찬의 시선이 동시에 내게로 향합니다. 특히나 잠에서 깼는지 구해찬은 “김예봄...?” 이라고 중얼거리며 나를 빤히 쳐다봤어요. 난 지금 김예나인데 저 바보. 거기서 김예봄 이라고 말하면 어쩌자는걸까요? 나는 살짝 구해찬에게 눈짓을 주고는 재빨리 내자리, 아니 언니에자리로 가서 조심스레 앉았습니다. 어찌됐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건 왠지 모르게 챙피하게 낯설다구요. “김예나 도대체 이게 몇 번째야? 한번만 더 늦으면 정말 그땐 알아서해!” 뒤이어 선생님이 한소리 하시고 나서야 아이들의 시선이 내게서 거두어졌습니다. 선생님이 뒤돌아서 칠판에 잠시 멈추었던 필기를 다시 쓰기 시작하셨거든요. 아이들의 시선이 내게로 거두어지자 그제서야 나는 안도의 한숨을 푹 쉬며 책을 꺼냈어요. 휴. 나는 왜 맨날 학교에만 오면 사고를 치는걸까요? 김예봄 바보. 바보. 울상을 지으며 나는 내 머리를 주먹으로 몇 번 내리쳤습니다. “아얏!” 결과는? 당연히 엄청 울트라 캡숑! 아파요. 그나저나지난번에 언니에게 배운 울트라 캡숑 이란 말은 언제 써도 너무 웃긴거 같다니까요. 히히 “..............” 그런데.. 자꾸만 누군가의 시선이 제게 닿는듯한 느낌이 들어요. 나는 왠지 그 누군가를 알 것 같은 기분으로 조심스레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러자 4분단에 앉아있는 구해찬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그대로 고개를 돌려버렸어요. 그것도 아주 티나게. “...........” 사실 우리 둘다 어색한건 사실이에요. 왜냐면 분명 어제 나는, 걱정했는데 왜 말짱하냐며 구해찬에게 화를 냈고, 구해찬은 그전에 내게 화난 감정이 아직 다 풀어지지 않았으니까요. 이럴줄 알고 언니 대신 학교에 오기 싫었던건데.... 나는 괜스레 구해찬이 신경쓰여 애써 책에 집중해 봅니다. 그런다고 글자가 눈에 들어올리 없지만 말이에요. 투욱. 그때였습니다. 구해찬쪽에서 무언가가 내쪽으로 날라와 ‘투욱’ 하는 소리를 내며 책상으로 착륙한건 말이에요. “어....?” 그건 비행기였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삐뚤삐뚤하게 접은 종이 비행기 말이에요. 나는 깜짝 놀라 구해찬을 바라봤어요. 그 러자 장난끼 가득한 표정을 짓더니 입모양으로 “펴 봐” 라고 말하는 구해찬이에요. 천천히 비행기를 펼쳐 봅니다. 그리고, 그 안에 적힌 삐뚤삐뚤한 구해찬의 편지에 난 결국 피식 하고 웃음을 터트릴수밖에 없었어요. [어젠 좀 미안한건 아니지만, 아니 내가 미안하다고 할수도 있겠지만 미안한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화풀어라] 예전이나 지금이나 구해찬은 변함없는 모양입니다. 이럴때 ‘미안하다’라고 딱 부러지게 말하지 않는거 말이에요. 나랑 안지 얼마 안됐을 때도 이렇게 말도 안돼는 말을 횡설수설 늘어놓았었는데... [미안하다곤 끝까지 안하지? 나도, 미안한건지 아닌건지 미안한것 같기도 하고 뭐 아무튼 화 풀어라.] 잠시후, 나 또한 해찬이처럼 종이를 찢어 서툰 한글을 삐뚤게, 그러나 정성스레 적고는 똑같이 종이 비행기를 접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나서 웃으며 내가 만든 종이 비행기를 구해찬의 책상으로 던졌지요. 이내 구해찬이 접은것보다 훨씬 더 근사한 김예봄표 종이비행기는 슝 하고 날아가 녀석의 발밑으로 착륙합니다. 구해찬은그런 나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그것을 주어들어 펼쳐요. 그리곤 내가 그랬던것처럼 피식 하고 웃음을 터트리죠. “........” 순간, 창가위로 내려앉은 햇살이 그만큼 따스한 바람을 타고 내려와 녀석의 종이비행기에 내려 앉았어요. 나는 고개를 돌려 해찬 이의 비행기를 만지작만지작 거립니다. 자꾸만 웃음이 나요.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거든요. 나는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왠지 기분 좋은 하루가 될 것 같다고 말이에요. .......라고 생각한지 단 3초도 지나지 않았을때 말이죠. 갑자기 분노섞인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김예나, 구해찬! 이것들이 진짜! 니네는 정말 미친거야? 어디서 삼류영화 본건 있어가지고 수업시간에 감히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쳐웃고 지랄들이야? 여기가 무슨 이라크야? 비행기가 날라다니게! 둘다 당장 나가!!!!안나가!??” 31 “이게 다 구해찬 때문이야. 구해찬이 아홉 살먹은 어린애야? 종이비행기를 날리게!” 교실 앞. 두 바보가 나란히 무릎을 꿇고 앉아있습니다. 한 바보는 수업시간에 비행기를 날린 구해찬이구요. 그리고 또 다른 바보는 좋다고 같이 날린 김예봄입니다. 씨잉 이게 다 구해찬 때문이에요. 정말 챙피해 죽겠다구요! 모든 학생들이 수업 듣고 있을 시간에 구해찬과 김예봄 딱 두명은 복도에 외로이 무릎꿇고 앉아있으니 말이에요. “좋다고 따라한게 누군데.” “먼저 시작한게 누군데!” “아 짜증난다. 진짜 이게 뭐야 가오 죽게.” 구해찬은 진심으로 복도에 무릎꿇고 있는것이 짜증나는 모양이에요. 신경질적으로 틱틱 대고 있으니 말이에요. 정말 이러니까 아홉 살먹은 꼬맹이 같은걸요? 나는 그런 구해찬을 빤히 바라봤습니다. 그래도 어찌됐든 기분은 좋은것 같아요. 물론 내 감정이 한순간에 흐지부지 해져버렸지만. 나를 상처받게 했던 알수없는 구해찬의 행동에 대한 이유도 알지 못했지만. 다시 예전처럼 돌아온 것 같아서 솔직히 지금 나, 너무 기분 좋아요. “구해찬씨 하지마!” 그런데 우리의 구해찬씨는 왜 저렇게 한시라도 가만히 있지 않는걸까요? 나는 자꾸만 내 팔뚝을 쿡쿡 찌르고 있는 구해찬의 손가락을 내려다 봅니다. 이렇게 안해도 구해찬 손가락 길고 매끈하게 뻗은거 안다구요! “왜.싫어! 할래 김예봄군!” “에에? 김예봄군? 내가 왜 김예봄군이야!” “그럼 김예봄년이라고 하면 좋겠어?” “아하 그건 또 그렇네.” “그렇긴 뭐가 또 그렇냐. 할튼간 띨순이.” 팔뚝을 쿡쿡 찌르던 손가락에 경로를 바꾸어 이내 내 볼을 툭툭 치며 날 놀려대는 구해찬이에요. 띨순이라니. 구해찬은 씨크릿도 씨클이라고 하는 띨돌이잖아! 라고 말하려다가 나는 입을 꾹 다뭅니다. 내가 아는 구해찬은 분명, 길길히 날뛰면서 자기가 언제 그랬냐고 소리를지를게 뻔하거든요. “근데 김예봄.” 그때, 구해찬이 내 핸드폰 액정을 손가락으로 쭈욱 밀며 아무렇지도 않게 물어요. “응?” “너 왜자꾸 학교와. 재미 붙였어? 김예나 대신 학교 오는거.” 그순간은 말이죠. 그냥 그랬어요. 아니 사실, 그냥 그랬다기 보단 ‘아 그렇구나. 구해찬은 그럴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죠. 김예나 나는 구해찬에 말에 김예나라고 적힌 명찰을 씁슬히 바라봐요. 이 명찰이 달린 교복을 김예봄이 입고 학교에 오는것보다 김예나가 입고 학교에 오는것이 구해찬에겐 더 좋은일이라는걸 잊고 있었던 모양이에요. 왜냐면 구해찬은 나보다 언니를 더 많이 보고싶어하고, 나보다 더 언니와 함께 있고싶어하고, 무엇보다 나보다 더 언니를 훨씬 많이 좋아하니까... 이렇게 일일이 비교하며 따지는거, 굉장히 유치한일이라는거 알지만 자꾸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버려요. “아 언니는...” 살짝 말끝을 흐리니, 핸드폰 까만 액정에 두었던 시선을 내게로 돌립니다. “왜. 무슨일 있어? 김예나.” 구해찬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비참한 기분으로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어요. 그러자 내머리에 자신의 큼지막한 손을 투욱 하고 올리더니. “김예봄 근데 너 그거알아?” 라고 뜬금없이 입을 엽니다. 아주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구해찬! 니 손 무거워!” “너 교복 무지 잘 어울린다다. 예뻐.” 따스한 햇살이 구해찬의 머리위로 내려앉아 녀석의 머리를 노랗게 물들였어요. 만지면 따듯할것 같이요. 그런데 김예봄의 얼굴은 구해찬과 다르게 붉은 노을에 물들어 버린것처럼 빨갛게 달아 오르고야 말아요. “그. 그런데 다리 너무 아프다.그치!” “말 돌리기는” “말 돌리는게 아냐! 또 날 놀리는 거잖아. 저번에도 그랬으면서, 내가 속을꺼 같아?” “아닌데” “뭐?” “두번 말 안해. 아 지루해. 가자 김예봄.” 에에? 갑자기 일어서는 구해찬. 또 땡땡이를 까려는 걸까요? “가자니까.” 꿈쩍도 안하고 자신을 멀뚱하게 쳐다보고 있는 내게 다시 한번 말하는 구해찬이였습니다. “어딜? 또 땡땡이? 난 안가! 내수업도 아니구, 이제 언니 수업 대신 땡땡이 같은거 까지는 않을...” “저기 유에포다!” “뭐야 구해찬.” 어처구니가 없다구요. 갑자기 뜬금없이 유에포라니요. 바보가 아닌 이상 어떻게 저렇게 어설픈 장난을 칠 수가 있죠? 나는 구해찬을 향해 쯧쯧 하고 혀를 찼습니다. 그러자 구해찬은 피식 하고 웃더니만. “처음 만났을때 니가 그랬잖아. 엄청 어색하게. 어? 저기 유.에.포.다” ‘어어-? 유에포다!!!!!!!!!’ 구해찬의 말에 얼굴이 화르륵 달아오르는것만 같앗어요. 그랬습니다. 나는 구해찬을 처음 본 날 분명, 저렇게 말했었지요. 구해찬은 내 말투를 흉내내며 웃어요. 정말 악덕하다니까요. “그만해 구해찬! 날 놀리는거!” “그럼 가자니까” “그러니까 어딜!” “놀러. 여기 있는건 너무 지루하잖냐. 너도 내말에 동감하지?” 절대! 네버! 동감하지 않는다구요. 도대체 구해찬은왜 저렇게 뿌듯한 표정을 짓고있는걸까요. 나를 다 파악했다는듯 당당하게 바라보고 있는 구해찬의 모습에 풉 하고 웃음이 터져나와요. 현태의 말이 맞긴 한가봐요. 구해찬은 ‘날나리’ 라는거 말이에요. 늘 이렇게 땡땡이를아무렇지도 않게 까다니, 땡땡이는 정말 나쁜건데 말이에요. 그래도. “알았어. 이번 한번만이야!” 나는 그런 억지쟁이 구해찬에게 결국은 이기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복도에서 일어서자 무심한듯 나를 바라보며 치마를 툭툭 하고 털어주는 구해찬이였어요. 늘 이렇게 구해찬은 사소한것 하나하나를 챙겨줘서 감동을 주곤 하는것 같아요. 아마 그래서 내가 구해찬을 좋아하게 됬나봐요. 사실, 그것 하나만으로 좋아하는 이유를 설명할순 없겠지만. 뭐, 아무튼간에 수많은 이유들중 그 이유도 하나 있다구요. 히히 ♬♪♩♭ 그때, 어정쩡하게 서있는 김예봄에게 손을 내미는 구해찬. 그리고 그 손을 잡을까 말까 머뭇거리는 김예봄. 그렇게 잠시 망설이다가 내가 천천히, 아주 조심스럽게 구해찬의 손을 잡으려고 할 무렵이였습니다. 조용했던 복도에 예전에 언니 대신 시험보러 학교에 왔을때 가장 기다려졌었던 바로 그 종소리가 울려 퍼진건 말이에요. 수업을 끝마쳤다는 종소리가 울리자마자 순식간에 교실에서 아이들이 복도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어요. “김예나. 구해찬.니네 뭐냐?” 그런데요. 이여자는 누굴까요? 그러니까, 10반에서 나와 우리를 발견하고는 손가락질을 하더니 망설임없이 우리앞으로 다가온 이여자 말이에요. 슬쩍 구해찬이 내게 눈치를 줘요. 문제는 내가 그게 무슨뜻인지 알지 못한다는거구요. “사람.” 굉장히 귀찮다는듯 대답하는 구해찬의 모습에, 나는 구해찬이 저렇게 밉게 말하기도 하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함께 고개를 끄떡입니다. 그러자 조금은 날카롭게 나를 노려보는 여자였어요. 언니와 사이가 좋지 않은걸까요? 그 시선이 조금은 차갑게 느껴졌습니다. 슬쩍 명찰을 내려다보니 가슴 부근에 달린 명찰에는 [서단비]라고 적혀있었어요. 한번도 듣지 못한 이름인데, 아니 언니에게 지나가는말로 들은것 같기도 하고. “왜 또 부쩍 같이 붙여다녀? 웃긴다 니네” “뭐래는거야. 심심하냐? 와서 왜 시비걸어.” “시비? 무슨시비? 그런거 건적없는데? 걸 줄도 모르고.” “그럼 그냥 꺼져줘요. 빨리.” 귀찮아 죽겠다는 표정의 구해찬. 한마디로 말하면 정말로 여자를 한 대 칠 것 같은 표정으로 짜증을 내고 있었습니다. 저여자가 누군지, 어떤 사인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에요. 나는 이렇게 구해찬이 말을 험하게 하는거 싫어요. “구해찬. 왜 그렇게 말을 심하게해. 말 그렇게 밉게 하는거 아냐.” 아직, 한국말 중 배워야 할 속담이나 사자성어 같은건 수두룩 하지만, 잘 배우지 못하고 있는데. 배우지 말아야 할 욕이나 험한말은 자꾸만 배워가는것 같아요. 바로 구해찬 때문에 말이에요. “뭐? 김예나 너 지금 미쳤어?” 당연히 화를 낼줄 알았던 내가 화를 내지 않자 앞에 있던 여자는 조금 의외였던 모양이에요. 어이가 없다는듯 제게 소리를 지릅니다. “이게 지금 누구보고 미쳤대. 너야말로 미쳤...” 그러자 구해찬은 그런 여자에게 화를 내려다가 슬쩍 내눈치를 보고는 말끝을 흐렸어요. 그리곤 다시 입을 열죠. “아니 돌았...아니 제 정신이 가출했어?” 무려 3번이나 말을 번복하고 나서야 녀석이 험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말은 결국 ‘제정신이 가출했어?’였던 모양이에요. 나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엽고, 내말에 신경 써주고 있다는 사실에 고맙기도 하고 해서 웃음 지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엔 앞에 있던 여자가 기분 나쁘게 쳐다봐요. 아까부터 궁금했던 이여자의 정체는 도대체 누구일까요? “하루만에 다른사람이 된건 아닐테고, 왜이렇게 조용해? 평소 같으면 나한테 또 미친년, 해야 되지 않아?” “....저요?” 그러자 허 하고 웃음을 터트립니다. “저요?라니. 뭐야 너. 구해찬 김예나 왜이래?” “너야말로 왜이래 좀. 짜증나니까 가.” 내앞을 가로 막으며 구해찬이 한소리 하자 어처구니가 없다는듯 피식 하고 웃더니만 나를 바라보는 여자였어요. “좋아 죽네.” 그리곤 짜증난다는듯 인상을 찌푸리곤 뒤돌아 서서 자신의 반 쪽으로 걸음을 옮겨요. 도대체 누굴까요? 나는 그여자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다봐요. 그러자 순간 허리를 굽혀 내 귓가에 소곤거리듯 말하는 구해찬 이였습니다. “니 언니랑 우리 학교 여자 성질 원톱 투톱 달리고 있는 년...이 아니라 여자애야.” 어쩐지. 그래 보이더라니까요. 정말로 한 썽깔 하는것 같았어요. “정말? 그런데 언니를 좀 싫어하나봐.” “조금. 그래서 둘이 만나면 졸라...아니 엄청 시끄러워” “왜?” “김예나가 나랑 친하니까.” “구해찬이랑 친하니까?” “아니 뭐, 정확히 말하면 내가 개 좋아하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녀석의 말에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내려 앉았어요. “............” 구해찬은 정말.... “서단비가 나 엄청 좋아했거든. 완전 찐드기처럼. 스토커가 따로없었어. 완전 무서웠다.” “으응...” 아무렇지도 않나봐. “오빤 이런몸.” 웃으며 브이자를 하는 구해찬. 나는 피식 하고 웃으며 고개를 끄떡여 보여요. 서운하면.....안되는 거겠죠? 나는 언니가 아니니까.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내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말하는 구해찬에게 조금은 서운해요. 아니. 많이 서운해요. 내 마음, 다 알면서. “어?” “응?” “이거 서단비 껀데.” 그때, 갑자기 구해찬이 사물함 위에 올려진 분홍색 핸드폰을 집어 들었어요. “놓고 갔나보다.” “그런가봐.” “응.” 내 대답에 ‘갔다주기 귀찮은데’ 라고 중얼거리며 잠시동안 손에 쥔 핸드폰을 빤히 내려다보는 구해찬이였어요. 그러다가 녀석은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특유의 개구진 웃음을 짓더니 갑자기 한쪽 손으로 나를 확 끌어 당겼습니다. “야 김예봄. 일로와봐.” “어어?” 그 바람에 김예봄, 구해찬과 5센치도 채 안되는 거리에 있게 되버렸다구요. 나도 모르게 숨을 헙 하고 들이킬만큼 구해찬씨와 김예봄의 거리는 말도 안될 정도로 가까웠어요. “김예봄.” 굉장히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내 귓가에 소곤거리는 해찬이. 순간, 녀석 특유의 좋은 냄새가 코 끝에 내려 앉았습니다. “왜.왜!” “하나 더 늘은거다.” “뭐.뭐가?” “그러니까...” 말끝을 흐리며 꾸욱 하고 엄지손가락으로 핸드폰 전원버튼을 누릅니다.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해맑게 웃으며 말이죠. 그리곤 아무 사물함 문을 열더니 전원이 꺼진 그 여자아이의 핸드폰을 그안에다가 던져버려요.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면서 말이에요. .... .......... “우리 둘 만의 비밀.” 32. 구해찬은 정말 악덕해요. 저렇게 전원을 꺼논채 사물함에다가 집어 넣으면 그 여자아이가 핸드폰 찾는것이 힘들거 아니에요. 안된다는듯 고개를 저어 보아도 막무가내인 구해찬은 끄떡없었어요. 오히려 저한테 "원래 뿌린대로 거두는법" 이라는 알수없는말을 던져 놓을 뿐이였죠. 그런데 뿌린대로 거두는법 이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속담인가? 집에가서 찾아봐야 겠어요. "예봄아. 거기서 뭐해?" 현태의 목소리가 들린건 그러지 말아라. 그래야 한다로 한참 구해찬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무렵이였습니다. "아. 그게 구해찬이!" "넌 임마. 난 안보여?" 구해찬은 아까의 일을 말하려는 내입을 한쪽손으로 막고는 대뜸 소리쳐요. "그래. 예봄이밖에 안보인다." 그러자 장난스럽게 웃으며 대답하는 현태. "죽을래?" "그런데 여기서 뭐해? 둘다." "보면몰라? 연애하고 있잖아." 연애라니. 구해찬의 말에 그대로 굳어버린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현태가 또 다시 웃음 지었어요. "예봄인 아닌거 같은데?" ♬♪♩♭ 그때였습니다. 현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수업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온건 말이죠. 종소리가 들려오자마자 복도를 꽉 메우고 있었던 아이들은 하나 둘 교실로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저도 수업에 들어가야겠어요. 현태에게 살짝 손인사를 건내곤 아이들 틈에 끼여 교실로 들어가려는데 순간, 익숙한 손이 내 팔을 붙잡았어요. "야 어디가." 늘 느끼는거지만 구해찬의 손은 참 예뻐요. "수업 들어가야지." "안돼." "에에? 뭐가 안돼?" "놀러 가기로 약속 했잖아." "언제?" "아까." "그런적 없어. 난 수업시간 빼먹지 않는다구 말했잖아!" "몰라. 그런거 못들었어." "나도 그렇게 따지면 그런거 못들었어!" 이제 조금 있으면 선생님이 오실텐데. 구해찬은 손을 놔줄 생각을 하지 않고 버티고 있어요. 손을 빼려고 힘을 주자 녀석은 실실 눈웃음을 치면서 말해요. "내가 제일 싫어하는 영어시간이야. 이번 한번만 들어가지 말자. 응?" 라고 말이에요. 나는 영어가 좋다구요. 싫으면 자기 혼자 안들어가면 되지! "..........." "누나 제발." ..... ......... "알겠어. 진짜 진짜 이번이 마지막이야!" 하지만 나는 이번에도 구해찬을 이길수가 없었어요. 구해찬이 저렇게 실실 웃으며 눈웃음 지을때면 모든지 다 들어줘야 할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 결국 나는 체념한듯 고개를 끄떡여 보입니다. "그럼..." 그때, 갑자기 묵묵히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현태가 조심스레 입을 뗐어요. ".........." "나도 같이가." 구해찬이 잡고 있는 내손 맞은편 손을 잡으며 말이죠. \ "말도안돼." 그래요. 이건 정말 말도 안돼는 일이라구요. 소리치며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내 팔목을 구해찬이 타악 하고 잡았습니다. 나는 그런 구해찬을 흘겨봐요. "이게 노는거야? 그리고 난 1시간만 나갔다 올려고 했던 거라구!" "앉아." "뭐.뭐?" "원래 인생이란 이런거야." 말도 안돼는 소리! 개구지게 웃으며 술을 기울이는 구해찬이 왜이렇게 얄미운건지. 나는 큰 한숨을 쉬며 도로 자리에 앉았어요. 다 좋았어요. 다 좋았다구요. 학교 앞에서 닭꼬치라는것도 먹어보고, 길이가 30센치나 된다는 큰 아스크림도 먹었어요. 저번에 현태랑 갔던 오락실에도 놀러가고, 까폐도 가서 맛있는 녹차라떼두 먹었어요. 여기까진 정말 재밌고 좋았는데, 학교로 들어가려는 도중 뜬금없이 이현태와 구해찬이 갑자기 술을 마시러 가자는게 아니겠어요? 저는 당연히 안된다구 했죠. 그랬더니 둘이 막무가내로 저를 이곳에 끌고 오다 시피 했어요. 교복을 입고 있다는것 조차 까먹곤 말이에요. 결국 이 두 바보들은 술집앞에 도착하고 나서야 "아 맞다. 교복" 이라고 내뱉으며 머리를 잔뜩 헝크려 놓으며 짜증을 내다가, 이내 "갈아입고 오면 되지" 라는 초 단순한 구해찬의 아이디어에 (너무나도 당연한 해결책이였건만 녀석은 집에 가는 내내 자기는 아이슈타인의 머리를 가진것 같다며 자랑하기 바빴음) 우린 각자의 집에서 옷을 갈아입고 정확히 1시간 뒤, 이곳에 온 것입니다. 나는 이번에도 크게 한숨을 푹 쉬며 똑딱똑딱 시침바늘이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는 시계를 힐끔 쳐다봤어요. 바늘이 가리키고 있는 시간은 6시30분. 결국 학교가 끝나버리고 말았네요. 정말이지 언니를 볼 염치가 없다구요. "정말...." 시계에 고정시켰던 시선을 이번엔 구해찬 쪽으로 돌려습니다. 그러자 하얀 담배를 입에 물며 나와 눈을 맞춰요. "뭐가?" "구제불능" "누가. 내가?" "응!!!!!" "김예봄. 너 왜 나한테만 그래. 술먹자니까 이현태도 분명 좋다고 박수쳤다." 입에 문 담배를 빼더니 발끈하는 해찬이. 그러자 이번엔 옆에서 안주로 나온 오징어를 집어들다 말고 발끈하는 이현태. "말은 바로해. 박수는 안쳤다." 한숨이 저절로 나와요. 정말 둘이 똑같다구요. 나는 이왕 이렇게 된거 어쩔수 없지 뭐, 라는 생각으로 테이블 위에 놓여진 땅콩을 주워먹었어요. "예봄아 넌 먹기 싫으면 그냥 먹지마. 술"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구해찬에게 잔에 출렁이도록 가득 소주를 받으며 현태가 말해요. 나는 고개를 끄떡이며 이번에는 감자튀김으로 손을 뻗었습니다. 한국에서 먹는 감자튀김이랑 미국에서 먹었던 감자튀김의 맛은 뭐랄까, 굉장히 비슷하면서도 달라요. 뭐 둘다 엄청 맛있지만 말이에요. "뭐야 정말. 레벨 떨어지게 지금 셋이서 궁상떨고 있는거야?" 노릇노릇하게 튀겨진 감자튀김은 짭쪼롬 하면서도 매우 고소했어요. 그리고 위에다가 설탕을 뿌린건지 달짝찌근해서 자꾸만 손이 가게 됐죠. 그러니까, 그건 내가 막 다시 그 맛있는 감자튀김으로 손을 뻣으려고 할때였을 거에요. 언제왔는지 황여민이 히죽 히죽 웃으며 비어있던 내 옆자리에 앉으며 위와 같이 말한건 말이에요. "너야말로 레벨 떨어지게 그 티셔츠 뭐냐?" 톡톡 하고 두 번째 손가락으로 담뱃재를 털어내며 인상을 찌푸리는 구해찬이에요. 나는 연기가 뭉글뭉글 피어오르는 구해찬의 담배를 멀뚱히 바라봅니다. 담배.. 건강에 나쁘니까 안폈으면 좋겠는데 "뭐가?" "니가 지금 입고 있는 그 티셔츠." "아아 이거?" "연애하더니 챙피함이란걸 잊어버렸냐." 연애? 해찬이의말에 나는 깜짝 놀라 두눈을 똥그랗게 뜨고 옆에 앉아 있는 여민이를 바라봤어요. 그러자 여민이는 수줍게 웃어보이더니 "나에 대한 마음은 이제 접어 예봄아." 허. 어처구니가 없다구요 정말! 저런말을 어쩜 저렇게 진지하게 말하다니. "너에 대한 마음은 없었다구요! 진작부터." "커플티라고 니네 들어봤어? "그 걸레 쪼가리 같은게 설마 커플티야?" 나는 가끔 생각해요. 현태처럼 부드럽고 자상하고, 예쁘게 웃는 사람들이 어쩌면 더 무서울지도 모른다고 말이에요.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싱글벙글 예쁘게 웃으며 상처를 주다니. "걸레 쪼가리? 이게 죽을라고. 아아 그래, 니네가 뭘 알겠냐. 진정한 사랑이라는거 모른다 니네는." "쫑알댈꺼면 여자친구나 만나러 가." "안그래. 안그래! 나 술마시고 싶어요 형아." "잘못했지?" "응. 아니 네!" 아무튼간에 그렇게 투닥투닥 거리던 현태와 여민이는. 결국 밥먹듯이 하는 화해를 또 다시 하고는 서로에게 술을 따라주네요. "근데 그냥 먹으면 재미없잖아. 우리 뭐 게임이라도 하면서 먹을까?" 술을 먹으려다 말고 여민이가 술이 가득 차, 둥그런 물결을 그리며 출렁 거리는 잔을 들으며 말했습니다. 그리고 잠시후, "게임?" 심드렁하게 대답했던 해찬이도 "해볼까?" 나를 보며 자상하게 웃던 현태도 "나 게임 못하는데..." 분명히 질것 같아 울상을 짓던 김예봄도 모두 게임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뭐, 예전에 들었던 쿵쿵따라던가. 끝말잇기. 혹은 369 같은 게임일줄 알았던 저는 막상 게임이 시작되자 당황할수밖에 없었지만요. "진실게임? 그게 뭐야??" 처음 들어보는 게임이였어요. 쿵쿵따 끝말잇기 같은건 미국에 있을때도 아빠가 가끔 보시는 한국 티비로 멀리서나마 접하곤 했는데 진실게임이라. 어떻게 하는건지 도통 감이 잡히질 않았습니다. "그냥 간단해. 내차례가 되면 평소 궁금했던 것들을 한 사람 지목해서 물어보는거야. 대신 그 사람은 무조건 '진실'만 말하는거지. 진실을 말하지 못했을 경우, 이거 원샷." 양손에 맥주와 소주 들고는 화채가 담겨있었던 큰 통에 콸콸콸 부으며 여민이가 대답해요. 저. 저걸 다 원샷 하라구요? 예전에 소주의 맛을 톡톡히 보았던 터라, 보자마자 인상을 찌푸리게 되요. 으으. 정말 내가 걸린다면 끔찍할것 같아요. "뭔 진실게임이야. 어린애도 아니고." "유치하게." 전자는 구해찬. 후자는 이현태였어요. 그러나 여민이는 아랑곳 하지 않고는 해맑게 웃으며 탁자 한가운데에 술병을 눕히곤 한바퀴 슝 하고 힘주어 돌렸습니다. 뱅글뱅글 동그라미를 그리며 돌아가는 초록색병. 그리고 이내, 그것이 멈추어 가리킨 사람은. "나부터네." 현태였습니다. "아씨! 조금만 옆으로 기울었으면 나였을텐데." 중얼거리듯 투덜대며 여민이가 자리에 앉자, 현태는 무언가 생각하는듯 싶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어요. "이건, 질문은 아닌데. 진짜 하고싶었던 말이 였거든. 술김 아니면 쑥스러워서 못할거 같아서." 자상하게 웃으며 현태가 바라보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김예봄의 자리. "나..?" "그때, 정말 위로해줘서 고맙다구. 그말 하고 싶었어. " "위...로?" "응. 위로. 놀이터에서." 기억을 더듬다가, '놀이터에서'라는 현태의 말에 아! 하고 기억해냈어요. 아마 현태는 놀이터에서 현태의 어린시절 이야기를 듣고 해줬던 말을 말하고 있는 모양이에요. 딱히 위로라고 할 것도 없는데, 현태가 고맙다고 하니까 왠지 모르게 나는 쑥스러웠어요. "아.아냐! 위로라고 할수도 없는데 뭘!" "그래서." "으응?" "나, 그날부터 조금의 변화가 생겼어." "변..화?" "그런 생각을 했어. 너가 갖고 있는 아픔도 내가 위로해주고 싶다는 생각." "..........." "아무튼 고맙다구. 그것도 무지." 현태에 말에 잠시 알수없는 정적이 흘렀어요. 왜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무의식적으로 힐끔 구해찬을 바라봤던것 같아요. 구해찬은 무표정으로 괜히 테이블 위에 올려진 성냥을 툭툭 부러트리고 있었습니다. "그럼 이제 예봄이. 누구한테 질문할래?" "나?" "그래. 너!" 나는 여민이의 말에 잠시동안 고민에 빠졌습니다. 누구한테 질문을 할까. 사실 물어보고 싶은게 제일 많은 사람은 구해찬이에요. 하지만 그럴수 없었던건, 나는 용기가 없었거든요. 내 마음을 이 사람들 앞에서 드러낼 용기가.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떼자 세사람의 시선이 모두 내게로 닿았습니다. "여민이." "나? 나?? 아싸 나! 뭐 물어볼꺼야!" 사실 딱히 궁금한건 없는데, 뭘 물어봐야 할까나. "그러니까..." "응! 응!" 눈을 초롱초롱 뜨며 무슨 질문을 할까 기대하는 저 아이에게, 나는 뭘 물어봐야 할까나. "오늘....." "응! 오늘?" "..........." ".............." "똥......쌌어?" 갑작스러운 내말에 맥주를 마시고 있던 현태가 푸풉 하고 맥주를 뿜어대지만 않았더라도, 내 얼굴은 빨개지지 않았을꺼에요. 그냥 할 질문이 없어서 궁금했던걸 물어본것 뿐인데. 현태가 웃음을 참지 못하곤 크게 웃어대는거 있죠. "김예봄 답다." 게다가 안그래도 챙피한데 피식 하고 웃으며 쌓아 두었던 성냥탑을 톡 하고 건드리는 구해찬이였어요. "뭐야 그게. 예봄이 너 지금 나 여자친구 생겼다고 복수하는거야?" "아니야 그런거!" 내 질문에 웃지 않은건 여민이밖에 없었어요. 나를 정말로 죽일듯 노려보며 갈갈히 날뛰는 여민이. "야 뭐야. 진실게임이 뭐 이래. 재미없게. 내가 먼저 진실게임 다운 질문을 해야겠네? 아주 강도 쎈~걸로" 그러다가 이내 무언가 단단히 결심한듯 씨익 하고 웃어보입니다. "..........." "이제 내차례지? 나는...." 장난스러운 여민이의 눈동자가 차례대로 구해찬, 김예봄, 이현태를 훑었습니다. 그리고 이내, 여민이의 입에서 나온 질문. 녀석이 예고했던 대로 아주 강도가 '쎈' 그 질문. 그 질문에 나는 "..........." 입에 물고 있던 오징어를 그만 바닥에 떨어트리고야 말았습니다. "현태한테 물을께. 아까 말할때 분위기가 심상치 않던데 단도직입적으로 예봄이 어떻게 생각해?" 뭐.뭐야 황여민! 여민이의 질문에 피식 하고 웃어보이는 현태. 그리곤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은채 다시 성냥개비 쌓기에 열중인 해찬이. 나는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말에 황당해서 떨어진 오징어도 줍지 않은채 '순 엉터리 질문만 하고 있어' 라고 발끈 하려는데 그러질 못했습니다. 왜냐면 더 빨랐거든요. 누구냐구요? 바로 "김예봄이랑 김예나랑 다른점이 뭔지 알아?" 현태가요. "그게 뭔데?" 뜬금없닌 현태의 말에 여민이는 앞에 놓인 오돌뼈를 와작와작 씹으며 대답했어요. "한명은 그냥 내친구이지만..또 다른 한명은...." "..........." 순간, 현태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습니다. "내가 막 좋아지려는 여자라는거" 뭐랄까. 그순간은 말이죠. 아무말도 할수 없었어요. 현태가 장난을 치는건가. 라는 생각도 들었고, 내가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라는 생각도 들었고. 나를 말하는건지, 언니를 말하는건지 헷갈리기도 했고. 뭐랄까 아무튼 굉장히 복잡했어요. 그래서 나는 아무말도 하지 못한채 그대로 굳어버렸습니다. "이제 내차례지? 난 예봄이한테.." 그러자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말을 이어가는 현태였어요. "나.나한테?" 그렇게 알수없는 분위기에 바로 이어진 현태의 질문. "응. 예봄아." "어...?" 잠시 망설이다가 현태는 나를 향해 따스하게 웃어보였어요. 그리곤 천천히 입을 열어요. "내가 너 좋아해도 될까." "..........." 현태의 말에, 아까부터 무관심하게 성냥개비를 쌓던 해찬이의 손이 멈추었습니다. 그리곤 녀석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현태를 바라봐요. 또 다시 알수없는 침묵, 그리고 이내 이어진 "나..." ".........." "그래도...될까." 현태의 따스한 말. 분량이 꽤 만아요. 으헉 요즘은 소설 쓰다보면 4~5시네요.ㅠㅠ -------------- §가그린§ (godqhrgkehfhr@hanmail.net) 플티〃가그린〃소설 (http://cafe.daum.net/Gagrin) -------------- ※헬리오토로프는 5월 24일의 탄생화로 사랑이여 영원하라 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33 "........." 갑작스러운 현태의 말에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어요. 정말 머리 위로 새들이 수천마리가 지나가는것 같은 기분이 들었거든요. 무척이나 갑작스럽고, 상상조차 할수 없었던 현태의 말. 그래서 나를 바라보는 현태의 시선에 뭐라 대답할지 몰라 우물쭈물 하고 있을때. "예봄아. 대답해야지. 진실게임 룰 까먹었어?"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깐죽거리며 나를 향해 웃어보이는 여민이였어요. 진실게임 룰이라. 분명 그 룰은, 진실된 대답을 하지 못할때, 저 보기만해도 끔찍한 술들을 원샷 해야 한다는 것 이였습니다. 나는 생각만해도 끔찍해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어요. "어..그러니까" 그런데 도무지 뭐라 대답해야 할지 생각 나지 않아요. 나는 한번도 현태의 관한 마음을 생각해 본적이 없어서.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 마음은 줄 곧 현태가 아닌 구해찬에게로 향했었기 때문에, 어떤 대답이든지 현태에겐 무의미 할 것 이기 때문이에요. 결국 나는 잠시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마땅히 할 대답을 찾지 못해, 테이블 정 가운데에 놓인 술을 집어 들려고 하는데, 갑자기 "흑기사." 라고 말하며 술이 가득 담긴 그 그릇을 집어 드는 구해찬이였어요. 흑기사? 그건 또 뭘까요? 구해찬은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그릇을 입에 가져갔어요. 그리곤 순식간에 그 많은 술을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죠. 그순간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저건 내가 마셔야 할 술인데 라는 생각이였구요. 또 하나는 저렇게 많은 술을 한꺼번에 마시다니 분명 구해찬 속에 불이 붙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였어요. 이내, 술을 다 마신 구해찬이 타앙 하고 테이블 위로 그릇을 내려 놓습니다. 그제서야 나는 조심스레 물어요. "흑기사가..뭐야?" "술 먹는거. 대신 벌칙 받는거야. 그대신." "그대신...?" "소원 하나 들어줘야되." "소..원?" "응! 소원." 여민이의 말에 나는 좌절할수밖에 없었어요. 소원이라니. 그렇다면 지금 전 내 대신 술을 마셔준 구해찬의 소원 하나를 들어줘야 한다는 말이잖아요. 정말 끔찍합니다. 악덕한 구해찬이 어떤 소원을 말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그것이 들어주기 힘들것일건 뻔에 뻔짜라구요! "구해찬. 무슨소원?" 나는 구해찬의 눈치를 슬슬 보며 조심스레 묻습니다. 그러자 알수없는 표정으로 현태를 바라보는 해찬이. 이내, 녀석이 천천히 입을 열려는 찰라. 띠리링. 하는 문자음이 들려왔어요. 나는 잠깐만 이라고 말하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듭니다. [언니 집앞이야. 어디니] "아. 맞다! 잊고 있었다." 언니와 함께 만나서 집에 들어가기로 약속했었다는걸 깜빡 잊어버리고 말았어요. 바보. 바보 김예봄! "나 지금 가봐야해! 미안해 얘들아. 먼저 가볼께!" 다급하게 가방을 챙겨 일어서자 "가자." "데려다 줄께." 나와 동시에, 일어서는 두남자. 현재, 황여민은 닭다리를 입에 문채 그 광경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음. "어....?" 그러자 서로를 힐끔 쳐다보다가 다시 한번 말해요. "가자고." "데려다 줄께 예봄아. 위험하니까" 말을 마치곤 내게 손을 내미는 현태. 이에 질새라 해찬이도 반대쪽으로 자신의 손을 내밀었습니다. 이.이거 도대체 무슨상황인거죠? 난감한 이 상황에 나는 아까처럼 우물쭈물 했어요. 솔직히 맘 같아선 구해찬의 손을 잡고 가고 싶지만, 그렇다면 현태가 상처 받을것 같고, 그렇다고 현태 손을 잡고 가자니 구해찬이 걸렸거든요. 아니, 구해찬은 아무렇지도 않으려나? "나 갈께. 너희들은 좀 더 재밌게 놀아. 술은 조금만 마시구!" 결국, 나는 조금 고민하다가 오른쪽으로 손을 내밀었어요. "그래, 마시고들 있어. 예봄이 데려다주고 올께." 현태의 말에 해찬이는 피식 하고 웃으며 천천히 손을 내렸어요. 나는 그런 해찬이를 바라보다가 현태의 손을 잡고 일어섰습니다. \ "현태야." 어느새 거리는 어둠으로 뒤덮여 있었어요. 나는 까맣게 변해버린 밤하늘을 바라보며, 어떻게 얘기를 해야할까. 어떤식으로 말을 꺼내야 할까 고민했죠. 그렇게 고민하며 한참동안 아무말없이 짙게 깔린 어둠을 밟으며 걷던 나는 이내, 결심한듯 조심스레 녀석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응?" "이말, 꼭 해야될것 같아서...그래서." "안해도 되는데." "어?" "그 말. 안해도 된다구요." 알고...있는걸까. 현태의 애써 짖는 희미한 미소에 나는 고개를 푹 숙여요. "미안해." "아니야. 뭐가 미안해." "나...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어?..." "그래서 니 마음 받아줄수 없어. 그 마음이 어떤지 나도 잘 아니까." 그러자 천천히 느려지던 현태의 걸음이 순간, 멈추었어요. 가로등 불빛에 길어진 현태의 그림자가 보입니다. "좋아..하는 사람?" 응. 좋아하는 사람. 보고 있는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가슴 떨리고, 설레는, 그런 사람. 기쁠때 같이 기뻐하고, 슬플때 같이 슬퍼하는, 그렇게 함께 웃고 울어주고 싶은 그런 사람. 내 모든것을 함께 하고싶은 사람. "응." "그랬구나. 당황스러웠겠다. 오늘" "아니야 정말!. 그런건...." 내말에 무언가 생각하는듯, 잠시 침묵을 지키는 현태였어요. "그런데 예봄아." "응?" 그순간 생각해요. 지금 내 머리위를 노랗게 물들이고 이 가로등 불빛보다 현태의 목소리가 더 따스하다고 말이에요. "사람 마음이 마음대로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게.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 "그래서 나 조금은 힘들것 같네. 앞으로." 끝까지 현태는 내게 웃어 보였어요. 그 웃음이 얼마나 따듯하고 예뻤는지 몰라요. 하지만 나는 알았어요. 평소 와는 다르게 현태의 웃음은 힘겹다는걸 말이에요. 나는 그런 현태의 마음을 알 것 같았어요. 왜냐면.... 똑같았거든요. 내게 마음을 거절당한 현태나. 구해찬에게 마음을 거절당한 김예봄이나.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현태나. 김예봄이나. 둘이 똑같이. 가슴 한구석에 "....." 멍이 들었을테니까요. \집 "미안해 언니, 많이 기다렸지?" 시계를 보며 초조하게 물어요. 문자를 받았을때부터 30분이 지난 셈이니까 언니는 아마 많이 기다렸을꺼에요. 신발장에 신발을 벗으며 언니는 고개를 저었어요. 화가 난걸까. "언니..." 괜히 불안한 기분이 들어요. 왜냐면 언니는 집앞에서 만나 오는 내내 지금까지 웃지 않았거든요. 나는 신발을 벗고 아무도 없는 빈 거실에 불을 켰습니다. 그러자 집안을 뒤덮고 있던 어둠이 금세 달아나요. "그냥. 좀 피곤해서 그래." "아. 바다갔지? 오늘 재밌었어?" "........" "재미...없었어?" "그런건 아니고. 아, 아무튼 피곤해서 먼저 쉴께." 고개를 끄떡이며 나는 방으로 들어가려는 언니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봤습니다. 아무래도. 무슨일이 있었던 모양이에요. 언니가 왠지 모르게 굉장히 힘겨워 보였거든요. 언니에게 무슨일이 있었던거냐고 물어보는것보다 언니가 쉬도록 나두는게 낫겠다는 생각에 나는 더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은채 쇼파에 앉았어요. 엄마가 올때까지 티비 프로그램을 볼 생각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예봄아.." 그때였어요. 언니의 나즈막한 목소리가 들려온건 말이에요. 고개를 돌리자 언니는 자신의 방문 앞에 서서 문고리를 잡은채 서있었어요. 언니의 작은등을 보여요. "어?" "미안해.." "응? 뭐가 미안해?" "......." 그리고 그 작은등은 이내, 조금씩 조금씩 들썩였어요. "언니..울어?" .... "오늘, 정리하려 했어. 혼란스러운 내 마음 다 정리하려고. 난 성현이 좋아하니까. 함께 있으면 내 확실한 마음을 알수 있을꺼라 생각해서." 티비에서 나오는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언니의 목소리가 엉켜 들려왔어요. 텔레비전 속 사람들은 행복하게 웃고 있었는데 언니는 울고 있어요. 말하는것이 힘겨울정도로 울고 있었어요. "......." "그리고 오늘 알았어, 내 마음이 뭔지. 그래서 나." "응." "나 성현이랑 헤어졌어." 나는 그순간, "...응. 그랬구나.." 알 것 같았어요. 아니.. "미안해..." 알 수 있었어요. "......." "나...늘 함께 있어서 몰랐었나봐.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던 건가봐. 아니라고 부정하고 부정해도 내 마음 어쩔수 없나봐.. 어떡하지 예봄아..." 언니가 왜 그동안 힘겨워했는지. 성현이랑 왜 헤어졌었던건지. 지금 왜 울고 있는지. 내게 무슨말을 하려고 하는지. 나는 그순간 다 알수 있었어요. 그래서 아무말도 할수 없었습니다. 언니가 지금 하려는 말을 듣는다면, 그땐 정말 내 사랑에 사형선고가 내려지거든요. 할수만 있다면 두 귀를 막고 싶었어요. 그것도 안된다면 시간을 막아버리고 싶었어요. 그것도 안된다면. ..... .............. "좋아하나봐. 내가 그녀석." 지금 내 심장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다음날 이젠 내차례 밖에 남질 않았습니다. 두사람에게 사실대로 말하는일 말이에요. 언니에겐 구해찬이랑 나는 정말로 좋아하는 사이가 아니라고, 언니 때문에 거짓으로 사겨왔던 거라고. 그리고 구해찬에겐 언니가 이제 드디어 자신의 마음을 깨달았다고, 니가 3년동안 그렇게 바라봤던 김예나도 지금 널 좋아하고 있다고. "언니 잘갔다와. 엄마도 잘다녀오세요!" 그런데 용기가 나질 않아요. 마음으론 수십번, 수백번 다짐해도 그말이 쉽게 나오지 않아요. 사람이란게 이렇게 이기적인가봐요. 한국에 오기전, 한국에 있을 동안만큼은 무슨일이 있어도 언니를 위해주고 먼저 생각하자고 다짐했던 나는 언니의 아픔을 모른채 하는, 이렇게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버렸네요. 나는 왜이렇게 나쁜걸까요. "그래 예봄아. 점심때 찌게 끓인거 데펴서 꼭 먹구" "응! 알겠어요. 엄마" 곧이어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닫힙니다. 이로써 또 다시 아무도 없는 이 넓은집을 혼자 지키게 됬어요. 나는 한숨을 푹 쉬며 쇼파에 앉았습니다. 그리곤 쿠션에 얼굴을 푸욱 묻어요. 아침 내내 언니의 표정이 좋지 않아요. 아마 많이 힘들겠죠. "나빠. 너는." 슬쩍 고개를 드니 신발장 위에 걸려있는 거울로 내 모습이 비춰져요. 그렇게 너무너무 나쁜 김예봄의 모습이 거울안에 담깁니다. 나는 나빠요. 왜 이렇게 이기적인 생각만 드는 걸까요.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구해찬과 함께였으면. 이라는 이기적인 생각을 하는 내가 나도 참 밉고 싫어요. 띵동띵동. "어? 누구지?" 그렇게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앞으로 어떻게해야 할지, 어떤식으로 말을 꺼내야 할지 한참 생각에 빠져있을 무렵이였어요. 누군가가 우리집 초인종을 한번도 아닌 두번도 아닌 세번이나 연속으로 누른건 말이에요. 엄마가 뭘 놓고갔나? "엄마야?" 그러자 문밖에서는 아무말도 하지 않아요. "누구세요?" 어렸을때부터 아빠에게 낯선사람에게 함부로 문을 열어주지 말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터라 나는 문고리를 잡고 되물었습니다. 그제서야 문밖에 있는 사람은 아주 당당하게 대답하네요. "나." 그건, 아주 낯익은 목소리. "나?" "응. 나." 아주 낯익다 못해. 어제도 들었던 그 목소리. "구..구해찬?" 집 밖에 서있는 사람이 구해찬이라는걸 알게 되자 나는 깜짝 놀라 잡고 있던 문고리를 돌렸어요. 문을 열자, 정말로 거짓말처럼 구해찬이 서 있는게 아니겠어요? "구해찬. 아침부터 우리집은 왜왔어?" 그러자 내말을 무시한채 자기 멋대로 신발을 훽훽 벗어던지곤 거실로 들어오는 해찬이. 나는 녀석의 막무가내 행동에 입을 떠억 하고 벌렸습니다. 도대체...이아이는 정체가 뭘까요? "언니 방금전에 나갔는데. 언니랑 학교 같이 가려고 온거야?" "아니." "그럼? 왜 왔어?" 내 질문에 당황한듯 아무말도 하지 못하다가 이내 무언가 생각난듯 피식 하고 웃더니, 아주 당당하게 대답합니다. "배고파서." 맙..소사 어처구니가 없어서. 입이...도저히 다물어지지 않아요. "뭐.뭐?" "나 배고파. 김예봄." 특유의 개구진 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구해찬이였어요. 나는 입을 떠억 하고 벌린채 그를 바라보다가 이내 어처구니가 없어 피식 하고 웃어버리고 맙니다 "뭐 먹을래?" 정말 누가 널 말리겠니. 구해찬. \ "라면 끓여줘. 라면" 이라는 구해찬의 말에 결국 나는 지금 냄비에 물을 담고는 가스렌지를 켜는 중입니다. 라면 봉지를 부욱 뜯으면서도 계속해서 웃음이 나요. 정말 구해찬은 인생이 코미디라니까요. 구해찬은 학교를 가던 중, 정 말 우연히 우리집앞을 지나게 됬는데 배가 너무 고파 들어왔다고 해요. 그래도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들어오냐는 내 물음에 연락 못해. 핸드폰 망가졌잖아 라고 대답하는 구해찬이였어요. "야 김예봄." 뽀글뽀글 물이 올라오자, 나는 라면을 두동강 내어 그곳에 집어 넣었습니다. 그리곤 스프를 뜯으며 식탁에 앉아있는 구해찬에게 대답했죠. "응?" 곧이어 스프를 마지막 한톨도 남기지 않고 털어 넣습니다. 보글보글 먹음직 스럽게 라면이 끓기 시작해요. 사실 라면이라는거 잘 접해보진 못하지만 맛있어서 내가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에요. 뭐 매워서 한개 다는 못먹지만 말이에요. "어제 뭔일 없었어?" "어제?" "어. 어제." 어제라. 처음엔 구해찬이 무슨말을 하는지 몰라 라면을 휘휘 저으며 어제 무슨일이 있었지 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얼마 안가, 문득 떠오른거죠. 구해찬이 말하는 어제일이. '사람 마음이 마음대로 되면 얼마나 좋을까' '.........' '그래서 나 조금은 힘들것 같네. 앞으로.' 현태의 진심. 그리고.... '나...늘 함께 있어서 몰랐었나봐.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던 건가봐. 아니라고 부정하고 부정해도 내 마음 어쩔수 없나봐.. 어떡하지 예봄아...' '좋아하나봐. 내가 그녀석.' 언니의 진심. "자자. 다됬다. 얼른 먹고 학교가." 별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아 나는 식탁에 보글보글 잘 끓여진 라면을 내려 놓고는 말을 돌렸어요. 그러자 젓가락을 들며 라면을 휘휘 젓더니 "뭔일 있었나보네." "무슨일?" "이현태랑." "아니, 아무일도 없었는데. 얼른 먹어. 식겠다. 라면은 원래 식으면 맛 없대잖아. 뿔어서!" 그러자 빤히 나를 쳐다봐요. "김예봄 내가 저번에도 말하지 않았어?" "뭐.뭐가?" "넌 착해빠져서 거짓말하면 다 티나." "아.아니라니까!" 내말에 젓가락으로 라면을 한움큼 집어들다가 다시 내려놓고는, 짜증나는 표정으로 다시 묻는 구해찬. "무슨일 있었는데?" "아무일도 없었다니까요!" 구해찬은 이럴때 보면 정말 은근히 집요해요. 고집 쎈건 두말하면 입 아프고요. 맞은편에 앉아 있는 나를 마음에 안든다는듯 바라보다가 타악 하고 일어서는 구해찬이였어요. 도대체 왜 웃다가 저렇게 갑자기 짜증이 난걸까요. 역시나, 구해찬씨는 알면 알수록 어렵다니까요. "간다." 에에? 이게 지금 무슨 시츄에이션? 나는 다급하게 따라 일어섭니다. "라면 안먹어?" "응 안먹어" "배고프다며!" "안배고파." 정말 하루에도 수십번씩 변덕이라니까요. "알았어. 잘가!" "김예봄." "응?" 하는수 없이 라면 그릇을 치우고 있는데 갑자기 구해찬이 굉장히 어색하게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며 내게 내밀었어요. "이거." 나는 그것을 빤히 바라봅니다. 구해찬이 내민건 [그대]라는 영화의 이름이 선명하게 찍혀있는 표였어요. "구해찬 이건 왜.." "기억안나? 붕어." "뭐? 내가 왜 붕어야!" "어제 흑기사 했잖아. 소원." "소원...? 영화보는게 소원이야?" 잠시 잊고 있었지만, 어제까지만해도 분명 구해찬이라면 거창한걸 요구할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내 예상을 보기좋게 빗나간 상황이네요. 소원이 고작. 영화보기라니. "김예봄! 짜증나게 오해하면 죽는다. 내가 그영화가 너무 보고싶은데 볼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그래. 그뿐이야." 내 반응에 조금 머쓱했는지 오히려 화를 버럭 내며 신발을 아무렇게나 구겨 신는 구해찬이에요. "......." 누가 뭐랬나... "나 간다. 이따 늦으면 각오해. 붕어" 이윽코 멋대로인 구해찬씨 때문에 콰앙 하고 현관문이 닫혔습니다. 피식 하고 웃다가 나는 그대로 그자리에 서서 구해찬이 건낸 영화표를 내려다 봤어요. 구해찬과 영화라니. 왠지 모르게 가슴이 두근 거려요. 나는 구해찬과 영화 본 적이 한번도 없었거든요. 예전에 한번, 영화보러 영화관을 간적이 있지만 그때 한 아저씨와 시비가 붙어서 결국 보지 못했으니까. 정말 한번도 영화 본 적이 없네요. 그래서 이유야 어찌됬든 너무 기뻐요. 그리고 행복해요. 구해찬이 내게 함께 영화를 보러 가자고 말한 그 자체만으로도 말입니다. 하지만... 나는 구해찬과 영화를 보러 갈 사람이 내가 아닌 언니라는걸 잘 알고 있어요. 달칵- 조심스레 나는 언니의 방문을 열어요. 그리곤, 조금 망설이다가 들고 있던 영화표를 언니의 화장대 위에 천천히 올려 놓고는 다시 방문을 닫아요. 순간, 눈물이 나올것 같았습니다. 왠지 모르게 가슴 아팠거든요. 왜냐면 내 마음은 이제 이렇게 닫혀버린 언니 방 문처럼 아무도 모르게, "........" .....닫아버려야 한다는걸 알았으니까요. 아이고. 완결이 대략 10편 안되게 남았네요. 심장배반 연재 시작되기전까진 완결이 났으면 좋으련만...ㅠㅠ 얍 힘을주세요. -------------- §가그린§ (godqhrgkehfhr@hanmail.net) 플티〃가그린〃소설 (http://cafe.daum.net/Gagrin) -------------- ※헬리오토로프는 5월 24일의 탄생화로 사랑이여 영원하라 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34. "그냥 어쩌다가 생겼는데, 언니가 보러가라구." 늦은 오후. 언니가 학교에서 돌아와 교복을 갈아입으려는 찰라 자신의 책상 위에 놓여진 영화표를 발견하고는 집어 들었습니다. 그러자 나는 티비를 보며 위와 같이 무심한척 말했어요. "어쩌다가 생겼다구?" "응응. 그런데 난 오늘 피곤해서 별로 보고 싶은 마음이 없네!" "이거 '그대'네? 나 이거 보고싶었는데. 진짜 내가 보러 가도 되?" 신이 난 언니의 목소리에 조용히 고개를 끄떡였어요. 그리곤 다시 티비에 시선을 고정 시킵니다. 사실은 티비 속에 연예인들이 무슨말을 하고 있는지 하나도 들리지 않지만 말이에요. "고마워. 예봄아! 기분전환 하고 싶었는데. 혼자 영화보러 가는게 얼마만이냐." 잽싸게 방에서 나와 콧노래를 부르며 신발을 신는 언니. 나는 그런 언니를 향해 웃어 보입니다. 그래도, 다행이에요. 혹, 언니랑 어색하게 되면 어떡하지 하고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어느새 언니와 나는 평상시와 똑같아 졌어요. 물론, 서로의 마음속은 여전히 서로에게 미안하고 불편하겠지만 말이에요. "아니야! 재밌게 보고와 언니." 언니가 영화를 보고 오면, 오늘 꼭 말해야겠어요.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사실.. 아마, 그게 내가 할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는걸 알기 때문이에요. 물론 용기가 나질 않겠지만 용기를 내 볼려구요. 그래야 하니까. 그래야 한다는걸 아니까. "응! 나 갔다올께." 이내 언니가 나가자 나는 콰앙. 하고 문이 닫힌 현관문을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 나...잘하고 있는걸까 라고, \ 아무도 없는 빈집은 제게 너무나도 익숙해요. 미국에 있을때나 한국에 있을때나 늘 큰 집에 우두커니 앉아서 집을 지키는 것은 제 몫이였으니까요. 그래서 나는 이 조용함이 너무 싫어요. 혼자 있다는 일종의 증거 같거든요. 무얼하며 시간을 보낼까 하다가 오랜만에 아빠에게 전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나는 쇼파에서 일어섰습니다. 아빠와 통화 한지 너무 오래됐거든요. 핸드폰을 어디다가 놓았지? 한참을 찾다가 나는 책상위에 놓여진 핸드폰을 발견했습니다. 나는 아빠의 미국전화번호를 다시 한번 중얼거리듯 외우며 핸드폰을 집어들려는데, 그러다가 문득, 생각난거죠. 그날밤. 나와 똑같은 핸드폰을 사들고왔던 구해찬이. 나는 핸드폰을 빤히 바라봅니다. [나 지금 폰 바꿨어. 너랑 커플폰, 우리 이제 똑같은폰이야 임마.] 기분이 이상해요.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나올것만 같아요. 이렇게 물건 하나하나, 장소 하나하나에 그 개구진 녀석과의 추억이 담겨 있는걸 보면 말이에요. 이렇게 생각하니 왠지 우울해 졌습니다. 안돼겠어요. 얼른 아빠에게 전화를 해야겠어요. 더이상 다른 생각 하지 못하게 말입니다. 나는 조심스레 핸드폰을 들고 버튼을 엄지 손가락으로 꾹꾹 눌렀어요. 아주 익숙한 번호. 익숙한 신호음이 조금 지난후, -Hello. "Hello. May I speak to Brown?" -This is Brown speaking" 가만히 숨죽이다가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낯익은 목소리에 나는 대뜸 소리쳐요. "아빠에요?" -어. 예봄이니? 정말이지 너무 오랜만에 들어보는 아빠의 목소리.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질것 같았어요. 물론 한국 생활이 힘들었던건 아니지만 뭐랄까. 미국에서의 추억, 아빠에 대한 그리움이 순간 파도처럼 밀려들어왔거든요. ....심장에. "네 아빠. 나야. 예봄이. 자주 전화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잘지내시죠?" -그럼. 아빠는 잘지내지. 우리 예봄이는 언니랑 안싸우고 잘 지내고 있어? 엄마말은 잘듣고? "피! 아빠는 뭐 내가 어린앤줄 알아요?" -그러엄. 아빠한테는 우리 예봄이는 아직 한참 어린애지. "아니야 아빠!" -잘 지내고 있어? 건강은 하구? 힘든건 없구? "아빠는 맨날 그런것밖에 안물어봐요? 나 잘지내고 있어. 건강두 하고 힘든것도 없구요!" 조금, 아주 조금 가슴이 아프긴 하지만요. -그래. 우리 예봄이는 잘 지내고 있을꺼야. "네." -참 예봄아. "응?" 그순간 핸드폰 너머로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어요. 끊긴건가 싶어 확인해보자 핸드폰 액정에는 여전히 통화 시간이 가고 있었습니다. 나는 다시 한번 되물어요. "응?" -아빠가 우리 예봄이한테 할말이 있는데..아빠가 이번에 "응? 뭔데요?" -......... 그러자 다시 침묵, 조용해져요. 아빠가 무슨말을 하려 하는지 궁금했지만. 이렇게 말하기 힘들어 하는걸 보면 좋은 이야기는 아닌가봐요. 조금은 불안해진 마음으로 휴대폰에 집중하는 나였습니다. -아니야. 아빠 이제 일해야 겠다. 다음에 다시 통화하자 예봄아. "네? 아빠 많이바빠?" -지금 좀 그러네. 엄마하고 언니한테 잘해. 예봄아. 알았지? "응. 알겠어요!" -그래그래. 다음에 통화 또 하자 꼭. 아빠 일하러 갈께. 달칵 하고 전화가 끊겨버렸어요. 아빠의 태도가 평소와는 달라 무언가 이상했지만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곤 핸드폰 플립을 닫았어요. 그리곤 탁자 위에 핸드폰을 내려 놓고 침대에 누웠습니다. 침대에 누워 머리속에 아빠의 모습을 그려봐요. 미국집에서 혼자 있을땐 늘 이랬거든요. 아빠의 모습도 그려보고. 엄마의 모습도 그려보고. 언니의 모습도 그려보고. 존의 모습도 그려보고. "........." 사실 한국에 온건, 내 마음에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였어요. 존과의 일이 있은후, 병원 의사는 지금 내 그리움을 채워줄 사람은 가족밖에 없다고 했었어요. 한국에 얼마나 더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미국에 혼자 있을 때보다 덜 외롭고 덜 그립고 더 행복한것 같아요. 엄마도 매일 따듯한 찌게와 고슬고슬한 밥을 지어주시고, 그 누구보다 내게 따쓰하게 대해주시고 날 아껴주시고, 언니 또한 내게 잘 웃어주고 따스하게 대해주고 아껴주니까요. 그래서 행복해요. 아빠도 이곳에 함께 였다면 더 행복했을 테지만요. "아! 그래! 이럴게 아니라..." 나는 잠시 우리 가족이 다 함께 사는 모습을 상상하다가 손뼉을 탁 치곤 침대에서 일어섰어요. 그리곤 책상위에 올려져 있던 지갑을 들고 재빠르게 신발장으로 향해요. 아무렇게나 신발을 구겨 신으며 나는 현관문을 힘차게 엽니다. \시내 갑자기 시내로 나온 이유는 언니와 엄마에 선물을 사기 위해서였어요. 생각해보면 한국에 와서 늘 내게 잘해준 엄마와 언니였는데 지금까지 한번도 제대로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다는걸 깨달았거든요. 아빠도 엄마와 언니에게 잘하라고 했구요. 그래서 조그만한 선물과 편지를 준비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선물을 사야 할까요? "안녕하세요.." 여러가지 가게들이 즐비해 있는 시내를 한참동안 돌아다니며 어떤 선물을 사야할까 고민 고민 하고 나서야 나는 한 향수가게에 들어왔습니다. 인테리어가 아주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향수가게에는 들어가자마자 기분좋은 향이 은은하게 났어요. "어떤 향수 사실려구요?" "어 그러니까. 엄마랑 언니꺼. 사려고 하는데..." 진열장이 온통 예쁜 모양의 향수병들로 꾸며져있는 가게를 찬찬히 둘러 보며 말하자 주인아줌마께서는 잠시만요 하고 웃으시더니 여러가지 향수병들을 유리 테이블 위에 올려 놓았어요. 우와 이거봐요. 이건 향수통이 사람 얼굴 모양처럼 생겼어요. 신기하다. 나는 툭툭. 손으로 괜스레 향수병을 건드려 봐요. "음 어디보자. 일단 엄마꺼부터 골라볼까요?" "네? 아..네!" 수십개의 향수들을 찬찬히 눈으로 훑던 아주머니께선 이내 와인색에 향수를 꺼내들었습니다. "이건 어때요?" 노란색 길다란 포스티잇 위로 칙- 하고 향수를 뿌리는 아주머니. 내게 향수를 뿌린 그 종이를 내밉니다. 받아들곤 살며시 코로 가져가대자 순간, 차분하며 은은한 향이 코끝에 내려 앉았어요. "냄새가 굉장히 은은해요!" "그쵸? 크리스챤 디올의 쁘와종이에요. 우아하고 고풍 스러운 향이라 중년 여성들에게 상당히 인기가 많은 향수랍니다. 굉장이 향이 차분하죠." 미국에 살때나 지금이나 향수를 잘 뿌리고 다니지 않는터라, 향수에 관한 지식은 매우 소박했습니다. 그래서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향이라는게 어떤건지는 잘 몰랐지만. 아무튼 이 향수 향이 은은하면서 너무 좋았어요. 우선 엄마 향수는 이걸로 해야겠어요. 왠지, 엄마랑 굉장히 잘 어울릴것 같은 향기였거든요. "우선 엄마꺼는 이걸로 주세요!" "그럴까요? 30ml로 드릴까요. 아님 50ml로 드릴까요?" "50ml로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아주머니께서 새 향수를 챙겨 포장하고 있을 동안, 나는 언니의 향수 또한 고르기 위해서 테이블 위에 올려져있는 향수들을 구경했습니다. 언니한테는 발랄하면서도 상큼한 향이 잘 어울릴것 같은데.. 한참을 향수들을 뒤적거리며 구경하던 중, 나는 예쁜 리본 모양이 메어진 분홍색 향수병을 발견하곤 집어 들었어요. 굉장히 예뻐요. 냄새도 왠지 좋을것 같구요. 언니에게 잘 어울릴꺼 같아요. "그건, 크리드 스프링플라워에요." 포장을 하던 아주머니께서 나를 힐끔 쳐다보며 말씀해주셨습니다. 아아 그렇구나. 고개를 끄떡이며 향수를 코끝으로 가져갈려는데 "영국 왕실 향수인데, 향이 강하지 않고 자연스러워요. 굉장히 달콤발랄한 향인데. 그건" 순간, 손끝에서 미끄러진 향수병. 향수는 그대로 눈깜짝할새에 바닥으로 곤두박질 치고 말았습니다. 맙소사. "많...이 비싼데...." 둔탁한 소리와 함께 깨져버린 향수병. 아주머니 말씀처럼 달콤발랄한 향이 바닥과, 내 운동화에 스며듭니다. 더이상 말을 잊지 못하고 멍하니 깨져버린 향수병을 바라보는 아주머니였어요. "죄..죄송해요. 어떡해. 죄송해요 아주머니.." 너무 놀라 그대로 일어서서 깨진 향수 병 조각을 주웠어요. 향수는 이미 다 쏟아져 바닥을 흥건히 적시고 있었죠. 이럴수가. 정말 김예봄은 바보 멍청이에요. 정말 바보 멍청이. 덜렁이. "너무 죄송해요. 변상해 드릴께요. 이거 얼마라고 했죠?" "30ml라서 15만원인데..." "네! 잠시만요!" 너무나도 죄송한 마음이 컸어요. 어찌됐든 제 부주의로 향수를 깨트렸고. 가게를 어지럽혀 놓았으니까요. 솔직히 너무 비싼 가격에 놀라긴 했지만 어찌됐든 내가 잘못한일이고 배상은 당연한것이기에 허겁지겁 지갑을 찾아 꺼내들었는데 그제서야 알아버린거죠. "...15만원..이라구요?" 지갑에 있는 내 전 재산은 고작 8만원뿐이였다는 사실을. "학생인 것 같은데. 휴 그러니까 조심좀 하지." "아니에요. 드릴께요 지금! 잠시만요." 그러니까 모자라는 돈이 7만원. 7만원. 7만원.... 하지만 지금 내게 7만원을 구할 방법은 없어요. 이런 일이 처음이라 당황했던 터라 더욱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어요. 잠시동안 고민하다가, 이내 결심한 듯 나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듭니다. 그건, 아무래도 도움을 청해야 겠다는 생각에서 였습니다. 그런데 누구에게 전화를 하죠? 엄마는 회사에 있고, 구해찬과 언니는 지금쯤 영화를 보고 있을테고, 현태? 이현태라는 이름이 보이자 전화번호부를 검색하던 손이 멈춥니다. 아니야. 현태에게 가뜩이나 미안한데 부탁할수 없어. 고개를 젓고는 다시 전화번호부 검색을 누르자 저장되어 있는 마지막 한사람의 전화번호가 보이네요. 황여민. 어쩔수 없이 나는 여민이의 전화번호를 누르고 통화버튼을 길게 눌렀습니다. 뚜르르 뚜르르르. 통화음이 이렇게 길게 느껴진적은 정말 처음이였을꺼에요. -어? 봄아! 나한테 전화를 하고 왠일이야? 통화음이 정확히 5번 정도 지나자 언제나 신이 난 듯 밝은 여민이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습니다. "여민아! 나 예봄인데. 정말 미안한데. 내가 집에 가자마자 줄테니까. 지금 여기 Das Parfum 거든? 8만원 들고 여길로 좀 와줘. 응?" "뭐? 8만원?" 갑작스러운 내말에 꽤나 놀란듯 되묻는 여민이. "응..미안해 여민아. 그런데 내가 지금 부탁할 사람이 너밖에 없어. 바로 갚을께." "알았어. 금방갈께. 근데 8만원은 왜?" "향수병 깨트려버렸어..배상해줘야 하는데 돈이 모잘라..." "진짜? 알겠어. 독수리 오형제처럼 달려갈께. 기달려 봄이!" 달칵. 하고 끊겨버린 전화. 나는 플립을 닫으며 한숨을 쓸어 내립니다. 다행이다. 휴. 정말 다행이야. 예상외로 너무나도 쉽게 내 부탁을 들어준 여민이에게 너무 많이 고마웠어요. "곧 온대요. 죄송해요 정말. 이건 제가 치울께요." 그리곤 다시 한번 고개를 푹 숙입니다. "아니야. 내가 치울테니까. 좀 앉아서 쉬고 있어요. 샘플이였으면 왠만하면 가격 안받을텐데..괜히 미안하네" "아니에요. 당연한거죠. 제가 치울께요. 너무 죄송해서 그래요." 쭈그리고 앉아서 다시 병 조각들을 줍기 시작했어요. 이제 보니 구제불능은 구해찬이 아니라 김예봄이에요. 왜 이렇게 나는 조심성이 없고 덜렁거리는 걸까요. 여러 사람들한테 피해만 주고. 정말 나는 바보에요. 그러고 보면 지금 내게 잘해주는 사람들 모두에게 피해주고 있네요. 언니에게, 구해찬에게, 이현태에게, 황여민에게 말이에요. 저절로 한숨이 푸욱 푸욱 하고 나옵니다. 딸랑♬ 가게 문 위에 달린 예쁜 종이 울린건 그로부터 10분정도 지났을 무렵이였어요. 딸랑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가게로 들어왔죠. 나는 앉아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가 여민인가? 라는 생각에 천천히 고개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어요. 가게로 들어 온 사람은 여민이가 아니였습니다. 그럼 향수가게 손님이였냐구요? 아니요. 그것도 아니였어요. 들어오자마자 아주머니와 무어라 얘기를 하더니 망설임없이 지갑을 꺼내 푸른지폐를 꺼내는 저사람은 분명 틀림없이. "이현태..?" 현태였습니다. 분명 여민이가 오기로 했는데... 갑작스러운 현태의 등장에 나는 두눈만 꿈뻑이며 현태를 바라봤죠. 그러자 현태는 아주머니에게 돈을 건내더니 내게로 천천히 다가왔습니다. .... ......... "괜찮아?" 그리곤 아주 따스하고 자상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어...?" "많이 놀랬지. 다친덴 없어?" "........." "다쳤네. 일단 나가자." 유리조각을 주을때 나도 모르는사이 모서리에 긁히기라도 한건지 손가락에는 작은 상처가 패여있었어요. 현태는 상처가 없는 반대편 손을 잡았습니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이상해요. 현태는 왜, 나한테 이렇게 잘해주는걸까요. 나는 현태에게 상처 주고 미운말도 했는데. "약국가자. 흉안지게 약발라야겠다." "........." 향수가게를 나와서 약국을 가자는 현태의 말에도 나는 꿈쩍도 하지 않았어요. "예봄아?" "내가 밉지도 않아?" "응?" "현태는 내가 밉지도 않냐구." "내가 널 왜 미워해. 미워해야할 이유가 없잖아." 어린아이를 타일르듯 예쁘게 웃으며 다시 한번 손을 내미는 현태. 내 마음은 많이 못됐나봐요. 그런 현태가 부담스러웠어요. 아니, 솔직히 말하면 현태에게 미안해서 이러는 걸지도 몰라요. 나는 현태에 마음을 거절하고 상처를 줬는데 현태는 여전히 내게 잘해주니까요. "어제일 때문이면 그럴필요 없어 예봄아. 난 아무렇지도 않아." 거짓말. 현태도 나처럼 심장에 멍들었으면서. "미안해 현태야." "미안하면, 약국가자. 응?" "돈 꼭 갚을께. 고마워." "예봄아." "응?" "나 손 떨어지겠다. 팔 아파." 장난스럽게 내게 내민 손을 덜덜 떠는 시늉을 합니다. 그제서야 나는 피식 하고 웃으며 현태가 내민 손을 잡았어요. 현태 손은 너무 따듯했어요 .현태 마음처럼 말이에요. 늘 생각하지만 현태는 정말 내게 과분할정도로 좋은사람이에요. 사실 나는 지금껏 많이 외로웠거든요. 누군가에게 관심 받지 못한다는게, 사랑받지 못한다는게, 그냥 나는 그럴 자격이 없는 사람인가보다 하며 살아왔어요. 혼자라는 외로움도 그리움도 이겨내려고 노력하면서 그렇게 최대한 씩씩해지려고 했어요. 그래서 아직 사랑하는것도, 받는것도 서툰 나지만 그래도 너무 행복해요.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함께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기뻐요. 너무 기뻐요. "김예봄..이현..태?" 그때였습니다. 그러니까 정확히 현태와 약국쪽으로 걸음을 옮기려고 있는데. 뒷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온건 말이죠. "어...?" 뒤돌아서니 무언가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는 구해찬의 모습이 보였어요. 물론 구해찬의 옆자리에 있는 언니의 모습도 함께요. 아무렇지도 않아야 한다고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우지만, 역시나 현태의 말처럼 사람 마음은 사람 마음대로 되지 않는 모양이에요. 다정한 언니와 구해찬의 모습을 보는것이 내겐 너무 힘겨웠으니까요. "이현태. 너 내동생이랑 뭐해? 게다가.." "......" "둘이..손까지 잡고?" 언니의 말에 구해찬의 시선은 우리 둘이 잡은 손으로 옮겨갑니다. 나는 재빨리 현태에 손에서 내 손을 뺐어요. 그때까지도 해찬이의 시선은 여전히 그곳에 머물렀지만 말이에요. "아니 언니. 그게 아니라." 무어라 해명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입을 연 순간, "얘기 좀 하자." 라면서 별안간 구해찬이 내 팔목을 붙잡곤 자신 쪽으로 끌어 당겼습니다. "구해찬. 너 지금 뭐하는 짓이야?" 이번엔 현태가 맞은편 내 손을 잡았어요. "이현태. 놔" "너나 놔. 넌 지금 예봄이 팔 부은거 안보여?" 현태의 말에도 구해찬의 손은 여전히 내 팔목을 놓아주지 않았지만 그순간, 나는 느낄수 있었어요. 현태의 말이 끝나자마자 세게 내 팔목을 붙잡고 있던 힘을 느슨하게 풀어 놓은걸 말이에요. "김예봄 나랑 할얘기 있어." 구해찬의 말에 언니와 현태의 시선이 동시에 내게로 향합니다. 구해찬이 내게 할얘기라는것이 짐작 가지 않지만. 나는 일단 고개를 끄떡였어요. "얘기 하고 올께." 그러자 맞은편 내손을 놓아주는 현태. 현태가 손을 놓자마자 막무가내 구해찬은 내 손목을 잡고는 어디론가 끌고 갔어요. 다시 손목이 아파왔습니다. 현태의 말처럼 내 팔목은 퉁퉁 부어가고 있는데 이 막무가내는 내 손목을 도무지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네요. 구해찬이 내 손목을 놓아준건 인적이 드문 공원까지 와서였습니다. 나는 퉁퉁 부은 팔목을 메만지며 녀석에게 소리쳐요. "구해찬. 할 얘기가 뭐야. 뭔데 이래!" 진짜. 힘만 쎄가지고 아파 죽겠네. "너 나한테 할얘기 없어?" 구해찬은 내게 손목을 놓아주자마자 대뜸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무슨얘기?" "없어?" 할얘기라니. 곰곰히 생각해봅니다. 하지만 도무지 떠오르지 않아요. 구해찬에게 딱히 할얘기란건 없는... "무슨...얘기?" 그러고보니 할얘기가 한가지 있긴 해요. 오늘 저녁, 언니가 돌아오면 하려고 했던 그 이야기 말이에요. 혹, 구해찬이 내가 말하기도 전에 알아차린 걸까요? 그래서 말해주지 않은 내게 이렇게 화가 난걸까요? 나는 잔뜩 긴장하며 구해찬에 입에서 나올 다음말을 기다렸습니다 "너 왜. 내가 준 영화표 김예나한테 줬어?" 휴.... 다행히도 구해찬은 아직 모르고 있는 모양이에요. 놀란 가슴을 쓸어 올리며 나는 구해찬을 향해 말해요. "그게 왜?" "그게 왜? 그게 왜?" "응. 그게 왜." "너랑 볼려고 준 영화표잖아. 나랑 약속해놓고 김예나 보내고나서 넌 이현태랑 히히덕거려? 그런데도 그게 왜?" 솔직히 난 잘 모르겠어요. 지금 이순간 구해찬이 왜 이렇게 짜증이 나있는건지. 화가 나있는건지. "어차피 구해찬한테는 잘된거잖아. 구해찬은 언니 좋아하잖아. 나보다 언니랑 영화보는게 구해찬한테는 더 좋은일 아니야?" 사실, 지금 이순간 가장 가슴 아프고 짜증나고 화나 있어야 하는 사람은 나인데... "뭐?" "그게 더 좋은일이잖아. 구해찬한테는." "........" 할말을 잃은듯 조용해지는 구해찬이였어요. 내가 다 맞는말만 하니까 할 얘기가 없는거겠지요. 이런 구해찬이 조금은 밉기도 해요. 잠시 알수없는 침묵이 흐릅니다. 그리고 그 침묵을 깨뜨린건 다름아닌 구해찬. 구해찬은 한동안 땅바닥만 바라보다가 힘겹게 고개를 들었습니다. .... ...... "더이상은 싫어. 김예봄" 그리곤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나를 바라봐요. 무언가 굉장히 지쳐있는듯한 눈동자. "나한테 맘도 없는 여자한테 상처 받는거. 이제 싫다고" "......" "그러니까 이런 쓸떼없는 짓 하지마. 앞으로." 그리곤 화난듯 뒤돌아서서 걷는 구해찬이였어요. 나는 그런 구해찬의 등을 하염없이 바라봤습니다. 저아이... 3년동안 얼마나 마음 아팠을까요. 얼마나 많이 울고 힘들었을까요. 혼자만 하는 사랑에 얼마나 지쳤을까요. "그런거 아냐!!!!!!!" 심장이 욱씬 거리는걸 애써 참고는 나는 그런 녀석의 뒷모습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어요. "언니가 구해찬 좋아해." 그러자 서서히.. 서서히 그 아이의 발걸음이 멈췄습니다. "뭐..라고?" 나는 뒤돌아선 그 아이에게. 내게 너무나 큰 웃음을 준 그 아이에게. 내 상처를 아물게 해주었던 그 아이에게. 따스한 사랑을 알려준 그 아이에게.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천천히..입을 엽니다. "구해찬이..그렇게 3년동안 바라봤던 김예나도 사실은..." 누군가는 내게 바보같다고 할지 몰라요. 그렇게 니가 사랑하는 사람을 니 손으로 보내주는 바보 머저리가 어딨겠냐고 하면서 말이에요. 니 사랑은 고작 그것밖에 안돼냐며. 좀 더 노력해서 당당하게 얻을 생각조차 하지 않냐며 그렇게 쉽게 사랑을 포기하냐며 화낼지도 몰라요. 그런데요. 나 있죠. 이게 내가 사랑하는 방법인것 같아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하길 비는거. 그렇게 되도록 도와주는거. 그게 내가 구해찬을 좋아하는, 아니 사랑하는 방법인것 같아요. "구해찬을...좋아한단말야...." 내 가슴속에는 더 큰 멍이 들었겠지만...말이에요. 38.39는 금요일에~ 40부터 완결까지는 주말즈음 올라올꺼에요. (자세한건 금요일날 소설 올릴때 정확히 알려드릴께요. 날짜^^) -------------- §가그린§ (godqhrgkehfhr@hanmail.net) 플티〃가그린〃소설 (http://cafe.daum.net/Gagrin) -------------- ※헬리오토로프는 5월 24일의 탄생화로 사랑이여 영원하라 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35. "얘기 다 했어?" 공원에서 현태와 언니가 있는곳까지 별로 안되는 거리였지만 얼마나 길게 느껴졌는지 몰라요. 구해찬과 나는 오는내내 서로 아무말도 하지 않았거든요. 우리의 모습이 보이자 난관에 걸터 앉아 있던 현태가 일어서면서 물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떡여요. "응." "무슨얘기들을 그렇게 하냐. 구해찬. 내동생 끌고 무슨얘기 했어. 어?" 그때, 언니가 장난스럽게 일어서서 구해찬의 어깨를 툭툭 쳤습니다. 그러자 구해찬은 무표정으로 바로 뒤돌더니 "이현태. 가자." "지금?" "응." "왜 임마. 나 예봄이랑 약국 가야돼." "가자면 가." "뭐래는거야." "부탁이야." 현태도 구해찬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는걸 알았는지 더이상 아무런 대꾸없이 알았다며 일어섰어요. 그러다가 멈칫, 무언가 생각난듯 뒤돌아 서서 나를 바라봐요. "예봄아 갈께. 이따가 문자할께." 그순간, 구해찬의 시선이 잠깐동안 내게 머무릅니다. 저아이, 무슨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을까. "어? 으응." "갈께." 그렇게 구해찬과 이현태가 언니와 내게서 멀어지기 시작합니다. 점점 멀어지는 구해찬과 이현태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는지 구해찬의 어깨를 툭툭 치고 있던 손을 내리지 않은채 굳어버린 언니는 어처구니가 없다는듯 나를 향해 소리쳤어요. "뭐야. 저새끼 왜저래!!!!" 나는 계속해서 바라봤어요. 점점 작아지는 구해찬의 등을. 아주 오랫동안 말이에요. 현태와 구해찬이 작아져서 보이지 않을때까지 아주 오래도록. 사랑하는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봐야 한다는건 어찌됐든 너무 슬픈일인것 같아요. 문득, 코끝이 시려왔으니까요. "이제 우리도 가자. 언니" "아악. 열받아. 내가 뭘했다고. 날 개무시해?" 구해찬의 태도에 언니는 많이 열받은 모양이였습니다. 가자고 손을 잡아당겨 보아도 꿈쩍도 하지 않았거든요. 오늘 처음 알았어요. 언니가 이렇게 힘이 쎄다는 사실 말이에요. 할수 없이 나는 언니의 손을 잡아 당기는것을 포기하고는 제풀에 지쳐 아까 현태가 앉았던 그자리에 털썩 하고 앉았습니다. 그런 나를 힐끔 바라보더니 옆자리에 따라 앉는 언니에요. "그런데 김예봄." "응?" "나한테 왜 준거야?" "....." "이거." 주머니에 있던 영화표를 꺼내 살짝 흔들어 보입니다. 나는 말없이 웃었어요. 딱히 할말이 없었으니까요. 그냥 주고 싶어서 준건데, 왜 준거라고 묻느냐면 당연히 할말이 없죠. "아까, 무슨얘기 했어?" 대답이 없자 또 다른 질문을 하는 언니에요. 이번에도 나는 웃어보입니다. 구해찬의 심정이나, 언니의 심정이나 나는 모두 이해할수 있을것만 같았어요. 구해찬은 너무나 갑작스러워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거고. 언니는 자신의 감정을 알게 된 이후로부터 모든일을 구해찬과 연관시키며 신경쓰고 있는거고. 나는 내 대답을 기다리는 언니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어요. "언니얘기." 이제 더이상 거짓말은 하지 않을거거든요. 예전에 했던 거짓말들은 언니를 위한, 구해찬을 위한 거짓말이였지만 지금 거짓말을 하는건 순전히 나를 위한 거짓말이 된다는걸 아니까요. 솔직해 질꺼에요. 숨기지 않을꺼에요. 더이상, 두사람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나는 "내 얘기?" "응." "무슨 내 얘기?" "언니가 구해찬 좋아한다는 얘기." "진심이야?" "응! 진심이에요!" 내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언니가 벌떡 일어섰습니다. 화가 많이 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 봐요. "진짜로 말했어? 진심으로? 장난아니고? 뻥 아니고?" "응." "너 그걸 말하면 어떡해. 나 내일부터 구해찬 얼굴 어떻게 보라고. 그리고, 넌 구해찬이랑 사귀고 있으면서..어떻게" 언니의 긴 한숨소리. 언니를 따라 나도 일어섭니다. 그리곤 화가 나있는 언니 앞에 서서 두 눈을 똑바로 맞춰요. "안사귀고 있으니까 말한거야." "뭐..?" "구해찬 사실은, 언니 좋아하거든. 나랑은 일부로 사귀는척 해왔던거구." "........" "3년전부터 좋아해왔대. 언니한테 자기 마음 들키지 않을려고 일부로 사귀는척 해왔던거야. 구해찬 나 좋아하는거 아니야." 뻥져있는 언니를 향해 나는 실실 웃으며 두손을 비는 시늉을 했어요. "속여서 미안해 언니." "...." "그치만 진짜야. 구해찬도 언니만큼 진심이야." 어쩌다가, 내 신세가 이렇게 된걸까요. 어느새 바보같은 김예봄은 어설픈 사랑의 메신저가 되어가고 있었어요. \ 얼마나 걸었을까요. 아까 예봄이와 함께 왔던 공원까지 다다르자 구해찬은 답답한듯 주머니에서 담배각을 꺼내 들었습니다. 빨간 담배각에는 말보루 레드 라고 선명하게 찍혀져 있었어요. 옆에서 걷던 이현태가 힐끔, 하고 구해찬의 담배각을 바라봅니다. "담배 바꿨네?" 현태에 말에도 아무런 말없이 필터 부분을 입에 살짝 물고는 또 다시 주머니를 뒤적거렸습니다. 동시에, 이현태가 '라이터도 안가지고 다니냐.' 라면서 자신의 은색 라이터를 꺼내 드네요.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빨간 불이 구해찬의 담배로 옮겨갔습니다. 볼이 움푹 패일정도로 깊게 담배연기를 마시는 구해찬. 후우 하고 그의 입에서 내뱉어진 짙은 담배연기가 이리저리 허공을 떠돌아요. "예봄이랑 뭔 얘기를 했길래 그래?" "......." "뭔데 임마." "이현태." "응?" 잠시, 아까 예봄이와의 일이 떠오르는듯 생각에 잠기다가 이내 현태의 이름을 나지막히 부르는 구해찬이였습니다. 아까부터 구해찬의 입에 문 담배에 빨간불은 쉼없이 타오르고 있습니다. "좋아한대." "누가. 누구를?" 패닉상태에 있는 구해찬과는 달리 구해찬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치며 앞에 있는 자판기에서 밀키스 하나를 뽑는 이현태. 타앙. 하는 둔탁한 소리를 내며 입구에 떨어진 밀키스를 꺼내들며 벤치에 걸터 앉습니다. "김예나가." "김예나가?" "나를." "그래 그게 뭐 어쨌...켁-" 따가운 탄산음료가 목에 걸린듯 한참을 켁켁대며 괴로워 하다가 믿을수 없다는듯 구해찬을 바라봅니다. "정말로? 진심으로?" "응." 발밑에는 벌써 꽁초가 3개나 널려있었지만, 구해찬은 다시 담배각에서 하나를 꺼내 입에 물며 현태가 앉아있는 벤치에 앉아 등을 기대곤 긴 한숨을 내셨어요. 그러자 이해할수 없다는듯 현태가 물어요. "근데 왜 한숨이야? 지금쯤 반쯤 정신 나가 쳐웃고 있어야 할 타이밍 아냐?" "그러니까." "그러니까?" "나도 그게 이해가 안가." "뭐래는거야." "나 왜 지금." 매끈하게 뻗은 두번째 손가락으로 톡톡 하고 담뱃재를 떨어트리는 구해찬. "아무렇지도 않을까." 자신도 꽤나 복잡한듯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헝크러트려 놓아요. 그런 해찬이의 모습에 현태는 미친놈 이라고 중얼거리며 밀키스병을 벤치에 내려 놓았어요. "뭐가 아무렇지도 않아?" "기쁘지가 않아." "뭐. 너무 갑작스러워서 그럴수도 있나?" "행복하지도 않고. 좋지도 않아. 그냥 아무 느낌이 없어. 그얘기 듣고, 제일 먼저 김예나가 아닌 다른사람 생각났어." 혼란스러운듯 고개를 숙이곤 이제는 자신의 머리를 쥐어 뜯는 구해찬. "어째서?" "모르겠어. 나도. 그걸 모르겠어. 진짜 미치겠네." 그렇게 마음고생을 해노코, 막상 이제와서 아무렇지도 않다니. 김예나가 아닌 다른사람이 생각났다니. 현태에겐 상식적으로 이해할수 없는 일이였어요.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을수가 있겠어요. 다른 사람을 좋아해버리지 않는 이상. "잠깐만 너. 혹시." "혹시 뭐?" 그럴리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구해찬을 바라보는 현태였어요.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는 녀석에게 현태는 잠시 머뭇거리며 망설이다가 이내, 조심스레 입을 열었습니다. .... "다른 사람이 좋아진거 아냐?" ....... \일주일후 "예봄아. 이게 더 예쁠까. 아니면 이게 더 예쁠까?" "두개 다 예뻐!" "아냐 골라봐. 이게 좀 더 깜찍할려나? 아! 아니다 이럴게 아니라 두개 다 가져가야겠다. 그치?" "응! 그래 그럼." 거짓말처럼 일주일이란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그동안 나는 구해찬을 보지 못했어요. 연락도 하지 않았구요. 대신 학교에서 줄곧 보는 언니에게 소식을 접하곤 했죠. 언니는 일주일 내내 행복해 죽겠다면서 웃었어요. 그러면서 학교에서 구해찬과 평소처럼 지낸다고 좋아하더라구요. 어느날은 언니가 대뜸 내게 말했어요. 자기는 지금 기다려주는거라고. 그자식이 고백할때까지 기다릴꺼라고. 그말에 나는 그저 씁쓸히 웃을뿐이였죠. "룰루랄라. 진짜 너무 재밌을꺼 같다. 그치 예봄아!" "어? 응응." 언니는 큰 트렁크에 앞에서 골라놓은 수영복 2개를 집어넣으며 말했습니다. 나는 그런 언니를 보며 언니 모르게 한숨을 푸욱 하고 내쉬었죠. 솔직히 말하면 나는 가고싶지 않아요. 여름방학 한 기념으로 친구들끼리 다함께 가는 여행에 내가 눈치없이 끼어든것 같기도 하고. "빨리 챙겨! 이러다가 기차시간 늦겠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보기 싫었던거에요. 나는. 구해찬과 언니의 다정한 모습이. "엄마 다녀올께!" "그래. 조심히 갔다와. 도착하면 꼭 전화주고!" "다녀오겠습니다." 몇가지 여벌의 옷과 속옷. 그리고 수영복. 세면도구. 등등을 가방에 쑤셔넣자. 떠억 하고 악어처럼 입을 벌린 자크는 잘 잠겨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한참을 낑낑거리며 자크와 씨름하다가 겨우 잠글수 있었지요. 그렇게 내가 힘겹게 바다를 갈 모든 준비를 마치자, 언니가 현관문을 힘차게 열었습니다. 순간 현관문 사이로 눈부신 빛이 새어 들어왔어요. 이제 정말 떠나나봐요. 어떤 여행이 될지. 조금, 가슴이 두근거리긴 해요. 다 함께 하는 여행이잖아요. 구해찬, 이현태, 황여민, 김예나, 김예봄, 이렇게 다 함께 처음으로 떠나는 여행이잖아요. "어? 야. 이현태!" 거리는 여름방학 때문인지, 아니면 이른 시간 때문인지 아무튼간에 굉장히 한산했어요. 언니와 함께 인터넷으로 우리가 갈 펜션을 봤는데, 무지 예뻤다는둥의 영양가 없는 수다를 떨고 있을 무렵. 얼마 안가 현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언니는 그런 현태가 꽤나 반가운듯 큰 소리를 질렀구요. 나는 살짝 현태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는걸로 인사를 대신 했습니다. "예나 너는, 이사라도 가나보다?" 그러자 현태는 언니의 손에 들린 큰 트렁크 가방을 보더니 피식 하고 웃으며 말했어요. "기대해라. 누나의 수영복 패션쇼를. 내 수영복 진짜 예뻐!" "수영복만 예쁜거겠지." "그렇지?....가 아니라. 뭐 임마? 너 그거 무슨의미야." "예봄아 밥은 먹었어?" 에에? 현태가 갑자기 내게로 말을 돌리는 바람에 넋놓고 구경하다가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네요. "응? 밥?" 그러고보니. "응. 밥." "안먹었다!" 아침밥을 안먹고왔네요. 아니, 못먹은건가? 어쩐지 배가 슬슬 고픈것 같기도 하고. "그럴줄 알았어. 잠깐만 기달려. 간단히 먹을거좀 사올께" 어? 안그래도 되는데! "우와. 열라 빨라." 하지만 현태는 내가 미처 말하기도 전에 뒤돌아 서서 근처에 있는 편의점으로 달려갔어요. 머쓱해서 현태를 붙잡으려던 손을 스르륵 내리니, 언니가 현태에 속도에 감탄해하고 있다가 볼멘소리를 내며 나를 쿡쿡 찔러댔어요. "누구는 좋겠다~ 우리학교 킹카 이현태의 사랑을 듬뿍 받아서." 언니의 말에 순간 굳음. 김예봄은 그대로 얼음이 되버리고 말았습니다. "어? 아.아니야!" "아니긴 뭘 아니야. 언니가 모를줄 알아?" "......" "이미 황여민한테 오~래전에 들었지. 어? 황여민! 구해찬" 누군가를 미워하면 안되지만. 지금 이순간, 저기 웃으면서 걸어오는 황여민이 나는 정말로. 정!말!로! 너무 얄밉습니다.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더니." 입을 삐쭉 내밀며, 못마땅하게 여민이를 쳐다봤어요. 그러자 언니는 하하하 하고 크게 웃음을 터트리더니 내 머리를 몇번 부비적 거립니다. 그런데 왜 다들 내 머리를 가만두지 않는걸까요?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늘 내머리를 만지길 좋아하는것 같아요. 아무렇게나 이상하게 헝크러 트려 놓으며 말이에요. 그런건 구해찬이 제일 잘했는데. 구해찬. 구해찬.... "뭐야. 우리가 일등인줄 알았는데. 그치 해찬아." "그러게." 여민이의 말에 심드렁하게 대답하며 천천히 우리쪽으로 걸어오는 구해찬. 나는 힐끔 그런 해찬이를 바라보다가 바로 시선을 돌렸어요. 두근두근. 심장이 미친듯이 뛰었거든요. 사랑을 하면 다 이런걸까요? 방금 구해찬에게서 분명 빛이 났다구요. "하이." "......" 그렇게 시선을 돌려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장난스럽게 들려왔어요. 이 목소리는 보나마나 구해찬이에요. 순간 확 풍겨져오는 진한 담배향. 하여간 구해찬. 구해찬은 정말 담배 없으면 하루도 못살 사람이에요. 그건 내가 장담한다구요. "안녕." "........" 이번에도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허리를 조금 굽혀 나와 눈을 마주치려고 해요. "김예봄. 오빠랑 오랜만에 봤는데. 왜 인사안해." "......" "오빠 안보고싶었어?" 그렇게 또 다시, 익숙하게 구해찬의 따듯한 손이 내 머리로 향하려는 순간. "혀.현태야. 먹을꺼 사왔어?" 나는 구해찬의 손을 살짝 피하고는 봉지에 한아름 무언가를 들고 걸어오는 현태를 향해 달려갔습니다. 구해찬은 그런 나를 보더니 뻘쭘하게 허공에 떠있는 손을 내리며 어처구니가 없다는듯 피식 하고 웃어요. 하지만 어쩔수 없다구요. 구해찬과 말을 하면 할수록 혹, 언니가 기분나빠 할까봐 신경쓰이고, 기대해서 상처받게될 나도 신경쓰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나는 일주일동안 구해찬과 연락을 하지 않은걸지도 몰라요. 핸드폰을 샀다는 구해찬에게 두세번정도 연락이 왔지만 모두 답장을 보내지 않았거든요. 알아요. 나는. "응. 예봄이 많이 배고팠나보네. 이럴줄 알았으면 더 사올껄 그랬나." 아주 비겁한 겁쟁이 라는거. "아니야! 나. 이거 먹을래!" "아싸. 고마워 예봄아." 나는 한참을 봉지를 뒤적거리다가 먹음직스러운 샌드위치 하나를 꺼내 들었어요. 그러자 그러기 무섭게 훽 하고 채가는 여민이였어요. 정말. 언니일도 그렇고. 황여민 얄미워 죽겠다구요! "야. 너 먹으라고 사온거 아니거든." "이현태. 난있지 니맘 다 알아. 나 먹으라고 사온거라는거." 현태에 말에도 여민이는 얄밉게 샌드위치 봉지를 부욱 뜯더니 한입 크게 베어물었어요. 세상에나. 황여민의 뻔뻔스러움에 경악을 하고 있을때. 얼른 가자며 언니가 내려놓은 짐을 들며 앞장섰습니다. 나는 결국 샌드위치를 포기해버리곤 삼각김밥으로 만족해야만 했죠. "김예나, 넌 무슨 집안에 있는 짐을 다 싸들고 왔냐?" "왜. 내 센스가 철철 넘치다 못해 흐르냐?" "웃기고 있네." "뭐어? 죽을래?" "내가 차 가져온다고 했지. 이게 뭐야 쪽팔리게. 기차가 뭐냐." "원래 여행은 기차로 가는맛이거든?" 자연스레 둘이 서서 걸어가는 언니와 구해찬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현태가 건낸 삼각김밥 봉지를 뜯었어요. 삼각김밥은 밥알이 식어서 매우 딱딱했습니다. 그래서 목으로 잘 넘어가지 않았죠. 그래도 꾸역꾸역 삼각김밥을 입안에 집어 넣는 나였어요. 꾸역꾸역. 억지로. "너 많이 배고팠구나. 그러다가 체하겠다. 천천히 먹어" 현태야. 나. 이미 체해 버렸는걸 "으응." 마음이. \ 오늘로서 기차를 타게 된건 2번째가 되네요. 나는 손에 들린 표를 내려다 보며 좌석번호를 확인했어요. 따라오던 현태가 내 좌석번호를 힐끔 바라봅니다. "34번이네. 난 37번." "아 정말? 그럼 33번은 누구지." 예나언닌가? 나는 좌석을 재빠르게 눈으로 훑으며 확인했어요. "21번 24번 26번...32번. 34번 어? 여깄.." 말끝을 흐릴수밖에 없었던건, 33번에 앉아 있는 사람 때문이였어요. 잠시 눈이 마주치자 나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또 다시 얼른 시선을 돌렸습니다. 그러자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어요. 으으. 하필이면 왜 33번에 앉아 있는 사람이 구해찬인걸까요. 이럴게 아니라 언니와 좌석을 바꿔야 겠어요. 나는 정말이지 너무나 어설프게 웃으며 "아. 언니랑 자리 바꿔줄께." 라고 말하곤 얼른 이 어색한 자리를 뜨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때, 타악. 하고 내가 뒤돌기 전에 손목을 잡아버리는 구해찬. "앉아. 니 자리잖아." 어라. 근데 구해찬 목소리가 왜 이렇게 차갑지? "어?" "정 싫으면 내가 자리 바꾸고." "아.아니야!" 퉁명스럽게 말하곤 일어서려는 구해찬이였어요. 아무래도 내 행동이 기분 나빴나봐요. 나는 손사래를 치며 하는수 없이 얼른 구해찬의 옆자리에 앉아버렸습니다. 둘 사이로 왠지 모르게 정말 무겁게 느껴지는 정적이 흐르네요. 황여민과 언니는 우리의 뒷자석에 앉았고, 현태는 언니 맞은편 좌석에 앉았어요. 나는 두리번 두리번 거리다가 다시 자리에 엉덩이를 붙입니다. "정말 싫다. 김예나랑 앉아야 한다니." "그건 나도 마찬가지거든 황여민?" 그때, 황여민과 투닥거리다가 잠시 내 자리쪽으로 시선을 두는 언니. 나와 눈이 마주치자 금세 돌려버립니다. 아아 역시 여기 앉는게 아니였어요. 나는 힐끔 구해찬을 바라보다가 창문에 턱을 괴고는 고개를 돌립니다. '앉아. 니 자리잖아.' 그나저나 녀석, 왜 그렇게 차가운 목소리였을까요. 그렇게 기분이 나빴나? "김예봄." 열차가 출발하고도 구해찬은 내게 아무런 말도 건내지 않았어요. 녀석이 아주 딱딱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른건, 열차가 출발하고 나서 아주 한참이나 지난 뒤였거든요. "대답해." "어? 왜?" 턱을 괸 손을 푸르곤 녀석을 바라봐요. "너." "응." "왜 자꾸 나 피해?" 그러자 이번엔, 정면을 응시하고 있던 녀석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봐요. "안.안피했어!" "피하잖아. 지금도 시선." "그런거 아냐." "또 거짓말." 정말로 구해찬의 말처럼 난 거짓말을 하면 얼굴에 그대로 표시나는걸까요? 거짓말을 하는 족족 이렇게 매번 금방 걸리니 말이에요.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나는 구해찬을 보기만해도 가슴 떨리고 아픈데 구해찬은 아니니까. 내가 상처받을꺼 같아서, 그리고 언니 때문에 ' 라고 구해찬에게 사실대로 말할순 없잖아요. 그런데 그것이 구해찬에겐 서운했던 모양이에요. 이번엔 완전히 내쪽으로 몸을 돌려 묻습니다. "내가 뭐 너한테 서운하게했어?" "아니." "그럼 내가 뭐 너한테 잘못했어?" 둘다 똑같은말이잖아 구해찬. 바보. "그런거 아냐.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러니까." .. ..... 어떻게 말을 돌릴까 주위를 두리번 거리다가 이내, 가방에서 뜬금없이 아까 엄마가 싸주신 삶은계란 두알을 양손에 꺼내듭니다. 그리곤 녀석을 향해 실실 하고 웃어보였어요. "구해찬씨도 계란먹을래?" 어처구니가 없다는듯 나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결국은 어쩔수 없다는듯 피식 하고 웃음을 터트립니다. 그래요. 구해찬은 이렇게 눈매가 둥그레지도록 예쁘게 웃는모습이 제일 잘 어울리다구요. "너 촌스럽게 이런것도 싸와?" 아직까지도 웃음을 멈추지 않고 있는 구해찬이 내 왼쪽손에 들린 계란 하나를 집어가며 말했어요. "뭐가 촌스러워! 기차여행갈땐 원래 계란먹는거래!" "김예봄." "응?" "한국에선 이 계란을 원래 어떻게 먹는줄 알아?" "어떻게?" "이렇게." 장난끼 가득한 표정으로 잠시 웃더니만 순간, 들고 있던 계란을 그대로 내 머리위로 내리치는 구해찬이였어요. 딱- 하는 소리와 함께 밀려오는 아픔에 나는 그만 악 하고 소리를 지를수밖에 없었습니다.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기차에 타고 있다는 생각에 바로 입을 막았긴 했지만, 그때까지도 머릿속까지 아픔은 사라지지 않았어요. "구해찬 정말 뭐야! 아프잖아" 볼멘소리로 투덜거려봐도 구해찬은 끄떡도 하지 않은채 얄밉게 산산조각이 난 계란을 까먹으며 혀를 낼름 내밀었어요. 으으 분해요. 분하다구요. "구해찬!" 나 김예봄! 이렇게 당하고만 있을수는 없습니다. 나는 나지막히 구해찬을 불렀어요. 손에 계란을 꼭 쥐고 말이에요. "김예봄. 이 계란 니 머리위에 깨서 더 맛있는거 같아." "미국에선 이 계란을 원래 어떻게 먹는줄 알아?" "뭐?" "히히." 그제서야 눈치챈듯 기겁을 하는 해찬이. 이미 기차는 훨훨 떠나버렸다구요. 이 아저씨야. "하지마. 너 진짜 하지마." "히히히" "경고했어 김예봄." 구해찬의 말에도 나는 아랑곳 하지 않은채 손에 꼭 쥐고 있던 계란을 그대로 구해찬의 머리 위로 내려쳤습니다. "한국이랑 똑같아. 바로, 이렇게" ... ...... 36. 정확히 기차로 2시간 30분을 달려 온 바닷가. 우리가 1박2일동안 머무를 곳은 바닷가 바로 앞에 있는 펜션 이였습니다. 펜션은 인터넷에서 본것처럼 무지 예뻤어요. 정말로 동화속에서나 나올법한 공주의집 같다고 할까요? 나는 신기한듯 짐을 내려놓고는 예쁜 펜션안을 둘러보았습니다. 우와. 여긴 분홍색 계단도 있어요. "김예나가 예약한 곳 답다. 진짜." 하지만 여민이는 펜션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에요. 두리번거리다가 입을 삐쭉 내밀고는 그대로 쇼파에 앉아버렸죠. 나는 예쁘고 좋기만 한데, 왜 마음에 들지 않는걸까요? "자 이제 나가자!" 그런 여민이를 가볍게 무시한채 언니는 짐을 내려놓자 마자 바로 일어서서 말했습니다. 언니에 갑작스러운 말에 짐을 내려놓던 구해찬이 물어요. "어딜?" "어디긴! 바다지." "너 바다에 환장했냐?" "당연하지. 내가 얼마나 여름방학을 기다렸는데! 가자가자 빨리 나가자" 아직 짐정리도 되지 않았는데.... 짐정리는 하고 나가야 하지 않나? "예봄아. 안나와?" "아. 나는 이거 마저 정리하고 갈께!" "그럴래?" "응. 그럴게." 슬그머니 웃어보이자 알았다는듯 고개를 끄떡여 주는 언니. 황여민은 어느새 신발을 신고 나갔는지 보이질 않아요. 대신 현관에 서있던 현태가 신발을 벗으며 다시 들어왔죠. "그럼, 나도 같이 짐정리 하다가 있다 나갈게." "어? 그럴 필요 없어!" "그럴 필요 있네요" "좀 놀다와. 나 이거 정리하고 청소도 할껀데? 오래 걸릴꺼야 아마." "김예나. 들었지? 좀 오래있다가 나갈게." 언니를 향해 손까지 흔들더니 바닥에 털썩 앉아버려요. 하여간, 현태도 이럴때보면 구해찬처럼 막무가내라니까요. 현태의 막무가내인 모습에 피식 하고 웃음이 터져 나옵니다. "알았어. 하하하 그럼 둘이 늦~게 와라. 야 구해찬. 뭐해 넌. 빨리 안나오고" 호탕한 언니의 웃음소리에 괜스레 머쩍어져서 나는 쇼파에 앉아있는 구해찬을 바라봅니다. 그런데 구해찬. 왜 그렇게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는거죠? "나도 안나가." 에에?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위와 같은 말을 내뱉고는 바로 눈을 감아버려요. "왜 안나가?" "나 지금 머리 아파" "무슨소리야. 지금까지 멀쩡했던게." "아 몰라. 나 잘꺼야. 건들지마." 어처구니가 없다는듯 언니가 허 하고 헛웃음을 터트리는데도 불구하고 구해찬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정말이지 구해찬은 너무 막무가내라니까요. 자기 기분대로, 내키는대로 행동하는 구제불능 막무가내! "내가 너 그럴줄 알았다. 또 귀찮아서 그러지? 저번에도 그러더니." "......." "안자는거 다 알거든? 좀 있다 얘들이랑 같이 나와. 그때도 안나오면 진짜 나 삐진다 구해찬. " 구해찬은 평소에도 자주 그랬던 모양이에요. 그럴줄 알았다는듯 구해찬을 한번 노려보더니 콰앙 하고 문을 닫고 나가버리는 언니였습니다. 언니 삐진거 같은데, 구해찬은 정말로 머리가 아픈건지 졸린건지 눈을 감은채 꿈쩍도 하지 않고 있어요. 정말, 아픈건가? "예봄아." "어..어?" 그만 구해찬을 정신없이 빤히 쳐다보고 말았어요. 나는 나를 부르는 현태의 목소리에 죄진 사람마냥 깜짝 놀라 바로 고개를 돌려버렸습니다. 그러자 피식 하고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담는 현태였어요. "짐정리 한다며. 왜 넋놓고 있어." "응. 해야지. 근데 현태야." "응?" "내 머리가 좋아?" "뜬금없이 그게 무슨소리야?" "현태는 맨날 내 머리 쓰다듬잖아!" 내말에 현태는 하하하 하고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어요. 웃음이 멈추지 않는듯 한참을 하하하 하고 웃었죠. 별로 웃긴말도 아닌데 현태는 왜 웃는걸까요? "현태야. 왜 웃는거야?" "하하하." "왜 자꾸 웃어!" "귀여워서" 저런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현태가 나는 가끔씩 대단하다고 느껴요.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저렇게 민망한말을 내뱉다니. 왠지 모르게 부끄러워 집니다. "김예봄. 너 하나도 안귀여워." 그때였어요. 그러니까 내가 현태의 말에 왠지 모르게 부끄러워 얼굴이 화르륵 달아 올랐을때쯤, 자는 줄만 알았던 구해찬이 대뜸 일어서서 위와같이 말한건 말이에요. "에에?" "저런말에 넘어가면 넌 진짜 여자도 아니다." 그리곤 쇼파에서 일어서서 현태와 내사이에 억지로 앉아버려요. "너 임마. 아프다며." 현태의 말에도 아랑곳 하지 않은채 나를 빤히 쳐다보는 구해찬이였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 구해찬 조금, 아니 조금 많이 이상한것 같아요. "맞아 구해찬! 잔다면서" "뭐가." "응?" "왜. 내가 니네 지금 방해하고 있어?" 나참. 어이가 없어서. 왜 자꾸 심통이냐구요. 구해찬씨. "무슨소리 하는거야." "알면 좀 가지?" 전자는 김예봄. 후자는 이현태였어요. 구해찬은 현태의 말에 어처구니가 없다는듯 웃더니 자리에서 그대로 일어섰어요. 그리곤 망설임없이 뒤돌아서더니 신발장으로 가는게 아니겠어요? 나는 입을 떠억 하니 벌리곤 그런 구해찬을 바라봤습니다. 뭐가 저렇게 저 아이를 화나게 한걸까요. 곧이어 콰앙 하고 꽤나 신경질적으로 닫히는 문소리가 들려왔어요. "오늘 컨디션이 별로 안좋나봐." 나는 닫혀버린 문을 걱정스레 바라봅니다. 그러자 현태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어요. "예봄아." "응?" 나를 불러놓고도 현태는 한참이나 말을 하지 않았어요. "현태야 왜?" "아니야." "에에? 뭐야 그런게!" "아니야 정말. 우리도 짐정리 빨리 하고 나가자." 오늘은 정말 다 이상한것 같습니다. 계속 쓸떼없이 시비걸고 심통부리는 구해찬이나. 알수없는 표정으로 말끝을 흐리는 이현태나. 다들 무지 어려운 수수께끼가 되버린거 같아요. 정말이지 알수 없다니깐요. 이 두사람. \ 짐정리는 생각보다 일찍 끝낼수 있었어요. 우리는 대충 정리를 끝내고 청소까지 완벽히 끝마치고 나서야 펜션을 나설수 있었습니다. "어? 예봄이랑 이현태 왔다!" 바닷가로 가자, 벌써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은 언니가 해맑게 웃으며 우리를 반겨줬어요. 황여민 또한 흠쩍 젖어서 첨벙거리는 파도에 장난스럽게 발을 담그고 있었습니다. 그럼 구해찬은 뭐하고 있냐구요? 물놀이에 전혀 동참하지 않은채 모래사장에 털썩 앉아있었어요. 정말이지 못말린다니까요. "예쁘다." 구해찬에게 머물렀던 시선을 돌려 넓고 넓은 바다를 바라봐요. 정말 예뻐요. 눈부실만큼. 나는 이래서 바다가 너무 좋아요. 끝이 보이지 않는, 알수없는. 깊고 깊은. "봄아 물에 빨리 들어와!" 그렇게 얼만큼이나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을까요. 갑자기 차가운 바닷물이 얼굴에 닿았어요. 이건 보나마나 황여민 짓이라구요. "하지마 황여민!" "뭐하냐. 재미없게! 얼른 들어와. 빨리." 내가 머뭇거리자 다시한번 내게로 물을 뿌려대는 여민이. 으으 바닷물이 입가로 튀었는지 혀끝에서 짭쪼름한 맛이 나요. "하지마!" "이래도 안들어올래?" "황여민!" "우왓. 우리 봄이 화도 낸다! 무서워라" "이씨! 너 기달려!" 얄궂은 표정을 지으며 도망가는 시늉을 하는 황여민 덕분에 바다에 들어가지 않겠다던 김예봄은 어느새 반팔티를 위로 돌돌 말아 걷어 올리고는 신발을 벗고 있었습니다. 양말까지 훽 벗어던지자 순간, 까끌까끌한 모래알이 발바닥에 닿았어요. 왠지 모르게 신기했어요. 움직일때마다 모래에 푹푹 발이 빠져 발자국이 찍히고 있었거든요. "황여민! 도망가지마! 거기 서" 발바닥이 바닷물에 닿자 금세 차가움이 느껴져왔습니다. 나는 정말로 발이 얼어버릴것처럼 차가왔지만 첨벙첨벙 거리며 여민이를 잡으려고 애썼어요. 하지만 나보다 두배. 아니 세배는 더 빠른 녀석은 쉽게 잡히지 않았습니다. 마치 어렸을적 제일 좋아했던 만화 톰과 제리 같았어요. 황여민은 재빠른 제리, 나는 톰. "예봄아. 황여민은 내가 잡아줄게." 그때, 바지 밑단을 두 번 접더니 바닷물로 들어오는 현태. 현태의 말에 우리 둘을 구경하며 숨넘어갈듯 웃던 언니가 여민이 옆으로 가더니 주먹을 불끈 쥐는 시늉을 합니다. "어? 뭐야. 그럼 난 여민이편. 다죽었어 니네들" 그리하여 시작된, 2:2 물놀이. 때로는 바닷물이 코에 들어가기도 하고, 입에 들어가기도 했어요. 머리가 흠뻑 젖을만큼 서로에게 바닷물을 뿌려댔죠. 여민이는 현태로 인해 조금 밀리는듯 하니 나를 집중공격 하기도 했지만, 현태가 다 막아줘서 결국 녀석의 작전은 수포로 돌아가기도 했습니다. "아. 알았어 항복. 항복." 20분정도의 물놀이는, 현태의 집중 공격을 받은 여민이가 두손을 드는것으로 끝낼수 있었습니다. "내가 황여민 너랑 편을 하는게 아니였지!" "누가 할소리." 정말로 오랜만에 웃고 떠들며 놀았던거 같아요. 물론, 아까부터 계속 저기압으로 보이는 구해찬이 조금 신경쓰이긴 했지만 말입니다. "아!" 한참을 바닷가에서 놀고 나와, 언니가 건낸 수건으로 머리를 탈탈 털며 말리고 있을 무렵, 현태가 짧은 신음소리를 내며 자신의 발을 두손으로 감싸 쥐었어요. 왜그러지? "왜그래?" 물어보려는 찰라, 나보다 여민이가 좀 더 빨랐어요. 여민이의 질문에 현태는 긁혀 피투성이가 된 발을 보여줘요. ".........." 피투성이가 된 현태의 발을 본 순간, 머리가 어지러웠습니다. 어느정도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피를 무서워 하는 나였어요. 아직까지도 그 기억은, 오래된 문신처럼 내 심장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나봐요. "어? 예봄아 왜그래?" "아.아니야" 언니의 물음에 고개를 절래절래 젛고는 땅바닥으로 고개를 푹 숙였어요. 온몸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합니다. 언제쯤. 도대체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 "........" 그때, 잠자코 앉아있기만 했던 구해찬이 일어섰어요. 그리곤 녀석은 들고 있던 얇은잠바를 이현태의 발에 투욱 하고 던져버렸습니다. "뭐야 임마." "가려 그걸로." "뭘 가려?" "피." 현태의 말에 구해찬은 아무렇지도 않은듯 무심하게 대답해요. 녀석은, 내가 그일로 피를 무서워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내가 난처해지지 않게, 서툴지만 따듯하게 그렇게 나를 배려해주고 있었어요. "피를 왜 가려?" "난 피가 싫거든." "미친놈." 현태는 상처를 덮고 있는 잠바가 꽤나 성가셨던 모양인지 발로 툭 쳐서 구해찬의 잠바를 떨어트리려 했지만 구해찬은 현태가 상처를 보이지 않게 하기위해 잠바로 덮는것도 모잘라 움직이지 못하도록 발 위에 꽁꽁 묶어버렸어요. 그리고는 아주 진지하게 현태에게 물었죠. ....... .. "리본모양으로 묶어줄까?" 결국은 울음 대신 웃음이 피식 하고 터져버립니다. 고마워. "현태야 바.바로 약국 요앞이니까. 내가 약 사올께!" 정말 고마워 구해찬. "예봄이 니가?" 나 생각해줘서. 배려해줘서 "응! 얼른 갔다올께!" 나는 그것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벅차. 너무, 행복해. \ 후시딘이랑 데일밴드랑 소독약. 이정도면 되겠지요? 나는 저 세 개가 담긴 하얀 약봉지를 앞뒤로 흔들며 펜션 문을 열었습니다. "아씨. 쌌다!" "어? 쌌지 너 분명 쌌지." 펜션 마루에는 여민이와 예나언니가 무언가에 열을 올리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뒷면이 굉장히 빨갛고 엄지손가락 만한 작은 카드를 들고는. "언니. 뭐해?" "예봄이 왔네. 너도 고스톱 한판 칠래? 아. 넌 모를려나?" 고스톱? 그게 뭐지? 고스톱이라. 굉장히 호기심이 드는 단어였어요. 처음 듣는 단어였거든요. 무슨 게임인것 같은데. 포커와 비슷한건가? 왠지 모르게 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들어요. 하지만.... 나는 손에 들린 약봉지를 내려다 봅니다. 그래요, 일단 현태 상처부터 덧나지 않게 치료하는게 우선이라구요. "아니야. 근데 언니 현태는?" "잠깐 바람 쐬러 나갔어." "아아." 고개를 끄떡이며 현태를 찾으러 나서려는 찰라. 갑자기 생각난 그녀석 때문에 나는 다시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런데 구해찬은?" "개도 바람쐬러. 아 예봄아 구해찬 만나면 빨리좀 오라고 전해줘." "으응." 달칵. 하고 현관문을 돌려 열자 시원한 바닷바람이 순간, 훅 하고 콧속으로 밀려 들어왔습니다. 여름치고는 굉장히 차가운 바람이였지만 가슴이 뻥 뚫리는것 같은 기분에 싫지만은 않았어요. "구해찬?" 내가 펜션을 나와 구해찬과 마주친건 얼마 안돼서 였어요. 그러니까 펜션에서 열걸음도 채 옮기지 않았을때즈음 이였으니까요. "어디가?" 주머니에 푹 손을 찔러 넣은채 녀석이 나를 향해 물었어요. "현태 찾으러 가. 너는?" 순간, 착각이였을까요. '현태'라는 말에 구해찬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렸던건. "보면 몰라?" "으..응?" "비켜. 나 추우니까." 이내 삐딱하게 나를 바라보더니 어깨를 툭 치곤 지나쳐버립니다. 으으. 또 왜저러는거에요 도대체 정말! 나는 구해찬의 등에 대고 '구해찬! 오늘 정말 왜그래?' 라고 소리치려다가 꾹 참고는 대신 아까부터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을 조용한 목소리로 내뱉었어요. "구해찬!!!!" "..........." "아까. 고마웠어. 고마워. 정말 많이." 뭐, 물론 구해찬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말이에요. 치. 대답해주면 어디가 덧나나! 괜스레 입을 삐쭉 내밀고는 펜션 대문을 엽니다. 그리곤 첨벙 첨벙 거리며 부셔지고 있는 파도를 보며 현태를 찾아 걷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또 얼마나 바닷가를 걸었을까요. 얼마가지 않아 모래사장에 앉아있는 현태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조용히 그런 현태 옆자리에 앉아요. "......" 인기척이 나자 내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현태. "어? 예봄아" "응. 여기서 뭐하고 있어?" "그냥 조금 답답해서 바람쐬고 있었어. 너는 왜?" 대답 대신 약봉지를 흔들어 보이자 피식 하고 웃어보여요. 그리곤 내손에 들린 약봉지를 가져가는 현태였어요. "고마워." 밤바람은 정말 상쾌했어요. 그래서 나도 모르게 향긋한 바다내음이 코에 닿자 스르륵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차가운 바다 바람은, 살랑거리며 머릿카락을 흔들어요. "예봄아." "응?" "니가 좋아하는 사람." 현태의 갑작스러운 말에 나는 스르륵. 하고 감고 있던 눈을 떴어요. "......." "구해찬 맞지?" "어..?" 순간, 심장이 빠르게 뜁니다. 아무도 몰라야 해요. 내 마음은. 그 누구한테도 들키지 말아야 하는데, 어째서 현태는. "아.아니야! 무슨..소리를 하는거야!" 알고 있는 걸까요. 누군가가 커다랗고 단단한 무언가로 내 머리를 쿵 하고 친 듯한 느낌이에요. 가슴이 첨벙첨벙 거리는 파도처럼 철렁 거렸습니다. "그냥, 알꺼 같았어." ".........." "구해찬 행동 하나하나에도 움찔거리면서 반응하고 신경쓰여 하는 니 모습에서." ".........." "니 마음, 알꺼 같았어." 참 이상하죠. 그순간은 정말이지 끝까지 아니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어요. 그동안 숨겨오고 참아왔던게 힘들었던걸까요. 서러웠던걸까요. 나는 현태의 목소리에 터져나오려는 울음을 꾸역꾸역 삼켰습니다. 마음이, 아팠거든요. "현태야" "응?" "나 한국에 와서 달라진게 뭔지 알아?" 여전히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지만 나는 씩씩하게 웃어 보입니다. "뭔데?" "씩씩해졌어. 힘들어도 안 힘든척, 슬퍼도 안 슬픈척, 아파도 안 아픈척, 사랑해도 사랑하지 않는척." ".........." "나 그렇게 씩씩하게 지내는법을 배웠어. 그러니까 난 괜찮아." 난 정말 괜찮아. 그래 괜찮아. 괜찮을거야. 괜찮아야만해. "바보. 그건 씩씩한게 아니잖아." "아냐! 그러니까 나 신경쓰지마. 나 그 두사람 방해하고 싶지 않아." 내말에 현태가 피식 하고 웃어 보여요. 그리곤 큰 손으로 내 머리를 마구 헝크러 트려 놓습니다. 나는 그런 현태를 따라 웃으며 입을 열었어요. "언니랑 구해찬, 그렇게 먼 길을 돌아 왔던만큼 행복하길 빌꺼야. 나. 그럴꺼야." 꼭, 그럴꺼야. 37 "어? 니네 여기있었네? 뭐해?" 잠시 우리 사이로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현태가 조금은 씁쓸하게 웃어보였을때 즈음. 타이밍 좋게도 어디선가 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산책을 하러 온건지 언니는 쓰레빠를 질질 끌며 우리쪽으로 다가왔어요. 그리고. "아. 그냥 얘기 좀 하고 있었어." 너무나도 당연하다는듯 언니의 옆자리에 서있는 한사람. 나는 그 한사람은 조심스레 올려다 봐요. 왠지 모르게 피곤해 보이는 얼굴. 빤히 바라보자 내 시선을 느꼈는지 삐딱히 서서 우리쪽을 바라봅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구해찬의 시선은 현태 손에 들린 약봉지에 고정되어 있었어요.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아까처럼 이내 금세 고개를 돌려버리는 구해찬이였어요. "무슨 얘기? 어라. 야 구해찬. 어디가!" 그리곤 등을 돌려 점점 멀어져 가네요. 아무리 눈치없는 김예봄이라지만, 이제서야 확실히 알겠어요. 구해찬은 지금 내게 무언가 꽁해 있는게 틀림없어요. 아까부터, 아니 오늘 하루종일. 왜 자꾸 저렇게 꽁해있는건지. "얌마. 어디가냐고!" 언니가 녀석의 팔을 붙잡고 나서야 구해찬은 귀찮은듯 굉장히 피곤한 얼굴로 대답했어요. 물론, 이쪽은 여전히 쳐다보지도 않은채. "담배사러." "나도 살꺼 있는데. 같이가자. 구해찬." 구해찬의 대답에 나는 엉덩이에 붙은 모래를 탈탈 털며 일어섰습니다. 뭐랄까. 그냥 그랬어요. 그순간에는 무슨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구해찬의 화를 풀어줘야 겠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거든요. 허자만 구해찬은 그런 나를 빤히 내려다 보다가 그냥 말없이 다시 걸음을 옮깁니다. 정말 왜 그러는거야. "쟤 왜저래? 오늘 하루종일." 구해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꽤나 걱정스럽게 말하는 언니. 나는 좌우로 고개를 저어댈뿐 이였어요. "모르겠어. 나 갔다올게. 언니, 현태랑 같이 먼저 들어가있어!" "응. 알겠어." "뭐 사올꺼 없어?" "응. 없어. 아니다, 약 하나 사와. 두통약." 아. 맞다 두통약. "으..응 알겠어." 왜 그생각을 못했지. 아까 분명 구해찬 머리가 아프다고 했었는데, 약국 가면서 그것조차 생각해내지 못했어. 나는 깊은 한숨을 푹 쉬며 이제는 조그맣게 보이는 구해찬에게 무작정 뛰어 가기 시작했어요. 모래위로 짙게 깔린 어둠이 길다란 그림자를 만듭니다. "구해찬!" "........." "구해찬. 잠깐 기다려!" 다리가 길어서 어찌나 걸음 보폭이 넓은지, 그런 구해찬을 따라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였어요. 그래서 나는 정말 죽을힘을 다해서 녀석을 쫓아갔습니다. 그때까지도 구해찬은 야속하게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어요. "구해찬." 손을 뻗어 다을듯 말듯, 한참 실갱이를 벌이다가 결국 기어코 녀석의 옷자락을 잡는데 성공했습니다. 그제서야 구해찬의 걸음이 타악 하고 거짓말처럼 멈춰버렸어요. 그리곤 나를 빤히 바라봅니다. 무어라 이야길 꺼내야 하는데 목 끝까지 차오르는 숨 때문에 나는 말 대신 거친 숨만 내뱉었어요. 그러길 30초. 어느정도 진정이 된 나는 천천히 숨을 고르고. "너 정말 왜그래. 너야말로 나한테 화났어?" "..........." "아까 기차에서 재미나게 놀았으면서 왜 자꾸 기분이 오르락 내리락 변하는거야. 화가 났으면 말을해야될꺼 아냐." 하지만 한참동안 아무말도 하지 않습니다. 둥그런 눈으로 차갑게. 정말 차갑게 나를 바라볼뿐. "너는." 그렇게 침묵을 지키던 녀석이 마침내 입을 연건, 그 뒤로 짧지만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 지났을 무렵이였어요. "나는 뭐?" "모두 다 장난이였잖아." "무슨소리야? 장난이라니." "나 좋아한다는거." 그순간은 말이죠. 쿵 하고 심장이 내려 앉을것만 같았어요. 그건, 차가운 이아이의 목소리 때문일지도 모르고, 이아이 입에서 내 마음이 거론됬다는것 때문일지도 모르고, 내 진심을 뜬금없이 '장난'이라고 단정짓는 이아이 때문일지도 몰라요. "무슨말을 하는거야 구해찬." "김예봄은 지금." "어." "이현태가 좋아진거잖아." "뭐...?" "그럼 나한테 진심이라고 말했던거 그건, 장난이였던 거잖아." "........." 녀석은 아무런 감정 없는 투로, 차갑게 말을 이어 갑니다. ....... .................. "이현태랑 잘해봐." 어떻게 이렇게 말할수 있을까요. 사람이 사람 마음을 어떻게 이렇게 짖밟을수 있고, 상처 줄수 있는걸까요. 내가 누구 때문에. 누구 위해서 그렇게 숨겨워고 참아왔던 감정인데. 내 마음에 멍 들면서 까지 힘겹게 지켜왔던 건데. 왠지 모를 서러움에 눈가에 눈물이 한가득 고여듭니다. "...하지마." "............." "그렇게 함부로 말하지 말란말야! 구해찬!" 나는 화를 짖누를수가 없었어요. 도저히 참을수가 없었어요. 실망이였고. 구해찬이란 사람이 너무 미웠어요. 너무너무 미워요. "그러는거 아니야 구해찬. 너한텐 아무것도 아닐지 몰라도 나한텐 아니야. 나한테는 소중한 감정이라구. 왜 그렇게 쉽게 말해. 왜 그렇게 쉽게 내 감정 무너트려. 넌 정말 나쁜사람이야. 세상에서 제일 나쁜사람이라구!!!!" 결국은, 볼을 타고 흘러 내리는 눈물들은 뚝뚝 발밑에 눈물자욱을 만들어 냅니다. "김예봄." 나는 뒤돌아 서려는 내 팔목을 붙잡은 구해찬의 손을 내려다 봅니다. 속상해요. 마음이 아파요. 정말 너무너무 아파요. "놔줘. 갈래." "예봄아." 다시 한번 붙잡는 구해찬의 손길을 뿌리치고는 무작정 반대편으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한걸음, 한걸음 옮길때마다 눈가에 고여있던 눈물들이 운동화를 적셔요.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요. 뒤편에서 구해찬의 발걸음 소리가 점점 빨라지더니 이내 내 앞을 가로 막는 구해찬이였습니다. 그리곤 녀석은 두 손으로 내 어깨를 막아섰습니다. "그럼 나보고 어떡하라는거야." 말을 마치곤 나를 빤히 바라봅니다. 그아이의 눈동자에 울고 있는 내가 담겨요. 천천히 흔들리는 녀석의 눈동자. "신경쓰여." "뭐...?" "니 행동 하나하나 다. 신경쓰여 미치겠다구. 니가 이현태랑 같이 있으면 화나. 짜증날정도로 화가 나 죽겠어. " "..........." "나도 이런적, 처음이야. 내가 왜 이런지 모르겠다고." 잠시 침묵. 그리곤 해찬이의 깊은 한숨. "김예봄." "응" "좋아하는 감정." "........." 나는 지금 이순간, 구해찬이 무슨말을 꺼내려고 하는건지 잘 몰라요. 하지만 확실한건 그순간. 여기까지, 내 심장까지 느껴졌다는거에요. .....이 아이의 진심이. "그 사람이 괜히 신경쓰이고.." "......." "모든일이든 함께 하고싶고, 딴사람이랑 있으면 질투나고.." "무슨소리 하는.." "하루에도 수십번, 핸드폰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그사람 연락 기다리고. 기다리게 되고 기대하게 되고" "........." "자꾸만 생각나고. 보고싶고, 보고있으면 당연한듯 심장이 뛰고 하루가 행복해지는거 이거." ".........." "이거 맞지." "......." "김예봄. 대답해." "그래. 맞아." 구해찬은 지금 도대체 무슨말을 하려는걸까요. 알수없는 말만 늘어놓더니, 흔들리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봅니다. 그리곤 또 다시 깊은 한숨과 함께 천천히 고개를 숙여요. 여전히 구해찬의 두 손은 내 어깨를 꽉 잡고 있었습니다. "빌어먹을." 그리고 그때였습니다. 한참을 무언가 머뭇거리던 녀석이 떨리는 목소리로 조심스레 입을 연건, "김예봄 역시,...나." "............." ... ............. "너가 좋아진걸까." \펜션 '김예봄 역시...나.' '너가 좋아진걸까.' 아까부터 자꾸만 구해찬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윙윙 거려요. 고장난 라디오처럼 수십번이 반복되고 반복되죠. 도리도리 고개를 저으며 베게에 얼굴을 푸욱 묻어버립니다. 심장이 고장났나봐요. 자꾸만 숨차게 뛰고 있어요. "예봄아. 진짜 안먹어?" 그때, 별안간 언니가 방문을 벌컥 열어재끼며 묻습니다. 언니는 손에 들린 먹음직스럽게 익은 오징어를 흔들어 보여요. 아무래도 이렇게 시끄러운 것으로 보아, 술판이 벌린 모양입니다. "응. 피곤해서 그냥 잘래." "조금이라도 같이 먹지. 아무튼 알았어!" 이내 달칵. 하고 방문이 닫히자 나는 다시 베게에 얼굴을 푸욱 하고 묻어버려요. '너가 좋아진걸까' 그순간은 정말이지, 나 아무말도 할수 없었어요. 이런 표현 굉장히 유치하지만 정말로. 진심으로. 심장이 멈쳐버릴것만 같았거든요. 빼꼼히 문틈새를 바라봅니다. 구해찬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기분이...이상해." 자꾸만 얼굴이 화끈거리고, 심장만이 아니라 온몸이 떨리고, 생각나고 웃음이 나고. 정말 이상해요. 내가 아닌것만 같아요. ".........." 사실, 난 알아요. 구해찬이 아까 모래사장 위에서 했던말. 그 가슴 떨리던 말은 구해찬의 진심이 아니라는거요. 단지 구해찬은 지금 혼란스러워 하고 있는것 뿐이고, 아직 자신의 감정을 모르고 있는거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 라는거 알고 있어요. 믿으면, 믿게 되면 상처 받을 사람은 결국 나라는 사실도. 그런데도 나, 지금 자꾸만 주체할수 없을정도로 웃음이 터져요. 나는 자꾸만 입가에 삐죽 나오는 웃음을 겨우 멈추곤 그대로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왠지 모르게 오늘은 좋은꿈을 꿀 것 같다는 기분 좋은 예감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그때까지 나는 정말 알지 못했습니다. 내가 기분 좋은 꿈을 꾸며 자고 있을 동안, 거실에서 일어나게 된 엄청난 사건을. 틀어진 감정들을. 단 하나도, .. .... 이거 팬까폐에서만 연재하는 특권소설인디 너무 눈팅족들 많아여 !!!! ps-40편부터 완결까지 ~ 이번 주말에 못올릴수도 있을듯 해요.ㅠㅠ; -------------- §가그린§ (godqhrgkehfhr@hanmail.net) 플티〃가그린〃소설 (http://cafe.daum.net/Gagrin) -------------- ※헬리오토로프는 5월 24일의 탄생화로 사랑이여 영원하라 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38 "야 김예나. 그게 말이 되냐? 너 지금 그게 할소리야?" "어. 할소리니까 비켜줄래." 얼마나 잤던걸까요. 나는 거실에서 들려오는 언니와 황여민의 목소리에 잠에서 깼습니다. 그만큼 두 사람의 목소리가 굉장히 컸거든요. 그래서 나는 힘겹게 잘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들어올렸죠. 이미 아침이 된듯, 창문에는 눈부시게 따스한 햇살이 걸쳐 앉아 있었습니다. "너 지금 혼자 가겠다는게 말이나 되냐고. 다 같이 놀러온건데," 무슨일이지? 영문을 알수 없는 여민이의 말에 나는 침대에서 일어서서 문쪽으로 다가갔어요. "니들끼리 놀고 싶으면 더 놀면 되잖아. 난 도저히 더 이상 여기 못있겠다고." "야 김예나. 너 그게 지금 무슨 억지야." "갈꺼야. 갈꺼라고. 가게 좀 내버려 두라고!!!'"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걸 느끼곤 손에 꽉 쥐고 있던 문고리를 그제서야 돌립니다. 그러자 자신의 짐가방을 들고 신발장에서 신발을 신으려는 언니가 눈앞에 보였어요. 문을 열자마자 나는 그런 언니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언니..." ".........." 그러자 내가 어디가? 라고 다음말을 잇기도 전에 언니는 나를 차갑게 바라보더니 이내 문을 쾅 하고 닫아버렸습니다. "야. 김예봄. 너희 언니 왜저러냐? 갑자기 잘 놀다가 저래." 도대체 알수가 없다면서 언니를 따라 가는것 대신 쇼파에 털썩 하고 앉아버리는 여민이. 나는 그런 여민이를 바라보다가 거실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거실은 한마디로 엉망진창이였어요. 여기저기 술병들, 과자 봉지들. 치킨상자들이 지저분하게 널려있었거든요. "밤새 술마신거야?" "응. 나 피곤해애" "현태는?" "조기 방에 뻗었어." "구해찬은?" "몰라. 술 먹다가 김예나랑 나가더니 김예나만 들어와서 갑자기 저지랄 하는거 있지? 둘이 뭔일 있었나." 여민이는 말을 마치곤 '후아암' 하고 입이 찢어질듯 하품을 합니다. 그리곤 쇼파에 그대로 기대듯 누워버려요. 나는 휴 하고 한숨을 내뱉었어요.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하나도 이해가 가질 않았거든요. 정말 여민이 말처럼... 언니랑 구해찬 사이에 무슨일이 있었던 걸까요? "황여민. 자면 어떡해. 언니는!" "몰라아. 그 고집 센 기집애 알아서 하라그래. 난 일단 좀 잘래." 뭐라 할 틈도 없이 막무가내로 눈을 감아버립니다. 장담하건데 분명 황여민은 내가 흔들어 깨우더라도 일어나지 않을거에요. "하는 수 없지." 이러면 나라도 찾으러 가는 수밖에요. 아직 잠이 완전히 달아나지 않았는지 눈에 피로가 몰려 왔지만 나는 두어번 눈을 비비곤 신발을 신었어요. 흐음.. 구해찬은 또 어딨는 거고. 언니는 어디로 간걸까요. 쓰레빠를 질질 끌며 나와. 아침이라 그런지 꽤나 쌀쌀한 날씨에 가디건을 여밉니다. 그렇게 어서 언니를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재촉하려는데 "일어났어?" "엄마야!" 전자는 대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나를 발견한 구해찬, 후자는 갑작스러운 구해찬의 등장에 깜짝 놀라 바보처럼 소리를 질러버린 김예봄 이였습니다. "엄마는 왜 불러." 피식 하고 웃으며 안그래도 자다 일어난 덕에 괴물머리처럼 헝크러져 버린 내 머리를 또 다시 평소처럼 헝크러 트려 놓는 구해찬이였어요. 이 아이 아무렇지도 않은걸까요. 나는 아직도 어제일 때문에 이렇게 얼굴조차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겠는데 말이에요. "어.? 아니. 그냥...깜짝 놀라서" 그래도 용기내서 슬그머니 올려 다 본 녀석의 얼굴은 무언가 굉장히 피곤한듯 지쳐 보여 있었습니다. 밤을 새서 그런가. 피로회복제라도 사줘야 겠다는 생각으로 뒤돌아서려는 순간, 문득 생각나버린거죠. '몰라. 술 먹다가 김예나랑 나가더니 김예나만 들어와서 갑자기 저지랄 하는거 있지? 둘이 뭔일 있었나.' 짜증섞인 여민이의 말이. "저. 구해찬" 나는 조심스레 구해찬의 옷자락을 잡고 묻습니다. 내가 꽉 쥐고 있는 자신의 옷자락을 빤히 내려다보다가 다시 내게로 향하는 녀석의 시선. "왜?" "어제." ".........." "언니랑 무슨일 있었어...?" 그 순간은 말이죠. 언니랑 구해찬이 무슨일이 있었던거구나. 라고 알아차릴수 있었어요. 그만큼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구해찬의 표정이 확 굳어버렸거든요. "응." 아무말도 해주지 않을꺼라는 예상을 깨고 구해찬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어요. 물어 본 내가 민망할만큼 당당하게 말이에요. "무슨일...?" "솔직해지기로 했어." "어..?" "그래서 개한테 다 말했어. 지금 내 마음. 그게 다야." 순간, 불안한 기분이 엄습해 왔어요.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녀석에게 재차 묻습니다. 제발 내가 생각하고 있는것이 아니길 바라며. "그게...뭔데?" "어제 너한테 했던말." 하지만 야속하게도 구해찬 입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 나온 말은 김예봄이 아니길 바라는 그것이였습니다. 순간, 무언가 덜컹 하고 내려 앉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쿠웅 하고. "............" 이건, 김예봄의 심장이 떨어지는 소리. "김예봄." ".........." "김예봄 너 어디가!" 그리고 이건. 김예봄이 죽을힘을 다해 달리는 소리. \기차역 "언니! 예나언니!"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내쉬며 매표소에서 언니를 찾아보지만 언니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어요. 어딜 간걸까요. '어제 너한테 했던말' 한숨을 푹 쉬며 역 부근에 마련된 의자에 털썩 하고 앉아버립니다. 정말 구해찬은 구제불능이라구요. 아마, 언니는 많이 상처 받았을꺼에요. 그래서 아침에 그렇게 나를 차갑게 바라봤던걸지도 몰라요. 괜스레 미안함이 앞섭니다. 이도저도 아닌 감정 전하기로 언니에게 상처만 주고 말았네요. 내 자신이 너무 미워요. "그러는게 아니였는데..." 그래요. 그러는게 아니였어요. 언니와 구해찬 사이에 끼어드는게 아니였어요. 언니와 구해찬의 마음을 확실히 안 이상, 그때 바로 내 마음을 접었어야 했어요. 그렇게 상처 받기 싫다면서도, 구해찬에 대한 마음을 그대로 간직하지 말았어야 했어요. 결국은, 언니나 구해찬이나 이 못난 김예봄으로 인해서 혼란스러워 지고 말았으니까요. 언니가... 나 때문에.... "........." 많이..상처 받았을까요. "언니....?" 그렇게 복잡한 마음으로 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길 얼마나 됬을까. 순간 스치듯 보인 언니의 모습에 나는 일어섰습니다. 분명, 언니였어요. "언니! 예나 언니!" 표를 확인하다가 내 목소리에 뒤돌아 서는 언니. 나는 그런 언니가 행여나 사라질까 있는 힘을 다해 언니에게로 뛰어갔어요. "언니..." 하지만 내게 돌아오는건 언니의 차가운 시선뿐이였습니다. 무어라 말을 해야 하는데 처음 느끼는 언니의 차가운 태도에 나는 그대로 굳어 아무말도 할수 없었어요. 입이 잘 떼어지지 않았어요. "그동안 재밌었겠다. 너." 한참의 침묵 후, 먼저 말문을 연건 언니였습니다. "응...?" "구해찬이 나 좋아한다는 소리에 좋아하면서 기대한 내 모습 보고 진짜 재밌었겠네." "그런거 아니야 언니. 왜그래. 응?" "왜그러냐구? 너 지금 왜그러냐고 했어?" 참을수 없다는듯 분노로 부르르 떠는 언니였어요. 그순간은 말이죠. 정말 가슴이 아팠어요. 언니 눈에 가득 고인 눈물이 한방울, 한방울 떨어질때마다 날카로운 무언가가 내 심장이 닿는것 같았어요. "어제 술먹고 나가서 구해찬한테 고백했어. 그랬더니 아니래. 자긴 이제 아닌거 같대. 나는 구해찬 좋아하는거 이제야 알아버렸는데, 구해찬은 날 좋아하는게 아니라는걸 이제야 알아버렸대. 그래버렸대." "............." 하염없이 흐르는 언니의 눈물. 말하기 버거울정도로 그렇게 언니를 적시고 있었습니다. 눈물은. "다르대. 너랑 나랑 다르대. 나는 익숙함일 뿐이래. 그렇게 마음이 쉽게 변할수 있냐고 하니깐. 아니래. 마음이 변한게 아니라 몰랐던거 같대. 내가 없으면 허전하고 보고싶어서 내가 올때까지 기다릴건데, 니가 없으면 구해찬은 한동안 아무것도 못할거 같대. 그러다가 결국 니가 어디에있든, 무슨일이 있든 찾을꺼래. 그래서 김예나랑 김예봄은 다른거 같대..." 벽에 기대 스르륵 주저 앉아버리는 언니. 무릎에 얼굴을 묻고는 어린아이처럼 엉엉 하고 울음을 터트립니다. ... .......... "니가 미워." "..........." "정말 미워 죽겠어.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어. 니가 없었더라면 이런일도 안생겼을꺼야... 나 지금 너한테 모든걸 빼앗겨 버린거 같아. 엄마도. 친구들도. 구해찬도." 그런게 아니야 언니. 그런거 아닌데. 나는 한번도 그렇게 생각한적 없는데. 그럴려 하지 않았는데. 그러고 싶지 않은데... "언니...." "갈꺼야. 붙잡지마. 한번만 더 붙잡으면 나도 내가 널 어떻게 할지 몰라." 내말에, 별안간 일어서서 손등으로 벅벅 눈물을 훔치곤 그대로 돌아서 버리는 언니였습니다.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빼앗은거 아니라고, 한번도 그런 생각 해본적 없다고. 붙잡고 싶었어요. 그렇게 가지 말라고. 그렇게 나한테 차갑게 등 돌리지 말라고. 하지만 나는 말할수도, 붙잡을수도 없었습니다. 그저 멀어지는 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털썩 하고 의자에 쓰러지듯 앉아서 땅바닥으로 고개를 푹 숙일뿐. 내가 잘못한걸까요. 나는 그저 함께 있어서 좋았던것 뿐이에요. 엄마도, 언니의 친구들도, 구해찬도. 모두 내게 따스하게 웃어줬으니까요. 존 이후로, 처음으로 따스한 감정을 느꼈으니까요. 나는 단지 그뿐이였는데. .... "우네." 그때, 그러니까 눈가에 고여있던 눈물들이 뺨을 타고 흘러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는걸 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데, 거짓말처럼 그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왜 울어." 슬며시 고개를 들자 내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한쪽손가락으로 눈밑의 눈물을 닦아주는 그아이. 왜였을까요. 그순간 참아왔던 울음이 한꺼번에 터져버렸습니다. "김예봄" "........" "한참 찾았잖아. 걱정되서." 아마 녀석은 나를 찾아 이곳까지 온 모양입니다. 자꾸만, 자꾸만 흐르는 내 눈물을 자꾸만, 자꾸만 닦아주는 구해찬. 나는 가만히 있다가 그런 구해찬의 손길을 뿌리쳐요. "나 좋아하는거 아니야." 그리곤 조심스레, 눈물섞인 목소리로 녀석에게 말하죠. "뭐?" "너 나 좋아하는거 아니라고." 모든건 제자리로 돌아가야만 해요. 나는, 꼭 그래야만 했습니다.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지금 언니를 힘겹게 하는, 그리고 구해찬을 힘겹게 하는 그 감정들의 정답을. 두사람은 잠시 엇갈린것 뿐이라는것을. "그거 지금 니가 헷갈리고 있는거야. 언니랑 나랑 닮아서. 지금 혼란스러운거야. 오랫동안 좋아해서. 그래서 마음이 지쳐서 그래서 그런것 뿐이야. 그거 니 진심 아니야. 그러니까 잠깐동안의 감정에 헷갈리지마" 알수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녀석. 자신의 감정에 혼란스러운건지. 내말에 가 난건지. 나를 빤히 응시합니다. 그런 구해찬을 바라보며 나는 힘겹게 말을 이어나갔어요. "언니 잡아. 이 바보야" 그건, 생각보다 꽤 힘든일이였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심장에서 밀어보내는건 말이에요. \다음날 어젯밤. 구해찬과 그렇게 헤어지고 기차를 타고 집에 도착했을땐 꽤나 늦은 시각이였어요. 나는 언니와 이야기를 좀 더 하고 싶었지만. 언니의 굳게 닫힌 방문은 엄마가 와서도 열리지 않았어요. [그랬구나. 어제 갑자기 말도없이 사라져서 걱정했었어. -이현태]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현태와 여민이에게 먼저 가서 미안하다는 문자를 보냈는데 정확히 3시간정도가 지난 지금, 현태에게 답장이 왔어요. 나는 현태에게 답장을 보낼까 하다가 그냥 핸드폰 플립을 닫고는 침대에서 일어섰습니다. '언니가 많이 아픈가봐 예봄아. 잘 챙겨주렴. 엄마 오늘은 오후에 일찍와' 그건, 출근 하기 전 내게 건낸 엄마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오늘은 시간 비워둬. 엄마가 할얘기도 있구' 엄마는 어쩐지 오늘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 보였어요. 무슨얘기를 하려 하시는걸까요. 아무튼간에 나는 벽 위에 걸려져 1시를 가리키고 있는 시계를 한번 보곤 침대에서 일어서서 부엌으로 향합니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아무것도 못먹은 언니에게 죽이라도 끓여줄 생각으로 말이에요. "..........." 문득, 꾹 닫혀져있는 언니의 방문을 바라봅니다. 지금 언니는 많이 아픈 모양이에요. 몸도. .....마음도 "야채가 어딨더라." 이내 나는 타악. 하고 냉장고 문을 열어서 몇가지 야채들과 참치를 꺼냈습니다. 그리곤 최대한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하며 도마를 꺼냈죠. 그러니까 인터넷에선 분명 이렇게 양파, 감자, 버섯, 당근을 차례대로 잘게 썰라고 했는데.... 칼질이 서툰지라 감자, 버섯을 써는데만 엄청난 시간이 소비되는 김예봄이였어요. 하지만 나는 조심조심 정성껏 야채를 다듬었습니다. 언니가 맛있게 먹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말이에요. 그래서 그런지. 그런데로 야채는 잘 다듬은것 같아요. 뭐 물론, 양파를 썰때는 정말 칼질을 할때마다 올라오는 진한 양파향 때문에 눈물 콧물 다 뺐지만 말이에요. "팬에 이렇게 참기름을 두르고." 뜨겁게 달구어진 팬에 참기름을 두르자 지글지글 거리며 고소한 냄새가 확 풍겨져왔어요. 나는 그곳에다가 썰어놓은 야채를 부었습니다. 그리곤 들들 야채를 볶았어요. 그렇게 야채롤 볶고 그 다음은 찬밥을 넣고 그 다음은 물이 잠기도록 넣고, "걸쭉해질때까지 휘젓기!" 인터넷에서 본 내용을 더듬어봤을때, 이다음은 분명 걸쭉해질때까지 휘젓는것이였습니다. 꽤나 고소하게 풍겨오는 냄새에 나는 괜스레 뿌듯해 하며 밥알과 야채들이 잘 섞이도록 계속해서 휘젓고 있는데 [김예봄. 있다가 잠깐 만나 -구해찬] 주머니 부근에서 느껴지는 드르륵. 거리는 짧은 진동. 나는 플립을 열어 문자를 확인하자마자 다시 핸드폰 플립을 닫아버렸어요. 그리곤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듯 주머니에 도로 핸드폰을 집어 넣곤 다시 주걱으로 밥을 저었어요. .... ........... 그아이에게서 무뎌지기. 이건, 내가 선택한 첫 번째 방법. 하지만, 나는 쉽게 그럴수 없는 모양이에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정작 그 문자에 정신이 팔려 죽을 다 태워먹을뻔 했으니까요. '잊자. 김예봄 잊자. ' 주문처럼 외우곤 나는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죽을 그릇에 담았습니다. 이렇게 보니 괘나 먹음직 스러워요. 마지막으로 이렇게 김을 죽 위에다가 솔솔 뿌리면 김예봄표 죽 완성입니다. 완성된 죽은 처음 만든것 치고는 꽤나 만족스러웠어요. 나는 정성껏 끓인 죽과 몇가지 김치를 그릇에 옮겨 담고는 쟁반을 들었습니다. 그리곤 망설임없이 언니의 방문앞에 섰어요. ".........." 그런데, 정작 언니의 방문앞에 서자 왜 이렇게 망설이게 되는건지. '니가 미워.' '..........' '정말 미워 죽겠어.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어. 니가 없었더라면 이런일도 안생겼을꺼야... 나 지금 너한테 모든걸 빼앗겨 버린거 같아. 엄마도. 친구들도. 구해찬도.' 어제 어린아이처럼 울어버린 언니의 모습 때문이였을까요. 나는 쉽사리 문고리를 돌리지 못했어요. 문고리에 자꾸만 손을 올려놓았다가 내려놓았다를 반복하기만 했죠. 그러길 얼마나 지났을까요. 이내, 결심한듯 나는 조심스럽게 문고리를 돌렸습니다. 그순간, 달칵. 하는 소리가 왜 그렇게 크게만 들리던건지 "언니..." 언니는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다가 내가 방에 들어오자 이불을 머리 끝까지 올려버리곤 등을 돌렸어요. 나는 탁자에 조심스레 쟁반을 내려놓고는 죽과 반찬들을 올려놓으며 어렵게 말문을 열었습니다. "아프다면서. 아플때 아무것도 안먹으면 안된대. 부족하지만, 죽 좀 끓여봤거든! 먹어봐 언니!" "나가..." "이래뵈도 좀 먹음직스러워보여." "나가라구" 반쯤 몸을 일으켜서 나를 노려봅니다. 언니 얼굴은 눈물이 번져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어요. 언니...지금껏 계속 울었구나. "응. 알았어 나갈게. 아. 언니 그리고 죽은 여기다가 놓고 갈게. 이따가 먹고싶을때 꼭 먹어. 식기전에 먹으면 더 좋겠지만." 그러자 내말이 끝나기도 전에 별안간 훽. 하고 이불을 걷더니 침대에서 일어서는 언니. 그건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였습니다. 언니가 그대로 내쪽으로 다가와 타악. 하고 탁자 위에 있던 죽그릇을 쳐버린건.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깨져버린 죽그릇. 그 바람에 밥알이 이리저리 방바닥에 흩어졌어요. "김예봄. 너 지금 내가 장난하는것 같이 보여?" "아니, 나는 그런게 아니라..." "그래. 나도 내가 왜 이런지 모르겠어. 너한테 화내기도 싫고, 갑자기 너한테 이렇게 변해버린 내 자신도 싫어. 그런데." "..........." "도저히 용서가 안돼. 너무 억울해." 아니야 언니. 아니야 내가 잘못했어. 내가 잘못한거야. 나는 눈물이 나오려는걸 참고는 주저앉아서 깨져버린 그릇들을 쟁반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쏟아져버린 죽들도 모두 손으로 쓸어 담았구요. "미안해 예봄아..." 그러니까, 내가 쟁반을 들고 일어섰을때즈음 언니의 조용한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아니야 언니." 나는 언니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희미하게 웃어보이곤 방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곤 내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기대어 쓰러지듯 주저 앉았어요. 행여 울음이 터져나올까 퉁퉁 부어버린 손으로 입을 꾹 막고 말이에요. 괜스레 서럽고. 마음 아프고. 미안하고. 정말 힘들어요. [문자 계속 씹지마. 잠깐이면 돼. -구해찬]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이번에도 드르륵 하고 느껴져 오는 진동. 아까와 마찬가지로 답장을 보내지 않은채 핸드폰 플립을 닫으려고 하는데 또 다시 한번 드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액정에는 '메세지가 도착했습니다' 라는 문구가 떴습니다. [나 이제 너희 집 앞 놀이터다. 올때까지 기다릴게. -구해찬] .... 39. '땡' 하고 1층에 도착했다는 도착음이 들리며 엘리베이터 문이 스르륵 열립니다. 결국은 올때까지 기다린다는 구해찬의 말에 아파트 입구로 느릿느릿 나온 김예봄이었습니다. 쓰레빠를 질질 끌며 나는 꽤나 힘없이 구해찬이 있다는 놀이터 쪽으로 걸음을 옮깁니다. 느닷없이 무슨 할말이 있다는걸까요. 그녀석. "..........." 놀이터는 텅 비어 있었어요. 원래 이맘때쯤이면 어린아이들이 흙물이 잔뜩 든 손으로 이곳에서 시끌벅적 하고 있을 텐데 말이죠. 아마 조금 늦은 시간이여서 그런가봐요. 그나저나 구해찬은 어디있는걸까. 나는 텅 비어있는 놀이터를 두리번 거리며 구해찬을 찾았어요. "구해찬!" 얼마안가, 나는 벤치에 올려진 무언가를 신기한듯 바라보고 있는 구해찬의 모습을 발견할수 있었습니다. 살짝 허리를 굽혀 그 무언가를 손가락으로 툭 건드려보는 녀석. 얼마나 그것에 열중인지 내가 분명 자신의 이름을 불렀음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여전히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휴. 한숨을 내쉬며 할수 없이 나는 구해찬에게로 다가갔어요. 그리고 그제서야 볼수 있었죠. 구해찬에게 가려서 보이지 않았던 그 '무언가'를 "어? 이게 뭐야?" "언제왔어?" "방금. 근데 이거 뭐야? 예쁘다." "예쁘지?" 어느새 나도 구해찬처럼 허리를 조금 굽혀 그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어요. 아직도 내가 그것을 무언가로 부르는 이유는 정확히 이게 뭔지 나또한 알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분홍색 화분에 예쁘게 피어있는 보라색 꽃 한송이. 그건 정말이지 처음 보는 꽃이였어요. 그 꽃은 조그만한 꽃봉오리들이 수십개가 모여 기분좋은 향기를 내고 있었습니다. "응. 예쁘다. 이거 뭐야?" 하지만 구해찬은 내 물음에도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어요. 그저 가만히 화분을 바라보다가, 그곳에 시선을 고정시키곤 한참후에야 입을 뗐죠. 물론, 내 물음에 관한 대답은 아니였습니다. "어제, 너가 진심 아니라고 했잖아." "어?" 슬그머니 올려다 본 구해찬의 얼굴은 조금 빨개진것 같기도 했어요. 구해찬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은채 다른곳을 응시하면서 그렇게 더듬더듬 천천히 말을 이어 나갔어요. "그래서 하루종일 생각해봤어. 사실. 내 마음에 나도 확신이 안들었었거든." "........." "니말대로 나 지금 헷갈리고 있는건가. 혼란스러운건가. 그동안 내마음이 너무 지쳐서 그런건가." 그리고, 그제서야 천천히 녀석의 동공이 나를 담아내요. "그런데 수십번. 수백번 생각하고 생각해봐도 결론은 하나였어." "......." "지금 나, 진심이라는거." 눈이 마주치자 피식 하고 웃어보이는 녀석. "아 드럽게 쪽팔려." 그리곤 쑥스럽다는듯 머리를 긁적이다가 화분을 내미는 구해찬이였어요. 얼떨결에 나는 그 화분을 받아들었습니다. 그러자 품안에 향기가 가득 풍겨와요. 나는 참 나쁜가봐요. 아니 나빠요. 언니한테 그렇게 상처를 줬으면서도. 이제 내가 빠져주기로 했으면서도 이렇게 이기적이게 가슴 떨려 하고 있으니까요. "이건 왜...?" "너도 몰랐지. 나도 우연히 알게 됬는데 니 탄생화더라." "갑자기 이건 왜.?" "의미가 있어." "의미?" "그런게 있어." "뭔데!" "그런게 있다니까. 넌 몰라도 되." 그 의미가 뭐길래 이렇게 쑥스러워하며 소리를 지르는걸까요.? 그것만은 말해주지 못하겠다는듯 고집을 피우는 구해찬의 모습에 나는 슬그머니 다시, 화분을 내려다 봅니다. 은은한향을 내고 있는 보라색 꽃. 도대체 의미가 뭘까요? 나는 괜스레 궁금해졌어요. "구해찬." 아무튼간에 화분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나는 녀석의 이름을 부릅니다. 확실히 말해야 하니까요. 확실히 말하자 김예봄. 밀어내자. 내가 욕심낼수록 언니가 힘들어하니까. "왜?" "나는...." 하지만 나는 더이상 말을 이을수 없었어요. 왜냐구요? 구해찬이 내말을 대뜸 잘라먹었거든요. "김예봄." "응?" "니가 지금 무슨말 할려고 하는지 아는데 김예봄 나 있지. 내마음 확실히 안이상" "..............." "두번 다시 사랑때문에 아프긴 싫어." 혹시 구해찬도 그랬던걸까요. 나처럼 사랑이 무서웠었던걸까요. 다시는 사랑할수 없다고 생각할만큼 상처 받았던걸까요. 구해찬의 목소리는 분명 그렇게 느껴졌어요. 적어도 나에게서 만큼은 말입니다. "그래서 지금 나 지금." ".........." "서툴지만 최대한 용기내보는거야." 구해찬은 말을 마치곤 허리를 굽혀 평소 잘했던 버릇처럼 자신의 한쪽손으로 내 머리를 헝크러 트려 놓았습니다. 그리곤 내게로 시선을 맞춘 다음 예쁘게 웃으며 따스하게 말해요. ......정말 눈물 날 정도로 따스하게. .... ............... "더이상 우리 아프지 말자." 그래서...나는 아무말도 할수 없었던거에요. \집 책상 위에 구해찬이 준 화분을 올려 놓습니다. 그리곤 구해찬이 그랬던것처럼 살짝 손가락으로 잎을 건드려 봐요. "넌 왜 이렇게 예쁘니." 정말 꽃이 예뻐요. 나는 지금껏 탄생화 조차 모르고 있었는데, 이게 내 탄생화라니. 내 탄생화면 고로 언니의 탄생화도 되니까, 나중에 언니에게도 알려줘야 겠어요. 우리 탄생화가 이렇게 예쁜 꽃이였다고. 똑똑. 그때, 갑작스럽게 방문을 두드리는 노크소리에 나는 그대로 스톱. 멈추어버렸습니다. 혹시. 예나언닌가...? 라는 생각에 말이에요. 반사적으로 나는 구해찬이 준 화분을 뒤로 숨겼어요. 왜그랬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들어가도 되니?" 방문을 타고 오는 엄마의 목소리에 순간, 긴장했던 몸에 힘이 스르륵 하고 풀려버립니다. 엄마였구나. 나는 뒤로 숨겼던 화분을 다시 책상위에 올리곤 대답했어요. "네 엄마!" "뭐하고 있었어?" 달칵. 하는 쇳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지금 막 들어오셨는지 외출복 차림 그대로의 엄마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잠깐 밖에 나갔다가 지금 막 들어왔어요. 엄마는 언제 오셨어요?" "현관문 소리 안들렸어? 방금 들어왔지 엄마는." "아아. 못들었나봐요. 죄송해요." 요즘들어 나쁜 버릇이 생긴것 같아요. 틈만나면 쓸떼없이 생각에 잠겨 아무것도 듣지도 보지도 못하게되는 버릇 말이에요. 아마, 방금전에도 그랬을것이 틀림없어요. 온통 화분만 바라보며 그 이름도 어려운 탄생화 생각에 엄마가 들어오는 소리조차 듣지 못한거죠. 엄마는 내말에 괜찮다는듯 웃으며 내 침대에 살짝 걸터앉았어요. 그순간, 문득 떠오른거죠. '그러니까, 오늘은 시간 비워둬. 엄마가 할얘기도 있구' 아침에 엄마가 하셨던 말씀이 말이에요. "엄마. 그런데 저한테 무슨 할얘기 있으세요?" 그러자 엄마는 잠시동안 , 아무말도 하지 않으셨어요. 쉽사리 입에서 꺼내기 힘든듯 계속해서 망설이시며 침묵을 지키셨죠. 나는 재촉하지 않은채 엄마가 말하실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예봄아." "네?" 잠시후, 엄마는 어렵게 말문을 여셨어요. 잠시 흔들리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시다가, 이내. "아빠. 재혼한대." ".......네?" 믿을 수 없는, 믿기 힘든, 믿고 싶지 않은 말을 내뱉으셨습니다. 그순간은 말이죠. 정말 둔탁한 무언가로 뒷통수를 얻어 맏은 것 같기도 하고, 심장이 철렁 하고 밑바닥으로 떨어진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간에 굉장히 충격적이였어요. 그래서 한동안 말없이 멍해져 있었던것 같아요. "아..아빠가요?" "응. 어제 연락왔어." 그제서야 나는 저번에 아빠가 전화통화로 망설이던 말이 무엇이였는지 알아 차릴수 있었습니다. 아빠는 내게 재혼한다는 말을 하려고 했던 거였어요. 그랬던거였어요... "아...." "미국에 가봐야 하지 않겠니." "미국에요...?" "응 그래. 하지만 엄마는 니 의견을 존중해. 계속 한국에 있고 싶으면 그렇게 하도록 해. 그런데 아빠는 니가 미국으로 다시 왔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 "........" "그래도..엄마 생각에는 아무래도 이제 너한테 법적으로 새엄마가 생기는거니까. 한국에 있는것보다는 미국에 가서 적응할 시간을 가지는게...좋을것 같구나" 아무말도 하지 못하는 내 볼을 살짝 꼬집는 시늉을 하며 일어서는 엄마 였습니다. 가슴이 아팠어요. 특히. 엄마 입에서 '새엄마'라는 말이 흘러나왔을땐 말이에요. "잘 생각해보고 결정하게 되면 엄마한테 말해주렴." 희미하게 웃어 보이십니다. 하지만 나는 알수 있었어요. 엄마도 지금 나만큼이나 슬프고 가슴 아프다는걸. 고개를 끄떡여 보이자 엄마는 조심스레 방문을 닫고 나가셨습니다. 일순, 나 혼자 남겨진 방안, 아침부터 지금까지 잘 참아왔는데 혼자가 되자 갑작스럽게 눈물이 터져 나옵니다. 나는 정말 구해찬 말처럼 울본가봐요. 오늘은 하루종일 눈물샘이 마르질 않으니까요. 자꾸만 자꾸만 흐르는 눈물들, 떨어지기 전에 얼른 손등으로 닦아냅니다. "....재혼." 입밖으로, 조심스레 꺼내봅니다. 아빠의 재혼. 그건 너무나도 갑작스럽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더욱 내겐 충격이였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한참동안 아무생각도 들지 않았으니까요. '미국에 가봐야 하지 않겠니.' 나는 그동안 제일 중요한걸 잊고 있었던 거에요. 엄마 아빠가 이혼한 이상, 언젠가는 다시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것을 바보처럼. 아니, 사실은 잊고 있었던게 아닐지도 몰라요. 나는 외면했던거에요. 이곳에서 받은 따듯한 사랑이 너무 좋아서. 행복해서. 따듯한 사랑이... .....따스한 사랑. 나는 책상위에 올려져있는 구해찬의 화분을 한참동안 바라봤습니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요. 나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죽었다는 죄책감에 나는 늘 내 마음속에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었죠. 게다가 그 갑갑하고 어두운 공간에 내 자신까지 가두어 버렸었어요. 다신 좋아한다는 감정 느끼지 못할꺼라고 생각했어요. 나는 그럴자격이 없다고 단정지었으니까. 그런 내게, 어둠속에 나 자신을 가두었던 내게, 구해찬은 따스함을 줬어요. 눈물 날 정도로 따듯한 사랑이요. 그래서 욕심났던거에요. 조금씩, 조금씩 내 마음에 욕심내고. 내 것이 아닌것에 욕심내게 된거죠. 사실 오래전부터 이 화분의 주인은 내가 아니였던것 처럼. '지금 나, 진심이라는거.' '도저히 용서가 안돼. 너무 억울해.' 고장난 라디오처럼, 언니의 목소리와 구해찬의 목소리가 번갈아 가면서 들려옵니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는 구해찬을 밀어낼수 있을거라 생각했어요. 언니를 위해서라면 나, 충분히 그렇게 할수 있을거라 믿었어요. 그런데 아까, 막상 구해찬을 보자 나는 그럴수 없었어요. 단 한마디도 할수 없었어요. 언니의 말처럼 내가 없었더라면 서로 상처받게 될 이런일 같은건 생기지 않았을텐데, 난 왜 그렇게 내 마음에 욕심 부리는 걸까요. "............." 그렇게 한참동안, 정말 한참동안을 움직이지도 않고 화분을 바라봅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이내, 타악 하곤 무언가 결심한듯한 표정으로 일어섰습니다. 그리곤 조심스레 엄마의 방문앞으로 걸음을 옮겨요. 알게 됬거든요. 어차피 미국에 가게 될거라면...가야 한다면 "엄마. 들어가도 되요?" 최대한 시간을 앞당기는것. 그것만이 모두가 제자리로 돌아 올수 있는 방법. 행복해질수 있는 방법. ...잊을수 있는 방법이라는걸 완결까지 올려드릴려고 했는데. 힘에 부치네요. 혹혹, 주말에 완결까지 못올릴꺼 같은데, 기다리시는 분들 계실까봐 간단하게 1편 올리구 슝, 도망갑니다!!!!! ps-완결은 3편정도^^; -------------- §가그린§ (godqhrgkehfhr@hanmail.net) 플티〃가그린〃소설 (http://cafe.daum.net/Gagrin) -------------- ※헬리오토로프는 5월 27일의 탄생화로 사랑이여 영원하라 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40. "예봄이? 응 들어오렴." 조심스레 문고리를 당기자 화장대 앞에 앉아 있는 엄마의 뒷모습이 보였어요. 화장을 지우고 계셨던건지 엄마는, 크림을 얼굴에 펴 바르고 있었어요. "잠깐만." 살짝 나를 보고 웃으시더니 휴지로 얼굴에 묻은 크림을 두어번 닦으시는 엄마. 나는 엄마가 화장을 지우시는 동안 말없이 엄마의 침대에 살짝 걸터 앉았습니다. 엄마는 얼굴에 크림을 다 닦아 내시고는 살짝 웃으시며 내게 물었어요. "그래. 무슨일이야?" 막상, 말하려고 하니 하고싶은 말은 입밖으로 잘 꺼내지지 않습니다. 쉽사리 할수 없는 말이니까요. "엄마...." "응?" 잠시후, 나는 어렵게 말문을 엽니다. "나 미국에 있었을때요." "...응?" "학교에서는 분명 학교에서 공부하고 집에 가면, 엄마한테 제일 먼저 '엄마 다녀왔습니다' 라고 말하는거라고 배웠거든요. 그러면 엄마가 '다녀왔니' 라고 대답해주실거라고." ".........." "나는 잘 할수 있을거 같았는데... 학교가 끝나고 아무도 없는 집안에는 내가 인사를 해야할 엄마도, 받아줄 엄마도 없었어요. 얼마나. 정말 얼마나 해보고 싶었는지 몰라요. 남들은 뭐 그런거 가지고 그러냐고 할지 모르지만 내 소원이였거든요. '엄마 다녀왔습니다'라고 해보는거" 갑작스러운 내말에 엄마는 아무말도 하지 않으셨어요. 그저 흔들리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볼뿐이셨죠. 어렸을적 기억이 떠올라 조심스레 내 목소리도 떨려오기 시작합니다. 눈물이 나올것 같았지만 지금 이순간만큼은 울지 않을래요. "그런데요 나, 한국에 와서 그거 해봐서 너무 행복했어요. 따듯하게 인사 받아주셔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요." "미안하다 예봄아. 엄마가 일한다는 핑계로 널 잘 챙겨주지도 못했어." "아니에요. 나, 정말 한국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국에 오지 않았더라면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그 감정. 느끼지 못했을테니까요. 18년 내내 엄마한테 사랑 한번 받아봤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한국에 와서 나, 18년치 사랑 다 받고 또 20년치 사랑 미리 받은거 같아요. 고마워요 엄마. 정말 고마워." "엄마가 미안하구나...우리 딸." 눈물을 글썽거리는 엄마. 더 이상 있는다면 나 또한 정말 울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엄마에게 웃어보이곤 일어섰습니다. "그래서 나, 이제 20년은 더 버틸수 있으니까. 그냥 미국 갈께요. 보내주세요." 그리곤 뒤돌아서서 방문을 열려다가 멈칫, "미국가면" "..........." 방문고리에 손을 올려 놓은채, 그렇게 조심스럽게 마음에 있었던 말을 꺼내보는 김예봄. "많이 달라질꺼에요. 친구들도 달라질테고, 생활도 달라질테고, 집도 달라질테고, 아침밥도. 점심밥도. 저녁밥도. 입고다니는 옷들도, 언어도 모두. 그런데요 엄마. 미국에 가도 절대 달라지지 않는것도 있어요." "................." "엄마요, 엄마가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내 엄마라는 사실이요. 그건 죽을때까지 평생 약속할수 있어요." 등뒤에선 쉬지 않고 엄마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어요. 그 바람에 내 등이 다 젖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나는 한참동안, 잡고 있던 문고리를 돌리지 못했던거에요. .... 아주 오래도록. \다음날 오늘도 역시나 언니의 방문은 굳게 닫혀 있어요. 나는 방문을 열어볼까, 하다가 그만두곤 아무렇게나 신발을 구겨 신었습니다. 그리곤 현관문을 열으려는데 드르륵, 하곤 손에 쥔 핸드폰이 진동소리를 냈어요. [오빠 도착] -구해찬. "벌써?" 벌써 도착했다는 구해찬의 말에 믿을수 없어서 뒤돌아 거실벽에 걸려져있는 시계를 확인하는 나였어요. 하지만 역시나, 시계바늘은 3시를 가리키기 20분전이였습니다. 다행히도 예상했던데로 내가 늦은게 아니라 구해찬이 너무 빠른거였어요. 나는 아직까지도 많이 서툴지만 꾹꾹, 답장버튼을 누르곤 '나는 출발하려고' 라곤 아주 느리게 답장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느렸냐면요. 내가 현관문을 열고 나와선,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 도착할때까지 문자를 두들렸으니까. 이정도면 꽤나 느린거 맞죠? '1층입니다.' 안내음성이 들려오자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 플립을 닫았습니다. 이제, 이 핸드폰도 내일이면 이별이네. 핸드폰을 바라보다가 울적해진 마음으로 주머니에 쑤셔 넣습니다. 그리곤 잘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죠. 왜냐면 오늘이 구해찬을 마지막, 정말 마지막으로 보는 날이니까요. "어? 예봄아" "현태..?" 요새 들어 자주 느끼는거지만, 현태랑은 우연히 마주치는 경우가 참 많았던것 같아요. 지금도 이렇게 집앞에서 우연히 마주쳤으니까 말이에요. 생각도 하지 못했던 현태의 모습에 나는 꽤나 놀란 표정을 지으며 현태에게 다가갔습니다. 현태의 손에는 만화책이 여러권 들려 있었어요. "김예나 집에 있지?" 아마도, 현태는 언니를 만나러 온 모양이에요. 조심스레 고개를 끄떡이자 현태는 자신의 손에 들린 만화책 한권을 흔들어 보였습니다. "이거, 같이 볼려구." "아아. 그렇구나.." "너는 지금 구해찬 만나러가?" 현태가 어떻게 알았을까요? 나는 고개를 갸우뚱 거려요. "응? 어떻게 알았어?" "아까, 너한테 만나자는 연락 왔다고 엄청 자랑해대잖아. 새끼가." "아......" "그래서 나 좀 삐졌어. 예봄아" "아.아니 현태야 그게 아니라..." "기회는 동등하게 줘야지. 이건, 반칙이라구요." 입술을 삐쭉 내미는 시늉을 하는 현태. 내가 당황해서 어쩔줄 몰라 하자 피식 하고 웃음을 터트려요. "장난이야. 장난. 쫄지마세요." ".........." "나 이제 올라가봐야겠다. 다음에 보자" 그렇게 현태는 내 볼을 장난스레 툭툭 건드리고는 웃다가 짧게 손을 흔들고는 나를 지나쳐 올라가려고 했어요. 하지만 그럴수 없었던건요. 가만히 있던 김예봄의 작은손이 그런 이현태의 옷깃을 잡아버렸거든요. "응...?" 뒤돌아서서 무슨일이냐는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현태에게,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습니다. "현태야. 잠깐...시간 좀 내줄수 있어?" 내말에 고맙게도 현태는 단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물론이지 라고 대답하며 나를 말없이 따라와 주었어요. 간간히 내 표정을 살피며 장난도 치면서 말이죠. 내가 현태를 부른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왠지 모르게 현태에게만은 숨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였거든요.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현태에게만은 말해야 겠다고 생각해서 였을지도 몰라요. 그래서 나는 현태를 언젠가 함께 와본적 있는 집 앞 공원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자. 여기" 공원에 도착하자 털썩 하고 벤치에 앉고는 자신의 옆자리를 손으로 털더니 탁탁 두드려요. 나는 웃으며 현태가 깨끗하게 정리해준 자리에 앉았습니다. "이제 들어볼까?" 왜 내가... 현태에게만은 말하고 싶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꼭 말해야 할것 같았어요. 언니에게도 구해찬에게도 모두 비밀로 하기로 마음 먹었었는데 말이죠. "그러니까....현태야." "응." 내 입에서 나올 말을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현태, 나는 그렇게도 한참을 머뭇거리고 망설이다가 잠시후, 조심스레 입을 열었습니다. "나...내일 미국가." 그러자 웃고 있던 현태의 얼굴에서 차츰 웃음이 사라졌어요. "어제밤에 인터넷으로 예약했어. 내일 아침에 바로 가." "그럼 언제 다시 오는거야?" "아마도.." "............." "안올것 같아." 그러니까 이게 마지막 이라는거야. 나는 너한테 마지막이라고 말하고 싶은거야 현태야. "............" 현태는 갑작스러운 내말에 한동안 아무말도 하지 않았어요. 꽤나 충격을 받은듯 땅바닥만을 응시합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땅바닥만을 응시하던 현태의 시선이 천천히 김예봄에게로 옮겨져요. "가지마." "어...?" ... "라고 말하면 이기적인거지?" 나를 담고 있는 현태의 동공은 분명 흔들렸지만, 현태는 끝까지 내게 아무렇지도 않게 웃어줬어요. 그 모습에 나는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나올 것 같았습니다. 힘차게 고개를 저으며 나 또한 현태를 향해 웃어보입니다. "아니. 가지마." "........" "라고 말해줘서, 나한테 그런 친구가 있어서 나 지금 너무 행복해." 구해찬도, 너처럼 그래줄까 현태야. "그래도 이건, 너무 갑작스럽다 예봄아." "언니한테나 구해찬한테나 비밀로 해줘. 이거 너한테만 처음 말하는거야. 왜냐면 현태는" "............" "나한테 좋은 친구가 되줬으니까." 그러자 피식 하고 웃으며 "친구..." 라고 중얼거리듯 내뱉어보는 현태. "김예봄은 끝까지 심장에 비수를 꽂네." "아니야 그런거." "맞아 그런거." 내 말투를 흉내내며 씁씁히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섭니다. 정말 그런거 아닌데. 울상을 짓자 현태의 예쁜손이 내 등을 조심스레 밀어요.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평소처럼. "너 늦었겠다. 이제 가봐야지." "응?.." "빨리 가봐." "아...응.." 자꾸만 등을 떠미는 현태의 손. 그 바람에 내가 어정쩡하게 앞으로 몇걸음 옮기고 나서야. 등 뒤로 조심스레 현태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근데 예봄아. 미국 간다고 마지막이란 생각 버려. 너 미국 가서도 우리 충분히 연락 할수 있고 만날 수 있고..." ".........." "친구...그래 친구 할수 있으니까." 그럴수 있을까 우리. 그래도 될까. 결국 나는 눈물이 가득 고여버린 눈으로 현태를 바라보며고개를 끄떡였어요. 그러자 예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는 현태였습니다. "........" 나는 그 순간 두려워지고 무서워졌어요. 누군가와의 이별. 헤어짐이라는게. 이렇게 힘겨운것이라는거, 다시 한번 깨달았거든요. 사람들은 흔히 말해요. 시간이 지나면 노력하지 않아도, 그러고 싶지 않아도 차츰 차츰 잊혀질꺼라고. 잊을꺼라고. 하지만 그순간 느낀건요. 시간이 지나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것 또한 분명 존재 한다는 사실이에요. 그리고 내게 그건, 엄마와. 언니와. 구해찬과. 현태와. 여민이의 존재라는 사실 또한요. ** 예봄이의 모습이 멀어질때까지, 아니 보이지 않을때까지 한참을 바라보던 현태는 이내 예봄이가 보이지 않자 벤치에 털썩 하고 앉았습니다. 그리곤 녀석은 예봄이 앞이라 꾹 참고 있었던 담배를 주머니에서 꺼내 살며시 입에 물죠. "미국..." 녀석은 아직까지도 믿을수 없었습니다. 한참을 정신나간사람처럼 '미국...미국' 이란 말만 반복하다가 이런 자신이 이해가지 않는다는듯 피식 하고 웃으며 담배에 불을 붙입니다. 붙잡고 싶었지만 그럴수 없다는걸 알았고, 그렇기에 아무렇지도 않게 보내줘야 한다고 생각했던겁니다. 떠날 때 힘겨워 하지 않도록. 그것이 자신이 할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녀석은. "처음이였는데..." 짧은 시간이였지만 정말 처음으로 좋아한다는 감정을 갖게 해준 사람이였는데... 이런 자신이 우습다는듯 중얼거리며 현태는 이내 다시 담배를 깊게 한모금 빨더니, 한쪽손으로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어요. 그리고 한참의 통화음 뒤. -형아. 왜!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밝은 여민이의 목소리에 인상을 찌푸리다가 "나와." -어디? 김예나네집? "아니. 술먹자" -갑자기 왠 술? 현태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는걸 느낀 여민이가 눈치를 살살 보며 묻자 현태는 잠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어요. 또 다시, 문득 생각난거죠. 예봄이의 말이. '아마도..' '.............' '안올것 같아.' -끊긴거야? 끊겼어? "아니. 안끊겼어." 그순간, 녀석은 처음으로 눈물을 삼킨다는게 어떤지 알게 됬어요. 목끝까지 차오른 눈물을 어쩔수 없이 삼켜야 한다는게. -이현태. 너 무슨일 있어...? "응." -무슨일? "응" -뭐야. 맛갔어? "응." -어떡해 우리 현태. 미쳤네. 정신 나갔어. 여민이의 말처럼 정말로 정신나간 사람이 되는것 같았어요. 처음 느껴보는 감정을 어떻게 억눌러야 할지 몰랐거든요. "M에 있을테니까 빨리 나와." -알았어. 빨리 갈게. 그런데 정말 무슨일 있는거야?" "그냥.." -그냥 뭐? "좀 울고싶은날..." 녀석은 말을 마치곤 달칵, 하고 핸드폰 플립을 마음대로 닫아버립니다. 리곤 여민이와 만나기로 한 장소로 가기 위해 손에 들린 담배 꽁초를 바닥으로 훽 던져버렸어요. 하지만 현태의 손에서 바닥에 떨어진 담배꽁초는 꺼지지 않은채 현태가 가고 나서도 꽤나 오랜 시간동안 타올라 그 자리를 멤돌았습니다. 아주 지독한 담배연기는, ......꼭 녀석의 사랑처럼. *** 늦었다는 생각에 얼마나 빠르게 뛰엇는지 몰라요. 그러니까 숨이 턱끝까지 차오를정도로 뛰었죠. 요즘 들어서 정말 맨날 뛰는것 같아요. 이러다가 달리기 선수나 할까봐요. "구.구.구해찬!!!" 약속장소에 겨우 도착하자 살짝 난관에 걸터 앉아 지루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는 구해찬의 모습을 볼수 있었어요. 녀석의 바로 앞까지 달려갔다가 결국은 힘에 부쳐 몇걸음 못가 거친숨을 내쉬는 나였습니다. 그리고 녀석은, 그런 나를 한심하게 내려다 봤구요. "죽을래?" 물론, 구해찬 특유의 위와 같은 말을 빼놓지 않고 말이죠. "몇분 늦었어? 많이 기달렸어?!"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고 있는거냐." "말이니까 말이라고 하는거겠지. 휴 힘들다!" 겨우 숨을 고르곤 구해찬을 향해 웃어보이자 구해찬은 타악 하곤 난관에서 일어섰습니다. 어? 그런데 저게 뭐지? 구해찬이 일어서자. 구해찬에게 가려 보이지 않았던 쉐이트 2개가 눈에 띄어요. "구해찬! 나줄라고 샀어? 나 더울까봐?" "다 녹았잖아!" 차마, 수긍은 못하곤 소리를 버럭 지르는 구해찬. 하여간 구해찬은 변함없다니까요. 괜히 쑥스러울때 저렇게 버럭 소리 지르는거 말이에요. 아무튼간에 나는 쉐이크 하나를 입에 물고 나머지 하나를 구해찬에게 건내며 말했어요. "녹으면 뭐 어때. 구해찬씨 가자." "어딜?" "뭐, 아무데나." 녀석은 내 뻔뻔한 태도에 어처구니가 없다는듯 나를 노려보더니 이내 피식 하고 웃음 지으며 라고 예쁘게 웃으며 대답했어요 "오케이." 그렇게 김예봄과 구해찬의 데이트가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그런데 구해찬." 다 녹아버려 미지근해진 쉐이크였지만 그런데로 맛있었어요. 오늘은 날씨가 그렇게 덥지 않아서 인가봐요. 아마 땀을 뻘뻘 흘릴정도의 날씨였더라면 이 맹맹한 쉐이크는 절대 먹지 못했을텐데, 하늘도 오늘은 도우나봐요. "응." 영화를 보러 가는길, 나는 레코드 가게에 크게 붙여진 포스터를 발견했어요. 워낙 크게 여러장이 붙여져 있던 터라 쉽게 눈에 띄었거든요. 이렇게 가게 전체를 거의 도배하다 싶이 붙여져 있는걸 보면 한국에서 대단한 사람들인가봐요. 왠지 모를 호기심에 나는 걸음을 멈추곤 포스터를 한동안 바라보며 구해찬에게 물었습니다. "저기. 저 사람들 뭐야? 한국에 가수야?" 그러자 포스터를 바라보다가 바로 관심없다는듯 고개를 돌리며 퉁명스레 대답합니다. "응" 이라고. 우와 역시 가수였구나. 포스터 안에는 흘림 글자로 크게 '혼수상태'라는 글귀와 함께 남자 4명이 서있었어요. 얼핏 봐선 몰랐었는데 자세히 보니까 티비속에서 몇 번 본 것 같기두 해요. 포스터가 너무 예쁘게 나와서 인지, 노래를 한번 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잘생겼다." 포스터 안에 있는 사람들은 4명 모두 뛰어나게 잘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었어요. 나도 모르게 감탄하며 포스터에서 눈을 떼고 일어서자, 어처구니가 없다는듯 나를 보는 구해찬의 모습이 보입니다. "구해찬 왜?" "저게 뭐가 잘생겼어." "잘생겼잖아. 특히 가운데 서있던 사람! 왜 눈매 둥글고" 나는 손가락 두 개로 내 눈매를 둥글게 늘어 트리며 웃었지만 구해찬은 따라 웃지 않았어요. 대신, 뾰루퉁한 얼굴로 진지하게 입을 열었죠. "김예봄." "응?" "너 모르냐? 그거 다 성형한거야." 에에? 정말? "진짜? 아닌거 같은데" "진짜거든." "아닌거 같은데...." "아 그럼 너 저새끼랑 영화보러 가던가." 살짝 말끝을 흐리며 말하자 위와 같이 유치하게 말하곤 앞서 걸어가는 해찬이였어요. 재빨리 입을 막아보지만 결국, 풉 하고는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하여간 못말린다니까요. "구해찬 질투해?" "질투? 그게 뭐야." "지금 구해찬씨가 하고 있는거!" "뭐래." 자기도 챙피한걸 알긴 아는지, 얼굴이 붉어진채 길다란 다리로 앞서 걷습니다. 또 다시 풉 하고 터져 나오는 웃음을 겨우 참고는 나는 그런 구해찬을 따라 걸었어요. "어? 구해찬 같이가!" 말 한마디 잘못한 죄로 정말이지 왕왕 소심한 구해찬을 영화관으로 가는 내내 '니가 더 잘생긴것 같다' 라는 말도 안돼는 말로 달래며 말이에요. 거짓말은 나쁘지만 그건, 행여나 정말로 구해찬이 삐져서 영화를 못보고 가버릴까봐서 였어요. 구해찬과 영화, 꼭 보고싶었거든요. 늘 매번 볼 기회를 놓치곤 했었잖아요. 그래서 나는 결국, 이럴때보면 애기같은 구해찬을 열심히 달래고 나서야 팝콘과 콜라를 사들곤 영화관으로 입장 할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겨우 영화를 보나 싶었는데, 영화 막이 오르자 마자 구해찬은 자리에서 일어섰어요. "김예봄 나가자." "어딜!" "나. 갑자기 영화 보기 싫어졌어." 왜냐면.. "구해찬 같이가!" 영화의 주인공이 하필이면, 내가 아까 지목한 가운데 서있고 눈매가 둥글었던, 그 멤버였거든요. 정말 참으로 오랫동안 달려왔던 헬리가 완결이 나긴 하네요. 자세한건 간단히 후기 올릴께요. 마지막이니까, 댓글 빠짐없이 읽겠습니다. 잊지마세요♡ 오랜시간동안, 함께해주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정말 감사해요. -------------- §가그린§ (godqhrgkehfhr@hanmail.net) 플티〃가그린〃소설 (http://cafe.daum.net/Gagrin) -------------- ※헬리오토로프는 5월 24일의 탄생화로 사랑이여 영원하라 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41. "구해찬. 좋아?" 결국 영화관을 나온 우리는 근처에 있는 음식점에 왔어요. 그리고 지금 나는 뾰로퉁해져서 마주앉아 있는 구해찬을 노려보고 있는 중입니다. "김예봄." "좋냐구!" "뭐 먹을래?" 말 돌리기는. 슬그머니 웃으며 메뉴판을 내미는 구해찬이였어요. 휴, 정말 아까워 죽겠다구요. 구해찬이 무작정 끌고 나오지만 않았더라도 나는 분명 그 영화를 볼수 있었을텐데 말이에요. 하나의 팔천원이나 하는 영화표를 그대로 날려버리다니. 역시나 구해찬과 제대로 된 데이트라는걸 꿈꾸면 안돼나봐요. "나 새우볶음밥. 구해찬은?" 결국은 체념하고는 먹음직스러운 새우볶음밥을 고르자, 구해찬은 자기도 그걸 먹겠다면서 능숙하게 새우복음밥 2개를 주문했습니다. 아. 추가로 음료수도 2잔 시켰구요, "밥먹고 뭐할까?" "밥먹고?" "응. 밥먹고." 구해찬의 물음에 쉽게 대답하지 못했던건, 오늘 내가 늦게까지 놀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적어도 나는 7시전까진 들어가 짐정리를 해야 하는데 지금은 벌써 4시니까요. 잠시, 물을 들이키며 3시간동안 할 수 있는게 뭐가 있을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그러고 보면 평소엔 아무렇게나 보냈던 3시간인데, 지금은 이렇게 1분1초가 소중하네요. "음.글세. 아! 맞다 나 하고싶은거 있는데!" "뭔데" "그때 기억나? 우리 바다갔을때." "저번주?" "아니! 우리 둘이 갔을때. 그때 했던 불꽃놀이!" 문득, 예전에 구해찬과 했던 불꽃놀이가 생각났어요. 그때, 너무 짧아서 아쉬웠거든요. "이렇게 해가 쨍쨍한 낮에?" "그래두..." "그건 다음에 하자." "마지막으로 하고싶은데..." 말도 안됀다는듯 대답한 구해찬이지만, 나는 꼭 해보고싶다구요. 입을 삐쭉 내밀고 있을무렵, 막 나온 따끈따끈한 새우볶음밥 2개가 테이블 위로 올려졌습니다. 우와. 새우가 내 엄지손가락만해요. 무지 크다. "김예봄." "응?" 먹을걸 보고 금세 기분 좋아진 내가 한수저 꼭꼭 담아서 크게 입에 넣으려는데 나와는 달리 새우볶음밥을 휘젓기만 하던 구해찬이 조심스레 내이름을 부릅니다. "그런데 왜 마지막이야?" "어?" "방금 마지막이라며." 입에 넣으려는 볶음밥을 그제서야 내려놓고, 말실수를 했다는걸 깨닫는 바보같은 김예봄입니다. 아차, 싶었어요. 생각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마지막이라고 말해버렸나봐요. 정말 생각없어요. 나 "그니까 그건." 왠지 이번에는 호락호락하게 넘어갈 분위기가 아니에요. 왜냐면 구해찬은 이해할수 없다는듯 나를 바라보고 있었거든요. 아무리 바보같이 단순한 구해찬이지만 어줍짢게 변명했다간 분명 더 의심하고 말거에요. 그래서 나는 잠시동안 둘러댈 말을 찾으며 눈을 요리조리 굴렸어요. "말실수 한거야. 갑자기 나도 모르게" "말실수?" "응. 내가 왜 그말을 했지? 이제 불꽃놀이 다신 안할것도 아닌데 말야. 하하하." 어색히 웃는 나를 보다가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듯 아무말없이 자신의 새우볶음밥을 뒤적이는것을 반복하는 구해찬. 나는 행여 동요라도 될까 다시 볶음밥을 한수저 가득 퍼서 입에 넣었어요. 그리고는 열심히 씹었어요. 톡톡 살이 터지는 새우향이 입안에 한가득 퍼집니다. "..........." 그리곤 또 한수저 퍼서 입안에 넣자, 입을 다물지 못하는 구해찬이에요. 왜 구해찬은 먹지 않는걸까요? 아마 입맛이 없는모양이에요. 아까부터 한수저도 대지 않고 게다가, 자신의 그릇에 있던 새우볶음밥을 내게로 덜어주기까지 하는거 있죠. "구해찬은 왜 안먹구?" "너 먹는거 보고, 입맛 떨어졌어." "죽을래!" 구해찬의 말투를 흉내내며 녀석을 노려보며 앞에 놓인 피클을 집어 먹습니다. 제가 돼지 같은게 아니라 그만큼 새우복음밥은 정말 너무 맛있었어요. 이렇게 맛있는 새우볶음밥은 처음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말이죠. 그래서 구해찬이 덜어준 볶음밥까지 열심히 먹자 구해찬은 수저를 든채 그대로 스톱자세로 빤히 나를 바라봤어요. 그리곤 어처구니가 없다는듯 피식 하고 웃었죠. "차라리..." "응?" "접시까지 씹어먹지 그러냐." "푸푸풉" 오...맙소사. 김예봄. 지금 너. 지금. 뭐..한거야? "구.구해찬!!" 앞에서 일어난 상황에 나는 경악을 하곤 들고 있던 수저를 떨어트렸습니다. 할수만 있다면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였어요. '접시까지 씹어먹지 그러냐' 라는 구해찬의 말에 충격을 받으면 받았지. 입에 있던 새우볶음밥을 구해찬에게 튀겨버린건 또 무슨 추태란 말입니까. 구해찬은 정확히 자신의 얼굴에 튄 밥풀을 신경질적으로 떼고는 한쪽 눈썹을 찡그리며 무섭게 내이름을 불렀어요. "김예봄." "............." "........죽을래?" 으엉엉. 역시, 구해찬과 김예봄에겐 정상적인 데이트는 불가능한 일인가봐요. *** 나는 밥을 먹고 공원에 오는 내내 구해찬에게 여자가 뭐 그렇게 칠칠맞냐 라는 잔소리를 들을수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내가 아무말없이 녀석의 말을 묵묵히 들어준 이유는. 첫 번째, 아까 일이 너무 챙피하고 쪽팔려서 였고 두 번째, 녀석의 손에 한아름 들려 있는 불꽃들 때문이죠. 너무너무 좋아요. 나는 불꽃놀이가 정말 너무 좋다구요. 뭐, 물론 지금 하늘은 필요 이상으로 환해서 불꽃이 잘 보일진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보이지도 않겠다. 이거" 구해찬도 나와 같은생각인듯 한아름 들고 있는 불꽃들을 흔들어 댑니다. 나는 행여나 구해찬 손에 들린 불꽃들이 떨어질까 노심초사하며 손을 받들었어요. 그러자 녀석은 '그렇게 좋아?'라고 물었고, 나는 힘차게 고개를 끄떡였습니다. "응 너무 좋아!" 라고 말이에요. 그냥, 뭐랄까. 또 다시 불꽃놀이를 해보고 싶었던건 그때 그날이 너무 좋아서에요. 바닷가에서 녀석과 막대불꽃에 불을 붙인 순간, 그 조용함속에 타닥타닥 하고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며. 선선한 바람에 눈을 감으며. 구해찬에게 나는 처음으로 내 상처를 내보였었죠. 그리고 그날, 내 상처는 불꽃처럼 타닥타닥 금세 타버렸어요. 기억들이, 어느새 불꽃놀이를 내게 그런 추억으로 만들어 버린거죠. 나는 슬며시 잔디밭에 엉덩이를 붙이곤 구해찬에게 막대불꽃 하나를 받아들곤 흔들어 보였습니다. 그러자 구해찬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말해요. "바보같긴." 라고요. "에에? 누가 누구보고 바보래!" "천재가 바보한테." 구해찬은 시크릿도 씨클이라고 하는 바보잖아! 라고 말하려다가, 사람 약점 하나가지고 물고 늘어지는거 아니라는 언니의 말이 떠올라 나는 겨우겨우 말을 삼키곤 대신, 언젠가 여민이가 알려주었던 말을 생각해냈어요. 그러니까, 지금 이렇게 구해찬처럼 철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빗대서 한다는말이. "구해찬." "왜?" "구해찬은 초딩이야?" 맞아요. 초딩! 기억해냈다는것에 대해 왠지 모를 뿌듯함으로 묻자, 구해찬의 표정이 점점 굳어져 갑니다. "김예봄. 너 그 말은 또 어디서 배웠어. 황여민이지?" 그 순간 느낀건요. 정말이지 구해찬은 눈치가 재빠르다는거에요. 어떻게 황여민인걸 알았지? 초딩이라는 말이 꽤나 기분 나빴는지 나를 툭툭 건드리는 해찬이. 왜였을까요. 갑작스레 떠오른 생각에 풉 하고 웃음이 터져나옵니다. "구해찬! 갑자기 그생각 난다." "무슨 생각?" "구해찬 별명!" "하지마." 그러자 정말 질색팔색을 하는 해찬이에요. 이러면 더 하고 싶어지는 사람의 심리를 구해찬은 알지 못하나봐요. 나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골똘히 생각하는 척 했어요. "뭐였드라. 해.해.해.해" "하지마 진짜 죽는다." "해찬들!" "나간다." 구해찬은 내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리에서 일어나는 시늉을 했습니다. 나는 그대로 웃으며 그런 구해찬을 재빨리 잡았죠. 예전부터 궁금했던건데 도대체 해찬들이라는 말이 무슨뜻이길래 구해찬이 저렇게 싫어하는걸까요? 오늘은 잊지말고 인터넷에서 찾아봐야 겠어요. "아.알았어! 안할게 안할께!" "나 화나면 무서운데." "알았어. 안해안해! 절대맹세!" 그렇게 절대 맹세까지 하고 나서야 겨우겨우 구해찬을 앉힌 나는 아직 불이 붙지 않은 불꽃을 하늘로 향해 이리저리 흔들어 보입니다. 그러고보면 참 추억이 많네. 구해찬하고는. "불 붙여줘?" 녀석은 그런 나를 보며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라이터를 꺼내들어요. "응!" "줘. 위험해." 행여, 내 쪽으로 바람에 불이 기울을까 싶어 내손에 들린 막대불꽃을 가져가서 불을 붙여주는 해찬이였습니다. 잠시후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라이터에 붙여진 불이 막대불꽃으로 옮겨가자 타닥타닥 거리는 소리와 함께 불이 붙은 막대엔 눈부실정도로 예쁜 불꽃이 타올랐어요. "예쁘다.." 구해찬에게 전해받은 불꽃막대를 이리저리 흔들어 보입니다. 하지만, 바닷가에서처럼 불꽃은 얼마안가 금세 타버렸어요. 정말 허무하게 말이에요. "또 해줘?" 해찬이는 다시 들고 있던 막대를 내게 건냈지만, 나는 고개를 젓고는 까맣게 그을린 막대를 바라봤어요. 참 신기해. 한순간에 예쁘게 타오르다가, 이내 그대로 꺼져버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던것처럼. 그런데 자세히 보면 타올랐던 자국이 남아있어. 이렇게 검게. "구해찬. 우리 엄마아빠도 이랬던걸까." 꺼져버린 막대불꽃을 내려놓으며 그렇게 말문을 엽니다. "이렇게 예쁘게 사랑하다가, 정말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던것처럼 그 사랑이 사라져버린걸까. 그래서, 이 자국처럼, 엄마아빠도 평생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게 되는걸까." 엄마의 부재, 그리고 아빠의 부재. 부모님의 이혼. 오랜시간동안 아무렇지도 않아야 한다고 익숙해져야 한다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지내왔지만 역시나 그건 언니에게나 나에게나 너무나도 벅찬 일이였어요. 마음이 아파요. 오늘이 지나면 다시 엄마를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픈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였습니다. "김예봄." 그때였어요. 아주 한참동안 말없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던 녀석이 예쁘게 웃음지으며 내 이름을 부른건 말이에요. "응?" "나 위로 같은거 안한다. 어줍짢은 위로 더 상처되는거 아니까. 그대신." "............" "자. 이제 이건 평생 김예봄 전용 어깨야." 순간, 자신의 어깨를 툭툭 치며 장난스레 웃어보이는 해찬이. 무슨소리를 하는거지? 이해할수 없어 두눈을 꿈뻑이며 해찬이를 바라보자 녀석은 자신의 한쪽손으로 천천히, 아주 조심스레 내 얼굴을 자신의 어깨에 기대게 했어요. 그리곤 아주 따스한 목소리로 말했죠. ..... .......... "어깨에 기대서 울어도 된다는 뜻이야." 42 "어깨에 기대서 울어도 된다는 뜻이야" 그 순간은 정말이지 마음 한구석이 따스해졌어요. 슬며시 웃으며 구해찬의 넓은 어깨에 기댄채로 그렇게 한참을 있었던것 같아요. 하지만 나는 울지 않았어요. 이제 그만 울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나는 눈물을 꾸역꾸역 삼키며 웃어보입니다. 시원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살짝 흔들고, 구해찬의 좋은 냄새가 코 끝에 내려앉고, 기대있는 어깨로 이 아이의 숨소리가 전해지고 있는 지금. 나는 간절히도 생각합니다. 그냥 이대로 시간이 멈추어버렸으면. 정말로, 소설이나 영화에서처럼 그대로 시간이 멈추어버렸으면 좋겠다. 라고. "이제 그만 가야겠다." 내가 구해찬의 어깨에 기댄 얼굴을 든건 그로부터 아주 오랜시간이 지나서였어요.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는 시계바늘이 7시를 향해 가고 있었거든요. "벌써?" "응. 7시 다 되가. 가봐야해." "그래." 의외로 쉽게 수긍하며 나를 따라 일어서는 구해찬이였어요. 그런 해찬이에게 웃어보이며 뒤돌아서는데 구해찬의 손에 살짝 내 손 끝에 다았어요. "잠깐만 김예봄." "응?" "왜 이렇게 기분이 이상하지?" "뭐..가?" "꼭, 지금 가면 앞으로 너 못볼꺼 같아." 불안한듯 나를 내려다보는 그아이의 눈. 나는 피식하고 웃어보입니다. 구해찬은 역시, 눈치가 빠르다니까. "무슨말이 그래. 앞으로 못본다니." 사실은 맞아 구해찬. 이 시간 이후로 우리 두 번 다시 못봐. 정말로 마지막. .....오늘이 마지막. "몰라. 보내지 말까." "나 집에 빨리 가봐야 하는데!" "아 진짜 이상하게 불안하네. 왠지 지금 너 잡아야 할것 같은 느낌이 들어." "말도 안돼는 소리!" 내 단호한 목소리에 에이씨 라고 중얼거리며 도리어 구해찬은 화를 냈어요. "안넘어가네. 모른척 같이 있어주면 어디가 덧나냐!" 라고 말이에요. 같이 있으려고 저렇게 장난친건가봐요. 이 바보, 정말 진짜인줄도 모르고. 왠지 모르게 씁쓸하게 웃어 보이며 나는 대답해요. "넘어갈 리가 없잖아." "됐다. 됐어. 이 둔팅이한테 내가 뭘바래. 가자." "어딜?" "그럼 이 밤중에 혼자갈라고? 데려다줄게." "혼자 갈수 있어! 나 괜찮아!" "내가 안괜찮아. 자." 따듯한 손을 내미는 구해찬. 조금 망설이다가 이내 조심스레 해찬이의 손을 잡았어요. 늘 생각하는거지만, 구해찬 손은 너무 따스해요. 그래서 눈물이 나올만큼. "김예봄." "응?" "내가 더 든든하지." "뭐가?" "이현태보다."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마주잡은 손을 살짝 흔들어 보여요. 나는 구해찬과 김예봄의 꼭 맞잡은 손을 내려다 봅니다. 이제는 정말, 마지막인거겠죠. .... 이렇게 떵떵거리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구해찬도, 지금 마주잡고 있는 따스한 녀석의 손도, 장난끼 가득한 목소리도, 늘 나를 담고 있는 예쁜 동공도. 소중한듯 바라보는 시선도, ......이 시간이 지나면 모두다 마지막인거겠죠. "다왔다. 나 들어가볼게." 그렇게 얼마나 함께 걸었을까요. 어느새 집앞에 다다르자. 나는 구해찬에게 마지막, 작별인사를 했어요. "알았어. 내일 연락해." 눈매가 둥그레지도록 웃으며 마주잡고 있었던 손을 스르륵 놓는 해찬이. 너무나도 쉽게 잡고 있던 손이 그렇게, 놓아집니다. 혼자 남은 내 손을, 내려다 봐요. 그래. 나는 이게 익숙해. 혼자인게. "응..." 스스로 비참한 위로를 남기며 고개를 끄떡이자. 손을 흔들어주며. 내 등을 아파트 입구쪽으로 떠미는 구해찬이였습니다. "빨 리가. 가는거 보고 갈게." "응..잘가." 나는 그제서야 뒤돌아서서 아파트 입구쪽으로 걸음을 옮겨요. 이상하게도 한걸음. 한걸음 옮길때마다 저 엉뚱한 녀석과의 추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학교 갔을때의 첫만남. 나를 언니라고 착각했던 구해찬. 그 바람에 구해찬의 마음을 알아버렸던 나.... 추억들이 꼭 고장난 필름처럼 하나하나 말이에요. 이제 정말 마지막인가봐요. "............." 안녕. 구해찬, 정말로 안녕. ...... \다음날. "예봄아. 니 언니한테 정말 말 안해도 될까." 빽미러를 통해 나를 바라보며 묻는 엄마의 말에 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떡이고는 풍경이 흘러가고 있는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시켰습니다. 아침부터 얼마나 마음이 이상했는지 몰라요. 막상, 오늘이 '떠나는 날'이라는 실감도 안났을뿐더러, 이제 겨우 익숙해졌던 한국에 생활들을 두 번 다시 할수 없다는 생각에 뭐랄까. 마음이 굉장히 이상했어요. 그냥 한구석이 텅 하고 빈 듯한 느낌이랄까. "그런데 엄마가 아까부터 묻고 싶은게 있었는데, 그 화분은 뭐야?" "아..이거요." 엄마의 말에 손에 꼭 쥐고 있는 화분을 내려다 봅니다. "내 탄생화래요." "탄생화?" "네. 탄생화요.." 잘 참아왔는데, 왜 눈물이 나려고 하는건지. 손끝으로 눈을 꾹꾹 누르곤 나는 툭툭, 하곤 보라색 꽃잎을 건드려 봅니다. 그녀석한테 처음으로 받은 선물이였는데... "그렇구나. 몰랐네." 차는 도로위를 툴툴 거리며 올라갔어요. 이 차는 도로 위를 쉬지 않고 달려, 이제 조금만 있으면 공항에 도착할 거에요. 비행기를 타고, 나는 한국이 아닌 미국으로 떠나게 되는거에요. "엄마." "응?" "공항 가기전에, 잠깐만 어디 좀 들려주실수 있어요?" "들릴데 있어? 어딘데?" "............" "응?" 엄마의 물음에 나는 가만히 화분을 내려다봅니다. "친구한테 돌려줄게 있거든요. 돌려주려구요." 그녀석 마음이요. * * 엄마의 차가 공항으로 가는길의 경로를 바꿔 도착한곳은, 언젠가 한번 와본적 있는 구해찬네 동네였습니다. "시간 얼마나 걸려? 비행기 시간 빠듯한데." "이것만 전해주고 금방 갔다 올께요." 차에서 내리자 알았다는듯 제스쳐를 해주시는 엄마였어요. 나는 타악 하고 차문을 닫고는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습니다. 이곳, 하나하나 다 기억나요. 이때, 구해찬이 학교에 오지 않았다는말에 걱정되서 무작정 찾아왔었죠. 아주머니께서 맛있는 쥬스와 쿠키도 주시구요. 비록, 구해찬과는 별 얘기도 해보지 못했지만. "............." 나는 언제나 봐도 으리으리해보이는 구해찬에 집 앞에 섰어요. 그리곤 조심스레 들고 있는 화분을 집 앞에다가 내려 놓았죠. 오늘 아침에 물 줬는데, 설마 구해찬이 오기전에 시들어 버리진 않겠죠? 나는 살짝 허리를 굽혀 화분을 한번 만져보고는 일어섭니다. 이제는 알게된, '사랑이여 영원하라' 라는 의미를 가진 헬리오토로프는 햇살에 비춰져 더욱 선명한 색을 띄고 있었어요. 정말 영원할까. 실없는 생각을 하며 피식 하고 웃어보입니다. "구해찬, 고마웠어." 정말 고마워. 니가 없었더라면 난 앞으로도 계속 그 끔찍했던 추억에 갇혀 괴로워했을꺼야. 정말 고마워... 그렇게 나는 화분을 향해 살짝 손을 흔들고는 뒤돌아 섰어요. 눈물을 꾹 참고는 말이죠. "안녕..." 한국에 와서 따듯한 사랑을 배웠어요. 나는 내게 사랑을 알려준 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해요. 그래서 떠나려고 합니다. 한송이의 꽃을 남기고 말이에요. "............." ...... ................... 사랑해서 감사했습니다. \공항 [잘 가..]-이현태 공항에 막 도착했을 무렵, 핸드폰 진동이 울렸어요. 문자를 보낸 사람은 다름 아닌 현태. 나는 [응, 고마워]라고 간단하게 답장을 했습니다. 그리곤 현태의 문자를 마지막으로, 핸드폰 전원버튼을 꾸욱 누르곤 엄마에게 건냈어요. "해지를 못시켜서요." "엄마가 할게." "네..." 짧은 내 대답을 끝으로 엄마와 나 사이의 무거운 침묵이 흘렀습니다. 비행기 티켓도 발권했고, 트렁크에 스티커 붙여 실었고... 이제 정말 모든 준비가 끝났거든요. 떠날준비요. "엄마, 이제 들어가 봐야 할것 같은데...." 슬며시 웃으며, 엄마에게 말해보아도 엄마는 아무말도 하지 않으셨어요. 대신 나를 꽈악, 아주 꽉 따듯하게 안아주셨죠. 처음인가.... 아니, 아마 처음은 아닐꺼에요. 기억이 없을뿐이지 어렸을적 분명 엄마의 품에서 자랐을테니까요. 미국에 있을동안 얼마나 많이 그리워했던 엄마의 품인지. 늘 상상했던것처럼, 생각해왔던것처럼, 엄마 품은 따스했어요. 따듯하고 포근하고 부드럽고. "방학되면 놀러와야해. 알았지?" "..........." "예봄아." "네." "엄마는..엄마는." 엄마의 큰 손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떨리는 엄마의 목소리. "너한테 너무 못난 엄마구나." "아니야 엄마는.." 스르륵, 놓아지는 엄마의 손. 나는 조심스레 엄마의 눈에 고인 눈물을 한쪽손으로 닦아내며 웃어보여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엄마에요." ".........." "엄마. 나 이제 진짜 가봐야겠다." "그래..." "갈께요." 어쩔땐 웃는게 우는것보다 힘들다는말, 이제야 알 것 같아요. 지금 내가 그랬거든요. 이렇게 엄마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웃어보이는게 너무 힘들었거든요. 차라리 펑펑 울어버리는게 더 쉬울것 같았거든요. 서서히, 서서히 맞잡고 있던 엄마의 손을 놓아요. 이제 정말 떠나야 할 시간이니까요. 마지막으로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너무 그리웠던, 그리울 한국을 눈에 천천히 담아봅니다. 이제 정말..... 안녕. 엄마, 안녕 언니. 안녕 이현태. 안녕 황여민. 안녕...구해찬. "연락 할께요 엄마. 갈께요.." 나는 엄마의 손을 놓고는 그대로 뒤돌아 섰습니다. 그리곤 떠나기로 했던 날 다짐했던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출국장으로 걸어갔어요. 단 한번이라도 뒤돌아보게 된다면, 정말로. 한국에 대한 미련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을거라는걸 잘 알았거든요. 눈물을 삼키며 그렇게 빠르게 걸음을 옮기고 있을 그때였습니다, 순간. 정말 거짓말처럼. "씨발 김예봄!!!!!!!!!!!!!!!!!!!!!!!!!!!!" 언듯, 구해찬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 같기도... "그럴 리가 없잖아." 고개를 흔들며 나는 그렇게 힘겹게, 출국장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ByeBye Korea. \버지니아 미국은 모든게 그대로였어요. 8년이 넘도록 살아 온 집 또한, 변함이 없었구요. 내 방 또한, 내가 떠나기 전이랑 똑같았습니다. 도우미 아줌마께서 매일 열심히 청소를 해주셨던 모양이에요. 방 안이 반듯하게 잘 정리되어 있었거든요. 나는 몇 달만에 컴백하는 내 방에 들어서자마자 짐을 내려 놓았습니다. "잘 지냈어?" 침대 위에 올려 진 곰돌이 인형을 꾸욱 누르며 그렇게 조금은 어색하게 다시, 나는 침대에 털썩 하고 앉아요. 정말 꿈을 꾼 것 같아요. 한국에서 있었던 일들이 모두 꿈이였던 것처럼, 아무일도 없었던것처럼. 돌아왔으니까요. ".........." 비행기에서 잠을 자지 못해서 인지 조금씩 피곤함이 몰려 옵니다. 나는 결국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곤 침 대에 그대로 쓰러지듯 누워, 손에 들고 있던 곰돌이 인형을 조심스레 쓰다듬었습니다. 이건, 존이 준 인형이에요. 어느날 편지봉투가 터질정도로 빵빵하게 답장이 왔었는데, 그때 편지봉투안에 이 인형을 넣어서 보냈더라구요. 잊고 있었던 옛추억이 갑자기 떠올라. "오랜만이다..." 나는 곰돌이의 코를 툭툭 건드리며 말했어요. "너한테 미안해. 있지 존, 나 사실 너무 무서웠어. 그런 감정이 시작된다는게. 두렵고 너한테 미안했어." 누군가를 좋아한다는게. 그런 감정이 시작된다는게 나한테는 너무 무서웠던거야. 그런데 어쩔수 없더라. 어쩔수없이 좋아져버린거야. 나도 모르게, 그녀석이. 그 개구진 녀석이. 지금쯤, 어쩌면 나한테 화가 나있을지도 모를 그녀석이. ".........." 솔직히 나, 절대 아물지 못할 상처라고 생각했어. 한국에 가도 소용이 없을거라고, 그 끔찍한 악몽같은 추억에서 벗어나지 못할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구해찬이 다시, 시작할수 있도록 도와줬어. 그런데 있지. 존, 이제는 그럴수 없을것 같은 두려움이 더 커. 다시 내 심장에 멍이 들었거든. 그것도 아주 크게. 존. 있지. 이 상처, 다시 아물수 있을까........ 나는 곰돌이를 꽉 품에 안고는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괜스레 콧등이 시려워요. 똑똑- 그때, 들려오는 노크소리. 분명, 아빠일거에요. 아까 내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줌마께서 아빠께 연락을 드린다고 했으니까요. "들어가도 되?" 예상했던 대로, 방문을 타고 아빠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나는 대답 대신, 자리에서 일어서서 방문을 열어드렸어요. 그러자 몇달만에 보는 아빠의 반가운 모습이 보입니다. "아빠." "일 때문에 마중 못나가서, 걱정 많이했는데. 지금 도착했단 소리 듣고 허겁지겁 막 왔어." "네. 아니에요. 내가 뭐 어린앤가." "그럼. 아빠한텐 아직 한참 어린애지!" 자상하게 웃으시며 장난을 치시는 아빠. 나도 그런 아빠에게 웃어 보입니다. "보고싶었어요. 아빠." "아빠두 예봄이 많이 보고싶었지." "그런데...아빠" 물론 미국에 와서 아빠와 다시 함께 살게 되니 너무 행복하고 기뻐요. 아빠는 늘 내게 최선을 다하시고 좋은 아빠가 되려고 노력하시는 멋진분이시니까요. 하지만, 한국에서 아빠가 보고싶었던 만큼이나, 지금은 엄마와 언니가 보고싶은건 어쩔수 없나봐요. "응?" "새로....재혼하신다는 분" "........" "사랑...하세요?" 내말에 아빠는 한동안 아무말없이 나를 바라봤어요. "예봄아." "네?" "결혼할때 물론 사랑이 중요하긴 하지. 그런데 사랑가지고만 할 수 있는게 결혼은 아니야." "그럼..." "이번에 한국에 널 보내면서, 너에게 엄마가 필요하다는걸 느꼈어. 재혼 결심을 한건, 그때부터구. 이제 궁금증이 해결됬니?" 그순간 나는 아빠에게 '나한테 엄마는, 엄마 한분 뿐이에요. 다른 사람은 엄마가 될 수 없어요.' 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럴수 없었던건. 아빠를 속상하게 하고싶지 않아서였어요. 그래서 나는 턱끝까지 차오른 말을 겨우겨우 삼키곤 고개를 끄떡였습니다. "그래, 아. 저녁 먹어야지. 옷갈아입고 나와. 맛있는거 먹으러가자." "저기...아빠." "응?" "한번도...지금 껏 한번도 아빠한테 이런말 해본 적 없는데요." "그래. 해보렴." "엄마랑...왜 이혼하신거에요..?" 정말로 맹세코. 나는 단 한번도 아빠에게 이런말을 해본적이 없어요. 어렸을때부터 너무 궁금했지만. 나는 행여 아빠가 상처 받을까봐, 궁금해도 물어보지 않았었죠. 그래서 엄마가 미웠을지도 몰라요. 어렸을땐 무작정 우리 아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니까. 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한국에 가서 알게 된거에요. 엄마도 아빠도, 모두 내게 분에 넘칠만큼 좋은분들 이시라는걸 말이에요. ".........." 아빠는 내 대답에 곤란한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십니다. 아마도.. 이야기를 꺼내기가 쉽지 않은가봐요. 역시나, 내가 너무 경솔했던 걸까요. 이런 질문은 하는게 아니였는데... "아. 아니에요 아빠. 말씀 안해주셔도 되요." "아니야. 너도 다 컸으니까. 알 권리가 있지.." ".............." "예봄아." "네?" 아빠의 말을 기다리는 동안 이상하게도. 심장박동수가 점점 빨라져요. "나는 너희 엄마를 많이 사랑했지만. 내게는 그만큼 일도 중요했던거야. 미국에 갈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고. 너희 엄마 설득해서 미국으로 올수 있었어. 그렇게 나는 내가 꿈꿔오던 일을 할수 있었지 하지만 너희엄마는 새로운 생활을 견디지 못했어. 당연하지. 낯선사람. 낯선것 투성인 미국생활을 견디기란 쉽지 않은일이니까" "................" "엄마는 돌아가자고 말했지만. 나는 그럴수 없었어. 나는 내 일이 중요했고. 그것을 꼭 이루고 싶었어. 결국...엄마는 혼자 돌아가게 된거야. 아빠는 결국, 엄마가 아닌 내 자신의 일. 꿈을 선택하게 된거구." 나는 그순간 알수 있었어요. 아빠가, 그시간들을 후회하고, 그리워 하고 있다는걸 말이에요. 그냥,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빠의 마음이, 내게는 그렇게 전해졌어요. "아빠는...바보네요." 나처럼. "그러게. 아빠는 바보네." 인자하게 웃으시며 자리에서 일어서시는 아빠. 그리곤 문고리를 돌려 꼭 닫혀있던 내 방문을 열어요. "얼른 옷갈아입고 나와. 아! 먹고 싶은거 생각해두고. 알았지?" "네." 타악, 하고 다시 방문이 닫힙니다. 그런일이 있었던거구나. 그렇게 엇갈렸던거구나. 왠지 가슴이 텅텅 빈 것 같아요. 막상 엄마아빠의 이혼이유를 알게 되니 괜스레 안타깝고 씁쓸했거든요. 엄마는, 지금쯤 뭘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언니는... "......." 언니는...지금쯤이면 내가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됬을까요. 아마. 많이 화가 나있을지도 몰라요. 말없이 무작정 떠나버렸으니까. 사실, 언니에게만은 떠난다는 사실을 알려야 했을지도 모르지만 내겐 그럴 용기가 나질 않았어요. 바보처럼... "예봄아. 얼른 나와." "네. 지금 바로 나갈께요!" 방문을 타고 들려오는 아빠의 말에 가디건 하나를 걸치곤, 방을 나서려다가 멈칫. 그대로 서서 발걸음을 움직이지 못하는 김예봄이였습니다. 탁자 위에 놓인 전화기가 눈에 들어왔거든요. "딱 한번만..." 정말 딱 한번만...전화해볼까. 언니에게 미안하다는말 하고싶은데. 잠시동안, 전화기를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젓습니다. 그러다가 미련이라도 생기면... "아빠 잠시만요.!" 하지만 결국 나는 바보처럼 수화기를 들고는 조심스레 한국번호를 눌러요. 아무래도 아무말도 못하고 온 게 마음에 걸렸거든요. 조심스레 번호를 누르곤 나는 상대편이 전화를 받기를 기다립니다. 정말 그순간은 일분 일초가 한시간처럼 느껴진다는말이, 새삼 무슨말인지 알 것 같았어요. 나는 숨죽여 수화기에 귀를 가져다 댑니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것 같아요. -여보세요. 언니의 잠겨있는 목소리가 들리기까지 말이에요. ".........." 왜였을까요. 그순간, 아무말도 나오지 않았어요. -예봄..이야? 그 침묵을 깬건 다름 아닌 언니의 다급해진 목소리. 그제서야 나는 조심스레 말문을 엽니다. "언니..." -너...너 뭐야. 나...때문이야? "..........." -미국으로 가버린거 나 때문이냐구!!!!! 역시나, 언니는 알고있었던 모양입니다. "아니야 그런거. 정말 그런거 아니야. 그냥...미안하다는말 하려고 전화했어." -........... "미안해 언니...8년만에 만났는데..제대로 동생 노릇도 못하고 언니한테 상처만 줘서." -어떻게 이래 김예봄. 어떻게 말 한마디 없이 그렇게 가버리냐구. 그러면 안돼는거잖아. 내가 얼마나 모진말했는데. 내가 얼마나 너한테 못되게 굴었는데. 나 이렇게 힘들어 하라구 일부로 이러는거지. 응?" "아니야 언니..." -돌아와 예봄아. 언니가 잘못했어 미안해. 전화기 너머로 언니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역시, 괜히 전화했나봐요. 전화하지 말껄 그랬나봐요.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재빨리 닦고는 나는 씩씩하게 웃으며 입을 엽니다. 씩씩한척 하는건, 이제 자신 있다구요.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말하는거에요. "언니, 나 끊어야겠다. 잘지내구 그리고 또." -누구 맘대로 끊어. ".........."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럴수 없었습니다. 정말 거짓말처럼.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는. .......그아이였으니까. -김예봄. "..........." -김예봄. 구해찬이였으니까요. 구해찬의 목소리는 많이 잠겨있었어요. 술을 마신 모양인지 녀석의 발음도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언니와 함께 있나봐요. 나는 터져나오는 눈물을 닦기위해 잠시동안 수화기를 막다가, 이내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수화기를 귀에 가져갔어요. "응...술마셨어?" -근데. "많이 마시지마." -어쩌라고. 삐딱한 구해찬의 목소리에 가슴에 큰 멍이 번져가는듯한 느낌. "............." -너한테 난. 아무말이 없자.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을 이어나가는 해찬이였어요. -난 이정도밖에 안돼? ".........." -김예봄한테 난. 고작 이정도밖에 안됐어? "미안해..." -니가 뭔데. "미안해 구해찬.." -니가 뭔데 사람 이렇게 상처주는데. 너...정말 밉다. 너... 아파요. 구해찬의 목소리가 아파요. 심장이 너무 아파요. 결국, 더 이상 상처받기 싫다는 그아이에게 나는, 또 다시 상처 주고야 말았어요. 그리고 내 자신한테도... -많이..........밉다. 김예봄. 희미하게 들려오는 목소리를 끝으로 끊겨버린 전화. 뚜뚜뚜 라는 신호음이 계속해서 들려왔지만 나는 차마 전화기를 놓을수 없었어요. 대신, 지금껏 참아왔던. 겨우겨우 참아왔던 울음을 터트려버린거죠. 어린아이처럼. 엉엉 하고 숨도 못쉴정도로. 거실에 있던 아빠가 놀라서 내방으로 들어오실정도로 말이에요. "예봄아...우니? 왜 울어!" "부탁이에요 아빠..." "왜그래..이녀석아" "아빠는...나처럼 바보같은짓 하지 마세요." 아빠는 어쩔줄 몰라하시다가 오열하는 나를 안아주셨습니다. 나는 그런 아빠의 품에 안겨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을때까지 울어버렸어요. 그제서야 나는, 미국에 도착하고 나서야, 녀석을 떠나고 나서야. 알아버린거죠....... .... ............... "그건 너무, 마음이 아프잖아요..." 어느새 내게 구해찬이라는 이름은 새살이 돗기도 전에 생긴 상처가 되버렸다는거. 43 \1년뒤. "그래서 그 뒤로 연락이 없었다구?" "네...처음 미국 온 그날 이후로 소식도 못들었어요. 언니랑 편지 주고 받을때도 구해찬 이야기는 하나도 없었구요." "그렇구나..."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라요. 나한테 많이 실망했을테니까. 그런데 그때 나한텐 이게 최선의 방법이였어요. 미국으로 돌아가는것. 아니, 사실은 도망친걸지도 모르지만." 그 날도 벌써 1년이나 지났네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는 동안, 나 또한 많이 달라졌어요. 머리도 좀 더 길었고. 학교도 졸업했고. 미국에서 친구도 사겼고. 키도 조금 컸구요. 그리고 조금 더 성숙해졌어요. "한국 도착하면. 다시 만날꺼야?" 아빠의 말에 나는 한동안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어요. 다시 만나게 된다면... "아마도..아니요. 못만날거 같아요." 또 다시, 힘들어질지 모르니까요. 아니, 사실 솔직히 말하면 구해찬은 아마 날 봐주지 않을거에요. 내가 이렇게 변한만큼, 구해찬 또한 변해있을테고. 1년전 그마음 또한 변해 있을테니까요. .....나는 그아이에게 많은 상처를 줬으니까. "이젠 예봄이가 바보네. 아빠보다." 살짝 내 볼을 건드리며 웃으시는 아빠. 나는 그런 아빠에게 그러게요. 라고 중얼거리듯 말하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하얀 구름들을 바라봅니다. 이제 정말 30분뒤면 한국의 하늘이 보일거에요. 두 번 다시 오지 못할 줄 알았던 한국이 말이에요. "아빤. 안떨려요?" "응. 하나도." "거짓말." "사실은 좀 떨려. 예나가 나 보고 어떤 표정 지을까. 하고." "걱정마세요. 언니도 아빠 많이 보고싶어해요." 내말에 아빠는 그저 말없이 웃어 보이셨습니다. 기분이 달라요. 1년전, 나 혼자 엄마와 예나언니를 보러 가는거랑. 지금 아빠와 함께 엄마와 언니를 보러 가는거랑 말이에요. "........." 아마 아빠도, 엄마도 다시 함께 살기로 결정을 내리실때까지 많이 힘드셨을꺼에요. 하지만 결국, 아빠는 미국에 있는 일을 포기하고는 다시 한국에 들어와서 일하기로 결정하셨어요. 물론, 재혼도 포기하구요. 지금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고, 많은 거리를 되돌아와야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제자리로 돌아가게 되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이제 한국에 가면, 1년동안 그립고 보고싶었던 사람들을 만날수 있겠죠? 엄마도. 언니도. 현태도. 여민이도. 그리고 "............" 구해찬도.. \입국장. "어? 예봄이다. 엄마 예봄이 왔어!" "엄마도 보여." "옆에...있는사람이 아빠지?" "응..." 입국장 앞은 많은 사람들이 채우고 있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은 입국장 앞에서 저마나 자신의 가족, 혹은 친구,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죠. 나는 그런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단 한눈에 엄마와 언니를 찾아낼 수 있었어요. "엄마!! 예나언니!" 나는 그런 엄마와 언니를 향해 단박에 뛰어갔어요. 엄마는 예전과 다름없이 예뻤고, 언니도 예전과 다름없이 밝아보였어요. 아. 언니가 조금 달라진게 있다면 나와는 달리 머리가 많이 짧아졌다는것 정도? "잘지냈어..?" 달려가서 엄마 품에 안기자, 엄마가 물어요. 나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습니다. "네. 당연하죠." "당신은, 잘지냈어?" 이번에는 어느새 내옆으로 온 아빠가 엄마에게 물어요. 그러자 아빠의 물음에 엄마는 아직은 어색하신듯 웃으시며 고개를 끄떡였습니다. 그 모습에에 터져 나오는 웃음을 막아보지만, 어쩔수 없이 입가에 가득 웃음이 번졌어요. 아주 오랜 시간만에 비로소 우리 한 가족이 같은시간, 같은장소에 있게 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너무 행복했거든요. "안녕...하세요." 그때즈음, 아빠에게 어색하게 인사를 하는 언니. 언니의 모습은 꼭, 1년전 내가 한국에 와서 엄마를 봤을때와 같았어요. "예쁘게 컸구나. 아빠 보고싶진 않았어?" 그러자 잠시 침묵, 그리곤 이내. "보고싶었어요.." 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언니였습니다. 언니가 이렇게 쑥스러워하는 면도 있구나. 나는 언니의 그런 모습에 새삼 놀라며, 오랫동안 잡지 못했던. 그런 언니의 손을 꽉 잡아요. 순간, 알수 없는 따듯함이 전해져 옵니다. "차 앞에 있으니까. 일단 짐부터 옮겨요." 그런 언니와 아빠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엄마가 내 손에 들린 짐을 들어주시며 말했습니다. 1년전에는, 정말 생각도 못했던 일인데. 이렇게 우리를 위해. 서로를 위해 용기 내준 엄마하고 아빠에게 너무 감사해요. "응. 얘들아 너희들도 빨리와. 오늘 저녁은 아빠가 쏠께." "무슨 저녁이에요. 돈아깝게. 내가 저녁할께요." "그럼 오랜만에 당신, 밥 먹어보는거야?" "기대는 하지 말라구요. " 어느새, 투닥투닥 거리며 앞서 나가는 엄마 아빠의 모습. 언젠가, 엄마와 아빠가 함께 있는 모습을 떠올려본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때, 정말 아무기억도 떠오르지 않는거에요. 아주 어렸을적이라 그 기억이 사라져버린거죠. 그래서 늘, 엄마하고 아빠가 함께 있는 모습은 어떨까. 라고 상상하곤 했었는데 이렇게 예쁘네요. 이렇게 가슴 벅찰정도로. 예뻐요. 이게 바로 정답이고, 제자리였던거에요. "보기 좋다. 그치?" 언니도 나와 같은 생각인지. 멀어져 가는 엄마아빠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습니다. 나는 대답대신 웃으며 고개를 끄떡여요. "넌." "응?" "잘지냈어? 나쁜 기집애야." "당연하지. 언니도 잘 지냈지?" "응..보다시피. 머리 잘랐는데 반응이 폭팔적인것 빼곤." 언니는 장난스레 웃어보이곤 "넌 나한테 할말 없어?" 라고 앞서 걸음을 옮겼습니다. 나는 그런 언니를 따라 걸으며. 참 오랜만에 한국땅을 밟았어요. "할말?" "그래. 할말!" "그러니까...음." "음?" "모두..잘지내지?" 그건, 정말 어렵게 꺼낸 말이였어요. 분명 언니도 나도 그 '모두'라는 말에 구해찬이 포함되고 있다는걸 알테니까요. 내말에 언니는 그럴줄 알았다는듯 피식 하고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당연하지. 그걸 말이라구 해?" 그랬구나. 다들 잘 지내고 있었구나. "그래도 혹시나 해서. 히히." 언니와 눈이 마주치자 왠지 모르게 내 마음을 들킨것만 같아 어색하게 웃어보였어요. "아. 달라진게 하나 있어." "응? 뭐?" 그러자 언니가 무언가 생각났다는듯 걸음을 멈추곤 예쁘게 웃어 보이며 말했어요. "나...그녀석이랑 사귀게 됬어. 사귄지는 6개월 됬구." "어...?" "다 니덕분이야 고마워." ".........." "난 지금 많이 행복해. 그러니까, 너도 빨리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 * * "예봄이는 뭐 먹을래? 엄마가 맛있는거 해준대잖아." "..........." "예봄아. 아빠 말 안들려?" 한동안 정말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던것 같아요. 차 빽미러로 아빠가 여러번 물었지만 단 한번도 듣지 못했으니까요. 그만큼 정신을 놓은채, 생각에 잠겼던 모양이에요. 언니가 나를 툭 치고 나서야 나는 정신을 차릴수 있었죠. "네? 아빠 뭐라구 하셨어요?" "얼씨구." "예봄이는 아직 시차적응이 안됬나봐요. 당신은 이렇게나 빨리 되는데." "그러게 말이야." 혀를 끌끌 차시는 아빠를 타일르며 다시 핸들을 돌리시는 엄마. 우리 네가족을 태운 차는 그렇게 열심히 우리집을 향해 달렸습니다. 나는 어색히 웃어보이곤 다시 턱을 괴곤 창문을 바라봤어요. '나...그녀석이랑 사귀게 됬어. 사귄지는 6개월 됬구.' 역시. 그랬던거구나.... 그래, 그건 어쩌면 당연한일인지도 몰라요. 당연한 일이겠죠. 혼란스럽게 했던 내가 떠났으니까. 언니와 구해찬은 자신들의 감정을 확실히 알게 된거에요. "그랬던...거야." 결국 그건 내가 바라던 일이였는데...막상, 그렇게 되버리니 마음 한구석이 아픈건. 역시나. "응? 예봄아 뭐라구?" "어? 아.아니야 언니!" 내 마음이 너무 이기적인거겠죠. "자 다왔다. 내리자." 오랜만에 오는 한국 집. 나는 엄마가 차 시동을 끌때까지 생각에 잠겨 움직이지 않고 있다가, 아빠가 "예봄아 내려야지"라고 말하고 나서야 차 문을 열었어요. 정말 엄마 말대로 시차적응을 하지 못해서 일까요. 왜 자꾸 이렇게 정신을 놓는건지. "엄마 나도 짐 줘. 옮기는거 도울께" 트렁크를 열어, 언니가 내 짐을 받아요. 나도 언니에게 짐을 받아 옮겨야 겠다는 생각으로 열어진 트렁크로 다가가는데, 순간, 그런 내발걸음이 멈출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현....태?" 정말 거짓말처럼 우리 집 앞에 서서 눈이 마주치자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는 현태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에요. "어? 이현태. 우리집 왜 왔어?" 자신의 몸보다 큰 트렁크를 옮기다 말고, 현태를 발견하고는 반가운듯 큰소리로 소리를 지르는 언니. "왜긴." 언니의 말에 그아이의 눈동자가 그렇게 나를 담아내요. 나는 그런 현태의 모습을 보다가 기분좋은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왜냐면 "예봄이 보러 왔지." 1년이 지난 지금도, 현태의 웃음은 변함없이 따듯했거든요. * * * 나는 엄마에게 잠시 현태를 만나고 간다고 말하곤 집 앞에 있는 벤치에 앉았습니다. 그러자 언제나처럼 자연스럽게 내 옆에 따라 앉는 현태였어요. 그런데, 참 이상할만큼 편한거 있죠. 1년이란 시간이 무색할만큼. "나 한국에 오늘 오는거 어떻게 알았어?" 조심스레 말문을 엽니다. 현태와는 종종 편지를 보내며 연락을 하긴 했지만. 이렇게 마주보고 앉은건 정말 정확히 딱 1년만인거 같아요. 1년이 지난 지금, 현태는 부쩍 남자답고 어른스러워진듯한 느낌이에요. "어떻게 알았긴. 김예나가 일주일전부터 말해줬어." "그랬구나." 그럼...구해찬도 알았겠네. 씁쓸한 마음으로 고개를 끄떡이자 현태가 살짝 내 머리카락을 잡았어요. "잘지냈지? 머리 더 길었네." "응. 안짤랐어!" "김예나 머리 짜른거 봤어? 티파닌가 따라한다고 저래놨어." 아아. 아까 공항에서 언니가 말한 일명 '폭팔적인' 반응이라는게 이런거였나봐요. 살짝 인상을 찌푸리는 현태의 모습에 웃음이 나요. 난 언니한테 짧은머리 나름 잘어울리는것 같았는데 말이에요. "왜! 난 예쁘기만 한데." "그소리 김예나한텐 절대 하면 안돼. 알았지?" "싫어! 할꺼다 뭐." 머리위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요. 내말에 장난스럽게 웃자 함께 웃어보이는 현태. 그리곤 녀석은 잠시 망설이다가 "예봄아.." "응?" "너는 나한테." "응?." "마지막 십대의 기분좋은 추억이야." 그렇게 조심스럽게 자신의 왼쪽손을 내게 내미는 현태. "이제 20대가 된 만큼 성숙해야겠지? 나도. 너도." 나는 현태가 내민 손을 빤히 내려다보다가 이내 머뭇거리며 그런 녀석의 손을 잡았어요. 그러자 눈부신 햇살에 잠시 눈을 찡그리던 녀석은 예쁘게 웃으며 입을 엽니다. "우리 약속했잖아. 친구. 그런 친구하기로" 따스한 햇살이 그런 현태의 머리를 노랗게 물들였습니다. "응." "앞으로 좋은친구 되줄꺼지?" "당연하지요." 그리고 그때였습니다. 그러니까, 현태와 맞잡은 손을 놓으며 벤치에서 일어선 순간, 툭. 하고 무언가가 내 발밑에 떨어진건 말이죠. "....어...?" 발밑에 떨어진 무언가를 바라보다가 영문을 몰라 현태를 바라보니. 현태는 꽤나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 해보였어요. 뭐...지?. 조심스레 주어드니. 그건, 노란색의 종이비행기였어요. ...종이...비행기. 종이...비행기? [김예봄.] 조심스레 종이 비행기를 바라봅니다. 그 종이 비행기에는 거짓말처럼 삐뚤삐뚤한 글자로 내 이름이 적혀져 있었어요. 나는 아닐꺼야. 아니겠지. 라면서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레 종이비행기를 펼쳤습니다. [거짓말처럼,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어. 나. 처음에는 니가 많이 미웠고, 내사랑이 미웠다.] 낯익은 글자, 그리고 상황에 나는 기억을 더듬어 언젠가 구해찬이 종이비행기를 접기 좋아한다는것과, 언젠가 나와 함께 수업시간에 비행기를 날리다가 걸려서 함께 벌섰던 구해찬을 생각해냈어요. 그렇다면 이건 분명, ..... ............ "구...해찬?.." 말도안돼... 종이 비행기를 손에 쥔채 주위를 두리번 거립니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어요. 정말 그 누구도. 그러나 투욱 하고 다시 한번 발밑에 떨어진 비행기. [찾아가려고도 했지만 그럴수 없었어. 정말 내가 널 좋아한다면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니가 믿지 못하는 내 진심. 그것만이 증명해줄수 있을꺼라 믿었기에.] 서서히. 정말 서서히 눈가에 고여드는 눈물. 그리고, 또 다시 발밑에 떨어진 종이 비행기 [김예봄. 10년같았던 그 1년동안 철없고 제멋대로였던 구해찬은 있는힘을 다해 노력했다. 니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고 지켜줄 수 있는 남자로서. 사랑하는 사람을 말없이 기다릴줄 아는 남자로서 니앞에 서기 위해.] 한걸음. 한걸음. 걸어 자꾸만 하늘에서 떨어지는 종이비행기를 그렇게 주워듭니다. [그리고 이건. 1년이 지난 지금도, 또, 더 많은 시간이 지나더라도 변함없어.] ... .........구해찬 너 정말 뭐야. "...어딨는거야." 너 정말...... "여깄잖아. 둔팅아." ".............." 갑작스레 들려온, 너무나도 많이 그리워 했던 그 목소리에 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렸어요. 그러자. 거짓말처럼 아파트 앞 난관에 걸쳐앉아 나를 향해 웃어보이는 개구진, 구해찬의 모습이 보였어요. 정말...거짓말처럼. 녀석을 본 순간, 원망보다는 반가움이, 반가움보다는 그리움이 그리움보다는 눈물이. 먼저..터져 나왔습니다. 눈물을 글썽거리며 자신을 쳐다보는 나를 한동안 내려다보다가. 구해찬은 늘 그래왔던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김예봄 잠깐만. 아직 하나 남았어." 손에 들린 종이비행기를 하늘높이 슝 하고 날려버립니다. 따스한 햇살을 가로질러 구해찬의 손에 들려있던 종이비행기는 다시금 내 발밑으로 투욱 하고 떨어졌어요. 정말...늘 명중이라니까. [그래서....지금도 여전히 잘하는것 하나 없고 상처만 준 못난 구해찬은 상처 투성이지만 마음따듯한 여자 김예봄을 기다리고 있는 중.] ... ........... 어째서, 정말 어째서 일까요. 구해찬은 왜 나한테. 순간, 머리가 혼란스러웠어요. 자신에게 상처 준 내가 밉지도 않은건지. 게다가 언니랑 사귀는 구해찬이 내게 왜 이런말을 하는건지. "잘지냈냐고?" 이해할수 없는 상황에 입을 열려하자 구해찬이 먼저 내 말을 가로채고는 위와 같이 물었어요. 나는 아무말없이 녀석을 올려다봅니다. 정말 근사해졌구나. 너. 더 남자답고, 멋있어졌어. 머리도 갈색으로 염색했네. 예쁘다. 정말 예쁘다. "그래 잘지냈어. 하루하루 너 보고싶어하면서 그리워하면서 걱정하면서 그렇게 존나 잘지냈다." 피식 하고 웃으며 난관에서 타악 내려오는 녀석. 구해찬이 가까워질수록 내가 항상 부러워했었던 녀석 특유의 애기 냄새가 났어요. 정말...구해찬인가봐요. "하지만..구해찬은 언니랑." 키도 부쩍 큰 것 같은 느낌이에요. 나는 내앞에 서서 날 바라보는 녀석을 향해 조심스레 말했어요. 또 다시 이러면 안돼는거니까. 구해찬은 분명 지금 언니랑. "언니랑...사귀잖아." "야 김예봄!!!!!!!!" 그때, 내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언니가 아파트안에서 나와 소리를 꽥 질렀어요. 무.무슨일이지? "내가 언제 구해찬이랑 사귄데? 난 그런말 한적 없다 김예봄." "어...언니?" "나 성현이랑 다시 사귄다는말이였는데. 내가 구해찬이랑? 야야 예봄아 즐뽕이다 즐뽕!" "김예나 죽을래? 그거 즐뽕 내꺼라고 사용하지 말랬지." 곧이어 언니 뒤를 정체불명의 케잌을 들고는 따라 등장하는 여민이. 갑작스러운 언니와 여민이의 등장에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내가 두눈을 크게 꿈뻑이며 구해찬과 현태를 번갈아보자. "아씨 니네 죽을래? 왜 내 이벤트를 방해해." "예봄이 별로 감동한것 같지도 않은데 뭘." 전자는 구해찬. 후자는 현태가 이렇게 위와같이 말하는게 아니겠어요? "잠깐. 잠깐만 이게 지금 무슨...상황이야?" 그러니까 정리해보면 언니의 '그녀석'은 구해찬이 아닌 옛남자친구였던 성현이라는 남자였단 말이에요? 그리고 그걸 내가 오해한거구요. 모든게 이해가 된 나는 내 자신이 바보같기도 하고, 어처구니 없기도해서 결국은 피식 하고 웃어버렸어요. 바보같아요 정말 나. "무슨 상황이긴. 자자. 촛농 다 떨어지겠다. 빨리 불어. 이거 김예나랑 나랑 만든거야." 피실피실 웃음을 터트리는 내 얼굴 앞으로 들고 있던 정체불명의 케잌을 쭈욱 내밀며 웃어보이는 여민이. 정말 오랜만인 여민이. 여전히 변함없이 촐랑대고 밝아보이는 여민이였어요. "뭐야. 모양이 왜이러냐. 이거. 쥐새끼야?" "참나. 야 이현태 어처구니가 없네. 이거 나름 귀여운 강아지거든? 시츄!" "............." "............" 아무리 봐도 시츄같이 보이지 않는 정체불명의 케잌의 모습에 잠시...알수없는 침묵이 흐르다가, 언니가 어색해진 분위기를 무마하려는듯 내 등을 떠밀었어요. "자자 촛농 다 떨어지잖아 불자 불어." 정신이 하나도 없고, 정말이지 어떻게 된 상황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언니말대로 촛농이 다 떨어지기 전에 불어야겠다는 생각에 심호흡을 크게 하곤 촛불의 불을 끄려는데 "잠깐만. 뭐라고 말하고 불어야 할거 아냐." 다시금, 말을 끊는 여민이 때문에 도로 뱉으려는 숨을 마셔버립니다. 다른때 같았으면은 왜 말을 끊냐고 타박을 했겠지만 다들 맞는말이라는듯 수긍을 하며, 진지하게 고민을 해요. 그러다가 이내 여민이가 손뼉을 딱 소리나게 쳤어요. "김예봄 웰컴 투 코리아! 어때." "좋았어. 예봄아 불어." "응.! 하나..둘" "잠깐." 다시 촛불을 불려고 하는데, 흐름을 끊어버립니다. 이번에는 구해찬이였어요. 자꾸만 흐름이 끊기자 그런 구해찬에게 신경질적으로 소리치는 언니였어요. "아 또 왜!" "하나 더 붙여." "뭐?" "김예봄 하트 구해찬." 순간, 화르륵 하고는 얼굴이 벌개졌어요. 어쩜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저런말을 툭툭 내뱉는걸까요. 그것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지랄. 이새끼는 점점 느끼해져." "야 그냥 무시하고, 빨리해 빨리. 아 맞다!" 역시나, 좋은 소릴 듣지 못하는 구해찬이였어요. 그때, 말하던 도중 여민이가 갑자기 무언가 생각났다는듯 푸하하 하고 웃음을 터트려요. "예봄아 너 그거 모르지? 구해찬이 미국 보내달라고 엄마한테 말했다가 드럽게 얻어 쳐먹고 가출한거." 그러자 이번엔 언니가, 손뼉을 치며 맞아맞아 라고 웃어대요. "그것만이면 양반이게. 구해찬 얘 너 떠난뒤로 징징대며 학교 안나왔지."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공부를 졸라 열심히 해서 학교 애들을 놀래키기도 했었지. 아마 미친놈같이." "야 제일 가관은 수능 디데이도 안하던새끼가 찌질하게 너 올날 디데이로 빨간 동그라미 치고 있었다는거야." 역시..못말린다니까. 언니와 여민이의 이야기를 듣다가 결국은 참고 있던 웃음을 풉 하고 터트리자. 구해찬이 붉어진 얼굴로 괜히 성질을 냈어요. "웃기지마. 김예봄 얘네 이거 다 뻥이야." "너나 웃기지마. 어디서 이렇게 증인이 빤히 눈뜨고 살아있는데! 어? 아악! 촛농 다떨어지잖아. 김예봄 빨리 안불어??" 여민이는 말을 하던 도중 정체불명의 케잌으로 뚝뚝 떨어지고 잇는 촛농을 보며 경악을 합니다. 이어 촛농이 다 떨어져 둘이 먹다가 하나죽어도 모를 케잌맛에 금이가면 가만두지 않을거라는 황여민의 말에 지금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김예봄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습니다. "알았어. 진짜 분다. 하나.둘.셋." 그리곤 이번에야말로 촛불을 꺼야겠다는 생각으로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있는 힘을다해 후우 하고 바람을 불었어요. 그러자 순식간에 촛농이 뚝뚝 떨어지도록 녹이고 있던 불은 그대로 연기와 함께 사라졌어요. 촛불이 꺼지자 마자 요란스러운 환호와 함께 박수소리들이 엉켜서 들려옵니다. 이런 기분이였구나.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한다는게, 이렇게 행복한거였구나. 이렇게...눈물나는 일이였구나. .............. .......... 나는 그들 사이에서 19년동안 가장 행복한 웃음을 지어 보였습니다. "김예봄 웰컴 투 코리아.!!!!!!!!!!!!!!!!!!!!!" 어느새 내 손을 꼭 잡은 녀석의 따듯한 손을 놓지 않은채 말이에요. #. 에필로그 2년 뒤. 사랑 때문에 아프기도 하고, 상처 받기도 하고, 그래서 사랑이 싫어지기도 했고, 무서워 지기도 했던 10대를 지나 아직도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과 헤어져야 한다는 것에 서툴지만. 이제는 현태의 말처럼 우리 모두 조금은 더 성숙해져야 할 20대가 됬어요. 하지만 대한민국 어느곳, 2008년 7월15일. 김예봄 구해찬은 여전히 철없는 사랑을 하고 있는중입니다. "예봄이 넌 좋겠다. 남자친구가 저렇게 맨날 데리러 와주고." "오늘은 혼나러 가는거야." "혼나러?" "응. 내가 또 잘못했거든." 울상을 짓는 나를 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듯 어깨를 으쓱해보이고는 학교 정문에 기대 서있는 구해찬을 바라보는 민지였어요. 민지는 대학와서 새로 사귄 친구였는데, 매일 나를 데리러 오는 구해찬을 부러운 눈초리로 바라보곤 했죠. 그때마다 괜스레 으쓱해지곤 했는데, 오늘만큼은 어깨에 주눅이 든 채로 나는 터덜터덜 구해찬에게로 걸어갑니다. "김예봄." "어?" "빨리 안와?" "응! 지금 가!" 잘못한게 있으니, 저렇게 노려봐도 어쩔수 없는일이지요. 민지에게 재빨리 인사를 하고는 나는 재빨리 구해찬에게로 쪼르르 달려갔어요. "뭘 잘했다고 느릿거려!" 22살이 된 구해찬은 조금 더 잔소리가 늘었어요. 뭐 예전보다 훨씬 근사해지고 멋있어지긴 했지만 말이에요. "느릿거린거 아니야!" "느릿거린거 맞거든." "힝! 아닌데..." "아 됐어. 됐고 빨리 가자." 더워 죽겠다는듯 턱 끝으로 자신의 차를 가리키는 구해찬이였어요. 차안에는 에어컨이 있겠죠? 빵빵하게 틀어야지! 라는 생각으로 녀석의 차에 오르려는데. 꿈쩍도 안하는 구해찬. "왜 안가?" "죽을래?" "아아 맞다. 손! 히히." 깜빡 잊어 버리고 말았어요. 나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피실피실 웃으며 구해찬의 커다란 손을 잡습니다. 그리고 그제서야 어째 더 어려진것 같은 내 남자친구는 움직이지 않을것만 같았던 발걸음을 움직였어요. "한두번도 아니고 말야." 이번에는 정말 단단히 화가 난 모양입니다. 운전을 하면서도 계속 투덜대며 나를 노려봐요. 그러면 김예봄은 눈치를 살살 보며 히히 하고 웃어보이죠. "좋텐다." "그치만 어쩔수 없었다구! 정말로 물을 줬는데 죽어버린걸 어떡해!" "물을 줬는데 그게 왜 죽어" "진짠데! 진짜로 그냥 픽 하고 죽어버렸어!" 이건 정말입니다. 자꾸만 화분의 꽃이 죽는걸 어떡해요! 사실, 벌써 10번이 넘게 꽃을 관리 못하고 죽여버린 나도 잘못한거긴 하지만. 그래도 그 꽃은 너무 쉽게 죽는다구요. 내 탄생화라더니 왜 이렇게 픽픽 죽어버리는건지. "너 진짜 이번에도 죽이면." "응응?" 이내 꽃가게에 도착했는지 시동을 끄며 내 안전 벨트를 풀어주려는듯 다가오며 말합니다. 탁, 하고 누름과 동시에 풀려버린 안전벨트지만 녀석은 여전히 그자세 그대로 나를 바라봤어요. 이런 상황이 적응 될만도 한데. 아직도 바보같은 김예봄은 딱딱히 긴장한채 숨을 헙 들이키고 있어요. "가만 안둬." 일순, 구해찬과 내 입술이 정말로 삼센치 정도까지 가까워졌다가 그대로 떨어집니다. 휴 하는 안도와 함께 나는 해찬이에게 예쁘게 웃어 보이며 말해요. "응! 걱정마!" 그러자 녀석의 따듯한 손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내 머리를 부비적 거립니다. 정말이지 구해찬의 레파토리는 2년 내내 변함이 없다니까요. \꽃가계 "헬리오토로프. 그 허브 한송이 주세요. 화분에다가 심어서." 꽃가게에 도착하자마자 구해찬은 뭐가 그렇게 급한지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며 말해요. 종업원은 헬리오토로프요? 잠시만요. 하고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구요. 나는 쭈그리고 앉아서 다른 꽃들의 잎을 툭툭 건드려 봅니다. "구해찬." "응?" "넌 내가 아직도 모르는줄 알지?" "뭘.?" "내 탄생화 의미." "너 알아?" "아니. 사실은 몰라. 히히" "모르면서. 까불어." 이 바보는 아마 내가 그 의미를 평생토록 모르고만 있는줄 아나봐요. 일부로 모른척 하자 애써 안도하는 모습 포착. 하여간 바보라니까요. 인터넷만 두들기만 찾을수 있는 사실인데. 뭘 저렇게 숨기려고 하는지. "어? 근데 저거 뭐에요?" 슬슬 꽃구경이 지루해질 무렵, 나는 문득, 발견했어요. 꽃가게 한쪽벽에 노랗게 채워진 포스티잇을. 나는 그것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봅니다. "아. 손님들이 재미삼아서 붙이고 가신거에요. 그냥 꽃포장 기다릴때나 그럴때, 아니면 꽃배달할 때 문구같은거 적어서 붙이시고 그러시더라구요." 열심히 포장을 하다가 대답해주는 종업원이였어요. 우와. 신기하다. 나는 꽃가게 안으로 완전히 들어가 벽을 빼곡이 메운 노란 포스티잇을 하나하나 읽어보기 시작했습니다. 족히 수천장은 되보이는 포스트잇에는 각자 다른 사람들의 바램들이 빼곡이 적혀있었어요. 바램같은걸 적는거구나. "여기, 포장 다됬습니다." "너 그런거 좋아하냐?" 그때, 화분을 받아들며 심드렁하게 묻는 해찬이. 하지만 이미 온통 그곳에 정신이 팔린 나는 그런 해찬이의 물음에도 대답하지 않은채 종업원쪽으로 고개를 돌렸어요. "저도 써도 되요?" "네?" "저도 써두 되냐구요!" "당연하죠. 거기 종이하고 펜 있는데..." 그러고보니 정말 바로 내앞에 종이와 펜이 놓여져있었어요. 나는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는 구해찬의 시선에도 끄떡하지 않은채 룰루랄라. 포스트잇 하나를 꺼내들었습니다. 그리곤 조심스레 한글자 한글자 또박또박 써내려 가기 시작했어요. "뭐라고 쓰는데?" 그때즈음, 녀석도 꽤나 궁금했는지 내게 화분을 건내며 묻습니다. 하지만 나는 두손으로 꼭꼭 가리는 시늉을 했어요. 그러자 어처구니가 없다는듯 나를 바라보다가. 치사해서 안본다며 뒤돌아서는 구해찬이였습니다. 하지만, 절대 알려줄수 없다구요. 이건. "비밀이라구요." 그리곤 중얼거리며 포스티잇을 아랫부분에 붙여 놉니다. 그러자 내가 붙여 놓았던 노란 포스티잇이 봄을 타고온 바람에 살짝 흔들려요. 나는 포스티잇을 흔들리지 않게 다시, 꾸욱 눌러 붙이고는 구해찬이 건낸 화분을 들고 일어났습니다. 3년전, 구해찬이 내게 처음 이 화분을 건냈을때처럼 꽃에서는 기분좋은 향기가 났어요. 나는 문득, 떠오른 그 추억에 기분좋게 웃어보이다가 이내, 구해찬이 없다는걸 알고는 두리번 거렸습니다. 저녀석, 삐져버렸는지 나가버렸나봐요. 소심하긴. "구해찬 기달려!" 화분을 들곤 헥헥 거리며 구해찬을 따라 갑니다. 그리곤 망설임없이 구해찬의 손을 조심스레 잡았어요. 그러자 나를 힐끔 바라보더니 어쩔수 없다는듯 피식 하고 웃어버리는 녀석이였어요. 눈이 마주치자 나도 따라 구해찬을 향해 웃어보였습니다. "........." 알아요. 나..... 앞으로 행복할 수만 없다는거. 내가 그랬던것처럼 해찬이가 그랬던것처럼 앞으로도 우린 때론 사랑 때문에 아프고, 상처 받겠죠 서로를 미워할수도 있고, 오해할수도 있고, 마음이 떠나 슬퍼질수도 있어요. 나, 그래도 이손을 놓을순 없는건요. 사랑이 아프고, 상처주고, 미워하게 되고, 슬퍼지게 되더라도, 구해찬을 위해 참아낼수 있기 때문이에요. 왜냐면 구해찬도 나를 위해, 분명히 그래줄테니까. 그래서 나는 이 손을 당분간, 아니 앞으로도 쭉, 아니 평생. 놓지 않을것 같아요. "나중에 알려줄게. 응? 구해차안! 근데 우리 어디가? 응?" 나는 웃으며 구해찬의 손을 꼬옥 잡곤 또 다른 추억을 향해 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동안 우리 둘이 아팠던만큼, 엇갈렸던 만큼. 힘들었던만큼. 먼 길을 돌아왔건것 만큼. 그렇게...간절했던것 만큼. 따스한 햇살로 노랗게 물들어진 그곳에 적은 내 바램이 부디, ‘사랑이여 영원하라’ 이루어지길 바라며............ end